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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338화 (1,337/1,826)

§ 나는 될놈이다 1338화

‘저런 놈들을 보면 기분이 편해진단 말이지.’

[카르바노그가 이상한 부분에서 위안을 얻지 말라고 어이없어합니다.]

왜 저런 걸로 위안을 얻는단 말인가!

‘하지만 익숙한 건 어쩔 수 없다고.’

태현은 저런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는 데에 익숙했다.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가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남을 거침없이 공격하는 플레이어들.

이런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때면 태현도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순수하고 선량한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때면 괜히 죄짓는 기분 들어서 상대하기 싫었다.

‘역시 판온은 양심 없는 놈들이랑 같이 놀아야 마음이 편하다니까.’

태현은 광기에 가득 찬 독백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변장은 태현의 특기 중 하나.

그러나 사실 변장을 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는 워낙 수상쩍은 룩을 갖춰 입고 다니는 놈들이 많았던 것이다.

전신을 망토로 칭칭 감싸고서 눈만 드러낸 엣지 있는 도적 룩.

뼈로 만든 해골 가면을 얼굴에 쓰고서 눈을 데룩데룩 굴리고 있는 흑마법사 룩.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철 투구를 푹 쓰고서 쌍칼을 든 채 훅훅 숨을 내쉬는 전사 룩.

무슨 범죄 직업 플레이어들 패션쇼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는 태현도 얼굴 가리고 있어도 의심 받지 않는 것이다.

‘정말 너무 좋군.’

[카르바노그가 제발 정신 차리라고 외칩니다!]

“아. 정말 좋은 시절 다 갔어. 미친 스미스 새끼.”

“그러니까 말이야.”

“?”

옆에 지나가던 산적 둘이 떠드는 말에 태현은 의아해했다.

왜 스미스 욕을 하지?

“스미스 놈 때문에 오스턴 왕국에서 도적질하기가 힘들어졌어. 그 자식이 숨통을 끊었지.”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어떻게 살란 거야? 우리 같은 도적들도 배려해 줘야지!”

“…….”

그랬다.

오스턴 왕국은 한때 전 서버의 약탈 계열 플레이어들이 전부 다 몰려왔다고 할 정도로 치안이 안 좋았다.

에스파 왕국은 전통 있는 범죄자들의 왕국이라면, 오스턴 왕국은 내전 이후 새로 탄생한 범죄자들의 왕국!

길드 동맹이 왕위를 잡고 나서 세율을 올렸고, 불만도는 올라가고, 치안이 안 좋아지니 길드 동맹은 대도시 위주로 군사력 올려서 막았고….

이 모든 상황이 약탈자들 생기기 좋은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 불을 지른 게 바로 태현.

태현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혼자서 오스턴 왕국을 쏘다니면서 약탈하고 공격하고 약탈자 플레이어들 불러내고….

오죽하면 오스턴 왕국의 북쪽 항구도시인 벡텔 시는 아예 약탈자들의 도시가 되었을 정도!

하지만 눈부신 전성기가 있다면 그 끝도 있는 법.

태현과 길드 동맹의 사이가 어느 정도 화해가 되고, 길드 동맹의 영역이 좁아지자, 오스턴 왕국을 누비던 약탈자들은 슬슬 설 곳이 좁아졌다.

길드 동맹이 치안을 관리하자 NPC나 마을들이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불리한 상황에 못을 박은 건 스미스와 <화이트 나이트>의 대침공이었다.

초대형 길드들이 전력을 쥐어짜 내면서 서로 대충돌을 해대니,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어디에 끼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게다가 에랑스 왕국군까지 쳐들어왔다.

어지간해야 도적질을 하지 이건 뭐 하려다가 비명횡사하는 게 대부분!

결국 대부분의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오스턴 왕국을 떠나는 꼴이 됐다.

‘그래서 여기로 다 왔다니 좀 웃기군.’

나비효과처럼 판온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은 다른 곳에도 영향을 끼치곤 했다.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이 그랬다.

-정지! 이 <태양 도적단의 마을>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

태현은 멈칫했다.

뭐지?

‘입장 제한이 있었나? 까다로운 거면 곤란한데.’

마을이나 도시에 따라서는 입장 제한 조건이 있는 곳들도 많았다.

그 나라 소속이거나, 현상금이 안 걸렸거나 같은 쉬운 조건부터 시작해서 특정 스킬 고급 이상, 레벨 200 이상 같은 어려운 조건들까지.

“이미 알고 왔다. 비켜라!”

줄 맨 앞에 있던 플레이어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이미 입장 조건을 알고 왔기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어딜 감히 이 정도 수준으로! 형편없는 놈! 꺼져라! 넌 이 마을의 수치가 될 거다!

“아, 아니!? 분명 제대로 찍었는데? 다시 확인해 봐! 다시!”

-꺼지라고 했을 텐데! 에잇! 이놈!

입구를 막고 있던 도적은 플레이어를 매몰차게 쫓아냈다.

태현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조건이 뭔데 쫓겨났지?”

“묻지 마, 이 자식아! 죽고 싶냐!”

플레이어는 으르렁거리며 태현을 노려보았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성질이 더러웠다.

어깨만 부딪혀도 PVP를 벌이는 이들!

…하지만 플레이어가 한 가지 모르고 있던 건, 태현 성질이 더 더럽다는 거였다.

콰지지직!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상대의 어깨 갑옷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태현은 스킬을 집중시킨 뒤 정확하게 상대의 갑옷만을 파괴했다.

이 정도 되는 상대에게는 고대의 망치를 꺼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다시 지껄여봐라.”

“예! 저 마을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악명 스탯이 필수입니다.”

플레이어는 매우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태현의 공격이 상대에게 예절을 주입해 줬던 것이다.

“악명 스탯이라고?”

“예. 저는! 조건을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잘못 본 것 같습니다!”

“그렇군. 가봐도 좋다.”

플레이어는 호다닥 뛰어간 다음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외쳤다.

“너 뒤통수 조심해라! 뒤지기 싫으면!”

태현은 무시했다. 저런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악명이면 뭐 상관없지 않나?’

이 자리에서 1등은 아니더라도 태현은 어디 가서 악명 스탯이 부족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악명 스탯이 대충….

‘7만 넘었군.’

명성 스탯이 압도적이라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히익! 마을에서 나가!’ 같은 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거 없었다.

-꺼져라!

-꺼져라!!

-꺼져라!!!

마을 앞을 지키고 있는 도적은 가차없이 퇴짜를 놓았다.

자신만만하게 들어온 플레이어들이 다 쫓겨나가는 걸 보자 태현은 살짝 불안해졌다.

‘최근에 조건이 바뀐 것 같은데.’

안 그러면 여기 플레이어들이 단체로 다 쫓겨날 리가 없었다.

조건이 올라갔다!

-…….

태현이 다가가자 도적은 멈칫했다. ‘꺼져라’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 이런 누추한 곳에 어찌 이런 위대한 분께서 오셨나이까?

“…….”

[악명 스탯이 매우 높습니다!]

[태양 도적단의 도적이 당신을 보며 존경심을 품습니다!]

[마을에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마을 도적들이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

-이봐!! 나와 봐라! 대도적께서 오셨다!

-뭐? 대도적? 얼마나 대단하다고 부르는 거야?

-이 자식! 당장 나와 보지 못해?? 빨리 나와 보라고!

문지기 도적이 화를 내자, 태현이 말릴 틈도 없이 마을 안에 있던 도적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세상에!

-저렇게 사악하고 야비하고 더러울 수가 있나??? 인간 맞나? 블랙 드래곤 아니신가?

-위, 위대한 존재십니까?

도적 떼들은 웅성거리며 태현을 우러러보듯 쳐다보았다.

태현은 생전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지?

“저, 저 사람 누군데 저러냐?”

“이 마을 몇십 번을 왔는데 저런 반응은 처음 보는데….”

플레이어들도 놀라운 건 마찬가지였다.

생전 처음 보는 반응이었던 것이다.

대체 악명 스탯이 얼마나 높으면 저런 반응이 돌아오지?

“진짜 나쁜 놈인가 보다.”

“마을 몇 개 불태워도 저런 반응은 못 얻을 것 같은데….”

“선량한 NPC들 대량학살한 거 아냐?”

“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저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악명을 올릴 수 있습니까???”

평소에는 시비만 걸고 다니던 사람들도 공손한 태도로 태현을 불렀다.

알고 싶다!

“…빨리 문 안 열면 너희들을 다 부숴버리겠다.”

-알겠습니다! 이봐! 빨리 문 열어! 빨리!

* * *

[<태양 도적단의 마을>에 입장합니다!]

“그러면 이만….”

태현은 바로 마을에 있는 던전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도적 NPC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봐! 안내해드려!

-대도적님! 저희가 마을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미 안에 들어와 있던 플레이어들은 태현을 보고 의아해했다.

저놈은 대체 뭐하는 놈인데 NPC들이 저렇게 달라붙는 거지?

“저놈 데리고 와라.”

“예!”

약탈자 플레이어, 재칼은 파티원들에게 명령했다.

여기 있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전부 다 고렙 이상의 플레이어들.

그런 이들의 우두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재칼의 실력을 증명했다.

게다가 재칼에게는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명성이 있었다.

재칼은 파티원들이 태현을 둘러싸는 걸 지켜봤다.

파티원들이 태현에게 뭐라고뭐라고 말을 하고, 태현이 검을 뽑고, 그리고….

“?!??!”

파티원 둘이 지워지는 걸 본 재칼은 기겁해서 무기를 들었다.

저 새끼 뭐냐 저거!?

“랭커다!”

“이 새끼 랭커야!”

남은 파티원들은 깜짝 놀라서 물러섰다.

욕 좀 하고 시비 좀 털었다고 두 명이 한 번에 로그아웃을 당하다니.

뭐 이런 놈이 있지?

“나쁘지 않군.”

태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대 제국 대학에서 얻은 스킬을 점검했다.

<제국섬광검> 덕분에 이런 상황에서 기습할 때 더 빠르게 칠 수 있었던 것이다.

“너 이 자식, 우리 파티장이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니 파티장이 길드 동맹의 쑤닝이든 스미스든 이세연이든 상관없다. 묫자리 파고 들어가게 해줄 테니까.”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말했다. 그 말에는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잘못 건드렸다는 걸 직감했다.

품격!

태현에게서는 거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품격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파티장이 누군지 말은 해야 하는 법.

“너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다! 재칼은 무려 레드존 길드 출신이라고!”

“?”

레드존 길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 케인과 같은 길드 출신이란 거다! 알고는 있는 거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어색한, 자신만만한 웃음을 보여주고 있는 재칼이란 플레이어.

…상대가 갑자기 약해 보였다.

‘미친 듯이 허접한 놈이었군.’

태현은 견적을 끝냈다. 바로 검을 뽑고 재칼에게 달려들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길을 막고 있던 파티원들은 병풍이나 마찬가지였다. 태현이 파고들자 그대로 겁에 질려 길을 내줬다.

“!”

재칼은 태현이 달려들자 다급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갈고리 모양의 단검이 번뜩이면서 스킬이 날아갔다.

-암흑분신검, 날카로운 칼날, 균열의 단검!

‘어라?’

생각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상대의 모습에 태현은 의아해했다.

실력이 있는 놈인가?

스킬 콤보도 상당히 날카로웠다. 태현은 암흑분신검은 폭발 도약으로 거리를 벌려서 피한 다음, 균열의 단검은 반격의 원으로 맞받아쳤다.

그러자 상대는 아예 스킬을 취소해 버리더니 옆으로 도약해서 거리를 벌렸다.

랭커 중에서도 제법 반사신경이 있고 스킬을 굴릴 줄 아는 머리가 있는 플레이어!

‘케인과 같은 길드 출신이래서 허접한 놈인 줄 알았는데.’

‘저 자식 뭐하는 놈이야?’

재칼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방금 분명히 콤보가 들어갔는데, 데미지는커녕 상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피하고 들어온 것이다.

완전히 움직임을 읽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날 노리고 온 암살자인가?’

하도 저지른 일들이 많아서 추측하기가 힘들었다.

길드 간부랑 싸운 적도 있고, 랭커 한 명 PVP로 쓰러뜨린 적도 있고, 케인과 같은 길드 출신이라고 사칭하고 다닌 적도 있고….

‘역시 저번에 잡은 길드 간부 놈이 암살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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