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35화
그러나 해머맨은 태현이나 아키서스 교단 NPC처럼 양심 없이 사기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래를 할 때는 정정당당하게 거기에 걸맞은 아이템을 꺼내는 사람!
“내가 이 갑옷을 찾게 된 이야기는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꽤 긴 이야기인데….”
“세 줄 요약해라.”
“세 줄 요약하라시잖냐! 이 지루한 놈아!”
해머맨은 속으로 생각했다.
제너럴갓태현 놈 한 대 쎄게 때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던전에서 발견했다.”
* * *
랭커들의 레벨이 300을 넘어가기 시작한 지금, 장비에 대한 관심도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더 강하고 더 레벨 높은 장비들이 필요하다!
기존에 나왔던 것과는 다른 장비들!
리그에 아다만티움 갑옷을 끌고 와 리그를 제패한 김태현은 업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리그 선수들도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더 충격을 받은 건 대장장이들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아다만티움을 모아서 갑옷을 만들어야 해!
-아다만티움으로 만드는 건 페널티가 심해서 한계가 있어. 난 마계의 금속으로 만들겠다. 마계의 금속은 불안정하지만 성능이 좋다고!
-멍청한 놈들. 교단이 답이다. 너희도 아키서스 교단 들어와라. 결국 정답은 신성력이야.
-아예 마법을 극대화시키면 어떨까?
-고대에 파손된 갑옷을 부활시키면 플레이어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판온은 한 플레이어가 새로운 혁명이나 혁신을 터뜨리면 그 뒤를 쫓아 여러 방법들이 나오곤 했다.
그런 점에서 태현은 경쟁을 폭발시킨 선구자였다.
해머맨은 아예 고대 시절 파손된 장비들을 수리하고 강화시킬 생각이었다.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예전 갑옷을 강화시키는 게 훨씬 더 강력해 보였던 것이다.
그 결과 에스파 왕국의 던전을 파티와 같이 공략하던 해머맨은 던전 깊숙한 지하에서 이 갑옷을 발견했다.
[<심하게 파손된 정체불명의 갑옷>을 발견했습니다!]
[강력한 마법 함정으로 인해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해머맨! 대박이다!! 저 정도 갑옷이면 진짜 엄청나게 좋은 갑옷이지??
같이 갔던 파티원들이 대흥분할 정도의 갑옷!
던전 지하에, 몇 겹의 마법으로 보호되어 있었으니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럴 가능성이 99%다.
-오오오…! 오오오오!
-기다려! 마법 해제 스크롤 쓴다!
콰지직!
[마법 함정이 해제됩니다!]
[<심하게 파손된 정체불명의 갑옷>을 얻었습니다!]
-돌아가자! 바로 수리부터 해야겠어!
-해머맨! 해머맨!
* * *
“그래서 수리했는데 나타난 게 아키서스 교단의 갑옷이라고?”
“그렇다.”
“저런… 불쌍한 녀석….”
태현은 진심으로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해머맨을 위로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됐지?
던전을 열심히 공략해서 얻은 갑옷을 수리하고 났는데 아키서스 교단 갑옷이라니.
태현이었다면 눈물이 났을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엉엉 웁니다!]
“아, 아니. 왜 불쌍한 거지?”
해머맨은 태현의 위로에 당황했다.
이 자식 왜 이래?
물론 아키서스 교단 갑옷을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해머맨은 나름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만족하고 있냐?”
“만족하고 있었는데….”
“너 정말 대단한 놈이구나?”
태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런 보상을 받고도 멘탈이 흔들리지 않고 만족할 수 있다니.
정말 뛰어난 대장장이만이 그럴 수 있었다.
“…….”
그 김태현한테 칭찬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머맨은 기분이 찜찜했다.
뭔가 이상한 걸로 칭찬 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오… 대단한데. 해머맨. 김태현 선수한테 칭찬도 듣고.”
“야. 부럽다.”
“뭔가… 뭔가 아닌 것 같은데….”
태현은 얼떨떨해하는 해머맨의 손에서 갑옷을 받아들었다.
그렇게 빛나던 갑옷이 태현의 손에 들어가자 갑자기 확 어두워지며 색이 사라졌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강력한 마법으로 수리된 아키서스 교단 비전 암살자의 갑옷:
내구력 40/50. 방어력 없음.
스킬 ‘아키서스의 그림자’ 상시 발동, 스킬 ‘아키서스의 은밀함’ 상시 발동, 스킬 ‘아키서스의 유령’ 상시 발동. 스킬 ‘아키서스의 맹독’ 상시 발동.
아키서스 교단의 인정을 받은 상태에서만 착용 가능. 아키서스 교단 신도가 착용 시 공격 속도 보너스.
아키서스 교단의 비전 암살자만이 입을 수 있는 갑옷이다. 방어력을 없앤 대신 공격력과 은밀함을 극대화시킨 이 갑옷은, 아키서스의 가호가 없다면 감히 입을 수 없는 극단적인 갑옷이다.
‘아니… 이건 또 신기한 갑옷이군.’
태현은 갑옷의 스펙에 놀라워했다.
암살자용 갑옷!
[보통 암살자 많이 키우는 교단은 악신 교단이라고 카르바노그가…]
‘아니거든? 파이토스 교단도 암살자 있거든?’
암살자 용 갑옷은 처음 보긴 했다.
무려 방어력이 0!
그 대신 갖고 있는 스킬들로 커버하는 형태의 갑옷이었다.
‘아무리 운빨에 목숨 건 교단이라지만 이건 진짜 극단적인데….’
설명도 그랬다.
방어력을 없앤 대신 공격력과 은밀함에 목숨 건, 아키서스의 가호 없으면 입을 수 없는 갑옷!
‘하긴 이런 갑옷이면 입을 수 있는 놈이 좀 한정적이긴 하겠군.’
딜러 계열 직업 중에서도 아키서스 교단 소속인 건 기본에, 방어력 대신 회피력에 목숨 걸 수 있어야 하는데….
어지간히 몸이 빠르고 날랜 도적 직업들도 방어력에는 꽤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암살자가 필요하다-아키서스 교단 비전 암살자 퀘스트>
아키서스 교단의 비전 암살자는 교단의 적을 처리하는 암흑 속의 칼날이다.
이런 암살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교단의 눈에 거슬리는 적들을 여럿 처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갑옷의 흔적을 따라 비전 암살자의 근원을 찾아내라!
보상: 교단에 <아키서스의 비전 암살자> 직업 추가.
‘오….’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갑옷 획득으로 퀘스트 조건이 만족된 것이다.
[보통 암살자 많이 키우는 교단은 악신 교단이라고 카르바노그가…]
태현은 이번에는 무시했다.
“고맙군. 이 갑옷 상당히 쓸 만한데.”
“그, 그런가? 내가 수리를 하긴 했지.”
해머맨은 방금까지 짜증 내던 걸 싹 잊어버리고 기쁘게 웃었다.
원래 대장장이들은 단순해서 자기 작품 칭찬해 주면 빠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걸 본 루카스가 슬쩍 말했다.
“김태현. 해머맨보다 내 장비가 좀 더 좋을지도 모르지 않아? 제대로 판단을 하려면 내 것도 보고 비교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김태현 선수! 저런 퇴물 새끼 장비는 됐고 제 장비나 봐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 필요 없는데.”
태현은 거절했다.
애초에 이 갑옷 쓸 만하다고 한 이유는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때문이었지 성능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크으윽…!”
“크읏…!”
그러나 루카스나 제너럴갓태현에게는 매우 굴욕이었던 모양이었다.
둘은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숙였다.
해머맨은 완전히 의기양양해져서 둘을 비웃었다.
“내 승리다, 멍청한 놈들아! 앞으로 어디 가서 나보다 잘 만든다고 까불지 마라!”
“…두고 보자!”
“반드시 네놈을 짓밟아 줄 장비를 만들어주겠다!”
둘은 씩씩대며 그냥 떠나버렸다.
‘…잠깐. 제너럴갓태현은 그렇다 쳐도 루카스는 해머맨 친구 아니었나?’
왜 갑자기 혼자가 된 거지?
“어쨌든 갑옷을 받았으니 말해주지. 이 지하 발전소에 태엽 골렘이 있는데, 얘가 아마 대장장이 기술 스킬도 관리하는 거 같아.”
“오오… 고맙다!!”
해머맨은 신이 나서 태현의 손을 붙잡고 흔든 다음 떠나버렸다.
“허. 대장장이 놈들은 다 이상한 놈들밖에 없다니까.”
‘…김태현 님이 가장 유명한 대장장이신데….’
류태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마법사 제자들이 많이 찾아오지는 않나?”
제국 원소 정령의 방에 다시 찾아온 태현은 슬라임을 보며 물었다.
검술 스킬뿐만 아니라 마법 스킬을 배우려는 플레이어들도 많을 것이다.
원소 정령쯤 되면 줄을 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런데 이상하게 플레이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주인님께서는 제자를 더 안 받기로 하셨습니다.
“어? 왜?”
-골렘분과 대화를 하고 나서 제자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으셨다고….
“…….”
아니….
태현은 갑자기 미안해졌다.
태현이 먼저 배운 것 때문에 마법사 플레이어들은 졸지에 스승 한 명을 잃게 된 셈 아닌가.
“에이. 아니야. 제자는 받아서 가르치는 기쁨이 있다고. 진짜라니까?”
-저한테 말씀하셔봤자….
게다가 태엽 골렘의 작업장과 별개로 태현은 이 정령의 시험장에서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일단 내 퀘스트부터 마저 깨야지. 다음 시험에 도전해도 되나?”
-예.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이 정령의 시험장에서 얻은 마법은 <사디크의 화염 마법>과 <아키서스의 고대 냉기 마법>.
‘몇 개나 더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쓸 만한 한 개는 건져야 한다!’
아쉽게도 흙의 정령이 나오는 시험에서는 딱히 별 스킬을 얻지 못한 태현이었다.
남은 시험에서 쓸 만한 걸 얻고 싶다!
‘가능하면 역시 번개지.’
지금 역병 마법, 흑마법, 화염, 냉기 있으니 번개 마법 정도만 있어줘도….
주인으로서 체면이 있어서 말하진 않았지만, 용용이가 번개 마법 쓸 때마다 부러웠던 것이다.
“…?”
그러나 태현을 맞이한 건 예상외의 시험이었다.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사방에서 나타는 금속질의 골렘들!
“…아니, 기계공학 시험인가??”
태현은 당황해서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태엽 골렘이 내가 부품 훔쳐간 거 알고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니었다. 태엽 골렘은 그 정도로 쩨쩨하진 않았다.
[카르바노그가 금속 정령이라고 말합니다!]
‘아하.’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설명에 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마법 속성 중에서도 좀 희귀한 케이스긴 했지만, 금속 마법도 있긴 있었다.
흙이나 돌 속성에 밀려 잘 보이지 않는 마법!
오히려 금속 마법을 익히는 건 마법사보다 대장장이 같은 직업이 많았다.
호신용으로 익히거나 제작에 쓰려고 조금 익히는 것이다.
콰드드드득!
[금속 파편의 비가 시전됩니다!]
[카르바노그가 금속 마법에는 별 관심이 없냐고 묻습니다.]
태현이 일부러 성의 없게 피하자, 카르바노그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금속 마법은 좀 불편해서.’
일단 마법 쓸 때마다 금속 재료 갖고 있다가 소모시켜서 쓰는 게 많았다.
괜히 대장장이들이 많이 배우는 게 아닌 것이다.
그리고 태현은 굳이 금속 마법을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기계공학 스킬도 있고 대장장이 기술 스킬도 있는데 굳이….
뚝-
태현이 성의 없이 피하자 금속 정령들이 멈추더니 수군거렸다.
“너희 공격 안 하냐?”
그러나 금속 정령들은 공격 대신 계속 수군거렸다. 그러더니 일제히 사라졌다.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
[<드워프의 금속 마법>을 얻습니다!]
[시험이 종료됩니다!]
“…그, 그래도 다음 시험이 남아 있겠지?”
-준비된 시련을 모두 통과하셨습니다. 정령들이 내려주는 강력한 힘을 느끼셨습니까?
“이상한 힘만 얻은 것 같은데… 그보다 번개 정령의 시련 같은 건 보지도 못했는데 만날 수 없나?”
-만나지 못했다면 번개 정령의 시련을 받을 자격이 없으셔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아니. 그럼 기계공학 스킬이랑 대장장이 기술 스킬 높아서 금속 정령의 시련을 만난 건가?’
생각해 보니 화염, 냉기도 둘 다 태현이 갖고 있던 마법에 들어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