§ 나는 될놈이다 1342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넘어가기에 태현의 악명은 너무나도 높았던 것!
태양 도적단 NPC들에게 태현은 그냥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슈퍼스타처럼 보였다.
이런 누추한 곳에 저런 귀한 분이 오셨는데 어떻게든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 던전 지하에… 뭐가 새로 생겼대서… 확인해 보려고 가고 있다….”
클로스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정보를 토해냈다.
아무리 퀘스트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목숨보다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죽으면 피해가 너무 막심한 것이다.
태현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오. 히든 던전?”
“꼭 히든 던전이라는 건 아니고 뭐 다른 걸 수도 있고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고….”
“저놈 말하는 꼴이 수상합니다! 죽입시다!”
““죽이자! 죽이자!””
말 한 마디 떨어질 때마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죽이자고 합창했다.
“모두 조용히 해라.”
“옙.”
“그렇군. 그러면 우연히 동선이 겹친 건가?”
태현의 질문에 루돌프 길드원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오해 때문에 크게 싸울 뻔했군. 나도 남의 퀘스트를 방해할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은 아니야.”
“오오오…!”
“이 주변의 쓰레기들하고는 인성부터가 다른데?”
길드원들은 솔직히 감격했다.
이 주변에서 레벨은 인성과 반비례했던 것이다.
레벨 높은 약탈자 놈은 보통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태현의 말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어이없어했다.
‘우리를 그냥 막 개패듯이 죽이지 않았냐?’
‘피도 눈물도 없는 거 같은데….’
물론 그들이 먼저 길을 막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러면 퀘스트를 같이 깨도록 하지.”
“…어?”
“왜. 뭔 문제라도 있나?”
태현의 말에 루돌프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거절하면….
저 뒤에 있는 놈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덤빌 것 같고….
그렇다고 수락하자니 매우 찜찜했다.
자기들이 독점하려고 했던 퀘스트였던 것이다.
-어쩝니까?
-뭘 어떡해. 저걸 거절할 수 있겠냐? 받아들여.
클로스는 포기했다.
이렇게 된 이상 상대가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했다.
퀘스트 독점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
“대장님! 지금 제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그러는데, 저 루돌프 놈들이 대장님을 공격하려고 했답니다!”
“무, 무슨 소리야! 아니야! 아니야!”
* * *
던전 아래로 내려가면서, 던전을 돌고 있는 몇몇 파티들을 더 볼 수 있었다.
-여긴 우리 자리…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여러분들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야! 꺼져! …아! 그쪽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저희 파티원에게 한 말입니다! 야! 저리 꺼지라고 했지!
‘여기 진짜 멀쩡한 놈들이 하나도 없나?’
하긴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많으니 일반 플레이어들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그렇지 만나는 놈들마다 다 나사 하나씩 빠져 있는 놈들이라니….
처음에는 시비를 걸려던 놈들도 그 뒤에서 따라오는 플레이어들 숫자를 보고 기겁해서 대가리를 박았다.
점점 내려갈 때마다 늘어나는 숫자!
재칼은 당황해서 물었다.
“이, 이봐. 이렇게 많이 데리고 갈 이유가 있어?”
“퀘스트 할 때 사람 많으면 편하잖아?”
“…진짜 그 이유 때문이라고?!”
재칼은 기겁했다.
물론 사람 많으면 보스 몬스터 잡을 때도 편하고, 퀘스트 깰 때도 좋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게다가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다 조별과제의 폭탄 같은 놈들 아닌가.
그런 놈들 모아봤자 연쇄폭탄이지 잘될….
“괜찮아. 잘 다루면 그만이지.”
‘이거 뭔가 큰일 날 것 같은데….’
재칼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하고 있었다.
벌써 숫자가 수십 명이 넘은 것이다.
던전 내려갈 때마다 만나는 놈들 끌어들여서 파티에 넣다니!
주변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인원이 만들어 진 적이 있었나?
-뭐 용이라도 잡으러 가나요?
-대체 왜 이렇게 인원이 많이 모임??
처음에는 ‘왜 안 싸워’ ‘빨리 싸워’ ‘싸우다 죽어’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신기해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인원을 많이 모으고 있는 거지?
뭘 하려고?
“흠. 그런데 루돌프 길드는….”
태현이 입을 열자 클로스는 긴장했다.
정체불명의 상대.
하는 걸 보니 아마 랭커 중 한 명이 분명했다. 그것도 약탈자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그렇지 않다면 여기 이렇게 많은 놈들을 유유히 제압할 수 있겠는가.
“역시 루돌프 사슴에서 따온 길드명인가?”
“…아니야!!!”
“어? 아니야? 아까 클로스라고 부르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산타클로스를 유난히 좋아하는 놈들이 모여서 만들었나 싶었는데, 반응을 보아하니 아닌 것 같았다.
클로스는 격하게 화를 냈다.
“길마 이름이 루돌프인 거고! 난 산타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
“알겠어. 임마. 그냥 물어본 거야.”
“미, 미안하군. 이거 갖고 놀리는 놈들이 많아서…. 길마가 길드 이름을 이상하게 짓는 바람에 곤란한 일이 많았다.”
“뭐 판온에 이상한 길드가 한두 개도 아니고.”
“우리 길드만큼 이상한 길드도 없을 텐데.”
“아니. 있어.”
태현은 진지하게 말했다.
성기사이즈킹이란 길드가 있는데 말이야….
[길이 뒤틀려서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통로가 봉쇄되었습니다!]
“다른 길을 찾아야겠군.”
“올라가서 아까 다음 길로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몇몇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의견을 냈다.
제법 던전에서 잔뼈가 굵은 덕분에 대응이 빨랐다.
하지만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신의 예지>로 보면 이쪽 길로 가야 해.’
스킬로 보니,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길은 이쪽이라고 나와 있었다.
다른 쪽으로 가서 길을 찾는다고 딱히 좋을 일이 없는 게 분명했다.
“이 길을 뚫는다.”
“아. 스크롤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어라? 그러면 뭘로 뚫습니까?”
태현은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켰다.
“…???”
“여럿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스킬인가?”
“아니. 니들이 뚫으라고.”
“….”
설마….
설마…??
* * *
“아니 왜 저런 미친놈을 만나가지고….”
“쉿. 목소리 죽여. 아까 한 놈 개기다가 어떻게 됐는지 못 봤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곡괭이와 삽을 들고 열심히 휘둘렀다.
붕괴된 통로의 잔해물을 치우고 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저 놈이 왜 이렇게 사람들을 많이 모으나 했더니 바로 이런 걸 위해서였구나!
-더 이상 못 참겠다! 모두! 우리 숫자가 아까보다 세 배는 늘었어! 우리가 모두 일제히 덤비면 저 놈도 어떻게 하지 못할 으아아악!
-또 뒤지고 싶은 놈 있나?
-….
-….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제일 하기 싫어하는 일이 바로 이런 잡일이었다.
이런 거 싫어하니까 남 공격하고 아이템 뜯는 일을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가끔은 하기 싫어도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
바로 미친놈이 무기 들고 뒤에서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아 거 더럽게 못하네. 곡괭이를 그렇게 휘두르면 잔해물이 안 깨지잖아. 옆으로 튀기만 하고.”
“삽질 한 번 할 때마다 기도라도 하냐? 빨리 해라. 체력 많이 남은 거 알고 있으니까.”
“저런 멍청한 놈 같으니. 케인이 해도 너보다는 잘하겠다. 케인이 얼마나 이런 삽질을 잘하는지 알아?”
태현은 달인의 솜씨로 잔소리를 해댔다.
안 그래도 채찍질 잘하는 태현이었지만 숙소에서 선수들과 같이 살면서 한층 더 수준이 오른 것이다.
분명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데, 그 수십 명을 전부 다 하나씩 훑어보면서 단점을 지적할 수 있는 수준!
‘직업이 무슨 시X 노예감독관이야?’
‘케인이 잡일을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저놈 사칭 아냐?’
‘사칭인지 아닌지 뭐가 중요해. 우릴 죽일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단체활동에 더더욱 버프가 들어갑니다!]
[채광 스킬이 올라갑니다!]
[건축 스킬이 올라갑니다!]
[스킬, <노동 착취>를 얻습니다!]
<노동 착취>
많은 플레이어들을 한 번에 지휘해서 작업을 진행할수록 더 많은 보너스를 받습니다!
‘오… 전술 스킬 올린 보람이 있군.’
태현은 생각보다 쓸 만한 스킬에 기뻐했다.
원래 판온은 닥치는 대로 사람 많이 모은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았다.
사람 많으면 그에 따른 혼란 페널티가 있는 것이다.
이런 걸 받지 않으려면 전술 스킬 같은 걸 올려야 했고….
태현이 올린 높은 전술 스킬 덕분에, 이런 식으로 사람 대거 투입해 쓰는 건축 스킬에도 페널티가 없었다.
태현의 전술 스킬로 감당 가능한 인원만큼은 닥치는 대로 때려 넣어도 되는 것이다.
[통로가 열립니다!]
“잘했다. 들어가자.”
“와아아아아!”
길이 열리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모두 얼싸안고 기뻐했다.
평소에는 어깨만 부딪혀도 서로 칼을 들이대는 사이였지만, 몇 시간 동안 삽과 곡괭이를 들고 같이 땀을 흘리자 자신들도 모르게 우정이 생겨난 것이다.
이게 바로 건설적인 삶일까?
[길이 뒤틀려서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통로가 봉쇄되었습니다!]
“어. 하나 더 나왔네. 다시 곡괭이 들어라.”
“….”
* * *
“이 근처에 히든 던전이 있습니다.”
“그렇군. 모두들 기대되나본데?”
“아…. 예. 엄청나게 기대됩니다.”
‘집에 가고 싶다.’
‘오늘 밖으로 나가면 에스파 왕국을 떠나서 다른 왕국으로 가야지. 아탈리 왕국이나 가볼까. 거기 골짜기가 좋다던데….’
‘생각해 보니 난 약탈자가 적성에 안 맞는 걸지도 모르겠어.’
히든 던전이고 뭐고 간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그냥 도망가고 싶었다.
이미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집중해서 길을 찾았다.
[숨겨진 입구를 찾았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지하 마을로 향하는 길을 발견합니다!]
[정체불명의 괴수 둥지를 발견합니다!]
“…?”
<정체불명의 괴수 둥지-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대체 어느 사악한 교단의 짓일까요? 아키서스 교단은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체 모를 사악한 교단이 괴수의 알들을 모아 놓고 기르고 있었습니다.
이 괴수들이 밖으로 빠져나온다면 에스파 왕국에는 커다란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이 괴수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막으십시오!
보상:?, ???
해머맨 파티가 지나갔던 던전 최심층은 그저 입구일 뿐.
그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의 다른 마을로 향하는 길은 물론이고, 어떤 미친놈들이 만든 괴수 둥지도 나왔다.
[아키서스 비전 암살자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아키서스 비전 암살자 추적-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교단의 비전 암살자가 벽에 남긴 흔적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는 아래의 마을로 들어간다. 교단의 동지여.’
비전 암살자가 대체 어떤 이유로 내려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밑의 마을에 찾아간 것은 확실합니다.
마을로 내려가 그의 흔적을 찾아내십시오!
보상:?, ???
‘아니 미친놈이 저런 곳에 왜 내려간 거야?’
태현은 불평했지만 사실 비전 암살자의 잘못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만히 있는 마을 위에다가 누군가 괴수 둥지를 차린 것일 테니까.
‘그나저나 마을로 가다니. 은퇴하려고 들어간 건가? 왜 이런 곳에서?’
[카르바노그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합니다. 아키서스 비전 암살자라면 적이 많았을 테니, 멀고 구석진 마을이 답일 거라고 말합니다.]
‘…매우 그럴듯한데.’
아키서스 교단+암살자.
적 많이 생기기 좋은 것들을 서로 붙여 놓은 셈이었다.
조용히 은퇴하려면 바다 건너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정도의 원한!
이런 지하 던전 마을에서 은퇴하려는 것도 이해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