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36화
[카르바노그가 자기 자신이 살아온 길이 자기 자신을 결정하는 거라고 그럴듯하게 말합니다.]
‘교훈적인 척 말해봤자 딱히 교훈적이지는 않거든. 카르바노그.’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분위기에 속지 않았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 논리로 따지면 판온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스킬 못 배워야 했다.
왜 많고 많은 놈들 중에서 태현만 이런 일을 겪는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키서스가….
“후. 그래. 스킬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지.”
태현은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상한 스킬 나온다고 해서 태현이 딱히 흔들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기에는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너무 가시밭길이었던 것이다.
그 길을 걸어온 태현의 멘탈은 아다만티움 수준!
“금속 마법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거야. 그렇지?”
[카르바노그가 그렇다고 길가의 쓰레기를 굳이 줍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
태현은 무시했다.
* * *
-흑마법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니 꼭 그래야 하나?”
태현은 질색했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은 딱히 원해서 받은 것도 아닌 데다가 받으면 다른 마법 못 배우게 하는 원흉 중의 원흉이었다.
-이걸 안 받으시면 이 사악한 흑마법이 주인을 찾아 떠돌지 않겠습니까?
“뭐 그건 걸린 놈 잘못 아닌가?”
-…돌려드리겠습니다.
슬라임은 못 들은 척 태현에게 흑마법을 돌려줬다.
파아앗!
이것으로 정령에게서 받을 수 있는 스킬은 끝난 셈.
‘일단 고대 제국 대학 정보 좀 쌓일 때까지는 다른 퀘스트부터 깰까?’
다른 플레이어들은 눈이 뒤집혀서 ‘남들보다 먼저 깨야 해!’ 하면서 시간을 쏟아붓고 있었다.
고렙 플레이어들은 물론이고 랭커들도 마찬가지.
고대 제국 대학 퀘스트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먼저 들어온 태현은 슬슬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여기, 딱히 먼저 들어온다고 이득 볼 게 그리 많지가 않아.’
남들한테 뺏기면 스킬 못 배운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내달리고 있었지만 정작 그런 건 별로 없었다.
그냥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고 부풀려져서 다들 착각하게 된 것에 가까웠다.
‘있는지 알 수도 없는 퀘스트 찾느라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차라리 남들이 어느 정도 찾은 다음 그걸 참고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태현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직업 퀘스트를 깨고 다시 돌아오자!
-나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좀 깨고 올게.
-응? 스킬은 더 안 배워도 돼?
-검술 스킬들은 지금 좀 미뤄둬도 될 것 같고. 마법 스킬은 일단 구색은 갖췄어. 기계공학 스킬은 지금 당장 더 파도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으니….
-난 지금 흑마법 배우고 있는 거 깨려면 시간 좀 걸릴 거 같은데.
-저도 <황금 갈취> 스킬 배우고 있어서 당장은 못 움직일 거 같아요.
-그 스킬 뭔 스킬인지 좀 궁금하다…? 나 혼자 갔다 와도 되니까 깨고 있어.
다른 일행들은 아직 퀘스트를 진행 중인 것 같았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정도는 혼자 깰 수 있었으니까.
“용용아. 가자.”
-주인이여. 번개 마법을 배우지 못해서 아쉽게 됐다.
“그러게 말이야. 따지고 보면 골드 드래곤한테 사기… 아니, 계약을 맺은 것도 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
* * *
“경기 시작 전에 전문가들의 예측을 들어보겠습니다. 2:0, 2:1, 2:0, 2:0… 이야. 아무래도 한쪽으로 좀 쏠렸군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두 팀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죠.”
해설자들은 침착한 목소리로 설명에 나섰다.
지금 중국 대표팀과 캐나다 대표팀의 예선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한쪽은 1승 0패. 다른 한쪽은 0승 1패.
게다가 중국 대표팀은 이름값 있는 선수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1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워낙 많다 보니 후보진까지 쟁쟁했다.
그에 비해 캐나다 대표팀은 선수풀이 훨씬 좁았다.
오죽하면 감독으로 뛰는 에반젤린이 선수로 복귀해서 대표팀으로 참가했을까.
이름값으로 보면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기는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제가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팀 단위로 붙는 투기장은 선수 개인이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팀 전체가 잘해야죠! 생각해 보십시오. 선수 한 명이 게임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혼자서 몬스터 어그로 끌고, 상대 팀의 어그로도 끌고, 적 진형으로 들어가서 진형 파괴나 암살도 하고, 동시에 딜도 누적해서 넣어야 하는데 이걸 혼자서….”
말하던 해설자는 멈칫했다.
누군가 떠올랐던 것이다.
“…하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방금 말을 좀 더듬지 않으셨나요?”
“크흠. 어쨌든 팬 분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투기장은 선수 한 명 한 명의 능력은 충분히 뒤집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여기 참가할 정도면 다들 한 방은 있는 선수들이거든요.”
팬들은 알기 쉬운 직업이나 스킬, 레벨에 환호했다.
이 선수는 이런 스킬을 갖고 있으니 사기다! 이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각종 제약이 걸리는 투기장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그걸 극복하는 게 팀워크!
“캐나다 팀이 불리한 전력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그 키가 되겠습니다.”
-해설자 캐나다한테 뒷돈 받았냐? 말 이상하게 하네?
-그러면 해설자가 ‘캐나다 개처럼 두들겨 맞을 듯’ 이렇게 말해야 함? 최소한 중립은 맞춰줘야지.
-너 중국인이지?
-솔직히 날로 먹는 경기지. 이거 지면 중국 선수들은 손잡고 장강에 뛰어들어 죽어야 함.
-2:0으로 이기면 평균. 2:1로 이기면 기자회견 열고 사과해라.
-중국 팬들 살벌한 거 봐.
-이해해라. 쟤네 유난히 게임에 엄격하잖아. 국가 단위로 투자한다는데.
-근데 왜 투기장 리그에서는 우승 못함?
-너 뒤질래??
경기 시작 전, 전 세계 팬들이 각자 떠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중국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오죽하면 캐나다 팬들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을까.
-내 친구가 그러는데 캐나다 대표팀이 특훈 받았다는데.
-뭔 특훈?
-팀 KL이랑 연습경기 뛰면서 전략 준비했대.
-…구라치지 마라.
-캐나다 놈들이 이제 별 사기를 다 치는구나.
중국 팬들은 정색하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팀 KL 이름만 갖다 붙인다고 그들이 넘어갈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팬들은 매우 흥미로워했다.
-팀 KL이랑? 김태현 지금 예선 준비 중 아닌가? 용케 연습경기를 했네.
-김태현 팀 대표도 맡고 있지 않음?
-거짓말 같은데….
-그리고 팀 KL이랑 연습경기 좀 했다고 없던 실력이 갑자기 생겨나진 않을 거 아냐.
-김태현 분석력은 최고 수준 아닌가? 리그 시즌 때 자기가 직접 상대편 분석해서 뛰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말이 되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전력분석팀이 있겠지.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혼자서 그걸 어떻게 다 해!
-어, 경기 시작한다! 중국 놈들 시작부터 몰아붙이는데??
-잘하긴 잘 해.
보고 있던 사람들은 중국 대표팀 선수, 펭귄팬더의 모습에 감탄했다.
나름 중국에서 밀어주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으로, 그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펭귄팬더가 쓰는 <지독한 얼음 사슬>은 중국대표팀의 대표적인 콤보 스킬.
한 번 시작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콤보로 악명이 높았다.
-펭귄팬더 옆으로 돈다! 캐나다 놈들아 뭐하냐! 막아야지! 아, 내가 뛰어도 저것보단 낫겠네!
-늦었어! 이미 타겟팅했다! <지독한 얼음 사슬> 날아갔어!
-아 망했… 어?
보고 있던 사람들은 당황했다.
분명 펭귄팬더가 <지독한 얼음 사슬>을 썼는데…?
그게 통하지 않고 튕겨나간 것이다.
뭐지?
-카운터쳤다! 방어 스킬로 막은 거야!
-<지독한 얼음 사슬>을 막을 수 있었어? 그거 명중률 사기 수준 아니었나?
펭귄팬더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원래 자신 있는 스킬이 막히면 사람은 더 충격을 받기 마련.
하물며 캐나다 대표팀처럼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선수들이 막으면 더더욱 그랬다.
다음 연계 스킬을 준비하고 있던 리 차우는 동료의 스킬이 막히자 멈칫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펭귄팬더 선수의 스킬이 막혔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입니다!
-캐나다 선수들이 생각보다 준비를 더 많이 해왔어요! 이게 판온입니다! 중국 선수들, 막혔다고 당황해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파훼법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펭귄팬더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상관없어! 쓸어버려!”
지금 상황은 꽤 많은 MP와 스킬을 투자한 상태였다.
이번 한타에서 상대 팀의 선수 두셋은 잡기 위해 각종 스킬을 쓰고 밀고 들어온 것이다.
만약 여기서 잡지 못하고 발이 묶인다면 그 투자는 바로 반작용이 되어서 돌아왔다.
스킬 쿨타임, MP 부족 등등.
아무리 캐나다 선수들이 한 수 아래라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기고도 남으리라!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잡아야 했다.
-중국 선수들 오히려 더 밀어붙입니다! 광역기 나오나요? 나오나요? 나옵니다! 두 선수가 MP 전부 썼습니다! 아껴뒀던 스킬들을 전부 사용하나 봅니다!
중국 선수들은 아껴뒀던 광역기들을 꺼냈다.
쓰는 순간 MP가 거의 고갈되지만 지금은 그걸 아낄 때가 아니었다.
-마나 강화, 마나 폭주, 쪼개지는 바위들의 폭격!
굉음과 함께 주변이 무너지고 닥치는 대로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산사태 같은 효과였다.
-와, 뭐야? 저걸 그냥 쓴다고??
-스킬 발동되기까지 2초도 안 걸리지 않았어?
보고 있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저런 광역기 스킬을 저렇게 쿨타임도 없게 쓴다니!
생각보다 훨씬 더 괴물이었던 것이다.
-대단합니다! 중국 선수들! 이런 스킬을 숨겨 놓고 있었다니! 캐나다 선수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당했… 어? 어어어?
해설자들은 눈을 의심했다.
저 왼쪽 떨어진 곳에서 구멍이 뿅 하고 뚫리더니 캐나다 선수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아무도 안 죽었는데 캐나다 선수들은 왠지 민망한 표정이었다.
고블린한테서 배운 <지하 연합의 땅굴>!
중국 선수들과 투기장에서 부딪히고, 판온 안에서도 부딪힌 태현은 거의 전문가에 가까웠다.
‘이번에 나오는 애들 쓰는 광역기가 아마 위쪽에 투사체 갈기는 흙 속성 스킬일 테니까 지하로 피하는 게 카운터치기 좋지.’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맞아봐서?’
‘…아, 예.’
-멀쩡합니다! 멀쩡합니다! 캐나다 선수들 역습에 나섭니다! 중국 선수들 위험합니다! MP를 너무 많이 썼어요! 뒤로 빠져야 해요!!
보고 있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거….
이거 설마 대형사고 나는 거 아니냐??
-설… 설마? 설마???
-설마 잡나??? 설마 진짜 잡나????
-캐나다! 캐나다! 캐나다!
-캐나다 상징이 뭐더라… 하여간 북극곰 파이팅!!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파이팅!!
전 세계 팬들은 캐나다 선수들을 응원했다.
평소에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데다가 객관적인 전력도 높은 중국 팀이 올라가는 것보다는, 캐나다 팀이 올라가는 게 백 배 나은 것!
-안 돼!! 안 돼!
-지면 죽여 버린다!
중국 팬들은 아우성을 쳤지만 이미 선수 두 명이 MP 0이 된 데다가 다른 선수들도 쿨타임 떨어지고 너덜너덜해진 상황에서는 태현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멸합니다! 아!! 중국 선수들 전멸!!!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한타에서 캐나다 선수들이 생각지도 못한 역습으로 승기를 잡습니다!
흥분한 캐스터의 목소리가 뜨겁게 울려 퍼지고, 중국 팬들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