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19화
배 밑으로 떨어진 플레이어의 모습에 납치, 아니 구출하러 온 플레이어들은 배신감에 떨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김태현! 말했잖아! 구해주러 왔다고! 왜!! 왜 못 믿는 건데!!!”
“저 자식들이 널 속이고 있는 거야! 검은 바위단 새끼들 아주 속이 시꺼먼 놈들이라고!!!”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매우 억울해졌다.
지금 시X 누가 누굴 속이고 있는데…!
‘우리가 김태현한테 속아서 부려지고 있으면 부려지고 있지 김태현이 우리한테 속을 인물이냐?’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네.’
가슴이 절절해지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태현은 냉정했다.
“배 멈추거나 배 위로 올라타려고 하는 놈들 공격한다. 탈출하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모두에게 전해!”
-저놈들, 뭐하는 놈들이죠?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겠지.”
태현은 페르스메스의 물음에 간단 명쾌하게 대답했다.
배 멈추고 올라오려는 걸 보니 아키서스 교단이네!
페르스메스는 그 대답에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김태현!! 우리 말을 좀 들어봐아아악!”
풍덩, 풍덩-
올라온 플레이어들이 밀려 떨어지고 걸쳐진 갈고리들도 떨어져 나갔다.
먼저 급히 온 길드와 파티들은 그 모습에 움찔했다.
위에 기어 올라간 놈들이 어떤 꼴을 맞이했는지 생중계 영상으로 본 것이다.
“어, 어떻게 합니까? 길마님? 올라갑니까?”
“와. 김태현 놈 장난 아니네. 구해주러 온 거라 좀 봐줄 줄 알았는데 성질 그대로 아냐?”
<성기사이즈킹> 길드에서 나온 성기사, 좀비맨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판온 1 출신 랭커였지만 다행히 태현과 그리 부딪힌 적이 없었다.
멀리서 몇 번 광산 날아가는 걸 본 적 있긴 했지만….
지금 개인 방송으로 여럿 날아가는 걸 보니 예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올라가면 안 됩니까? 계속 올라가면 설마 김태현이 계속 죽이겠어요?”
“설마 계속 죽일걸.”
“…….”
<성기사이즈킹> 길드원들은 입맛을 다셨다.
저 배 위에 보물이 있는데 올라갈 수가 없다니!
대충 이 구출하러 온 분위기를 틈타 배 붙잡고 기어 올라가면 김태현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아 나 구하러 왔는데 사람들 참, 공격할 수도 없고 곤란하네~’ 할 줄 알았는데….
김태현은 ‘니들이 뭔데 배 멈추게 하고 기어 오르냐? 죽어!’ 하면서 냉정하게 칼 같이 반응한 것이다.
“일단 배 따라가자! 따라가면서 호위해! 김태현도 누군가는 고를 거 아냐! 어떻게든 눈에 들어야 해!”
“알겠습니다!”
“우리 인연을 꾸준히 말해! 김태현 귀에 들어가도록!”
“아… 아니. 그건 좀 쪽팔린데요.”
“뭐가 쪽팔려!? 지금 소리치는 거 안 들리냐!?”
실제로 지금 주변은 매우 시끄러웠다.
소형선을 타고 온 온갖 플레이어들이 태현과의 인연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 나 아키서스 교단 골드 등급이야!!! 내 가족들도 다 브론즈 이상이고!!!”
“김태현 씨 저 자식에게 속지 마십시오! 저는 골짜기에 집도 갖고 있는 원년 멤버입니다!”
“김태현! 길드 동맹과의 인연을 생각해라! 우리만큼 너 키워준 곳이 어딨냐!”
모두 다 없던 인연 있던 인연 부풀려가며 뻔뻔하게 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성기사이즈킹> 길드도 태현과 인연이 있었다.
모라 시 운영에 같이 참가하기도 했고 퀘스트 때 부딪히기도 했고….
어쨌든 간에 이 정도면 꽤 인연 깊은 편이었다. 다른 놈들에 비하면 더더욱.
“자. 빨리! 길드 이름 크게 외쳐가면서 불러! 김태현 기억나도록!”
“…길드 이름이 쪽팔린데….”
“너 뭐라고 했냐???”
* * *
옆에서 배들이 달라붙고 난리치는 동안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전진했다.
점점 더 가속이 붙은 함선은 완전히 역병 함대로부터 멀어졌다.
대신 구출대 연합 함선들 사이에 가까워졌다.
웅성웅성-
태현의 함선이 가까이 다가오자 다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배 타고 옆에 붙어서 기어오를 정도로 추잡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태현과 함께 에랑스 왕국에 가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눈치싸움!
‘먼저 말을 꺼내봐?’
‘아까 까인 놈들처럼 까이고 싶진 않은데.’
서로 수군거리며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사이, 태현의 함선은 유유자적하게 그 사이를 누비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의 스킬 시간이 끝났습니다!]
[신성력이 돌아옵니다!]
-주인님. 저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너도 고생 많았다.”
살아 움직이던 함선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뚝하고 정지했다.
원래 예상과 비교해 보면 훨씬 오래 움직인 편이었다.
‘게다가 역병 함대에 붙잡혀서 시간을 낭비했으니….’
높은 기계공학 스킬 덕분에 스킬 지속 시간 보너스를 받아서 망정이지, 아니면 일이 꽤나 곤란해졌을 것이다.
태현의 배가 멈추자 다들 의아해했다.
왜 멈춘 거지?
“…가까이 가도 되나?”
“일단 가보자고.”
슬금슬금-
수십 척이 넘는 배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까 소형선과는 다른, 체급이 있는 함선들이 둘러싸는 모습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저… 저런! 큰일 났다!
역병 함대의 선장, 폴로뮤스는 깜짝 놀랐다.
유령선들과 아키서스 교단 놈들, 모험가 놈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페르스메스가 타고 있는 배가 저 멀리 가 있었던 것이다.
-저렇게 가는 동안 아무도 말리지 않았단 말이더냐!
-죄, 죄송합니다!
-페르스메스 님을 구해와라! 역병 주교의 뒤를 이으실 분이란 말이다!
폴로뮤스가 크게 소리쳤지만, 역병 함대라고 해서 딱히 별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었던 것이다.
지금 앞에 유령선부터 시작해서 상대할 적들이 빽빽한데 저 멀리 있는 배를 구해 올 수는 없었다.
-폴로뮤스 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들도 설마 페르스메스 님을 죽이진 않을 겁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당장 구해오지 못하겠느냐!!
폴로뮤스는 분노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페르스메스 님을 호위하고 있던 성기사들의 실력이 제법이었습니다. 혹시 데리고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아직 희망은 있다. 저길 뚫고 나오면 바로….
그러나 그런 건 없었다.
태현의 함선은 그냥 바로 포위되더니 탈출하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저런 성기사 놈들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직접 챙겼어야 했는데!
바로 돌변하는 폴로뮤스!
[이데르고 교단 신도들에게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페르스메스를 구출하라…>]
[<페르스메스 호위들을 구출하라…>]
동시에 이데르고 교단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퀘스트가 떴다.
페르스메스와 함께 붙잡힌 태현 일행을 구출하라는 퀘스트!
…물론 딱히 붙잡힌 건 아니었지만….
* * *
-어딜 가시는 겁니까??
페르스메스는 당황해서 물었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모험가 놈들은 그렇다 치고, 태현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함선을 버리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안 되겠다.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은 데다가 포위당해 있어서 더 이상 싸울 수가 없겠어.”
-그런…!
물론 배를 끌고 포위망 안에 기어 들어온 건 태현이었지만, 페르스메스는 태현에 대한 신뢰가 너무 높았다.
그저 이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할 뿐 태현의 탓을 하진 않았다.
-끝까지 싸웁시다! 이데르고 님의 영광을 위해!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너 같은 이데르고 님의 인재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
“…….”
둘의 절절한 대화를 듣고 있던 길드원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너희 뭐하냐?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와주러 온 유 회장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쟤네 저거 뭐하는 거냐?”
“글, 글쎄요?”
“이데르고 교단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비장하게 외쳤다.
“항복하겠다! 나는 어떻게 죽여도 좋지만 여기 페르스메스 님은 건드리지 마라! 이데르고 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데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니!”
[페르스메스의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이데르고 교단 내 공적치 포인트가 쌓입니다!]
“아니… 어….”
“김태현…?”
상황을 모르는 유 회장의 부하들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너 아키서스 교단 아니었어?
심지어 여기는 낚시꾼들도 많아서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 여럿이었다.
신도들 앞에서 당당하게 다른 교단 이름 외치는 교황의 모습에,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일단 맞춰주자!”
“그, 그래.”
“크헷헷헷! 우리 아키서스 교단의 마수에 잡혔구나! 이 멍청한 이데르고 교단 놈들!”
유 회장의 부하들은 악당스럽게 웃으면서 일단 페르스메스를 꽁꽁 묶었다.
“놈을 안으로 데리고 가라!”
“안 돼! 이놈들! 이데르고 님이 용서치 않을 거다!”
외치던 태현은 페르스메스가 끌려가고 나자 뚝 멈췄다.
“후. 더럽게 힘드네.”
“…….”
“…….”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태도가 변환되는 그 모습에 모두 소름 돋아 했다.
저 저 저 저놈…!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허허. 고생은 무슨.”
유 회장은 평소와 달리 매우 상냥하고 친절했다.
고대 제국 대학 입장권 때문!
‘평소랑 달리 이러시니까 적응 안 되는데.’
“고생은 우리 김태현 선수가 많이 했지. 자. 이거 좀 마시게. 따뜻하니 몸이 풀릴 거야. 여기 친구들에게도 돌려주게나.”
유 회장 부하들이 뜨끈뜨끈한 차를 갖고 오자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감동했다.
여기 주변에 미친놈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친절한 사람도 있구나!
“야. 아란티스 왕국 우두머리라고 해서 좀 더 무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친절하다.”
“그러게. 되게 푸근하시네. 성격 좋으신듯.”
[체력이 회복됩니다!]
[<다섯 가지 곡물로 우려낸 차…>로 버프가…]
[……]
태현은 안 마시고 있다가 남들이 마시는 걸 보고 마셨다.
예전이었다면 몰랐겠지만 유 회장은 쌓인 판온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이놈이 지금 뭐 탔을까봐 저러는 거냐!?’
사람을 뭘로 보고…!?
하지만 저 빈틈없는 경계심은 감탄할 수밖에 없긴 했다. 어느 누가 이런 상황에서 저걸 의심하겠는가.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과 실베드를 보라.
아주 제대로 긴장이 풀려 있었다. 물론 유 회장이 공격할 생각이 없긴 했지만 태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김태현. 이제 다 끝난 거지?”
“빨리 육지로 돌아간 다음에 다시는 김태현 얼굴 보고 싶지 않다.”
“야. 길드원 전용 대화를 밖으로 말하면 어떡해!”
수군거리는 이들과 달리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는 길이 쉽지 않을걸.”
“어? 역병 함대가 쫓아올까?”
“아니. 그것보다는 플레이어들이 쫓아오겠지.”
“아니… 다 끝난 거 아니야?”
태현이 타고 온 함선을 버리고 유 회장 쪽 함대에 올라탄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끝났다고 봐야 했다.
유 회장이 태현을 구출한 것 아닌가?
그러자 태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너희는 대체 판온을 어떻게 한 거냐? 이 상황에서 끝났다는 말이 어떻게 나오지?”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태현과 사고방식이 달랐다.
소규모 친목 길드로 처절한 싸움 피해가면서 자기들 퀘스트 깨오던 이들과, 매순간마다 대형 길드랑 싸우며 살아온 사람은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다른 놈이었다면 바로 배 들이박아서 뺏으려고 했을 거다.”
“…아니 그건 네가 이상한 거지!!”
길드원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아무리 질투가 나도 그렇지 방금까지 힘을 모아 여기까지 온 원정대가 그렇게 싸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