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20화
물론 몇몇 놈들이 시비를 걸거나 어떻게든 말을 걸어올 수는 있을 것이다.
아까도 그랬지만 미친놈들이 부나방처럼 덤벼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태현이 아직 자유로웠을 때 이야기였고, 지금은 이미 다 끝난 상황.
게다가 유 회장 쪽 함대도 숫자가 많았다.
여기에 들이받는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있다 하더라도 정말 정신 나간 한둘….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자! 미끼들 나와라!”
그러나 유 회장은 태현과 생각이 비슷했다.
현실에서도 똑같았던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협력해야 해서 손을 잡았지만, 그러고 나서는 경쟁자로 돌변하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원래 사람은 믿을 게 되지 않는다!
‘나하고 내 친구들이 끌고 온 배들이 많다지만, 여기 모인 놈들의 숫자를 다 합하면 그것보다 더 많다. 무슨 상황이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
판온 초보였던 유 회장은 어느새 고이고 고인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온갖 상황에 대비한다!
“어때. 닮았지 않나?”
“…?!?!”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태현과 비슷하게 겉모습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갑판 아래에서 나타난 것이다.
자세히 쳐다보면 얼굴도 좀 다르고 장비도 다른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알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번 퀘스트를 위해 휴가를 낸 우리 그룹의 인재들일세.”
“뭔 그룹이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유 회장은 허겁지겁 말을 바꿨다. 실수로 원래 신분을 밝힐 뻔한 것이다.
“아저씨들 그룹이겠지.”
태현은 옆에서 편을 들어줬다. 그 말에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 그룹이구나.”
“설마 자식분들 데리고 오신 건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막 강제로 하라고 하면 게임도 재미 없는데.”
“아니라니까….”
태현은 가짜들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생각보다 되게 잘 만든 것이다.
“이야. 이거 어떻게 만드신 겁니까?”
“잘 만들었지? 이게 어떻게 한 거냐면….”
유 회장은 뿌듯한 마음으로 설명에 나섰다.
나름 공을 들인 것이다.
화가, 대장장이 등 제작직업들 총동원해서 가짜 갑옷을 만들고 얼굴 변장에 나선 것!
“흠. 자네. 좀 더 눈매가 더러워야 할 것 같군.”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좀 더 사람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그러게.”
“…….”
옆에서 듣고 있던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충분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아니야. 눈매가 좀 다른 것 같네. 들킬 수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자네들이 보기에는 어떤가?”
유 회장은 길드원들에게 물었다.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 회장 말에 동의했다.
“지금도 좋긴 한데 눈매가 좀 더 더러우면 좋을 거 같긴 하네요.”
“살기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
태현은 길드원들을 노려봤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으흠. 지금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솔직히 이렇게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격을….”
정말 공격을 해올까?
길드원들은 회의적이었다.
지금 역병 함대도 아직 뒤에 남아 있었고, 유 회장 쪽 함대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무엇보다 구하러 온 퀘스트에서 이렇게 끝났는데….
설마 싸움을 벌일까?
남들 눈도 있는데!
“아란티스 낚시꾼 놈들! 김태현을 당장 내놔라! 김태현은 모두의 것이다!”
밖에서 들리는 참신한 소리에 태현은 마시고 있던 차를 내뿜었다.
누가 누구 거라고?
“아란티스 낚시꾼 놈들. 잘 들어라! 김태현에 대한 권리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리도 구출에 참여했다!”
“혼자 독점하지 말고 정당하게 나눠 갖자!”
“…….”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 회장은 함선 위에 서더니 외쳤다.
“알겠다! 구출에 참가했으니 너희들도 권리가 있지. 육지에 도착하면 누가 김태현을 가질지 결정하자꾸나!”
유 회장의 반응에 몰려 온 길드들은 수군거렸다.
저 말에 살짝 솔깃한 것이다.
물론 유 회장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육지에 도착하면 무조건 태현을 데리고 에랑스 왕궁으로 내달릴 생각이었다.
“…저 말에 속지 마라!!!”
“!”
결국 길드들 사이에서도 의심하는 놈들이 나왔다.
그중 하나는 역시 <길드 동맹>!
원래 남 뒤통수 많이 친 놈들일수록 이런 상황에서 남을 믿지 못했다.
<길드 동맹>은 유 회장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든 안 믿든 상관이 없었다.
무조건 지금 그들이 데리고 가면 상관이 없는 일 아닌가.
“저 아란티스 낚시꾼 놈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다. 어떻게 믿는단 말이냐!”
“아니… 저놈, 어떻게 내 생각을 읽은 거냐?”
유 회장은 놀라서 태현에게 물었다. 태현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원래 이기적인 놈들이라 어르신도 비슷한 생각 하고 있다고 생각할걸요.”
“크윽.”
유 회장은 아쉬워했다.
제대로 풀렸으면 쉽게 갔을 텐데….
“아란티스 낚시꾼들아! 여기 모인 길드들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김태현을 가질 권리를 정당하게 겨뤄보자!”
유 회장의 부하 낚시꾼 중 한 명이 울컥해서 외쳤다.
“뚫린 입이라고 말하면 다냐? 김태현이 어디 있고 싶은지는 김태현이 정하는 거지!”
“너희들이 김태현 협박해서 데리고 있는 걸 수도 있지 않냐!”
길드 동맹의 뻔뻔한 말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길드 동맹과 연합해서 압박하러 온 다른 길드들도 ‘아니 그건 좀 오바 아님?’ 하며 쳐다볼 정도였다.
태현이 누구한테 협박당할 사람이 아닌데….
“흥. 그렇게 가져가고 싶다면 어디 한번 힘으로 가져가 봐라.”
“!”
파파파파팟!
말과 함께 유 회장은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변장한 가짜 김태현들이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각자 배에 나눠 타는 가짜 김태현들!
“!!!”
“쫓아!”
“김태현이 여럿이야!!”
“어디 한번 찾아봐라!”
그리고 유 회장의 함대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모여 있던 길드들은 허겁지겁 쫓으며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쾅! 콰콰콰쾅!
“야, 이 미친놈아! 김태현 맞으면 어쩌려고!”
“어차피 김태현이면 이런 거에 안 죽지 않습니까?”
“논… 논리적인데?”
“길마님! 정신 차리십쇼! 김태현은 안 죽을지 몰라도 김태현이 우릴 죽일 수도 있습니다! 공격은 적당히 해야 합니다! 광역기 자제시키세요!”
길드원의 말에 길마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랬다.
태현은 이런 공격에 죽지 않지만, 빡친 태현이 공격을 해올 수는 있었다.
“광역기 쓰지 말고 붙어서 막아!”
“갈고리 걸어! 속력을 늦춰!”
수백 척이 넘는 배들이 바다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앞으로 달려 나가고, 부딪히고, 서로 갈고리를 걸기 위해 싸웠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유 회장은 이를 악물고 배를 몰았다.
반드시 데리고 나가고야 말겠다!
안에서 그걸 구경하고 있던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광고 괜히 받았나?’
광고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 * *
랭커, 린야오는 함선 갑판 위에 착지했다.
‘김태현 있나!?’
벌써 갑판 위에서 수십 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싸우고 있었다.
도주하는 아란티스 함대와, 그걸 쫓는 연합 함대의 싸움!
연합 함대의 목적은 하나였다. 어떻게든 태현을 찾아낸 다음 빼돌리는 것.
“저기 김태현이다!!”
“잡아!!”
[<맹렬한 포박>을 사용합니다!]
[성공합니다! 적을 포박하는 데 성공합니다!]
“…아니. 김태현이 이렇게 쉽게 잡힐 리가 없잖아! 이 자식은 가짜다!”
“크핫핫! 잘도 맞췄구나. 멍청한 놈들!”
“뭐 이런 가짜까지 만드는 겁니까?!”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어이가 없었다.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그리고 여기 있는 길드보다 더 치열한 건,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에 참가한 선수들이었다.
“심사위원님!!! 어디 계십니까!”
“이러지 마십시오!”
반드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태현 옷소매라도 뜯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상한 미션을 내놓은 심사위원을 저주했다.
‘에임스 그 미친 인간 같으니.’
‘타이거스 수석코치라더니 노망난 거 아니야??’
‘김태현 이 사람은 진짜 분신술까지 써가지고….’
저런 미션 내놓은 심사위원도 원망스러웠고, 이렇게 성실하게 숨어 다니는 심사위원도 원망스러웠다.
“일단 다른 놈들부터 치워버리자!”
서걱!
“크악! 이 자식들이 벌써 본색을 드러내는 거냐!?”
가짜 태현만 여럿 나오고 혼란만 커지자 슬슬 연합 함대도 내분이 터지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 PK!
“너 이 새끼! 김태현 숨기고 있지!”
“아, 아니야! 무슨 소리야!”
“애들아! 길드 동맹이 김태현 숨기고 있대!!”
“뭔 개소리냐! 우린 없다! 우린 결백하다!”
“길드 동맹 놈들이 김태현 대회 섭외할 때부터 알아봤어! 돈으로 매수한 거야!”
“아니라고!!”
수백 척이 넘는 배들이 그렇게 서로 싸우며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는 사이 유 회장은 작은 배를 타고서 슬쩍 바다를 빠져나갔다.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을 전부 갖고 노는 데 성공한 것이다!
“크핫핫… 크핫핫핫!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놈들. 삼국지부터 다시 읽고 오거라!”
“어르신. 창피하니까 목소리 좀….”
* * *
“함께해서 고생했고. 영지 하늘성으로 가면 대장장이들이 도와줄 거다.”
“고, 고맙다. 김태현.”
“내가 고맙지. 꼭 원하는 검을 만들었으면 좋겠군. 참. 거기 베켈프라는 자칭 드워프 장로가 있는데 걔 말은 무시해. 탈출시켜달라고 해도 듣지 마.”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수상쩍은 태현의 말에 움찔 떨었다.
무언가 골짜기에 숨겨진 어둠에 접근한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악마의 대장간은 굳이 가지 말고.”
“물론이지. 우린 폭탄에 관심 없어.”
“악마의 대장간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동상에 기도하지 말고, 옆에 붙어 있는 상점에 가서 뭐 사지 말고, 가판대 있는데 거기서 사 먹지 말고….”
“…아, 아니. 골짜기 평화로운 영지 아니야?”
“하하. 물론이지.”
평화로운 영지인데 이상하게 주의사항이 많잖아!
매우 수상쩍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건 검은 바위단이었으니까.
“딱히 위험한 건 아니고, 요즘 영지 NPC들이 인재 구하느라 열심히거든.”
온갖 (이상한) 종족들이 들끓는 골짜기.
조금만 돌아다니면 온갖 특이한 NPC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본거지인 악마의 대장간부터 시작해서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머무르는 드워프 대장간, 화염학파 마법사들이 지내는 화염학파 마탑, 고블린 재봉사들이 있는 황제의 재봉소, 새로 세력을 늘려가고 있는 아키서스 성기사들의 성기사 훈련소, 밥 먹고 투기장만 뛰는 아키서스 검투사들의 투기장 등등.
요즘 이런 특수 건물들이 많아지고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NPC들도 적극적으로 영지 내 인재를 영입하려고 하고 있었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놈을 한 방으로 보내버리자! 모두가 평등한 기계공학의 세계로!
-투기장 전문 모험가가 되고 싶다면 아키서스 투기장으로 오라! 아키서스 투기장에서 기초를 다지면 어디 가서도 지지 않는다!
-남의 집에 불 지르는 거 좋아하는 놈들은 화염학파 마탑으로 오십시오! 마음껏 지르게 해드립니다!
검은 바위단은 나름 레벨 높은 랭커들.
잘못 걸리면 어떻게든 영입하려고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것이다.
특히 검은 바위단 대장장이는 유명한 대장장이 랭커였으니 더더욱….
“알겠지? 내가 말한 28가지 주의사항만 신경 쓰면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쉽지?”
“…….”
‘일 끝나면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