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16화 (1,315/1,826)

§ 나는 될놈이다 1316화

플레이어들도 눈이 있었다.

이데르고의 역병 함대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거대한 함선만 수십 척에, 타고 있는 놈들 하나하나가 정예 이상으로 강해 보이는….

감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는 강함!

-예전에 카테란드 해적단 생각나지 않냐?

-카테란드 해적단을 어디에 비벼? 걔네는 솔직히 약했지.

-카테란드 해적단 토벌전에 참가해 보지도 않은 뉴비 놈이 입을 놀리네. 네가 카테란드 해적단을 알아?

-어이. 대해적 갈르두하고 싸워본 적 없는 사람은 입 다물어라.

-대해적 갈르두하고 싸운 건 김태현인데 네가 김태현임? 왜 네가 잘난 척임?

-정확히는 김태현이 잡은 거지 싸워본 사람은 많음.

-바다 돌아다니다가 갈르두 부하한테 배 털린 사람들 많다….

-그러면 지금 대해적 갈르두한테 털렸다고 잘난 척 한 거임?

└할 수도 있지 나쁜 새끼야.

└└넌 갈르두 만나면 눈도 똑바로 못 뜨고 도망쳤을 거임.

영상을 본 사람들은 역병 함대가 어느 정도 강한지 떠들었다.

예전에 나왔던, 바다 위의 보스 몬스터들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일까?

-이데르고 교단 놈들은 대륙에나 있을 것이지 왜 밖에 나가서 난리야?

-그러니까 진짜.

-김태현이 어그로 많이 끌어서일걸. 악신 교단 토벌 엄청 많이 했잖아.

-아. 하긴. 아키서스 교단이 악신 교단하고 진짜 많이 싸웠지.

-세상일이 원래 저렇게 정의롭게 나서는 사람이 손해 본다니까.

-정… 정의??

-뭐가 정의롭다고???

-그럼 아키서스 교단이 싸웠지 니네 교단이 싸웠냐? 너 어디 교단이야?

-대답 못하는 거 보니 듣보잡 교단인 듯.

태현이나 상황을 아는 사람이 들었다면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을 쳤겠지만, 의외로 아키서스 교단은 이미지가 괜찮았다.

워낙 악신 교단들과 많이 싸웠던 것이다.

대륙의 굵직한 퀘스트들이 나올 때마다 참가했으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좋을 수밖에 없는 것!

아키서스 교단 가입 안 한 플레이어들한테 물어보면 ‘아, 그 김태현 쪽 교단? 악마들하고 엄청 많이 싸우는 교단?’라는 말부터 나왔다.

아키서스 교단 가입한 플레이어들한테는 ‘나만 운 없는 교단’ ‘운빨이 전부인 교단’ 같은 말이 나오는 것과 정반대였다.

-어쨌든 저 역병 함대한테 덤비는 건 자살행위지. 구출대 참가한 사람들 절반 넘게 빠지겠네.

-ㄴㄴ. 모르는 소리 하지 마셈.

-보면 알겠지만 거의 안 빠졌음.

-…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구출대의 대거 이탈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이탈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욕망에 눈이 멀어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상대도 강하지만 여기도 약하진 않아.’

‘구출하러 모인 함대가 몇 명인데.’

유 회장의 함대부터 시작해서 각종 길드에서 <고대 제국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동원한 구출대까지.

숫자로 치면 이쪽이 압도적이었다.

그냥 물러서기에는 많이 아쉬웠던 것이다.

게다가….

‘적을 다 쓰러뜨려야 하는 게 아니라 김태현만 구하면 되는 거잖아?’

‘김태현만 데리고 나오면 되는 거니까….’

‘남들이 싸울 때 김태현만 데리고 빠르게 도망쳐도 된다!’

그랬다.

모두 속셈은 똑같았던 것이다.

-남들이 역병 함대와 싸우는 사이 김태현 데리고 도망치자!

‘김태현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탈출할 테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거야.’

‘잘하면 싸우지도 않고 깰 수 있다.’

* * *

“선배. 이걸 꼭 해야 합니까?”

“그럼 누가 해야 하냐?”

“…아니, 진짜 보람 없는 일이잖아요!”

연예부 기자, 조창욱은 투덜거렸다.

단독 특종을 캐기 위한 잠입이나 대기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연예계 특종을 캐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결과가 나와야 좀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절대 보람이 없을 곳이었다.

…바로 팀 KL 쪽 숙소 앞!

단지 내로는 워낙 보안이 철저해서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었기에, 밖의 떨어진 카페에서 앉아 죽치고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팀 KL 선수들이 나오나 안 나오나 기다리면서 말이다.

선배 기자인 송대승은 쯧쯧 혀를 차며 훈계했다.

“지금 김태현이 얼마나 인기 있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냐?”

“아니. 저도 알거든요.”

조창욱도 태현의 인기는 잘 알았다.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르는 인기!

지금 E스포츠 쪽 선수들 중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갖고 있었다.

국내 게임단들이 팀 KL과 유성 게임단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지금 상황에서, 손꼽히는 활약을 하고 있으니 인기가 없을 리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두 기자도 태현의 팬이었다. 판온 좋아하는 사람인 이상 당연했다.

“제 말은, 김태현이 이런 부분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는 선수 아니냐는 겁니다. 시간 낭비라는 거죠.”

“…….”

기자들 사이에서 태현은 유명했다.

아무리 대기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인간!

예전에도 특종 좀 캐보겠다고 앞에서 대기타던 기자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혀를 내두르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뭐 밥 먹고 운동하고 게임만 하는 거 같은데?

-밖에를 안 나가! 미친놈인가 봐!

그 소문을 잘 아는 조창욱 입장에서는 이런 대기가 가치 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냥 이럴 시간에 회사로 돌아가서 기사라도 하나 쓰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괜찮은 거 하나 생각해놨어요. 김태현 숙소에서 숨쉰 채로 발견….”

“그래. 그래. 네 마음은 이해한다. 김태현이 워낙 아무것도 안 나오는 선수긴 하지.”

“…….”

“하지만 어떤 선수든 간에 사생활은 있고 맨 처음은 있는 법. 기다리다가 그 처음을 건지리란 믿음으로 있는 거다.”

‘뭔 개소리야?’

선배 기자의 진지한 말에 조창욱은 속으로 욕했다.

안 나오면 그냥 다른 곳을 가야지 무슨 믿음을….

“판온 월드컵으로 지금처럼 관심이 뜨거워졌을 때 특종 하나 건진다면 우리 이름은 영원히 회사에 남는 거다. 알겠냐?”

“회사에 이름 남기고 싶진 않고 그냥 월급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는데요.”

“…닥치고 쳐다보고 있어.”

끼익-

“?”

카페 문이 열리고,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의 사람이 들어오자 송대승은 눈을 깜박거렸다.

뭐지?

어디서 본 거지?

“왜 그러십니까?”

“아니.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냥 직장인 아닙니까?”

“…헉!”

송대승은 깨닫고 신음했다.

저 사람은 유성 그룹 비서실 쪽 사람이 분명했다. 그쪽에서 나왔을 때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유성 그룹 비서실은 그룹 회장을 직접 보좌하는 두뇌들만이 모인 핵심 집단.

대기업 눈치 보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비서실에서 일하는 말단 직원 앞에서도 굽신거려야 했다.

저 정도면 당연히 말단 직원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리라.

그런 곳에 나온 사람이 여기에 왜?

“유성 그룹 본사 쪽 사람이다!”

“진, 진짜요? 선배가 그런 곳에서 나온 사람을 어떻게 아십니까?”

“나도 멀리서 얼굴만 본 거야! 여기는 왜 온 건지 모르겠군.”

당황하던 송대승은 생각해 보니 당황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쪽은 둘을 모르지 않는가.

“그냥 수상하지 않게 가만히 있자.”

“알겠습니다.”

둘은 커피를 들이켜며 우아한 척을 했다.

끼이익-

…카페 문이 열리고 태현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푸후훗!”

“푸우웃!”

둘은 서로의 얼굴에 사이 좋게 커피를 내뿜었다.

“???”

유성에서 나온 사람은 두 기자를 쳐다보더니 슬슬 자리를 옮겼다.

기자라고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제기랄!’

송대승은 속으로 스스로를 욕했다.

이런 기회를 날리다니…!

“선, 선, 선, 선, 선, 선배…!”

“나도 보고 있다!”

둘은 경악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태현이 유성 그룹에서 나온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빅 뉴스였다.

꿀꺽-

혹시나 태현이 열애설 같은 거 터뜨려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는데 그보다 몇십 배는 커다란 뉴스!

“이건… 이건 그거 아닙니까?? 스카우트?? 다음 시즌 때 유성 게임단으로 이적??? 아, 팀 KL 팬으로서 유성 게임단 가면 좀 아쉬운데….”

“지금 그런 소리 할 때냐! 나도 아쉽긴 하지만… 그보다 이적이 아닌 거 같아!”

“?”

“아무리 김태현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선수 스카우트를 할 거면 유성 게임단 직원이 왔겠지. 비서실 쪽 사람이 왔겠냐?”

“!”

“이건… 이건… 아예 게임단을 통째로 인수하려는 거 아닐까??”

“그, 그게 말이 됩니까? 팀 KL 게임단 가치가 얼마인데….”

“유성 그룹에게는 충분히 낼 만한 돈이지.”

“김, 김태현이 그런 걸 받아들일 리 없습니다!”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야. 인마!”

* * *

“아니. 그건 좀….”

태현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태산한테서 ‘야 유 회장님이 사람 보내신단다!’라고 연락이 와서 나갔더니, 비서실 쪽 팀장이 선물 들고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는 아주 간절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탈출하게 되면 제발 저희 회장님 함선으로 와주십시오.”

“저도 그래드리고 싶은데, 말했듯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요.”

아직 탈출 계획도 못 짰는데!

“회장님께서 지금 나이가 많고 몸도 편찮으신데, 이번 퀘스트를 실패하시면 몸져누우실지도 모릅니다… 크흑. 안 그래도 지금 걱정이 많으셔서 나오지 못하셨습니다만….”

“…….”

‘치사하게 나이로 이러나?’

팀장은 눈물을 콕콕 찍더니 슥 하고 서류를 꺼냈다.

“참. 이번에 유성 그룹 쪽 광고 제안도 갖고 왔습니다. 팀 KL 선수들한테 말입니다.”

“…아니 유성 게임단이 있는데 말입니까!?”

“유성 게임단도 광고하고 팀 KL도 광고하면 두 배로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

황당했지만 팀 KL 입장에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어르신이 유성 게임단에 자존심 엄청 걸고 있으실 텐데….’

유 회장은 유성 게임단에 매우 애정을 담고 있었다.

성적이 밀리더라도 팀 KL 쪽에 광고를 맡기지는 않을 정도로.

그런 사람이 유성 그룹 광고를 팀 KL 선수들한테 제안하다니.

이번 퀘스트가 얼마나 깨고 싶었으면….

태현도 살짝 마음이 약해졌다.

“알겠습니다. 탈출하게 되면, 가능하면 회장님 함선으로 가겠다고 전해주시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둘은 악수하고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온 태현을 보고 케인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 하고 왔어?”

“유성생명에서 광고 찍자던데.”

“아. 그렇구나. …뭐!?!? 어디라고?!?!”

케인은 깜짝 놀라 외쳤다.

그냥 일반적인 광고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 * *

“한바탕 싸움이 있긴 하겠지.”

태현은 함선 위의 플레이어들에게 속삭였다.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를 얻은 덕분에 함선을 몰고 함대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긴 했지만….

이건 폭풍 전의 고요함뿐이었다.

“김태현 님. 제가 폭탄을 설치하고 올까요?”

“할러스 너 요즘 진짜 좀 이상한 거 알아?”

“아니… 폭탄 설치는 힘들 거 같군.”

일단 다른 사람이 폭탄을 설치하기도 힘들뿐더러, 재주 좋게 설치하고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한두 척 설치하고 걸리면 본전도 못 건지는 것이다.

“일단 이 <해적왕의 낡고 녹슨 검>으로 유령 함대를 소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

<해적왕의 낡고 녹슨 검>.

<저주받은 유령 함대 소환> 스킬을 쓸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근데 넌 해적도 아니면서 이런 무기는 어디서 났냐?”

“뺏었겠지 뭐.”

“PVP로.”

“…….”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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