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18화
-크아아아악! 뭐하는 거냐!
[역병 함선에 커다란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할 경우 이데르고 교단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앗. 해명할 기회는 주는구나.’
태현은 감탄했다.
이데르고 교단은 정말 정이 넘치는 교단이었다.
배 한 척을 그냥 통째로 공격했는데도 해명할 기회를 주다니!
아키서스 교단이었다면 태현은 그냥 골짜기 으슥한 곳에 묻어버렸을 것이다.
배 한 척이 얼마인데 그걸 오인사격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이데르고 교단 NPC 같습니다!
페르스메스의 외침에 태현은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저건 변장한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의 기억이 완전하지 못합니다! 추가 보너스를…]
[친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추가…]
[상황이 혼란스럽습니다! 추가…]
[설득에 성공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공격해라! 저 배를 공격해라! 다른 배에도 신호를 보내!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 변장해서 탈취하고 있다고!
-알겠습니다! 후계자님!
페르스메스의 발언은 교단 내에서 그 무게감이 달랐다.
태현이나 다른 일행은 어디서 굴러온 건지도 모르는 일개 교도라면, 페르스메스는 무려 주교의 후계자인 것이다.
그런 페르스메스가 아키서스 교단이 변장해서 함선을 탈취하고 있다고 선언하자, 역병 함대는 순식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목숨을 걸고 배 위를 뛰어다니며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아키서스 교단이다! 어… 피를 내놔라!
-피를 내놓지 않으면 너희의 장비와 재산을 모두 다 가져가겠다!
-말하는 걸 보니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 틀림없다! 잡아라!
[역병 함대 내 혼란이 점점 더 퍼집니다!!]
[전술에 페널티…]
[항해에 페널티…]
[강력한 이데르고의 역병 함대를 세 치 혀만으로 흔들어 놓았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아무리 화술의 달인인 태현이라 하더라도 페르스메스의 도움과 행운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는 위업이었다.
그 덕분에 각종 보상들이 들어왔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아키서스의 권능 스킬까지!
[잊혀졌던 권능 스킬, <아키서스의 이간질>을 얻습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이게 난이도 높은 위업이라지만 아키서스의 권능 스킬까지 그냥 줄 줄이야!
<아키서스의 이간질>
아키서스의 힘을 빌려 적들 사이에 잠든 불화를 깨웁니다. 일정 확률로 적들의 사이가 틀어집니다.
“…….”
아니….
나쁘지는 않지만….
‘어디 잠입할 때 적들 흔들거나 도망칠 때 쓰기 좋은 스킬이긴 한데.’
만약 화술 스킬이나 전술 스킬 쪽으로 나왔다면 태현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권능 스킬로 나오니까 기분이 좀….
미묘하다!
‘이게 아키서스 이름 달고 나올 스킬인가…?’
[카르바노그가 앞에 보라고 외칩니다!]
콰콰콰쾅!
태현은 다시 집중했다. 혼란이 퍼지고 있었지만 아직 안심해서는 안 됐다.
지금 상황은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황!
실수 한 번만 하면 정말 훅 갈 수 있는 것이다.
“공격! 공격!”
-맞받아쳐라!
“오호라! 저놈들이 공격하는 걸 보니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다!”
-저놈이 아키서스 놈이다!
-아니다! 이놈이 아키서스 놈들이 분명하다!
콰콰쾅! 콰콰쾅!
거대한 역병 전투 함선들은 서로를 아키서스라고 주장해 가면서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거기에 유령 함대들까지 파고들었다.
-선장을 노려! 저 역병쟁이 놈들의 선장을!
-반드시 깊은 바닷물을 맛보게 해주고야 말겠다! 크히히히!
유령 함대는 역병 함대보다는 한층 약한 편이었지만, 주어진 시간 동안 계속해서 끊임없이 부활하는 끈질김으로 역병 함대를 괴롭혔다.
역병 함대는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동시에 유령 함대까지 싸워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역병 함대는 꿋꿋이, 흔들리지 않고 싸워나갔다.
역병 함대의 선장, 폴로뮤스의 활약 덕분이었다.
-모두 내 기함 주변으로 모여라! 멈추지 않고 모이는 자들은 아키서스에게 넘어간 놈들이다! 과감하게 공격해도 좋다!!
-유령 함대부터 우선적으로 공격해라! 유령 함대를 공격하지 않은 놈은 아키서스에게 넘어간 놈들이다! 바다 밑으로 묻어버려라!
-역병 신의 강림!! 역병 해일! 깊은 바다의 역병!!
[폴로뮤스가 역병 함대의 혼란을 줄이기 시작합니다!]
[폴로뮤스가 역병 신의 강림을 사용했습니다! 역병 함선의 힘이 증폭됩니다!]
[폴로뮤스가 역병 해일을 사용했습니다! 역병의 해일이 몰려옵니다!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폴로뮤스가 깊은 바다의 역병을…]
‘미친!’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태현은 전율했다.
생각보다 폴로뮤스가 어마어마하게 강했던 것이다.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병약했던 노인이 바다를 자기 손아귀에 넣은 것처럼 호령하며 뒤집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돋았다.
‘섣불리 안 덤비길 잘했군.’
“헉헉… 김태현! 돌아왔다!”
“다 했다고!”
길드원들은 물에 젖은 채 배 위로 기어 올라왔다.
용케도 목숨을 구해 돌아온 것이다.
처음에 ‘아키서스 교단이다!’라고 할 때만 해도 나름 할 만했다.
적들도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점점 싸움이 격렬해지자, ‘아키ㅅ’까지 말하면 바로 공격이 날아왔다.
공격도 그냥 공격이 아니었다. 배까지 통째로 날려 버리는 살벌한 공격이었다.
-대포를 조준해서 갈겨버려라!
-야 이 미친놈들아! 여기 너희 배 위다! 같이 죽겠다는 거냐!?
-아키서스 놈들을 데리고 같이 죽을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하겠다!
-…….
“…진짜 무서웠다.”
“대체 뭐 원한을 얼마나 쌓아야 그렇게 되는 거냐??”
“악신 교단 놈들이 원래 괜한 원한을 좀 품는 경우가 많지.”
[????]
태현은 뻔뻔했다.
난 딱히 한 거 없는데 이데르고 교단이 날 좀 미워하는 거 같아!
“어쨌든 기회가 찾아왔다. 봐라!”
폴로뮤스가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하고 있어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
배들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고, 잠깐 사이로 포격이 날아와 물기둥이 수십 개 넘게 솟구쳤다.
드디어 도망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출발합니까?
“아니. 잠깐 기다려.”
태현은 함선을 말렸다.
“왜? 지금 당장 안 가면 늦을 수도 있어! 저 미친놈 보라고!”
“우리가 한 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쩔 건데?!”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안달이 나서 태현을 재촉했다.
지금 당장 출발해도 부족한 상황에 태현이 저러니 초조해서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지금 당장 출발해도 늦을 판에…!’
하지만 태현은 끝까지 침착했다. 다른 랭커들은 초조함에 휘둘렸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강철 같은 멘탈!
‘폴로뮤스가 이쪽을 보고 있는 거 같다. 의심하는 것보다는 아마 페르스메스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만….’
혼란스럽다 하더라도 지금 갑자기 급발진을 하면 의심받을 수도 있다.
태현은 끈기 있게 견뎠다.
분명 기회가 온다!
“김태현을!!! 구해라!!!!”
“김태현!! 우리가 왔다! 듣고 있으면 신호를 보내!! 손을 흔들어!”
‘왔구나!’
플레이어들의 구출 함대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당근을 흔듭니다!]
“…밟아! 무조건 밟아! 잡히면 죽는다고 생각해라!”
-예!!
함선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속력을 올렸다.
폴로뮤스나 다른 역병 함대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탄 대탈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다!
-어? 어? 어?
페르스메스는 당황했다.
왜 배가 갑자기?
설마 돌격해서 저 함대들을 전부 쓰러뜨리려는 걸까?
-같이 싸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멍청한 소리! 이데르고 님은 용맹한 전사를 사랑하신다.”
-과… 과연!
페르스메스는 당황했지만 일단 태현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적 숫자가 너무 많지 않나??
* * *
“…어? 쟤네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 아니냐?”
“함정 아니야?”
“아니야! 유령선까지 나타났어!!”
역병 함대와 싸울 각오를 잔뜩 하고 온 플레이어들은 생각과 다른 상황에 의아해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아…!
“김태현이다! 김태현이 한 게 분명해!!”
“지금 들어가! 지금 들어가야 한다!”
“밟아!! 김태현 먼저 구해야 한다!”
세상에 이런 횡재가!
역병 함대한테 엄청나게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하고 왔는데 쉽게 할 수 있다는 기쁨에 플레이어들은 미쳐 날뛰었다.
‘잠깐. 그러면…?’
‘역병 함대 놈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면, 저놈들하고 싸울 게 아니라 다른 경쟁자를 막아야 한다!’
몇몇 길드는 눈치챘다.
지금 상황에서 주적은 역병 함대가 아니라, 다른 경쟁자라는 걸!
“…비켜!”
쿵!
[배가 충돌했습니다!]
[내구도가…]
“아, 아니 이 새끼가!?”
“비키라고 했잖아!”
“일부러 박았지!?”
“김태현!! 어디 있어! 김태현!!”
몰려온 구출대 플레이어들이 애타게 외치기 시작했다.
“김태현! <길드 동맹>에서 나왔다! 우리와 가장 많이 선의의 경쟁을 한 너라면 우리의 실력을 알고 있겠지! 얌전하게 대륙으로 데려다줄게! 나와!”
“김태현 씨! 저희 <진군> 길드입니다! 제발 한국인이라면 저희 길드와 같이 돌아갑시다!”
“김태현 님! 우린 파이터즈 길드에서 나왔어요! 저희와 같이 돌아가시면 막대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무슨 파티원 구하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도 태현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 많은 인원이 지금 다 태현을 구하러 온 거란 말인가?
‘무슨 수평선을 꽉 채운 거 같은데…?’
-야. 이거 큰일 난 거 같다.
-왜?
-김태현하고 같이 있었다고 PK당할 거 같은 분위기인데.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정말 충분히 가능성 있다!
“김, 김태현. 누구하고 같이 갈 거냐?”
“어느 쪽으로 갈 거지?”
태현은 대답하는 대신 속도를 더 올렸다.
역병 함대에서 웬 특이한 강철 함선이 튀어나와서 내달리자, 슬슬 깨닫는 사람들이 나왔다.
“저기 보물 ㅅ… 아니! 김태현이다!!”
“김태현!!! 우리 너 구하러 왔어!! 멈춰! 우리 배로 와!!”
촤아아악!
몇몇 배들이 접근하는 걸로도 모자라 태현의 함선을 멈춰 세우려고 시도했다.
갈고리를 던져 걸고, 함선 벽에 올라타고….
욕망에 미친 이들!
“저 미친놈들이 배에 올라타잖아!?”
“김, 김태현! 어떻게 할까! 명령 내려줘!”
태현은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공격해!”
“…진, 진짜?”
막상 각오하고 있던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냉정한 명령!
“구해주러 왔든 말든 남의 배 멈춰 세우고 올라타려고 하면 적이지. 공격해!”
-감히 모험가 놈들 주제에 이데르고 님의 배를 공격하다니!
페르스메스가 가장 먼저 공격했다.
-역병의 호흡!
“컥!”
“크악!”
함선을 기어오르던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다.
“김, 김태현! 우린 널 구해주러 왔다니까? 왜 이러는 거야!”
“아하! 오해가 있었던 거 같은데, 우린 그 널 노리는 적들하고 달라! 우린 해치지 않는다고!”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한심하다는 듯이 플레이어들을 쳐다보았다.
욕망으로 타오르는 눈빛에, 군침을 흘리면서 ‘크헤헤 해치지 않아!’ 이러면 그걸 누가 믿는단 말인가.
“배, 배에서 당장 안 꺼지면 공격한다!”
“너희들이냐?! 김태현을 손에 넣은 게?! 당장 포기하고 꺼져! 그렇지 않으면….”
콰콰콰쾅!
협박하던 플레이어는 폭탄을 맞고 배 밖으로 떨어졌다.
태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공격하라고 했지 말 들어주라고 했냐? 공격하라고!”
“…….”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