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30화 (1,329/1,826)

§ 나는 될놈이다 1330화

뭘 어떻게 걸러내겠다는 거지?

하지만 귀족들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국왕이 무서웠던 것이다.

-필립 3세께서 대체 왜 저렇게 난폭해지신 것이오? 예전에는 성군 중의 성군이셨는데….

-나는 모지리들이 모인 아탈리 왕국이 부러운 적은 없었는데, 요즘은 차라리 거기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요. 거기는 말 한 마디 잘못했다고 귀족들을 죽이진 않잖소!

-이게 다 왕자들 때문이오. 왕자들의 반란이 폐하의 어진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것이오.

-그거 때문은 아닌 것 같….

-남은 왕자들을 한시라도 빨리 잡아 바쳐야 폐하의 분노도 좀 녹아들지 않겠소?

수군거리는 귀족들을 무시하고 필립 3세는 말을 이었다.

-모험가들에게 포고령을 내려라! 그들을 직접 걸러내겠다!

* * *

[<고대 제국 대학>의 입학권이 배포되기 시작합니다.]

[에랑스 왕국 소속 플레이어는 입학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탈리 왕국 소속 플레이어는 입학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빠르게 찾아오자, 서로 멱살을 잡고 ‘니가 김태현 숨겼지!’, ‘아니 니가 숨겼지!’ 하고 싸우던 플레이어들은 싸움을 멈췄다.

-에랑스 왕국이야 그렇다 쳐도 왜 아탈리 왕국까지?

-김태현이 공적 세워서 그런 거 아님?

-그게 말이 되냐? 일이 장난도 아니고. 가까워서 그렇겠지.

-오스턴 왕국은 안 가깝고? 바로 옆인데??

-오스턴 왕국은 좀… 근본이 없죠. ㅎㅎ.

└너 뭐하는 놈이냐??

└└죽을래? 오스턴 왕국이 근본이 없다고??

└└└통일도 안 된 왕국이 무슨 왕국? 풋. 솔직히 오스턴 왕국은 왕국이라고 하면 안 됨. 경쟁자들이나 이기고 오셈.

-오스턴 왕국 소속인데 들어갈 방법 없나요??

다른 왕국 플레이어들은 매우 곤란해졌다.

이런 기회를 그냥 버릴 수도 없는 일인데…!

사실 왕국 소속을 바꾸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에랑스 왕국이나 아탈리 왕국 아무 마을이나 가서, 거기 있는 부활석을 사용해 [이 마을에서 부활하시겠습니까?]를 쓰면 됐다.

그러면 이제 죽어도 그 마을에서 부활하는, 일종의 그 마을과 그 왕국 소속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딱히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닌 일!

왕국 소속 플레이어가 되면 그 왕국 관련 퀘스트에서 보너스를 받거나 공적치 포인트가 추가로 들어오는 등 유리하기도 하니 바꿔서 나쁠 것도 없….

“아니. 아니. 아니….”

“지금 한 명 한 명이 귀한 와중에 무슨??”

길드 동맹 수뇌부는 갑작스러운 퀘스트창에 당황했다.

길드 동맹뿐만 아니라 오스턴 왕국에 자리 잡고 있는 다른 두 초대형 길드, <미다스>와 <화이트 나이트>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에랑스 왕국이 반란으로 침공을 멈춘 지금.

세 초대형 길드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서로의 빈틈을 찌르려고 하고 있었다.

<화이트 나이트>의 기세가 폭풍 같아서 다른 두 길드도 초반에는 쭉쭉 밀려나갔지만….

태현한테 몇 번을 처맞고도 길드를 유지했던 길드 동맹의 저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적이지만 대단하구나, 길드 동맹! 김태현 하나도 못 잡고 탈탈 털리기에 세상에 뭐 이런 허접한 놈들이 있나 했는데!

-거품이 아니었구나! 난 솔직히 X신들인 줄 알았어!

-…저 자식들의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성벽 아래로 내려가지 마!

끈질기게 방어선을 구축한 다음 버티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다스>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길드 동맹>이 김태현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던 수많은 성과 요새 안에 틀어박혀 버티는 전략으로 이겨냈다면, 그런 준비가 덜한 <미다스> 길드는 다른 방법으로 나섰다.

각종 친분 있는 다른 왕국의 여러 길드들을 불러서 <화이트 나이트>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길드 동맹>과 <미다스>의 차이점이 있다면, <미다스>는 훨씬 이미지가 괜찮고 다른 길드와 사이가 좋다는 점!

-<진군> 길드다! <아카시아>와 <파이터즈> 길드도 있어! <우드스탁>에… <파리 라이트닝>?! 저긴 게임단인데 참전했어?!

-<미다스> 놈들 인맥이 진짜 장난 아닌데??

-저기 산 위에 녹색으로 파도치는 건 뭐야?

-뭐가? …으아악! 오크들이잖아!? 저건 누가 불렀어!?

-도와주러 온 거다! 걱정하지 마라!

<화이트 나이트>의 공세는 일단 멈췄다.

예상보다 훨씬 많이 이기기도 했고 점령한 지역도 넓었기에 소화도 할 겸 휴식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 평화가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곧 누군가 먼저 칼을 뽑아 들겠지!

“저놈들도 고대 제국 대학 퀘스트에는 상당히 관심이 많을 텐데, 이거 진행하는 동안에는 휴전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휴전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아 놓고??”

<화이트 나이트>야 그냥 휴전을 해도 별 상관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얻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 입장에서는 명백한 불만이었다.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면 절대 휴전을 할 수 없습니다. 냉정하게! 길드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불리할 때는 몸을 낮추고, 유리해지면 몸을 일으키는 그런 자세가 필요한 겁니다!”

“으음.”

쑤닝은 투자자 쪽 간부가 하는 말에 설득됐다.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고 그도 성장한 것이다.

이제 길드 동맹은 그 혼자서 굴리는 게 아닌, 수많은 투자자들의 눈치를 봐가며 굴러가는 길드.

“알겠다.”

“역시! 쑤닝 님. 저는 쑤닝 님의 판단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김태현한테 당했을 때도 그렇게 버텨내지 않으셨습니까!”

“너 뒤지고 싶냐!?!”

쑤닝은 바로 멱살을 붙잡았다.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이름!

“켁, 켁, 죄, 죄송….”

“너 스파이지?? 너 이 새끼 스파이지??”

“아, 아니, 켁켁. 이번에, 김태현 심사위원으로, 데리고 와서 잘 되어서 화 풀리신 줄….”

“…….”

간부가 그렇게 말하자 쑤닝도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김태현 덕을 너무 많이 보고 있었던 것이다.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가 이렇게 흥할 거라고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어찌나 대박이 났는지 오스턴 왕국에서 깨지고 남은 피해를 다 복구할 정도였다.

“…좋다. 먼저 휴전 요청을 보내보자. 하지만 명심해둬라. 고대 제국 대학 퀘스트가 얼추 끝나면 먼저 공격하는 건 우리다. 우리가 먼저 기습하는 거다!”

“역시…!”

“역시 쑤닝 님이십니다!”

“놈들은 예상치도 못할 겁니다!”

길드 동맹 간부들은 사악하게 웃었다.

다른 길드들과 달리, 길드 동맹은 판온에서 손꼽히는 악당 길드였다.

악당 이미지는 단점도 있었지만 장점도 있었다.

남들이 눈치만 볼 때 이렇게 사악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

“큭큭큭큭큭….”

* * *

“휴전을?”

“잘 된 겁니다! 스미스 님! 심지어 놈들이 먼저! 얼마나 겁을 먹었으면 저렇게!”

“그렇군요.”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이트 나이트>의 간부를 맡고 있는 길마들은 아부하듯이 헤헤 웃었다.

“그러면 남은 건 하나밖에 없겠습니다?”

“예! 지금 당장 세금 걷어서 수입 올릴 준비를….”

“무슨 소립니까? 기습을 준비해야죠.”

“…예???”

“그, 그게 무슨…?”

“놈들이 방심할 때 공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거야 맞지만 휴전 협정은 전 세계에 방송할 겁니다. 이거 먼저 깨는 놈은 욕 좀 먹을 텐데요….”

판온이 아무리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놈은 욕을 먹기 마련.

심지어 그게 대형 길드들끼리의 약속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사람은….”

“?”

“…욕 좀 먹어도 안 죽습니다.”

“…….”

“…….”

스미스의 진지한 말에, 간부들은 경악했다.

대체 이 인간 누구야?

* * *

“으윽.”

태현이 앓는 소리를 내자 이다비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으… 괜찮아. 좀 힘들긴 하네.”

“…!”

이다비는 깜짝 놀랐다.

그 태현이 힘들다는 소리를 하다니!

하루에 25시간 던전을 돌면서도 ‘케인 너 자꾸 요령 피울래? 3시간 추가다’ 같은 소리를 하며 채찍질을 하는 태현이었다.

그런 태현이 힘들다는 소리를 하다니.

이건 정말 큰 문제다!

“퀘스트 하나에만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NPC들이 괴팍해서 하나만 하게 내버려 두지 않아.”

돌아온 태현은 일행에게 ‘내가 납치당해서 걱정했지? 걱정하지 마. 사실 나쁜 의도는 없었ㄱ’까지 말하고 다시 납치됐다.

이번에는 정령이 데리고 간 것이다.

고대 제국 대학 교수 NPC들은 좀… 많이 과격했다.

[고대 제국 대학에 있습니다! 은신이 실패합니다!]

[교수가 당신을 찾아냅니다!]

[고대 제국 대학에 있습니다! 교수가 당신을 추적합니다!]

[고대 제국 대학에…]

[고대 제국 대학에…]

게다가 고대 제국 대학 안에서 이 NPC들은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

태현이 조금만 나와서 쉬거나 하면 바로 나와서 찾으러 오는 것이다.

‘은신하려고 <신의 예지> 켰는데 가능한 길이 하나도 없는 건 처음 본다 내가.’

실질적으로 숨는 게 불가능!

“너희는 괜찮아?”

“저는 상인 스킬이랑 사제 스킬 위주로 찾고 있는데 일퀘 별로 어렵지 않아서 하나씩 깨가면서 스킬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저는 광전사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 소형 투기장에 들어가서 싸우고 있는데 적들도 다양하고 난이도도 적당해서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난 흑마법사 제단에 숨겨진 비밀 해독하고 있는데 아마 이거 깨면 새로운 스킬이 나올 거 같아.”

“…저도 성기사 스킬 배우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

설명을 다 들은 태현은 멈칫했다.

어라?

나만 이런 건가…?

“나만 이런 건가?”

“네. 모르셨어요?”

“…….”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황당해했다.

왜 나만 이상한 거 같지?

분명 딱히 다른 거 없는데….

아키서스 때문인가?

[카르바노그가 보기에는 제작 스킬 때문…]

‘아키서스 때문이군.’

[아키서스 때문이 아니라…]

‘아키서스말고는 이유가 없어.’

[…….]

이세연은 진지하게 걱정된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너 이번에 캐나다 대표팀 선수들도 도와줬다면서? 지금 팀 KL 관리하면서, 대표팀 뛰고, 판온 안에서는 퀘스트까지 같이 하고 있는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집안일도 빼면 안 되죠, 주장.”

“…그래 집안일까지.”

이세연과 류태수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팀 KL 일은 내가 맡아서 해야지.”

“너 진짜 팀 KL 일 도와줄 사람 늘려야 해. 지금 네가 맡고 있는 일이 뭔데?”

“전술 같은 거?”

“아니. 전술 말고 순전히 게임 외적인 일들.”

“음. 에이전트하고 광고 논의하고 스폰서 제안 관리하고 팀 KL 재정 확인하고 향후 어느 지역에 집중적으로 팀 KL 이미지 마케팅을 할지 고민하고….”

팀 KL의 대표로서 태현도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외적인 인기를 신경 쓰지 않고 게임에만 집중했던 태현이었지만, 게임단을 관리하고 스폰서를 맡으려는 기업들과 이야기하면서 시야가 점점 달라진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도 좋지만, 더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롱런하려면 꾸준한 노력과 공부가 필요했다.

-현대에서 이미지 마케팅은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김태현 선수. 팀 KL의 인기는 지금도 대단하지만, 그 이미지를 좀 더 세련되게 다듬는 겁니다. 훈훈한 미담 같은 것도 좋고 몰랐던 뒷이야기 같은 것도 좋지요.

-음… 케인이 사실 집안일을 열심히 했다 같은 건 어떻습니까?

-그… 그런 거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그러고 보니 캐나다 대표팀이 도와달라고 했었는데.

-아주 좋습니다! 그건 잘만 포장하면 훌륭한 미담이 될 겁니다. 북미 쪽 사람들에게 특히 더욱 와닿을 이야기 아닙니까? 프로로서 경쟁 상대일 수도 있는데 선의의 도움을 주다니!

“…그, 그런 것까지 네가 다 해?”

이세연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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