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29화
“이 자식이 막 책임감 때문에 다른 선수들 도와준다는 소리 하고 있잖아!”
“아… 아니. 그게 멋지잖아. 태현아. 나중에 인터뷰할 때 물어보면 그 이유라고 대답해라.”
“너희가 쓸데없는 걸로 다투는 걸 보니 요즘 시간이 많이 남는 모양이구나.”
태현의 말에 둘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위험하다!
“아니야! 감독님한테 물어봐! 내가 요즘 하루에 던전을 몇 개 깨고 있는지 알아? 아침에 던전 깨고 점심에는 필드 가서 사냥하고 저녁에는 탑 가서 공략한다고.”
“난 케인 놈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어! 낮에는 레이스 뛰고 저녁에는 던전 돈다고!”
“레이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게 뭐냐? 무슨 말도 안 되는 걸 대고 있어. 야! 저거 놀고 있는 게 분명해!”
“아니거든?! 수혁아! 이리 와봐라! 레이싱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설명 좀 해봐!”
둘의 진흙탕 싸움을 보고 있던 이다비가 태현에게 속삭였다.
“캐나다 선수들 곧 올 텐데 이거 말려야 하지 않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팀 망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태현은 냉정했다.
“뭐 지들 망신이지 내 망신 아니니까….”
팀원들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좋은 리더.
그게 바로 태현이었다.
“그런데 레이스가 뭐지?”
“아. 하늘섬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에요. 저희 길드원들도 많이 하더라고요.”
“가끔 그런 게 있지. 특이한 게 인기 많아질 때가.”
판온 1 때부터 해왔던 태현이었기에 이런 유행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유행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바람 같은 것!
‘대체 이게 왜 인기가 있는 거지?’ 싶은 게 정말 뜨겁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가 쉽게 사라지곤 했다.
판온 1 때는 판온 카드 게임, 판온 펫 대결, 판온 주사위 게임, 판온 폭탄 룰렛 같은 것들이 유행했었고….
“…네? 폭탄 룰렛이요??”
이다비는 듣다가 뭔가 이상해서 되물었다.
그런 미친 게임이 있었어?
“응. 내가 돈 벌려고 통에 폭탄 담아서 팔기 시작했는데 이게 이상하게 유행을 타더라고.”
“…!?”
판온 1에서 아무도 알지 못했던 숨겨진 비화!
이다비는 경악했다.
“나도 그게 유행할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덕분에 골드는 톡톡히 벌었어.”
“그러셨군요. 그 골드는 어디다 쓰셨어요?”
“폭탄 만들 때 쓸 재료에.”
“…….”
이다비는 못 들은 척했다.
“레이스도 그런 거겠지. 그래도 길드원들한테 레이스에 너무 올인하지 말라고 해줘. 그런 유행은 또 금세 꺼지거든.”
“네. 그렇게 전할게요.”
태현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을 걱정했다.
유행이란 게 원래 언제 식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괜히 거기에 투자 심하게 했다가는 피눈물 흘리면서 나올 수 있었다.
‘레이스 같은 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러나 태현은 몰랐다.
원래 유행이란 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 * *
“영광입니다! 김태현 선수!”
“그러실 것까진 없습니다. 편하게 대해주셔도 괜찮습니다.”
태현은 들어오는 캐나다 선수들과 악수하며 인사했다.
“영광입니다!! 김태현 선수!”
“그래요. 그래요.”
“…….”
“넌 왜 안 해?”
태현은 들어오는 에반젤린을 보며 물었다.
딱히 시비 거는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한 의문이었다.
에반젤린은 어이가 없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니고 몇 번 퀘스트 같이 했는데 무슨 영광이야!
더 웃기는 건 같은 캐나다 국대 선수들이 에반젤린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인사해야지.”
“맞아. 오기 전에 검색해 봤는데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서 예의가 없는 놈은 때려죽인대.”
“…?”
듣고 있던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한 게 섞였다?
믿었던 동료들이 압박하자 에반젤린은 우물쭈물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원래 아싸는 이런 사회적인 압박에 매우 약한 것이다.
“만… 만나서 영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닌데 영광은 좀….”
“너 뒤질래!?”
에반젤린은 분노해서 멱살을 잡으려고 들었다.
1초 만에 사라지는 서로 간의 장벽!
캐나다 선수들은 에반젤린을 말리고서 물었다.
“그런데 케인 선수는 어디 있습니까?”
“…….”
니 앞에 있잖아!
케인은 속으로 한 번 욕하고 손을 들었다.
“내가… 케인입니다….”
“아니?! 케인 선수!?”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영광이라고 할 거면 얼굴이나 좀 알아둬!’
케인은 앞으로 외부인 만날 때면 왼쪽 가슴팍에 ‘케인’이라고 붙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자. 서로 바쁜 입장이니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 중국 팀 상대로 훈련을 도와달라고 했지?”
“예.”
팀 KL 선수들과의 연습 경기를 통한 실전 감각 훈련.
그게 캐나다 대표팀 선수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팀 KL은 손꼽히는 강팀.
이 팀을 상대로 싸우는 것만으로도 연습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각종 경험을 얻을 수 있으리라.
“무승부를 노린다고 해서 내가 쓸만한 스킬들을 찾아와봤다.”
“…?”
“예?”
캐나다 선수들은 당황했다.
어라?
그냥 연습 경기 해주는 거 아니었나?
“내가 알고 있는 스킬들 중에서 중국 팀 상대로 쓸 만한 스킬들을 정리해봤는데, 이걸 배워두면 상당히 쏠쏠할 거야. 거기 펭귄팬더란 선수가 쓰는 주력 스킬이 <지독한 얼음 사슬>이잖아?”
중국 대표팀 선수 중 한 명인 펭귄팬더.
웃기는 이름과 달리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실력파 선수였다.
갖고 있는 스킬, <지독한 얼음 사슬>은 중국 대표팀의 콤보를 대표하는 강력한 스킬!
<지독한 얼음 사슬>로 얼리면 다른 선수인 리 차우가 <오스턴 비전 얼음 폭발>로 연계시키곤 했다.
데미지도 데미지지만 한 명이 묶인다는 게 상당해서 위협적인 콤보.
태현도 당연히 이런 콤보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예. 상당히 위협적인 스킬이죠.”
“이걸 카운터 칠 수 있는 스킬이 있어.”
“…!”
“그게 뭔데?!”
“<아키서스의 신성한 화염 방어막> 쓰면 50% 확률로 카운터 쳐진다더라.”
“…….”
“…???”
어라?
캐나다 선수들은 당황했다. 일단 처음 듣는 스킬이 무려 50% 확률로 막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키서스면….
김태현 교단 쪽 스킬 아닌가?
“왜 그렇지?”
“너… 너무 놀라워서 그렇습니다. 50% 확률로 카운터 쳐진다는 게 정말입니까?”
“그래. 나도 신기했는데 쳐진다더라.”
캐나다 선수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키서스 교단 쪽 스킬이란 게 좀 놀랍긴 했지만, 잘 생각해 보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막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스킬을 배울 수 있다면 아키서스 교단은커녕 이데르고 교단이어도 가입해서 배워야 했다.
“일단 이걸 기본적으로 배워보자고.”
“예! 어떻게 배울 수 있습니까?”
“골짜기에 있는 <아키서스 화염학파 마탑>에 들어가면 배울 수 있다.”
“그렇군요. 들어가는 데에는 별 조건이 없습니까?”
“아키서스 교단 등급 실버여야 해.”
“…실버 등급은 뭡니까?”
“공적치 포인트 10,000점을 쌓아야 하는데 그건 알아서 찾아보고. 어쨌든 다음은 또 뭐가 있느냐. <지하 연합의 땅굴>이란 스킬이 있는데….”
처음 들어보는 스킬 이름에 캐나다 선수들은 의아해했다.
물론 판온 스킬들이 수십만 개가 넘는다지만 보통 쓸 만하고 유명한 스킬들은 대부분 공유가 되기 마련이었다.
랭커쯤 되면 모르는 스킬은 거의 없는 수준!
그런데 지금 태현은 이들이 모르는 스킬들만 계속 말하고 있었다.
모르는 스킬만 전문적으로 수집하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이건 어디서 얻으신 스킬입니까? 아키서스 교단 스킬도 아닌 거 같은데?”
“고블린들.”
“…….”
“…….”
아니….
생각지도 못한 스킬 출처에 캐나다 선수들은 황당해했다.
물론 고블린들도 여러 스킬들을 갖고 있었지만, 랭커쯤 되는 플레이어면 고블린 스킬을 굳이 찾진 않았다.
별로 좋은 스킬이 나올 종족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지하 연합의 땅굴> 스킬은 일시적으로 아래로 내려가 숨을 수 있는 스킬이라, 폼은 안 나도 시간 끌기 좋을 거야. 이것도 배워놓도록.”
“어느 곳에 있는 고블린한테서 배울 수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골짜기 지하에 고블린들 있는데 가서 배우면 되니까. 가서 공적치 포인트 쌓으면 가르쳐 줄 거야.”
“…….”
“…감,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가서 배워야겠군. 캡슐 들어가서 골짜기로 가라고. 다 배우면 연락하고. 알겠지?”
“예? 예….”
캐나다 선수들은 홀린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뭔가….
뭔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던 것이다.
좋긴 한데 이상하게 미묘한 이 기분은 뭘까?
“김태현 선수가 스킬까지 이렇게 도와줄 줄은 몰랐는데….”
“일단 배우러 갈까?”
“그, 그러자고.”
안내를 맡은 직원은 캐나다 대표팀 감독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감독님. 잘 됐습니다.
-벌써 연습 경기를 치렀나? 결과가 어떻게 나왔길래?
-김태현 선수가 아예 중국 대표팀을 카운터 칠 수 있는 스킬셋까지 정리해서 도와주더군요. 정말 진지하게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감독은 생각도 못 한 도움에 깜짝 놀랐다.
연습 경기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예 스킬들까지 따로 정리해서 배울 방법까지 가르쳐주다니.
-정말 감동적이군. 어떻게 보면 경쟁자일 수도 있는데….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그릇이 큰 선수 아닙니까?
감독은 감동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중국 대표팀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꼭 태현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표하리라!
* * *
“어? 저 외국인들은 누구지?”
“캐나다 쪽 선수들 아닙니까?”
“팀, 팀 KL에 새 선수 영입하는 거 아닌가??”
기자, 송대승은 깜짝 놀라 외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시즌 시작하기 전의 전력 보강!
후보 하나 없이 험난한 시즌을 돌파한 팀 KL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 번째 시즌에서도 그럴 수는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최소한 한 명, 많으면 두셋 정도 후보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지배적!
“이건 진짜 대박이다! 찍었냐?”
“예! 찍었습니다!”
“…앞모습 나온 건 없냐? 이렇게 뒷모습만 보면 누가 알아봐?”
송대승은 저번 기사의 쓴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그들이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쓰긴 했지만 저번 기사는 정말 진짜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금도 믿지 않고 구박만 해댔으니….
“이 정도면 되지 않겠습니까?”
“…쯥. 어쩔 수 없지. 이렇게 해보자고.”
<팀 KL, 새 후보로 캐나다 선수 영입?>
└아 또 여기 헛소리 하네. 김태현 없으면 조회수가 안 나오나?
└└저번에 팀 KL이 인수당한다고 했다가 욕 먹고 취소한 곳이잖아?
└└└여러분 이런 쓰레기 기사는 절대 믿지 말아야 합니다!!
* * *
-폐하! 모험가들의 원성이 심각합니다.
에랑스 왕국 귀족들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반란 이후로 국왕은 매우… 사나워졌던 것이다.
말 한 마디 할 때 목숨 걸어야 하는 수준!
-고대 제국 대학은 뛰어난 모험가들을 훈련시켜 대륙의 위기를 막기 위한 시설 아닙니까? 다른 모험가들에게도 허가를 내주시는 게 어떠시온지….
-들어간 놈이 내게 역심을 품으면? 자네가 책임질 생각인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폐하의 백성 아닙니까!
-흠. 그래. 에랑스 왕국의 백성이라면 내게 충성심을 바치겠지.
-그렇습니다! 감히 어떻게 역심을 품겠습니까?
-폐하. 아탈리 왕국은 어떻습니까? 아탈리 국왕의 백성들이라면 충성심은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
귀족 한 명이 아탈리 왕국의 이름을 꺼내자 다른 귀족들이 노려봤다.
똘똘 뭉쳐서 아탈리 국왕을 견제해도 모자랄 판에, 저 간신배가 아첨을 하다니?
-그 말도 맞다! 아탈리 왕국의 백성도 허락해 주겠다.
-그… 그러면 너무 많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걸러내면 되겠군.
-…!?
귀족들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움츠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