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14화
하필이면 사회자 놈이 이상하게 입을 놀린 것 때문에 부담이 100배!
심사위원들은 지금이라도 준비한 시험을 바꿔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니….
이거 오기 전에 게임단의 다른 직원들과 상의해서 갖고 온 건데….
‘걱정할 거 없습니다.’
보스턴 타이거즈의 전 수석코치, 에임스가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오. 왜입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차피 익명 아닙니까.’
‘!’
그랬다.
생각해 보니 각자 시험을 넣은 다음 뽑는 형식이라, 누가 뭘 넣었는지 알기 힘들었다.
대놓고 자기 게임단 관련된 미션이면 눈치를 채겠지만 그것만 아니라면…
“참! 이걸 말씀드리는 걸 잊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이 나가고 요청이 많아서, 두 번째부터는 어느 심사위원께서 고른 시험인지 공개할 생각입니다.”
“…….”
“…….”
심사위원들은 사회자를 노려보았다.
아니 이 새끼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름 E스포츠 업계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인데 말도 없이 이딴 식으로 변경을 해?
“끄으응.”
“끄으으으응.”
“?”
숙소에서 영상으로 참가하고 있던 태현은 의아해했다.
심사위원들이 무슨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에.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행운 버프를 못 받나?’
게임에서 뽑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대신 뽑을 테니….
‘마음 편하게 넣어야겠군.’
“이렇게 된 이상 편하게 갑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들 무리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름이 공개된다 해서 무리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에임스의 말에 모두가 감동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각자 준비해 온 평범한 미션을 내놓으면 되는 것이다.
-저도 평범한 거 준비해 왔습니다.
“…….”
“…….”
태현이 영상으로 말하자 심사위원들은 째려봤다.
얄미워!
‘그래도 욕은 하면 안 되지.’
‘김태현하고는 친하게 지내야 하니까….’
앞으로 남은 대회 일정을 생각해 보면 태현과 손을 잡는 건 필수였다.
태현은 몰랐지만, 지금 물밑에서는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첫 번째 시험이 끝나자마자 눈에 띄는 플레이어들에게 닥치는 대로 접근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게임단은 역사와 전통이….
-다른 게임단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게임단이지. 뭐? 1부 리그에 있냐고? 곧, 곧 올라갈 걸세.
-주급이 얼마냐고? 하하.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보수가 필요한가?
원래라면 대회 끝나기 전에 접촉은 불가능했지만, 규칙은 원래 깨라고 있는 것 아닌가.
참가한 심사위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단들도 여럿 참가해서 러브 콜을 보냈다.
나중에 몸값이 더 올라가면 힘들 수도 있으니 미리 침을 발라놓는 것이다.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태현같이 별 욕심 없는 심사위원의 도움은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발언력은 엄청나게 강한데, 자기 욕심은 별로 없다!
까놓고 말해서 태현이 A 선수한테 ‘흠 그쪽은 뉴욕 라이온즈가 어울리는데?’ 하면 99%는 ‘헉 뉴욕 라이온즈로 가야겠습니다!’라고 결정을 내릴 것이다.
* * *
“자. 뽑겠습니다. 앗. 에임스 씨께서 넣은 미션이군요!”
에임스가 뽑히자 다른 심사위원들은 안도했다.
일단 자기 건 뽑히지 않은 것이다.
첫 번째랑 비교될까 봐 부담 갖고 있었는데….
‘에임스면 안전하고 무난한 걸 했겠지.’
‘그래. 차라리 잘됐어. 세 번째, 네 번째는 쉽게 고를 수 있을 테니까.’
“아… 이거 의외인데요? 이런걸?”
“????”
심사위원들은 의아하다는 듯이 에임스를 쳐다보았다.
에임스는 못 본 척 시선을 피했다.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고대 제국 대학> 퀘스트가 뜨겁습니다. 바다 위에서 행방불명된 김태현 선수를 찾아서 국왕에게 데리고 가야 하는데….”
“?”
불길한 징조에 심사위원들은 경악했다.
설마….
보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경악했다.
설마…?
아니지??
“이걸 미션으로 넣으셨습니다! 선수 후보들은 이 퀘스트에 참가하시면 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심사위원이나 선수들은 경악했지만 보고 있던 사람들은 대흥분 했다.
와!
재미있겠다!
-에임스! 에임스! 에임스!
-보스턴 타이거즈가 최고다!!
에임스는 뿌듯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줬다. 광장에 모인 플레이어들이 연신 환호했다.
물론 심사위원들은 뒷목을 잡기 직전이었다.
‘저… 저 인간이…!’
감쪽같이 넘어간 것이다.
다들 평범하게 하더라도 만약에 자기가 뽑힐 때를 대비해서, 자기 거는 주목받을 수 있는 미션으로 적어 넣다니!
그러면서 남들에게는 평범한 거 하자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래도 되는 거요?!’
‘이쪽 바닥 장사 하루 이틀 하나?’
‘!’
뻔뻔한 에임스의 말에 모두 이를 갈았다.
하지만 에임스 말이 맞았다.
이건 전쟁이었다.
상대를 믿은 자기가 바보였던 것!
“퀘스트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의 점수를 종합적으로 매기겠습니다. 각자 어떤 방법으로 바다 위에 있는 사람을 찾을지 기대가 됩니다!”
이번에는 딱히 한 거 없는 태현은 의아한 얼굴로 생각했다.
‘별 미션을 다 넣는군?’
* * *
“이거 진짜 좀 큰일인데.”
“???”
“내가 지금 요리 스킬이 안 된다.”
태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항해를 시도할 때 태현이 믿었던 스킬 중 하나가 바로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였다.
세상 모든 걸 다 요리할 수 있는, 이런 장거리 항해에서는 필수적인 사기 스킬!
…그런데 지금 이데르고의 화신 상태라서 요리가 안 됐다.
[이데르고의 역병이 요리를 방해합니다!]
[요리가 오염됩니다!]
‘아니 이런 쓰레기 같은 놈!’
태현은 이데르고를 욕했다.
하필이면 왜 요리를 막는단 말인가!
검술 스킬만 막는 걸로도 이미 충분히 불편한데…!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상황 파악이 아직 덜 된 모양이었다.
“요리 스킬 막힌 거 가지고 왜 그래?”
“우리도 음식 있어, 김태현.”
태현이 왜 저렇게 진지하게 걱정하는지 이해 못 하는 얼굴!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호된 맛을 덜 봤군.’
사실 랭커쯤 되면 식량이나 물 없어서 허덕이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판온에서 굶어 죽거나 말라죽는 일이 극히 드문 것이다.
바다 떠도는 직업 아니면 경험할 일 없는 게 대부분!
하지만 태현은 허기의 던전부터 시작해서 저 사막 너머까지 온갖 경험을 다 해본 사람이었다.
한 번 닥치면 알게 된다.
“그래. 일단 급한 건 아니니까. 식량 아끼고 바다에서 낚시라도 좀 해와라.”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처음에는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말뜻을 깨닫게 됐다.
[항해로 인해 배가 빠르게 고파집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페널티가 붙습니다!]
[체력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
[……]
“!!”
먼 거리에서 항해할수록 빠르게 올라가는 허기와 목마름!
가방에 갖고 있던, 그렇게 많은 음식들이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길드원들은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이거….
위험하다!
“낚, 낚시 준비해! 마법 써서 물 얻자!”
바다에 있는 물고기를 낚고, 물 마법 써서 물 채우고….
길드원들은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했다.
‘큰일인데. 이 역병 상태 언제 풀리냐?’
[카르바노그가 하필이면 역병 상태라 물고기 잡기도 애매하다고…]
이데르고가 물의 신이나 물고기의 신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에 비해 카르바노그는 토끼의 신이었다.
쿠르릉!
-주인님. 몬스터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
함선의 말에 태현은 정신을 차렸다.
굶어 죽기 전에 몬스터들부터 싸워야 했다.
“어디서 오고 있….”
[붉은 거대 바다뱀이 바닷속에서 나타납니다!]
거대한 바다뱀이 붉은 비늘을 뒤틀며 바닷속에서 나타났다.
-케에에에에에에에엑!
먹잇감들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몬스터의 울음소리!
“먹이다! 놓치지 마!”
-…?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에 바다뱀은 멈칫했다.
어라?
-역병의 고리! 거슬러 올라오는 침몰의 역병!
“김태현! 넌 물러서! 우리가 잡을게!”
“우리가 할 수 있다!”
길드원들은 허겁지겁 나섰다.
태현을 아껴서가 아니었다.
‘김태현이 잡으면 오염된다!’
‘김태현은 먹어도 우리는 못 먹게 돼!’
퍼퍼퍼퍼퍽!
[붉은 거대 바다뱀이 <날카로운 폭포>를…]
“크아악! 김태현! 도와주지 마! 도와줄 필요 없어!”
“우리가 잡을 수 있다!!!”
바다뱀한테 맞고 갑판 위를 나뒹굴면서도 길드원들은 한결같이 태현보고 오지 말라고 외쳤다.
용용이와 흑흑이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 모험가들 머리가 좀 나쁜 거 아닌가?
-약간 좀 지능이 부족한 것 같은데….
저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괜찮아! 괜찮아!’ 저러는 걸 보니 좀 어이가 없었다.
어디 머리가 안 좋은가?
[이데르고의 역병 기운이 전부 소모됩니다!]
[불완전한 화신 상태에서 깨어납니다!]
“!”
태현의 몸을 감싸고 있던 지독한 역병의 기운이 전부 사라졌다.
‘드디어 끝났군!’
태현은 바로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자유다!
마법 스킬을 끝까지 찍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보다는 해방의 즐거움이 컸다.
콰콰콰콰콰쾅!
태현은 바로 폭탄을 주변 곳곳에 날린 다음 <광기의 폭발 검법> 스킬을 사용해 바다뱀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그리고 이어지는 폭딜!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눈부신 검광이 번뜩이면서 연속 공격이 들어갔다.
-캬아아아아아아악!
생각지도 못한 인간 놈한테 화끈한 공격을 받은 바다뱀은 비명을 질렀다.
주변에서 연신 터지는 폭탄 때문에 정신까지 혼미해진다!
-아앗! 형제님! 형제님!
“??”
뒤에서 이데르고 사제가 태현을 부르자 의아해했다.
설마 도우려고 그러나?
“돕지 마! 고기 맛 떨어진다!”
방금까지는 자기도 화신이었으면서 뻔뻔하게 말하는 태현!
-그런 게 아니라… 저기를 보십시오!
태현은 시선을 돌렸다.
반대쪽 수평선에서 거대한 함대가 찾아오고 있었다.
“!!!”
왔구나!
태현은 생각보다 빠른 구출에 반가워했다.
워낙 먼 곳이고 한 번도 온 적 없는 곳이라 구출대를 만나려면 직접 멀리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잠깐.’
[카르바노그가 깃발 잘 보라고 말합니다!]
태현이 문득 이상한 걸 깨달음과 동시에, 카르바노그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플레이어들이 오기에는 너무 빠르다!
-이데르고 교단의 형제들이 우리를 구해주러 온 겁니다!!
사제의 기쁜 목소리와 함께, 수평선의 함대들이 달고 있는 깃발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데르고 교단의 문양!
“…….”
“…….”
군침 흘리면서 바다뱀 두들겨 패던 길드원들은 멈칫했다.
그들도 사태 파악은 된 것이다.
“김… 김태현. 어떡하냐 이거?”
“싸울 수 있나?”
“미쳤어?! 도망쳐야지! 김태현 님, 도망칩시다!”
“도망치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지금 살아 움직이는 함선을 갖고 싸웠다가 침몰하기라도 하면 익사+신성 스탯 날리는 두 배의 페널티였다.
그렇다고 도망치는 것도 위험했다. 도망치는 순간 적들은 무조건 쫓아올 테니까.
적 함대의 능력도 모르는데 지나친 도박이었다.
태현은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하필이면 화신 상태가 풀린 상황에서 이데르고 교단의 대함대를 만나게 되다니…!
‘하여간 짜증 나는 놈들은 짜증 나는 상황에서 만나게 되어 있군.’
싸울 수도, 도망치기도 마땅치 않다면….
남은 건 하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
“이데르고 교단 소속 모험가인 거다. 알겠지?”
“…….”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