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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317화 (1,316/1,826)

§ 나는 될놈이다 1317화

“PVP로 뺏은 거 아니다.”

태현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왠지 모르게 억울했던 것이다.

“어? 진짜? 아. NPC 죽이고 뺏은 건가?”

“그러게. 해적왕 죽이고 뺏은 건가 보다.”

“이야….”

“…평범하게 퀘스트 깨다 손에 넣은 거다.”

태현의 말에 길드원들은 왠지 모르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김태현답게 피비린내 나는 뒷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별거 없었던 것이다.

‘이 자식들 뭘 기대한 거야?’

[카르바노그가 차라리 거짓말을 해주지 그랬냐고 말합니다.]

해적왕을 죽이고 심장을 찌를 때 검이 튀어나와서….

‘이상한 이야기 만들지 마.’

“그런데 이 <해적왕의 낡고 녹슨 검>, 쓴 적 있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도 본 적 없어. 내가 놓쳤나?”

김태현 퀘스트 영상은 팬이 아니더라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하거나 배우거나 따라하거나 등등!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랭커였고, 당연히 태현의 영상을 분석하기 위해 꽤 많이 봤었다.

그런데도 태현이 <해적왕의 낡고 녹슨 검>을 쓴 기억은 없었던 것이다.

“안 썼으니까 본 적이 없겠지.”

“아하. 얻은 지 얼마 안 됐나 보구나?”

“하긴 예전에 얻었으면 진작 썼겠지.”

태현이 바다 위에서 깼던 퀘스트들도 있었다.

그걸 생각해 보면 이런 아이템을 안 썼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 쓰고 계속 묵혔던 거면 정말 사람이 아니다!

“…….”

길드원들의 대화를 듣던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낄 수도 있지….’

땅 파서 검이 나오나?

희귀한 아이템들은 무조건 아끼는 게 좋았다. 팍팍 썼다가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면 어쩐단 말인가.

[화신은 좀 더 팍팍 써도 될 거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대체 나중을 대비해서 꿍쳐 놓은 아이템이 몇 개야!

* * *

“유령 함대를 소환하면 그 틈을 타서 도망치는 거야?”

“뭔 소리야? 그거 하나로는 안 되지.”

“…….”

“…???”

보통 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나…?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단 태현의 다음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 그렇군. 그 다음은 뭐가 필요한데?”

“혼란을 더 만들려면 이데르고 NPC들을 당황하게 만들어야지. 가장 좋은 걸 생각해봤는데, 역시 아키서스가 최고일 거 같아.”

“…그, 그렇구나.”

“그러니까 유령 함대가 들이닥치면 너희들은 나눠져서 양옆의 배로 간 다음에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외쳐.”

“…!”

멍하니 듣고 있던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명령이 그들에게 날아온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에 대한 원한이 장난 아닌 거 같던데. 설마 죽진 않겠지?’

‘자존심이 있지, 무섭다고 말할 순 없고….’

다른 배로 건너간 다음 ‘크헷헷헷 우리가 그 우는 아이도 눈물을 그친다는 아키서스 교단이다!’라고 외치는 건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런 일을 못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그러면 내가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 배를 탈취했다고 외치면서 대포를 쏠 거다.”

“같이 가주면 안 되냐? 내가 아키서스 교단 흉내가 자신이 없어서….”

“난 조종도 조종인데 폭탄하고 대포를 쏴야 해서 같이 못 가. 여기 있어야 해.”

태현의 말에 길드원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태현이 같이 가면 좀 안심이 될 것 같았는데….

“대신 어떻게 하면 아키서스 교단 흉내를 낼 수 있는지 알려주마. 일단 최대한 사악하게 웃으면서….”

“…….”

너 교황 맞아??

어쨌든 계획은 준비되었다.

적절한 상황을 봐서 태현이 유령 함대를 소환하면, 그 틈을 타 닥치는 대로 혼란을 만드는 것!

한 가지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 상황에 몇 가지를 겹쳤으니 길드원들은 자신감이 붙었다.

게다가 태현이 만든 계획 아닌가.

“솔직히 김태현이 짰는데 별문제 없겠지.”

“실베드면 모를까 김태현이 짰잖아?”

‘얘네들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은 태현이 완벽에 가까운 계획을 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난이도 높은 퀘스트들을 어떻게 깰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태현은 오히려 그런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단 덤벼든 다음에 상황 봐가면서 계획을 바꿔가는 경우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

즉….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은 것!

[괜히 불안해할 테니 전하지 말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하긴 맞는 말이야.’

* * *

“역병 함대 발견! 역병 함대 발견!!”

“역병 함대 발견했답니다!”

-역병 함대 발견!

-방송에서 역병 함대 발견!

가장 앞에서 쾌속 소형선 몰고 있던 플레이어가 마법 망원경으로 역병 함대를 발견하자, 그 소식은 빠르게 함대 전체로 퍼졌다.

유 회장의 구출대뿐만 아니라 근처에 배를 몰고 오고 있던 타 길드의 함대들까지 전부!

역병 함대가 공개된 이상, 구출 좀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전부 다 위치를 파악하고 달려온 것이다.

그 숫자는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수평선을 길게 채운 함선들!

“와. 이게 대체 몇 명이야?”

“김태현 하나 때문에 이 많은 인원이 모인 건가?”

배 위에 타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새삼 놀랄 정도였다.

구출하러 온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니 체감이 달랐다.

대형 길드들끼리의 영지전을 압도하는 규모!

-여러분! 이 장관이 보이십니까! 수평선을 함대들이 꽉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해전을 또 언제 보겠어요! 이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못 볼 테죠! 모두 집중하세요!

곳곳에서 신나게 방송하는 이들이 보였다. 이런 어마어마한 장관을 두고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김태현 지금 찾으러 갑니다!

-구독자 여러분들. 보고 있어주십시오! 제가 김태현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함대에서 소형선을 몰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튀어나왔다.

재빠른 속도를 이용해 역병 함대에 가까이 돌진할 생각!

운만 좋으면 요리조리 피해서 접근한 다음 김태현을 데리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어르신. 놈들이 먼저 움직이는데요.”

“내버려 둬라. 어차피 저런 소형선으로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니까. 포위 신호를 보내도록!”

유 회장은 구출대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 함대에도 연락을 보냈다.

일단 태현을 손에 넣기까지는 같이 싸워야 할 이들!

어느 정도 협조는 가능했다.

-지금 김태현 구출 함대가 역병 함대를 둘러싸기 위해 빙 퍼지고 있습니다!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이런 것도 다 돼요! 이 정도면 사실 역병 함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야! 지금 올라오고 있는 영상 보면 소형선들이 접근하고 있다는데?!

부아아아앙-

돛을 올린 소형선들은 마법 부스터까지 써가면서 역병 함대에 빠르게 접근했다.

“멈추면 죽는다! 무조건 지그재그로 밟아야 해!”

“알고 있어! 아키서스의 선수상도 사서 매달았다고!”

“김태현만 데리고 나오면 돼! 김태현만!”

인생 한 방을 노리고 있는 이들!

…물론 이들은 김태현을 어떻게 데리고 나올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포탄 하나 스쳐도 침몰할 배에 태현이 타진 않는 것이다.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살아 있는 자들이 여기로 오고 있습니다.

-역병 대포를 준비해라. 이데르고 님의 힘을 보여주어라!

[역병 함대가 포격을 시작합니다!]

[명중의 역병이 걸린 포탄이 궤도를 틀어 배를 명중시킵니다!]

쾅!

“크아아악!”

회피 기동이고 뭐고 할 여유가 없었다.

집요하게 따라오는 포탄도 포탄이었지만….

퍼퍼퍼퍼펑! 퍼펑! 퍼퍼퍼펑!

바다를 뒤집어엎을 듯이 때려박는 역병 함대의 화력도 살벌했던 것이다.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다!

“튀어! 방향 돌려!”

“김태현이고 뭐고 우리가 죽겠다!”

결국, 소형선 플레이어들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돌격은 의미가 있었다.

태현이 기회를 잡은 것이다.

* * *

-저주받은 유령 함대 소환!

[<저주받은 유령 함대 소환>을 사용했습니다!]

[<해적왕의 낡고 녹슨 검>의 내구도가 떨어집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

[해적들이 당신을 존경합니다!]

[<해적왕의 낡고 녹슨 검>에 담긴 저주가, 바다의 금기를 깨뜨린 당신을 공격합니다!]

[행운이 매우 매우 높습니다! 저주를 회피하는 데 성공합니다!]

‘어라. 뭔 저주였지?’

검에 무슨 저주가 있었는지 메시지창이 떴다.

회피해 버린 이상 무슨 저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됐지만….

끼이이이이이익! 끼이이이익!

휘이이이이잉!

갑자기 미친 듯이 스산한 바람과 함께 귀를 찢는 거슬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닷속에서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유령선들!

“역병 함대를 공격해라!”

-우리는 해적왕의 명령을 따른다!

-저 더러운 역병 놈들을 공격해라!

유령선의 선장들은 전부 다 육신 없는 유령들이었다.

그 모습에 태현은 안도했다.

‘오래 버틸 수 있겠어.’

유령은 기본적으로 물리 공격을 덜 받기 마련.

공격에도 불리한 점이 있긴 했지만 이런 오래 버티는 게 중요한 상황에서는 좀 더 버틸 수 있….

꽈과과과과과과광!

[<역병의 포효>가 시전됩니다!]

무슨 세상을 멸망시킬 것 같은 거대한 역병의 힘이 태현 옆에 벼락같이 작렬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유령선 하나가 그냥 통째로 증발했다.

유령이고 뭐고 따져서 버티는 게 의미가 없는 수준!

‘뭔 미친…?’

태현은 이 미친 스킬을 쓴 게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늙은 선장, 폴로뮤스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괜찮으냐? 그대들을 공격할 것 같길래… 먼저 손을 썼네!

“감… 감사합니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저 선장이 유령선 하나를 통째로 증발시켰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해적왕의 낡고 녹슨 검>에 담긴 맹세의 힘으로, 파괴된 유령선이 바다 밑에서 돌아옵니다!]

-크아악! 역병쟁이 놈들 죽여 버리겠다!

다행히 유령 함대도 만만치 않았다.

제한 시간 동안은 계속해서 부활하는 이들!

-이거…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이쪽으로 건너오는 게 어떻겠느냐!

폴로뮤스가 태현을 보며 외쳤다.

물론 당사자인 태현이 OK할 리 없었다.

“아닙니다! 저희도 싸우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폴로뮤스 님!”

-뭐라고??

[카르바노그가 듣나 못 듣나 욕 한 번만 해보자고 합니다.]

‘…나도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조심하시라고요!! 어쩐지 수상합니다!”

마침 때맞춰 다른 역병 함선으로 올라간 플레이어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크헷헷헷! 나는 아키서스 교단이다! 너희의 피를 내놓아라!!”

“…….”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시선을 던졌다.

피를 내놓으라는 말은 내가 언제 했냐??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다!

-피를 내놓으라고 하는 걸 보니 놈들이 틀림없다! 경보를 울려라!!

[역병 함대에 혼란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역병 함대의 전술 능력에 페널티가 붙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습격이다!

-뭐?!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 유령선들을 이끌고 쳐들어왔다고!?

-아키서스 놈들이 함선을 탈취했다고!?

빠르게 번지는 혼란.

태현은 그 혼란에 불을 지르기 위해 외쳤다.

“저기 저 옆의 배를 봐라!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 배를 뺏었다! 침몰시켜야 한다!”

-어, 아닌 것 같은데요?

기억 잃은 사제, 페르스메스가 올라오더니 당황해서 태현을 말리려고 했다.

옆의 배는 그냥 이데르고 교단 NPC들이 타고 있는 것 같은데?

“변장하고 있는 아키서스 놈들이다! 발사!!”

콰콰콰콰콰콰쾅!

거대한 폭발과 함께, 나중에 <역병 해전>이라고 불릴 치열한 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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