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26화
-주인님께서 갖고 있는 마법을 빨리 보여 달라고 하십니다. 다양한 마법의 힘이 느껴져서 기대 중이십니다.
“…….”
그러나 제국 원소의 정령은 눈썰미가 예리했다.
태현이 여러 마법 스킬을 갖고 있는 걸 바로 알아챈 것이다.
“음. 그게. 그러니까.”
-왜 자꾸 그러십니까?
태현이 자꾸 망설이자 슬라임도 슬슬 짜증이 났는지 재촉했다.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는 일 아닌가!
-뭘 걱정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주인님께서는 어떤 사악한 마법도 신경 쓰지 않고 존중하십니다.
“앗. 그래?”
-예. 설마 방금 보여주신 것처럼 또 다른 악신의 권능을 뺏어서 갖고 계시진 않을 거 아닙니까.
“…….”
<이데르고의 역병 마법>은 물론이고 <느부캇네살의 흑마법>도 따지고 보면 뺏은 권능이었다.
느부캇네살은 반쯤 신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냉기의 저주>는 생각해 보니 출처가 마계의 악마 공작, 빙결공 푸르네우스였고….
-…설마….
태현이 답을 망설이자 슬라임은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무슨 악신 권능 수집가도 아니고 설마?
“내가 모으고 싶어서 모은 게 아니다.”
-어쨌든 보여주십시오.
태현은 한숨을 쉬고 마법을 공개했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
<냉기의 저주>.
<이데르고의 역병 마법>.
-…….
-…….
슬라임과 정령이 말없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딱히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히 느껴졌다.
-이 정도면 모으고 싶으셔서 모으신 것 아닙니까?
“아니라니까. 강제로 얻은 거야.”
-아하. 교단을 이끌어야 하니 공개적으로는 그런 설정입니까?
“…아니라고!”
그러는 사이 제국 원소의 정령은 혼란을 추스르고 손짓을 보냈다.
[제국 원소의 정령이 먼저 마법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태현의 상태는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원래 마법을 전부 다 봉인시켜버린 상태였다.
다른 마법은 절대 쓸 수 없이, <느부캇네살의 흑마법>만 쓰게 만들어버린 악독한 느부캇네살의 저주!
물론 태현은 마법을 안 쓰고 다른 스킬을 쓰거나, 아니면 <느부캇네살의 흑마법>도 어쩌지 못하는 더 사악한 마법들을 쓰는 식으로 대항했다.
느부캇네살도 몰랐을 것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편법을 쓰는 놈이 나올 줄은!
“어떻게 회복을 할 수 있지?”
파아아앗!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령 앞에 허수아비가 나타났다.
그걸 본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이 허수아비를 마법이 회복될 때까지 마법으로 때리란 거군.”
훈련장의 단골, 허수아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새로 배운 스킬을 시험하기 위해 이 허수아비들을 얼마나 때리고 다녔던가.
-예? 아닙니다. 무슨 무식한 소리를 하십니까?
“…아니야?”
[제국 원소의 정령이 요즘 모험가들은 그렇게 미개하게 훈련하냐며 경악합니다.]
“…….”
그래도 나름 좋은 훈련 아닌가?
퍽!
[<소환된 최상급 고대의 허수아비>가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을 빼앗아갑니다!]
[일정 시간 동안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허수아비는 태현의 몸을 치더니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을 빼앗아갔다.
콰르르르륵!
순식간에 허수아비의 색이 시꺼멓게 물들고 사악한 기운이 폭주하듯이 흘러나왔다.
-정말 사악한 신의 권능을 얻은… 아니, 뺏은 것 같습니다. 주인님.
슬라임의 말에 정령도 동의했다.
대체 저런 지독한 걸 어떻게 몸에 넣고 다닌 거지?
[마법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제국 원소의 정령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화르륵!
정령이 안내한 방은 사방에서 화염이 타오르는, 화염의 방이었다.
“여기서 뭘 해야 하는 거지?”
-이 안에 넘치는 화염의 힘을 느끼고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얻는 것 또한 달라질 겁니다.
슬라임의 말과 동시에 퀘스트가 떴다.
<화염 정령의 방-고대 제국 대학 퀘스트>
당신은 정령의 안내에 따라 화염 정령의 방에 들어왔다.
온갖 화염의 시련이 가득한 이 정령의 방에서 최대한 버텨라!
방에서 세운 업적에 따라 보상 스킬이 주어질 것이다.
보상: ?, ???
‘오…!’
태현은 기쁜 마음으로 준비에 나섰다.
이건 엄청난 기회였던 것이다.
‘화염 마법 스킬들을 공짜로 배울 기회다!’
마법 스킬 하나 배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아는 입장에서 이런 퀘스트는 꿀 같은 퀘스트였다.
게다가 보상도 그냥 마법이 아니었다.
고대 제국 시절 마법!
마법 스킬들은 보통 앞에 ‘고대 제국’만 붙으면 좀 더 강력하고 사기적인 것이다.
‘착하게 사니 이런 기회가 오는군.’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화신이 보상을 받는 걸 보니 자기 일처럼 기쁘다고 말합니다.]
화르르르륵!
말과 함께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사방의 벽에서 화염의 파도가 넘실넘실 닥쳐오고 위에서는 화염의 정령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태현은 이 시험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퀘스트라면 더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한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오래 버텨야 하는 건 물론이고, 마법 스킬을 써서 상대하는 게 좋겠지?’
[<사디크의 화염>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칭호…]
[……]
[완벽하게 저항하는 데 성공합니다!]
“…응?”
태현은 당황했다.
뭘 하기도 전에 갖고 있던 스킬들과 칭호, 업적들로 화염 저항에 성공해 버린 것이다.
대장장이 쪽부터 시작해서 사디크의 권능까지 갖고 있었으니, 태현의 속성 저항력 중 화염 저항력이 가장 강력한 편이었다.
게다가 <화염 재생> 같은 권능은 사용하면 화염을 흡수해 HP를 회복할 수 있으니….
[사디크의 화염 마법을 얻습니다!]
[사디크의 권능이 더욱더 강력해집니다!]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안 돼!!!!”
태현은 오랜만에 진심 어린 비명을 내질렀다.
“안 돼 이 자식들아! 다시! 다시!”
어지간한 쓰레기 스킬이나 직업도 ‘흠 남들이 안 쓴다지만 여기에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며 담담하게 사용하는 태현이었지만….
사디크의 화염 마법은 선을 넘었다!
[카르바노그가 유난히 사디크에게만 가혹하다고…]
“제국에 온갖 화염 마법들이 많을 텐데 왜 하필 사디크의 화염 마법이냐!”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갖고 있던 마법을 전부 흡수해 버렸을 때도 <사디크의 화염 마법>은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던 태현이었다.
그런데 그걸 다시 돌려준다니!
태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하러 나온 정령들은 다시 우르르 벽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슬라임이 나와서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디크의 화염 마법을 고르셨습니까? 역시….
‘역시 억지로 받은 게 아니라 좋아서 뺏은 거였어!’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슬라임!
태현은 분노의 시선으로 슬라임을 마주 보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슬라임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다시 시련을 치르게 해줘.”
-안 됩니다. 이 시련은 한 번 끝나면 한동안은 열리지 않습니다.
“윽….”
슬라임은 태현을 달래기 위해 위로했다.
-사디크의 화염 마법도 좋은 마법 아닙니까? 신성 속성도 있고, 언데드와 싸우기에 좋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하긴 악신의 신도들이 부리는 마법이니 그런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사악한 힘이니 말입니다.
“…다음 시련이나 가자.”
태현은 반드시 다음 시련에는 무언가 제대로 된 걸 갖고 나오겠다고 다짐했다.
* * *
‘냉기의 시련인가.’
차라리 다행이었다.
태현이 상대하기 좋은 속성이 화염 다음으로 얼음 아닌가.
일단 사디크의 화염 권능을 갖고 있어서 냉기에 버티기 좋은 데다가, 무엇보다 <냉기의 저주>를 갖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저항력이 확보된 것이다.
‘<냉기의 저주>는 쓸 때마다 내가 데미지 입는 쓰레기 스킬이고….’
태현은 이번 기회에 쓸 만한 얼음 마법을 갖고 싶었다.
<냉기의 저주>는 파괴력은 강력했지만 애초에 공작의 성에 있던 마법이라 그런지 쓸 때마다 사용자를 다치게 하는 것이다.
‘마노벨라의 냉기 마법이나 드렌든의 얼음 마법이 좋아 보이던데.’
태현은 게시판에서 봤던 마법사 랭커들의 마법을 떠올렸다.
아닌 척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나도 마법 좀 쓰고 싶다!
마노벨라의 냉기 마법은 얼음 마법사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마법이었다.
안정적이고, 익힐 수 있는 스킬들도 다 쓸모가 있어서 좋았다.
드렌든의 얼음 마법은 약간 불안정하고 실패 확률이 있긴 하지만 위력이 파괴적인 스킬들이 많아서 아키서스 교단 소속 얼음 마법사들도 자주 익혔고….
‘두 마법 모두 고대 제국 출신 마법사가 만든 마법. 그렇다면 고대 제국 시절의 원본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고대 제국 마노벨라의 냉기 마법이나 고대 제국 드렌든의 얼음 마법 같은 원본!
그런 상위 버전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그것만 써도 되겠지.’
[시험이 시작됩니다!]
휘이이이잉!
아까와는 정반대로 어마어마한 냉기와 추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릴 정도의 눈보라와 함께 곳곳에서 얼음 정령들이 나타났다.
얼음 정령들은 눈 사이에 숨어 뾰족한 얼음 조각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음. 화염으로 저항을… 아니. 잠깐. 사디크의 화염 마법은 쓰지 말아야겠다.’
태현은 방금 겪었던 쓰라린 경험을 잊지 않았다.
사디크의 화염 마법 썼다가 무슨 결과가 나올지 몰랐다.
‘사디크가 싫어하는 냉기 마법’ 같은 거라도 나온다면 태현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컨트롤로 버텨보자.’
태현은 검을 뽑았다.
가능한 최대한 스킬을 쓰지 않고 버텨 볼 생각이었다.
캉, 캉, 캉!
날아오는 얼음 조각들을 최대한 쳐내며, 태현은 재빠르게 뛰어다녔다.
정령들의 공격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쩌저저적!
태현이 있는 곳을 통째로 얼릴 정도로 강력한 냉기 숨결을 뿜어내기도 했고, 밑에서 얼음을 솟구치게 해 길을 막기도 했다.
태현은 그런 공격들을 먼저 알아차리고 피하거나 받아치는 식으로 버텨냈다.
아예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들어오는 공격은 역으로 행운을 믿고 받아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이 정도면 꽤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태현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얼음 정령들은 그 모습에 감탄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좋은 징조였다.
[아키서스의 고대 냉기 마법을 얻습니다!]
[아키서스의 권능이 더욱더 강력해집니다!]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
[…카르바노그가 그래도 사디크 마법보단 더 좋은 거 나왔다고 위로합니다.]
‘…아무래도 난 마법에 적성이 없었던 것 같군….’
[카르바노그가 포기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태현은 혀를 찼다.
이 꼴을 보아하니 다른 시련들도 별로 좋은 결과가 예상되진 않아 보였다.
아키서스 피하면 사디크고 사디크 피하면 뭐 또….
나중에는 카르바노그의 마법 나오는 건 아니겠지?
‘내가 다른 신들의 권능을 뺏은 게 잘못이었나?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전직한 게 잘못이었나? 그냥 대장장이로 할 걸 괜히 전직 안 한다고 깝치던 게 잘못이었나?’
태현은 판온 2에서의 활동을 진지하게 복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한 거지?
콰콰콰콰콰콰쾅!
“???”
밖에서 뭔가 부서지고 박살 나는 소리가 나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음 시련이나 하러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