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21화
뭔 놈의 영지가….
-아쉬운데 어쩌겠어. 저거 메모했지?
-메모했습니다.
우습긴 해도 길드원들은 나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저런 경고는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실베드. 넌….”
태현은 실베드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실베드는 살짝 기대했다.
‘내가 랭커들을 여럿 봐왔지만 너만 한 랭커는 본 적 없었다. 감탄했다’ 같은 칭찬을 기대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복잡한 것.
평소에는 신진 랭커들끼리 모여 있을 때에는 ‘아 김태현 별거 아님’ ‘운 좋게 반짝한 거임 곧 따라잡을 거임’ 이렇게 떠들어도….
정작 막상 이렇게 만나면 인정받고 싶었다.
신진 랭커들에게는 뛰어넘어야 할 높은 벽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밤길 조심해라.”
“…….”
“…….”
생각지도 못한 말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김태현, 너무한 거 아니냐? 실베드가 물론 실수를 여럿 하긴 했지만 열심히 하긴 했는데 살해 협박을….”
“아니. 내가 죽인다는 게 아니라.”
태현은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부정했다.
그가 왜 실베드를 죽인단 말인가!
“나 말고 다른 놈들이 죽인다는 거지. 네가 제일 얼굴 많이 팔렸잖아.”
“…!!!!”
실베드는 경악했다.
워낙 정신없는 퀘스트 도중이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태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과연 판온에서 적 만드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인자답게 상황 파악이 정확했다.
구출 퀘스트에 실패하고 태현을 못 찾은 길드들이 원한을 어디다 풀겠는가.
만만한 상대!
그리고 가장 얼굴 많이 알려진 건 태현과 같이 있었던 실베드였다.
‘일… 일이 그렇게 되나?’
“검, 검은 바위단 놈들도 있잖아!”
“와. 저 새끼 인성 봐.”
“걱정해 준 게 아까워지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소곤거렸다.
혼자 죽을 것이지 왜 같이 죽으려고 한단 말인가!
“검은 바위단은 비교적 덜 유명한 데다가 길드 단위로 움직이는 애들이잖아. 그에 비해 넌 요즘 떴다면서? 네 욕이 더 많던데.”
태현은 냉정하게 분석했다.
영상 보면 실베드 죽이겠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던 것이다.
“네가 틀렸을 수도 있잖아!”
“어디서 이 자식이… 김태현 님이 그렇다 하면 ‘아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일 것이지!”
검은 바위단의 할러스가 발끈해서 대신 외쳐줬다.
길드원들은 이제 포기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놈 이제 숨길 기색도 없구나!
-쟤는 어쩌다가 김태현 팬 된 거냐? 스톡홀름 증후군이냐?
-흔들다리 효과 아니야? 나도 김태현만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대고 식은땀이 나고 속이 메슥거리고 하던데.
-그건… 좀 다른 거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할러스는 팬심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뽐냈다.
“너 같은 뉴비는 모르겠지만 김태현 님은 판온 1 때부터 수백 명의 원수들을 달고 다니셨다!”
“…그걸 굳이 다시 말할 필요는….”
태현은 할러스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할라스는 무시하고 말했다.
“그런 분이 얘기하는 거면 틀림이 없지! 실베드. 넌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한다!”
“이 새끼가 지금….”
얌전히 듣고 있던 실베드는 분노했다.
보자보자 하니 너무 심하잖아!
“진정해. 실베드. 우리 애가 좀 김태현 팬이라 그래.”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잖아.”
실베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말을 들으니 확 체감이 된 것이다.
“…김태현. 어떻게 하면 좋을 거 같냐?”
실베드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태현에게 물었다.
‘판온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날 죽이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란 질문에 대해 가장 잘 대답할 수 있는 사람!
태현은 그 질문에 ‘흠’ 하고 고민에 잠겼다.
유 회장은 솔직히 감탄했다.
‘대단하군.’
태현은 마치 수십 년 동안 업계에서 뛰어온 사람만이 품어낼 법한 아우라를 풍겨냈다.
거장의 풍모!
“일단 기본적으로 변장은 필수겠지.”
“음. 변장…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할 수는 있다.”
“초보자라면 아무도 안 오는 곳이나 던전 깊숙한 곳에 들어가는 게 좋아. 거기 들어가서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던전 깊숙한 곳은 들어가면 못 나오지 않나?”
“아. 거기서 계속 땅 파고 아이템 만들고 하면서 그러는 건데, 제작 직업 아니면 좀 힘들겠군.”
‘미친놈.’
실베드는 속으로 욕했다.
“그럼 아무도 안 오는 곳이 좋겠는데.”
“그러면… 프로즈란드나 하늘섬 으슥한 곳을 말하는 건가?”
“나쁘지 않지. 그런데 지금 분위기를 보니 거기까지도 쫓아올 거 같은데.”
“…그러면 뭐 어쩌라고??”
“사실 도망은 한계가 있는 방법이긴 해. 무엇보다 내가 내 퀘스트 못 깨고 방해받는 게 크니까.”
“그럼 다른 방법도 있는 건가?”
“초보자한테는 좀 어렵겠지만 변장하면서 퀘스트 하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야. 참. 괜히 사람 적은 곳 가지 말고 사람 많은 곳 가라. 그게 나으니까.”
“왜 어렵다는 거지? 안 들키면 되는 거 아니야?”
“절대 안 들킬 수는 없어. 하다 보면 한두 번은 들키거든. 그때 싸우고 도망칠 줄 알아야 하지. 이 때 가장 필요한 건 같이 싸워줄 동료겠군.”
“…?”
옆에서 듣고 있던 할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을 들었다.
“태현 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어… 편하게 물어봐도 되는데 굳이 손을 들고 물어보는군. 그래. 뭐가 궁금한데?”
“태현 님은 딱히 동료랑 같이 싸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나야 안 들켰잖아. 쟤는 한두 번은 들킬 거라고.”
“아하. 실베드는 확실히 들킬 것 같습니다.”
“그렇지?”
둘이 개무시를 했지만 실베드는 참았다. 지금 받는 입장이었으니까.
“변장하고, 사람들 많은 곳에 섞이고, 만약을 위해 같이 싸워줄 파티 구하고… 음. 별로 안 어려운 거 같은데?”
할러스는 코웃음을 쳤다.
“또 왜?”
“너는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새끼는 지가 김태현도 아닌데 왜 잘난 척을….’
“네 평소 알던 인맥이나 파티원들에게 부탁하려고 하는 거겠지?”
“…그러려고 했는데.”
태현이 그 말을 듣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유 회장도 쯧쯧 혀를 찼다.
“저렇게 어리석을 수가….”
“내버려 두게. 아직 어려서 그래.”
“…그냥 말을 해주면 안 되냐??”
태현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걔네가 당연히 널 잡으려고 하겠지 널 구해주겠냐?”
“김태현. 미안한데 내 인간관계는 네 인간관계와 다르다.”
태현은 속으로 살짝 재수 없어 했다.
그래 너 친구 많아서 좋겠다!
“흠. 그래. 그러면 이렇게 해볼까? 지금 너하고 친한 파티원들한테 네가 골짜기 아키서스 대신전 앞에 있다고 귓말 보내봐라.”
“???”
지금 일행이 있는 곳은 에랑스 왕국 서쪽 으슥한 해안이었다.
여기서 이제 갈라진 다음 바로 왕궁으로 달려갈 계획!
“여긴 해안인데?”
“잔말 말고 빨리 보내봐.”
-야. 나 그 골짜기 아키서스 대신전 앞에 있다. 퀘스트 정말 힘들었어. 웬 미친놈들이….
-어? 그래?
-이야. 고생 많았겠네. 도와줄까?
-아니야. 혼자 할 수 있어.
실베드는 귓말을 끝내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날 걱정했다고.”
“흠….”
태현은 대답 대신 게시판을 켰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골짜기에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어서 알아보는 건 쉬웠다.
타다다다닷!
-실베드가 골짜기로 왔다! 찾아! 아직 왕궁에 안 보인 거 보면 김태현 데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놈을 붙잡으면 김태현도 협상에 나설지 모른다!
“…와. 1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바로 퍼졌는데?”
“?!?!??!”
실베드는 충격과 경악에 빠졌다.
아… 아니….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정보가 저렇게 새어나간단 말인가?
“실베드 친구들이 생각보다 좀 질이 나쁘다. 무슨 5분 만에 파네.”
“야. 실베드 울겠다. 그만해.”
너무 빨리 정보가 새어나가서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자제를 해야 할 정도였다.
솔직히 좀 불쌍하다!
오죽 불쌍했으면 유 회장이 실베드의 어깨를 토닥여 줄 정도였다.
“젊은 친구. 살다 보면 배신도 당하고 그러는 거야. 너무 상심하지 말게. 교훈을 얻었다 생각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면 되지 않나.”
“큭… 크흑… 당신이 뭘 안다고!”
“자. 자. 너무 상심하지 말게. 친구가 필요하면 여기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유 회장은 명함을 내밀었다. 유성 게임단의 연습생을 관리하는 담당자의 번호였다.
태현은 그걸 보며 감탄했다.
저 상황에서 영업을!
실베드는 마음이 많이 약해져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명함을 붙잡았다.
“이게 뭡니까?”
“가서 한 번 말 걸어보게. 후회하지는 않을 테니.”
실베드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왠지 모르게 그 뒷모습이 작아 보였다.
“자. 우리는 빨리 왕궁으로 가자고.”
“안 도망칠 테니까 손 좀 놓으시죠?”
“허허. 내가 설마 그런 뜻으로 잡고 있었겠나?”
“그런 뜻으로 잡고 계셨겠죠.”
“쯧.”
유 회장은 속마음을 들킨 것을 아쉬워했다. 그 모습에 태현은 생각했다.
정말 실력이 많이 느셨구나!
* * *
[죽음의 군주, 필립 3세에게 1왕자의 처치를 보고합니다!]
[죽음의 군주가 정말로 크게 기뻐합니다!]
-들어라!!!!!!
왕은 다른 신하들의 귀가 찢어져라 크게 외쳤다.
-여기 이 용맹하고, 신실하고, 믿음직스럽고, 성실하고, 암살 잘 하고, 교활하고, 사납고, 잘 싸우고, 위대한 왕이 없었다면 왕국의 꼴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에랑스 왕국 귀족들이 지나친 칭찬에 당신을 질투합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묵묵히 듣고 있던 태현은 억울해졌다.
-감히 국왕을 능멸하려고 한 그 패륜아의 목을 잘라오다니 참으로 기쁘다! 어느 놈의 핏줄을 이어받았는지 실로 무도한 놈이었는데!
“?”
[?]
당신 자식인데…?
-이걸로 왕자, 아니, 왕자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패륜아들의 반란은 끝났다!
[국왕이 1왕자의 반란을 공식적으로 종결짓습니다!]
[1왕자의 죽음이 널리 퍼집니다. 1왕자와 친분이 있던 귀족들이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225군.’
그렇게 힘들어 보이던 200의 경지를 넘기고 꿋꿋하게 225까지 도달하자 감회가 새로웠다.
이러다가 정말 300까지 찍는 거 아닐까?
[공적치 포인트가 크게 오릅니다!]
[에랑스 왕궁의 몇몇 시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아탈리 왕국에 에랑스 왕국풍 건물들을 지을 수 있습니다. 국왕에게 건축가들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
[……]
‘나쁘지 않군.’
태현은 새로 접근할 수 있는 곳들과 지을 수 있는 건물들을 확인했다.
<에랑스 왕국의 하얀 신비의 궁전>이나 <에랑스 왕국의 사치스러운 황금 거울 궁전> 같은 건물들을 지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이런 왕국 쪽 궁전들은 짓고 싶어도 비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아 지을 수가 없었다.
건축가 플레이어들로서는 만들 수 없는 꿈의 건물들인 것이다.
에랑스 국왕의 허가를 받아야만 지을 수 있는 건물!
[그래서 카르바노그가 지을 거냐고 묻습니다.]
‘미쳤니? 돈 아깝게?’
태현은 즉답했다. 골짜기에 별로 궁전 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쑤닝도 아니고 그런 거에 집착하진 않았다.
-여기 있는 믿을 수 없는 허수아비들이 아닌, 명예로운 자네에게 부탁할 게 있다.
“?”
-다른 반역자들의 목도 가져와 줬으면 한다!
[1왕자는 죽었지만 다른 왕자들은 멀쩡히 도망갔습니다. 죽음의 군주, 필립 3세는 이들의 목도 원합니다!]
[퀘스트, <왕자들의 목…>이 추가됩니다!]
[복수를 한 필립 3세의 성격이 더욱더 난폭해집니다. 언데드로서의 기운이 강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