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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315화 (1,314/1,826)

§ 나는 될놈이다 1315화

“아… 아니.”

밑도 끝도 없는 말에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고 쩔쩔맸다.

지금부터 이데르고 교단 소속이라고?

“나는 파이토스 교단인데?”

“난 아흐줄락….”

“심지어 난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라고. 김태현.”

플레이어들은 항변했다.

특정 교단에 가입한 상태에서 자기 교단을 욕하거나, 다른 교단에 가입하려고 하면 각종 페널티가 날아드는 것이다.

공적치 포인트 하락, 평판 하락, 정말 재수 없을 경우는 저주까지!

하지만 태현은 단호했다.

“일단 갈아타고 나중에 회개해.”

“…….”

“…….”

너 교황이잖아, 인마!

“그거 말고는 답 없다. 싸우기라도 할 거냐?”

“크윽….”

“그건 그렇긴 하지만….”

길드원들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저만한 대함대 상대로 싸우는 건 아무리 봐도 자살행위 같았으니까!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해봐야 했다.

‘근데 보통 도망치지 않냐?’

‘그러게 말이다.’

보통 도망쳐야 할 상황에 대담하게 적으로 변장하려는 김태현이 어이없을 뿐.

“자. 여기 이데르고 교단의 장비들이 있다. 입어.”

“어디서 구했…? 아니. 됐다.”

물어보려던 길드원들은 멈칫했다.

김태현 플레이를 봤을 때 아마 뺏은 거겠지!

[변장 스킬을 사용합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로 인해 보너스가 붙습니다!]

[이데르고 교단 성기사로 완전히 위장하는 데 성공합니다!]

샥샥샥-

“!”

화술 스킬이 쓸모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인이나 탐험가 같은, NPC 상대로 퀘스트 깰 때만 쓸모 있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

…사실 반쯤 맞는 말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화술 스킬이 가진 힘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어떤 쓰레기 스킬도 찍다 보면 쓸 곳이 나왔다.

[화신이 그런 말을 하니 유난히 슬프다고 카르바노그가…]

‘조용히 하고 있으렴.’

최고급 화술 스킬 덕분에 변장은 어마어마한 보정을 받아 성공적으로 끝났다.

[MP가 빠르게 소모됩니다!]

[MP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태현은 당황했다.

화술 쪽 스킬들 장점은 MP 소모가 거의 없다는 것밖에 없는데 왜?

-크르륵. 크륵.

“아.”

역병 기사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크륵대자 태현은 상황을 깨달았다.

<이데르고의 화신 상태> 끝→MP 대폭 감소→근데 역병 기사는 소환된 상태라 계속 MP를 잡아먹고 있음→태현 MP 바닥!

“역소환해야겠군.”

태현은 미련을 갖지 않고 역병 기사를 돌려보내려고 했다.

물론 아깝긴 했지만, 저거 계속 데리고 있다가는 태현이 말라 죽는 것이다.

빠른 판단!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이데르고 사제가 기겁해서 외쳤다.

“왜?”

-이데르고 님께서 보낸 기사를 멋대로 돌려보내시다니요!

“흠….”

태현은 뭐라고 해야 할까 1초 정도 고민했다.

모든 것이 자유로운 아키서스 교단에서 활동하던 태현 입장에서, 저렇게 신실한 NPC는 매우 낯설었던 것이다.

“이데르고 님한테 물어봤더니 괜찮다던데?”

-…….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신성 스탯이 매우 높습니다!]

[이데르고의 조각을 갖고 있…]

다른 놈이 했다면 ‘이 역병 걸려 죽을 모독자 놈아!’라고 했겠지만, 태현은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그… 그러면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기억을 잃은 사제는 지팡이를 휘두르더니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크르륵. 크륵!

홀쭉해진 역병 기사는 다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의 마력이 대신 차오른 것이다.

“내 소환수에 필요한 마력을 네가 써줘도 되나?”

-같은 교단의 형제 아닙니까?

“저런….”

태현은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데르고 교단이 의외로 끈끈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제법 괜찮은데?’

가입만 하면 이런저런 혜택이 공짜로 오다니.

아키서스 교단은 이런 거 없는데….

* * *

쿵-

이데르고의 대함대가 태현의 함선 주변을 둘러쌌다.

함대 위에 타고 있는 이들은 전부 다 역병에 오염된 전사들!

[이데르고의 역병 함대를 목격했습니다!]

[먼 옛날, 선신 교단들의 토벌에 사라졌던 이데르고의 역병 함대는 바닷속 깊숙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데르고의 교단 사제들은 강력한 이데르고의 힘으로 함대를 부활시켰으니, 이 함대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역병으로 뒤덮을 것입니다!]

‘이데르고 놈들은 재주도 좋군.’

태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키서스는 뭐 바닷속에 넣어 놓은 함대 같은 거 없나?

철커덩, 철컹-

콰르릉!

[카르바노그가 저 함대의 힘이 무시무시하다고 말합니다.]

역병 함대의 함선들은 카르바노그 말대로 위협적이었다.

거무튀튀한 역병 대포들이 함선 옆에 즐비하고 있었고, 구멍 숭숭 난 돛은 역병의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거기 위에 타고 있는 자들은 이데르고 교단의 성기사나 사제들과는 명백히 다른 존재들이었다.

성기사나 사제는 일단 살아 있는 존재기나 했지, 저들은 거의 반쯤 역병 덩어리였던 것이다.

역병 기사와 비슷한 이들!

‘흠. 몰래 폭탄 설치하고 불 지를까 생각했었는데….’

[…카르바노그가 그러지 말자고 말합니다.]

‘그래. 얌전히 있어야겠다.’

태현도 수긍했다. 생각보다 이데르고 함대의 힘이 대단했던 것이다.

<역병 함대를 바다 속으로 가라앉히십시오!-파이토스 교단 퀘스트>

이데르고 교단과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파이토스 교단은….

<역병 함대를 바다 속으로 가라앉히십시오!-데메르 교단 퀘스트>

이데르고 교단과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데메르 교단은….

…….

…….

‘아니, 이런 양심 없는 놈들.’

태현은 갑자기 날아오는 퀘스트창에 분노했다.

자기들이 할 것이지 누구한테 퀘스트창을 던지는 것이란 말인가.

심지어 태현은 저쪽 교단 소속도 아니었다.

[화신이 이제까지 대륙의 위험을 몇 번이나 해결해 줘서 나온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원래라면 받을 수 없었지만, 몇 번이고 교단들 사이의 위협을 해결하고 칭호를 보상으로 받은 덕분에 나오는 퀘스트!

이것도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렇군. 내가 다른 교단 놈들을 너무 오냐오냐 대해줘서 이런 퀘스트가 나온다는 거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물론 태현은 다른 뜻으로 이해했다.

이것들이 대륙의 위기를 몇 번 해결해 줬더니 또 나한테 시키려고!

-이데르고 교단의 사람들인가…?

“!”

함대 가운데에서 가장 커다랗고 역병이 지독한 배가 나타나더니, 그 위에서 선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병 함대의 주인!

[역병 선장, 폴로뮤스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역병 함대를 이끄는 선장이라니.

얼마나 강할까?

이데르고 교단에서도 성기사단장이나 대주교, 대제사장 정도쯤 강할 게 분명했다.

“…?”

“???”

“?????”

긴장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함선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게….

비쩍 마른 늙은 노인이었던 것이다.

무슨 거대한 갑옷을 입고 있는 전사도 아니었고, 사악한 기운을 뿌리고 있는 마법사도 아니었다.

그냥 귀족들이 입을 법한 천옷을 입은 늙은 노인!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약해 보였다.

-이데르고 교단의 사람들이냐고 묻지 않았느냐…?

“앗. 맞습니다!”

태현은 급히 외쳤다.

폴로뮤스는 느릿하고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숫자가 좀 적지 않으냐?

“섬에서 싸움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섬에서 싸움이….”

-뭐라고??

“…섬에서!! 싸움이!!! 있었습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폴로뮤스의 귀에 말이 닿도록 똑똑히 전합니다!]

-아아! 싸움이 있었다고!

[폴로뮤스가 말을 잘 하는 당신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친밀도가 조금 오릅니다.]

‘…….’

살다 살다 말 똑바로 했다고 친밀도 오르는 경우는 처음 본다!

태현은 어쨌든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섬에 이데르고 교단이 날아갔는데, 사악한 아키서스 교단 놈들이 변장해서 덤벼오고, 웬 미친 짐승 놈들이 덤벼오고….

하여간 그래서 어찌어찌 이데르고 사제들을 수습해서 배 하나 갖고 탈출할 수 있었다고!

폴로뮤스는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고생이 많았겠군.

“정말 힘들었지만 이데르고 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아니. 저 녀석은 주교의 후계자 아닌가?

폴로뮤스는 기억을 잃은 이데르고 사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맞는 것 같습니다. 페르스메스 님 같습니다.

-페르스메스! 역병 주교의 뒤를 이을 후계자께서 뭐하고 계신 거요?

“!”

태현은 깜짝 놀랐다.

후계자, 후계자 이러길래 꽤나 지위가 있다고 짐작하긴 했지만 역병 주교의 뒤를 후계자였다고?

‘생각보다 훨씬 거물이었잖아?’

[카르바노그가 뒷감당 어쩔거냐고 말합니다.]

기억 되돌아오는 순간 상당히 위험하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거 같군. 괜찮아. 돌아갈 때까지만 버티면 돼.’

역병 함대의 목적지는 중앙 대륙일 것이다.

태현도 얌전히 그 사이에 끼어 있다가, 중앙 대륙 다 와가면 몰래 탈주하면 됐다.

그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기억을… 잃으셨다고?

폴로뮤스는 자세한 사정을 듣고 깜짝 놀랐다.

기억을 잃다니!

-아키서스 놈들 때문입니다.

-압니다. 간악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지요. 나도 젊었을 적 아키서스 놈들을 상대한 적 있었는데, 그렇게 지독한 놈들이 없었답니다.

폴로뮤스는 눈물 대신 역병을 눈가에서 흘리며 슬퍼했다.

-페르스메스. 내 함선에서 머무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여기 이 든든한 이데르고의 형제들과 함께하겠습니다.

페르스메스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우린 든든한 이데르고의 형제들!

폴로뮤스는 인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여봐라. 저 기특한 자들에게 보상을 내려줘라.

[이데르고 교단 내 공적치 포인트가 크게 오릅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각종 역병 관련 아이템과 교단 공적치 포인트들.

공적치 포인트는 교단에 가서 원하는 걸로 바꿀 수 있는 현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데르고 교단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

‘이, 이거 쓸 수 있나?’

‘버리기는 너무 아까운데….’

견물생심이라고, 별 욕심도 없었다가 이렇게 공적치 포인트를 받으니 욕심이 생겼다.

나가기 전에 이거 환전하고 갈 수 없나?

-그러면 함선을 잘 끌고 오도록.

“예.”

-대답을 왜 안 하나?

“예!!!”

-하하. 잘 따라오게.

[이데르고 역병 함대에 참가합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

[퀘스트, <역병 함대를 따라 항해…>가 추가되었습니다!]

* * *

“어르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부터 말해보게.”

“김태현이 있는 함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거 같습니다!”

“!”

유 회장은 반색했다.

“자네 정말 유능한 인재로군!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아냈나!”

“방송을 유심히 관찰해서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쁜 소식은 뭐지?”

“…이데르고 역병 함대가 김태현을 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유 회장은 정색했다.

뭔 개소리?

“이 영상 좀 보십시오.”

전체 영상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태현 일행은 항해 위치를 방송으로 쏘고 있었다.

멀리서 나타난 역병 함대.

그리고 그 역병 함대에 아무렇지도 않게 참가한 태현 일행까지!

대화를 공개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

-포로로 붙잡힌 거 아님??

-김태현 씨 이러지 마십시오. 우리한테 잡혀도 모자랄 판에 왜 저런 놈한테 잡히십니까?

-야 저거 어떻게 구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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