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33화
“팝콘 하나.”
“…사 드시게요?!”
이다비는 깜짝 놀랐다.
아니, 태현이 만드는 게 더 낫지 않나?!
태현 본인의 요리 스킬도 있는 데다가 직접 만들어야 스킬이 조금이라도 오르니, 태현은 보통 사먹는 경우가 없었다.
이다비는 보통 골드 아끼기 위해 자기가 직접 만들어 먹는 편이었고….
덕분에 파워 워리어 포장마차에서 뭘 사먹을 일이 없는 편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열심히 장사하는데 응원해 주려고.”
“태현 님…!”
“뭘 이런 걸 갖고 감동 받고 그래?”
“아니요. 그렇게 친절하게 해주실 필요 없다고 하려고 했어요.”
“…너 가끔 보면 은근히 냉정한 구석이 있어….”
“? 그런가요?”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에게 이 정도로 구는 건 너무 당연해서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너희들도 팝콘 사먹어. 파워 워리어 애들이 팝콘은 되게 잘 만들거든.”
수많은 퀘스트마다 경쟁자들과 팝콘 싸움을 벌이면서 파워 워리어 요리사들은 각종 노하우와 비전 스킬들을 습득한 상태였다.
<드워프 지하 광산 소금>, <골짜기 특제 행운의 벌꿀> 등 각종 최고급 조미료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경쟁이 더 심해지자 아예 옥수수 개량에 직접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과나무에서 자란 사과 맛 나는 옥수수>.
<포도나무에서 자란 포도 맛 나는 옥수수>.
이런 것들이 바로 이 요리사들이 길드의 농부들과 거둬낸 성과!
“대단하지?”
“대단하긴 한데… 원래 농사가 그런 게 되는 거였나?”
이세연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보통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최상급 식물을 길러내는 걸 목표로 하지, 포도나무에서 옥수수를 만들게 하지는 않는 것이다.
“골짜기 주변 농지는 아키서스 교단 축복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랜덤으로 자주 일어나더라고.”
“…….”
“…….”
류태수는 속으로 ‘돌연변이 아닙니까’ 하려다가 말았다.
골짜기에는 실제로 돌연변이들이 있기도 했고….
“김… 김태현 님?”
“김태현 님이 팝콘 드시러 오셨다!”
“확성기 들고 소문 퍼뜨려! 여기 김태현 님 있다!!”
태현이 나타난 걸 본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신이 나서 홍보를 때리기 시작했다.
“뭐? 김태현이 왔다고?”
“김태현이 사먹을 정도야?”
웅성웅성-
별생각 없이 지나가던 플레이어들도 움찔했다.
김태현이 사서 먹을 정도면 정말 대단한 효과가 있나?
순식간에 구름처럼 몰리는 플레이어들을 보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감탄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도 이것처럼 빠르게 모으지는 못했을 것이다.
“김태현 님. 맛있게 드십시오. 길마님도 맛있게 드십시오.”
길드원들은 둘에게 돈을 받지 않고 팝콘을 내밀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최상위의 존경심을 표현하는 행동이었다.
무려 돈을 받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내셔야 합니다.”
“…낼 생각이었어.”
이세연은 어이없다는 듯이 길드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녀가 이런 돈을 안 낼 생각은 아니었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먹튀하시면 안 됩니다’란 소리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것이다.
최상위권 랭커가 되어서 언제 이런 소리를 들어보겠나!
“죄, 죄송해요. 저희 길드원들이 좀….”
“아니에요. 원래 길드원들이 말을 안 듣죠.”
이세연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정예 길드를 이끄는 이세연도 가끔 길드원들 때문에 속을 썩였다.
파워 워리어처럼 인원 많은 대형 길드라면 더더욱 힘들리라.
“김태현 저놈. 무슨 퀘스트를 먼저 했지?”
“검술을 했을 것 같은데….”
태현을 따라 줄 서서 팝콘을 하나씩 손에 든 플레이어들은 태현을 보며 수군거렸다.
다 같이 고대 제국 대학에 들어왔지만,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내가 남보다 먼저 스킬을 배워야 해!
-가능하면 다른 놈들은 못 배웠으면 좋겠다!
원래 판온에서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었다.
특히 여기 고대 제국 대학에 들어올 정도의 플레이어면 고렙 이상 랭커 이하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들.
서로 경쟁하는 건 물론이고 이미 밖에서 몇 번 싸운 적 있는 상대들도 많이 보이는 것이다.
인원 제한이 없는 퀘스트면 모를까, 만약 선착순 제한이 걸린 퀘스트면….
남이 먼저 깨는 순간 뒤쳐진다!
그런 점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건 태현 일행이었다.
남들보다 훨씬 더 먼저 들어온 파티!
게다가 태현은 판온에서 손꼽히는 고난이도 퀘스트 전문가였다.
남들이 혀를 내두르는 전설 난이도 퀘스트를 몇 개씩 연달아 깨오지 않았던가.
“김태현. 하나 물어봐도 되나?”
랭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행히 <고대 제국 대학> 안에서는 싸움이 금지된 상태.
물어봐도 태현이 패지 않으리란 계산이 있었다.
“?”
“여기 들어와서 퀘스트를 몇 개나 깼지?”
“한 열 개는 넘게 깼지.”
“…?!?!?”
별로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기에 순순히 대답해 줬지만, 그 파급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야, 김태현이 10개 넘게 깼다는데???
-비전 스킬 10개 이상 얻었다고??
-무조건 검술 스킬 2, 3개는 얻었을 거 아냐. 미쳤는데??
플레이어들은 경악해서 수군거렸다.
안 그래도 강력한 폭딜 스킬들로 악명이 높은 태현이었다.
그런 놈이 비전 검술 스킬 2, 3개를 더 얻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움직이자!”
“빨리 스킬 얻어야 해! 지금 관광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해!”
“시간 낭비 하면 안 된다!”
플레이어들은 의지를 다잡았다.
새로 보는 곳이라고 관광하거나 영상 찍어 올릴 시간이 없었다.
스킬을 얻어야 한다!
“검술 스킬 교수 발견! 광장 동쪽의 검술 훈련소에서 가르쳐준대!”
“오오 지금 갑니다!”
수십 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찾다 보니 교수 NPC는 금세 발견되었다.
몰려가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태현은 말했다.
“흠. 나도 검술 스킬 배우는 게 낫겠지?”
“같이 가서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마법+기계공학 배우느라 소모했지만, 사실 태현의 주력 공격 스킬은 검술이었다.
검술 스킬을 배우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일행 중에 검술 스킬 주로 쓰는 건 류태수와 류다영 남매.
“여기 제국 대학에 가장 많은 게 검술 스킬 가르쳐 주는 NPC인 것 같습니다.”
“역시 검술 스킬이라 그런가?”
가장 메이저한 스킬답게 교수 NPC들도 많았다.
기계공학이나 요리는 한 명만 있는 것 같은데 검술은 꽤 다양하게 여럿 있는 것이다.
“저는 광전사 쪽, 제 동생은 성기사 쪽 검술 위주로 찾아다녔지만 태현 님은….”
“으음. 난 딱히 그런 거에 구애받는 편은 아니긴 해.”
태현은 애초에 검사 쪽 직업이 아니라서 스킬을 거기에 맞출 필요가 없었다.
검술 스킬 보고 쓸 만하면 배우고 별로면 안 배우는 자유로운 스타일인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지금 알아서 찾아서 정리하고 있으니 따라다니면서 배우면 좀 편하긴 하겠군.”
사람들이 많아지니 이런 부분에서 편해졌다.
정보가 훨씬 빠르게 올라오고 퍼지는 것이다.
아무리 태현이 화술 스킬이 높고 퀘스트를 잘 깬다 하더라도 혼자서 돌아다니는 건 한계가 있었다.
“지금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광장 동쪽 검술 훈련소인가….”
“그러면 그쪽으로 가보겠습니다.”
“나하고 이다비 씨는 다른 퀘스트 깨고 올 게. 셋이서 하고 있어.”
검술을 배울 필요 없는 이세연과 이다비는 따로 나눠지고, 남은 셋은 훈련소로 향했다.
과연 어떤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을까?
* * *
“뒤져! 이 새끼야!”
“어디 한번 쳐봐라. 뒷감당할 수 있으면!”
“여기서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기사들한테 얻어맞고 싶냐??”
“길드 동맹 놈들 저리 안 꺼져? 네놈들한테 당한 상처가 아직도 쑤신다!”
“저기 스미스다! 스미스 이 자식, 우리를 그렇게 박살 내놓고 뻔뻔하게!”
웅성웅성-
훈련소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이렇게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들이 많지?
쑤닝 보이고, 스미스 보이고, 나름 한가닥 하는 랭커들은 다 보이는 것 같았다.
판온에서 랭커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많이 모인 경우가 있었을까?
‘아니. 심지어 아버지도 계시잖아?’
김태산이 오크 아저씨들과 수군거리는 걸 본 태현은 경악했다.
에랑스나 아탈리 왕국 둘 중 하나 소속이어야 할 텐데 언제…?
“앗! 태현아!”
김태산은 태현을 발견하자마자 호다닥 달려왔다.
오크 아저씨들이 우르르 태현을 둘러싸자 플레이어들이 수군거렸다.
“뭐지, 저 오크들? 설마 김태현을 공격하려는 건가?”
“미치지 않고서야 설마 여기서….”
“아니야. 저 오크들은 원래 좀 미친 짓을 많이 하더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그래? 진짜 싸우는 건가? 그러면 좋겠는데.”
싸움을 기대하는 플레이어들!
자기는 안 싸우더라도 남이 싸워서 쫓겨나면 이득이었다.
남들이 그런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도 모르는 채, 김태산은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들어보니 네가 여기 고대 제국 대학에 숨겨진 꿀 퀘스트들을 안다면서? 뭐 있냐?”
“그런 거 없는데요?”
태현의 반응에 김태산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한번에 말 안 할 줄 알았다. 그래. 자. 여기 골드….”
“아니 골드고 뭐고 저 여기 와서 마법이랑 기계공학만 주구장창 돌렸어요.”
“…어? 진짜? 검술은?”
“검술 할 시간이 없었는데요.”
“그게 말이 돼? 퀘스트 주는 NPC가 다른 곳에 못 가게 널 묶어 놓기라도 했냐?”
김태산은 자신도 모르게 정확하게 맞추고 있었다.
“예.”
“…아니 진짜? 완전히 미친 NPC잖아 그놈?”
김태산은 태현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경악했다.
아무리 가르치는 퀘스트라지만 다른 곳에 못 가게 막는 NPC라니.
미친 NPC가 분명했다.
“그런데 형님. 어차피 저희 기계공학 안 배우잖습니까.”
“하긴 그러네. 기계공학은 미친놈들만 배우는 거니까 NPC도 좀 미친놈일 수 있겠군.”
“…….”
그 미친놈들의 수장인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 그 친구분들 설마 안 보는 사이에 저렇게 말하고 다녔었나?
“태현이한테 물어봐서 날로 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우리 발로 뛰어서 찾아야 하겠는데요.”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
-조용!
[<고대 제국 근위대장>이 나타납니다!]
앞에 NPC가 나타나자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누구든 간에 불이익을 받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실로 오랜 시간을 거쳐 새 모험가들이 찾아왔구나. 이 검술 훈련소에서는 수많은 영웅들이 그 힘을 갈고 닦아 나가곤 했다.
고대 제국 근위대장의 말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안도하거나 득의양양했다.
제대로 골랐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고대 제국 근위대장 정도면 비전 검술 스킬이 나올 가능성이 99%다.’
‘저 정도 신분이면 확실하지.’
판온의 퀘스트에는 격언이 있었다.
-기왕이면 신분 확실한 NPC 퀘스트를 깨라!
태현처럼 온갖 이상한 잡놈들의 퀘스트만 골라 깨는 건 정말 극히 예외에 불과했다.
원래는 신분 있고 믿을 만한 NPC가 좋은 퀘스트를 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고대 제국 근위대장>은 이름도, 겉모습도 합격이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풍겨 나오는 고수의 아우라!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준비됐는가?
“예!”
“준비 됐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우렁차게 외쳤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
플레이어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
[상대를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