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34화
[훈련소에서 나가집니다!]
여기서 죽는다고 로그아웃당하지는 않았다.
훈련소에서 쫓겨날 뿐.
물론 기분은 매우 더러웠다.
“김태현 이 자식아 미쳤냐?!”
“퀘스트가 시켰을 뿐.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길드 동맹이잖아.’
‘길드 동맹인데….’
‘아무리 봐도 개인적인 원한인데?’
하필이면 태현한테 바로 죽임을 당한 플레이어가 길드 동맹 소속 랭커였다.
태현은 정말 아무 감정 없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방어력 낮고 HP 낮아 보이는 놈을 노린 거였지만, 그렇게 보이지가 않는 것!
“크윽! 조금만 더 빨랐으면…!”
스미스는 분한 목소리를 냈다.
지금 그는 한창 쑤닝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 미친놈이 진짜…!”
“퀘스트잖습니까?”
“진짜 날 잡을 생각이었냐? 너 진짜 미친놈 아니냐?! 김태현도 날 잡으려고 하진 않았어!”
쑤닝은 기가 막혔다.
쑤닝 옆에 길드 동맹 소속 랭커들이 우르르 있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바로 스미스가 덤벼든 것이다.
아무리 스미스가 악명 높은 체력과 HP를 자랑하는 최상위권 랭커라지만 이건 너무 배짱 아닌가.
실제로 스미스는 쑤닝의 HP를 절반도 깎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스미스에게서 느껴지는 광기가 무서웠다.
일단 뒷감당 생각 안 하고 찌르고 보는 광기!
‘이 자식 진짜 돌았나?’
-가장 먼저 처치한 훌륭한 모험가는 앞으로 나오도록!
[명성이 오릅니다!]
[고대 제국 대학 내에서 평판이 오릅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가장 먼저 움직인 보람이 있군.’
태현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질투와 시샘 섞인 시선들!
지금부터 서로 죽이라고 할 때 태현이 가장 먼저 움직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길드 동맹 랭커를 죽이고 싶다!
…는 물론 아니었고, 태현은 그 짧은 사이에 퀘스트를 파악한 것이다.
‘이건 가장 먼저 죽이는 놈이 유리한 퀘스트다!’
이런 순발력에서 태현보다 빠른 사람은 없었다.
남들이 파티 짜서 던전 돌 때 태현은 혼자서 남의 클랜 하우스 폭파시키고 암살하고 다녔던 사람!
가장 빠르게 무기 뽑고 찌르는 데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던 것이다.
‘평소 PK하던 습관이 이런 때에 도움이 되는군.’
[카르바노그가 역시 무엇이든 간에 경험하는 게 남는 거라고 말합니다.]
“설마… 설마 한 명만 뽑진 않겠지?”
“아, 아니겠지.”
남은 플레이어들은 불안해했다.
설마 진짜 1명만 뽑고 끝내면….
-준비해라. 다음 시련이 나갈 테니.
다행히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은 시작하기도 전에 무기를 뽑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가장 빠르게 한 명 죽여야 한다!
HP 낮고 방어력 낮은 플레이어가 주 타겟이었다.
-설마 똑같은 시련이 나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멍청한 놈은 있을 리가 없다고 믿는다.
“…….”
“…….”
플레이어들은 시무룩해져서 무기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고대 제국 근위대장은 바로 그 틈을 노렸다.
-지금부터 다시 서로 죽여라!
“죽으십시오!!”
말과 함께 가장 먼저 쑤닝에게 달려드는 스미스!
길드 동맹 랭커들은 기막히다는 듯이 외쳤다.
“스미스 이 미친 자식아! 작작하지 못해?!”
“우리가 몇 명이나 있는데 네가 쑤닝 님을 잡을 수 있을 거 같냐!?”
퍼퍼퍼퍼퍼퍼퍽!
길드 동맹 랭커들에게서 쏟아지는 폭풍 같은 공격.
스미스는 그걸 무시하고 집요하게 쑤닝만을 노렸다.
‘이건 시련이다.’
스미스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쑤닝만을 노려봤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한 기회!
이런 상황에서 쑤닝 한 명 정도는 목을 딸 수 있어야 앞으로의 험난한 판온 생활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힘내라! 스미스!”
태현은 스미스를 응원했다.
랭커들한테 두들겨 맞으면서도 집요하게 노리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던 것이다.
“스미스! 왼쪽으로 돌아! 왼쪽이 비었다! 왼쪽으로 돈 다음에 스턴 스킬 써서 발 묶고 쑤닝의 뒤로 돌아라!”
“야 김태현 이 개자식아! 너무한 거 아니냐!?”
길드 동맹 랭커 중 한 명이 발끈해서 외쳤다.
“스미스 놈도 언제든지 널 공격할 속이 시꺼먼 놈이다!!”
“음. 확실히 그렇긴 하군.”
태현은 반박하지 못했다.
확실히 그건 그래!
-가장 먼저 처치한 훌륭한 모험가는 앞으로 나오도록!
그러는 사이 또 한 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물론 길드 동맹이나 스미스 쪽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서로 진흙탕 싸움을 하느라 한 명도 잡지 못한 것이다.
만약 다른 놈을 노렸다면 충분히 한 명을 잡았을 상황!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랭커가 운 좋게 기회를 잡고 올라가자 쑤닝은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스미스. 잘 생각해 봐라.”
“예.”
“지금 여기서 몇 명을 뽑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위험하다. 우리끼리 싸워봤자 남는 게 없단 말이다. 서로 다른 놈을 노리자고.”
쑤닝은 사업가답게 스미스를 설득했다.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 이 자식도 드디어 이해를 해먹었나.’
하긴 머리가 달린 놈이라면 이 상황에서 설마 또 덤비진 않….
“뒤지십시요!”
“야 이 개자식아!!!”
* * *
결국 쑤닝과 스미스는 인원 선발에 끼지 못했다.
가장 먼저 올라온 태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너희 뭐하냐?”
“…….”
“걱정 마십시오. 곧 올라갈 겁니다.”
“곧 올라가긴 뭘 곧 올라가 이 미친 자식아!!”
쑤닝은 기가 막혔다.
김태현이 사라져서 좋아했는데 웬 미친놈이 새로 길을 막고 있지 않은가.
“넌 생각이 없냐!? 대체 뭔 억하심정이 있어서 날 막는 거냐!”
“더 강해지기 위해서!”
“…더 강해지기 위해서면 김태현한테 덤벼! 둘이 싸워보라고!”
“나중에 싸울 겁니다. 일단 당신부터 쓰러뜨리고….”
“…….”
쑤닝은 2배로 분노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열심히 잘 해봐. 난 스킬 배우러 가볼게.”
“야! 김태현! 가지 마! 이 또라이 같이 잡자!!”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
태현은 그 말을 남기고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 * *
[비전 검술 스킬, <제국섬광검> 스킬을 얻습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
의외로 고대 제국 근위대장은 별다른 테스트 없이 순순히 스킬을 전수해 줬다.
마법이나 기계공학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전수!
‘이게 메이저 스킬을 가르쳐주는 NPC의 품위인가?’
워낙 제자들이 많이 들어오니, 교수 역할을 맡은 NPC도 별다른 집착을 하지 않고 쿨하게 가르쳐주고 쿨하게 보내줬다.
<제국섬광검>
갖고 있는 검술 스킬을 기습적으로 빠르게 발동할 수 있습니다.
‘패시브 비전 스킬. 좋군.’
태현은 다른 검술 관련 직업에 비해 이런 스킬들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남들은 패시브 스킬 몇 개씩 끼고서 싸우는데 태현은 혼자서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것이다.
‘몇 개만 더 익혀도 정말 더 바라는 게 없겠는데….’
“저는 <광폭한 칼날> 스킬을 얻었습니다.”
“!”
태현은 류태수의 말을 듣고 놀랐다.
‘아. 다 똑같은 스킬을 주는 게 아니군.’
가장 먼저 얻은 사람한테 주는 건가?
그런 거라면 잘 된 셈이었다. 가장 먼저 선공을 취해서 얻었으니….
“그런데 김태현 님. 지금 분위기가 좀 이상합니다.”
“아. 그럴 법하지.”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들이 찾아온 첫 번째 검술 훈련소에서 이런 퀘스트가 나왔으니, 눈치 빠른 사람들은 다 눈치를 챘을 것이다.
고대 제국 대학에서 나오는 퀘스트들은 생각보다 경쟁이 심하다!
-이거 느긋한 마음으로 하면 아작나겠는데?
-김태현 봤냐? 김태현하고 같이 하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밀린다고 봐야 해.
-견제 제대로 해야 할 것 같다.
“바로 공격하는 건 좀 너무했나?”
“아닙니다!”
류태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태현은 살짝 감동받았다.
“그렇지? 별로 너무한 거 아니지?”
“그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경계당하셨을 겁니다!”
“…그, 그래. 고맙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물론 경계당한다고 해서 태현이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올라오는 고대 제국 퀘스트들 중에서 쓸 만한 검술 스킬 위주로 골라서 해야겠군.’
퍼진 정보들 정리해서 검술 스킬 쓸 만한 거 고르고….
“아니. 미치겠네. 대체 왜 퀘스트를 안 주는 거지?”
“고대 제국 대학은 제작 직업 쪽은 안 쳐주나??”
그때 옆을 지나가는 플레이어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복장을 보아하니 직업은 대장장이!
여기까지 왔으니 대장장이 랭커들이 분명했다.
“해머맨하고 루카스군요.”
“이다비가 말해줬던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해머맨은 태현 님 때문에 <가장 뛰어난 갑옷을 창조한 대장장이> 칭호를 빼앗긴 대장장이 랭커고, 루카스는 태현 님한테 강화 칭호 뺏긴 대장장이 랭커일 겁니다.”
“…….”
아…!
태현은 듣자마자 바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느꼈다.
‘여기 있는 거 들키면 괜히 민망할 것 같은데.’
두 대장장이는 투덜거리면서 걸어갔다. 그 앞에 한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큭큭큭… 허접한 놈들 같으니.”
“아 저 미친놈 또 왔네.”
“저거 진짜 볼 때마다 혈압 오른다니까.”
두 대장장이는 앞을 가로막으며 비웃는 플레이어를 보며 짜증을 냈다.
제너럴갓태현.
대장장이 랭커 중 한 명이자 평소에 남들 열 받게 하는 재주가 탁월한 대장장이 랭커였다.
“고대 제국 대학이 제작 직업을 안 쳐준다니 그게 말이나 되냐? 니들이 찾는 능력이 없어서지!”
“그러는 넌 찾았냐?”
“당연히 찾았지.”
“거짓말 하고 있네. 말해보던가.”
“그걸 내가 말해줄 것 같냐? 그리고 내가 말 안 해주더라도 증거가 있지.”
제너럴갓태현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태현과 류태수, 류다영이 있는 쪽을 보며 외쳤다.
“김태현 선수! 대답해 주십시오!”
“!!”
두 대장장이는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여기 김태현이 있었잖아!?
“고대 제국 대학에 제작 직업 퀘스트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
“거 봐라! 있다잖아! 하여간 멍청한 놈들이! 응??”
‘쟤 저러다가 PK 당하는 거 아닌가?’
태현이 보기에도 제너럴갓태현의 인성은 좀 문제가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화신이 걱정할 정도라면 좀 도발이 심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김태현. 혹시 하나 물어봐도 되나?”
“<가장 뛰어난 갑옷을 창조한 대장장이> 칭호는 못 돌려줘.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역시 그쪽이 가져갔던 거였나!”
해머맨은 경악하며 외쳤다.
심증만 있었는데 진짜였어!?
“대체 어떻게…!”
“열심히 잘 만들면 되지. 그래서, 그게 아니라면 뭘 물어보고 싶은 거지?”
“소문을 들으니 그쪽은 벌써 고대 제국 대학 내 퀘스트 20~30개 정도를 찾아서 미리 깨놨다고 하던데….”
“?”
“???”
숫자가 좀 늘었다?
“혹시 대장장이 관련 퀘스트가 있다면 좀 가르쳐줄 수 있나 싶군.”
“저런 뻔뻔한 놈! 얼굴에 철판 깔았냐? 길가의 거지도 너처럼 구걸하진 않겠다!”
“아, 좀 닥쳐라!”
제너럴갓태현의 외침에 해머맨은 울컥했다.
진짜 저 자식 진짜 저거!
“김태현 선수! 저 양심 없는 놈의 눈물에 속지 마십시오!”
“물, 물론 대가는 지불할 생각이다! 이걸 봐라.”
해머맨은 가방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갑옷, 그것도 마법 부여된 갑옷의 전문가인 해머맨답게 꺼낸 갑옷은 오색찬란한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이건 그냥 갑옷이 아니다.”
“?”
“무려… 아키서스 교단의 갑옷이다!”
“!”
‘갑자기 구려 보이는데?’
[카르바노그도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