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13화
보는 사람 숫자로 비교하면 딱히 할 말은 없긴 했다.
태현은 그냥 만들어놓고 아무것도 안 해도 전 세계의 팬들이 ‘김태현 뭐 안 하냐?’ 하고 찾아왔지만….
<검은 바위단>은 그냥 <검은 바위단>이었으니까!
“우리도 가끔 길드 영상 올리고 그런다. 김태현, 어떻게 하는지는 알아.”
“오. 그래? 다행이네. 설명해 주려고 했었는데.”
‘…….’
‘우릴 촌놈으로 알고 있어…!’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굳이 섬에서 있었던 일들을 영상으로 중계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길드 자체가 소규모 친목 길드라, 퀘스트를 굳이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퀘스트 방송은 일장일단이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저격을 당할 수 있었다.
몇 개월 걸려서 깬 퀘스트를 남이 홀랑 가져가면 피눈물이 난다!
비슷한 이유로 태현 같은 최상위권 랭커들도 생방송은 피하는 편이었다.
물론 이 섬에서 공격을 받진 않겠지만….
‘실베드 놈 당하는 거 보니까 좀 그렇지?’
‘좀 그렇지.’
실베드가 워낙 처참하게 당했었기에.
-실베드 이 새끼 요즘 뜬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아냐??
-뒤통수 조심해라. 신진 랭커고 뭐고 눈에 띄면 죽는다.
-고대 제국 대학 들어가기 전에 무조건 죽인다.
-여러분! 실베드가 랭커에 이름 못 올리게 밟고 다닙시다!
평소 실베드의 라이벌들부터 시작해서, 신진 랭커라고 이름값 올라가는 게 못마땅했던 구랭커들. 거기에 다른 경쟁자들까지.
이들은 칼을 갈고 실베드를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비겁하게 고대 제국 대학에 날로 들어가려고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이런 꼴을 봤는데 검은 바위단이 대놓고 광고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잘못하면 자기네들도 저 꼴을 당할 것 아닌가.
“그거야 고대 제국 대학 들어갈 생각 없다고 밝힌 다음에 구출 요청하면 되지 않나?”
태현의 말에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하면서 ‘우리는 고대 제국 대학 들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그냥 구해주기만 해주세요!’라고 하면 될 것 같긴 했다.
사람들의 의심과 질투도 사라질 것이고….
“아니. 난 고대 제국 대학 들어갈 생각인데?”
실베드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것도 기회인데 놓칠 생각은 없었다.
이 고생 한 김에 그것도 챙겨야겠다!
“…뭐 맡겨놨냐?”
“김태현이 허락할 거 같냐?”
길드원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실베드를 쳐다보았다.
이 새끼 뭐 잘못 먹었나?
“아, 아니. 같이 귀환만 하면 내가 데리고 간 셈 아니야? 너희들도 자격을 공유하게 될 거라고!”
“국왕 앞까지 같이 가야 할걸.”
“그리고 우린 빨리 헤어지고 싶지 계속 같이 다니고 싶지 않다고.”
“너희가 그러고도 랭커냐?? 왜 이렇게 욕심이 없는 거냐!”
실베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랭커란 자고로 남의 퀘스트도 뺏어 먹을 정도로 욕심이 많아야 했다.
그런데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뭘 잘못 먹었는지 ‘퀘스트만 끝나면 김태현이랑 빨리 갈라질 거임’라고 말하고 있었다.
표정이 마치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
‘이 자식은 왜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거지?’
태현은 의아해했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뭐 착각은 자유였으니까….
“빨리 사람들이나 불러.”
“알겠어. 카테고리를 뭘로 해야 하지?”
“바다, 항해 아닌가?”
“그런가?”
* * *
<낚싯대 하나만으로 바다 위에서 버티는 방송-8일째>
<길드 동맹 길드원 공격하고 바다 위로 도망쳐 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음 ㅠㅠ>
<희귀 보석물고기 낚을 때까지 안 나간다!>
판온 개인 방송도 어마어마하게 치열했다.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각자 방송을 하니 어중간한 컨셉으로는 눈에 들 수도 없는 것이다.
바다 관련 방송들을 보면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바람 따라 왔더니 어딘지 모르겠음> 같은 방송들이 꽤 많았다.
정말 몰라서 킨 방송!
당연히 이런 방송들은 보는 사람이 0명이거나 많아 봤자 1명이었다.
<랭커들인데 길 잃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뭔 미친 방송이야?”
방송을 훑던 플레이어는 어이없는 제목에 피식 웃었다.
랭커가 길을 잃으면 그건 랭커가 아니잖아!
초보자나 하는 짓을….
‘랭커 흉내인가?’
별생각 없이 방송을 눌렀던 플레이어는 생각보다 커다란 배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사람들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다.
저건….
“김태현이잖아!??!”
비슷한 시기에 태현의 계정에서도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태현 방송 켰습니다 여러분!!
└아 이 새끼 또 낚시하네.
└제발 죽었으면.
└너 판온에서 만나면 진짜 밟아버린다.
하도 ‘김태현 방송 켰대!’ ‘뭐 진짜?’ ‘당연히 거짓말이지’ 같은 식으로 많이 속았던 사람들이었기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였다.
태현이 배 위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태현이 좀 이상하지 않냐?
-김태현으로 위장한 가짜 아냐??
-리치 같은데?
원래 검 들고 날렵하게 돌아다녀야 하는 태현이, 온몸에서 사악한 기운을 줄줄 내뿜으며 마법사처럼 돌아다니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사이 전직했나?
다른 사람이라면 전직했을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아키서스 교단 교황을 맡고 있는 사람이 다른 교단의 직업으로 갈아타는 건 정말 말도 안 되잖아!
…아니 말이 되나?
-이데르고 교단 아니지 저거?
-김, 김태현 님. 저 어제 아키서스 교단 가입했는데….
-에이, 일시적인 저주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보는 사람들에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제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방송을 키긴 했지만, 먼저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
“지금 섬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고… 여기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섬이 그 모양인데 근처 바다도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데르고 교단에서 구출하러 온다는 말까지 들은 이상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랭커여도 레벨 낮은 랭커는 안 오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벨 좀 높은 랭커들만….”
-…….
-지, 지금 우리 무시하냐!?
(자기가 레벨 낮다고 생각한)랭커들은 발끈했다.
딱히 구출에 참가할 생각 없던 일반 플레이어들은 감탄해서 말했다.
-왜. 배려심 있네.
-맞아. 자기 욕심 챙길 거면 그냥 닥치는 대로 모았을 거 아냐.
-다른 랭커들과는 차원이 다름.
-레벨 300 이하는 오지 말래.
태현은 딱히 레벨 300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본인도 300이 안 되는데 무슨!
그냥 괜히 뒈지기 싫으면 오지 말라고 한 말이었는데, 사람들은 알아서 개떡같이 알아들었다.
-김태현, 레벨 300 이하는 참가하기 힘든 퀘스트… ‘집에 가라’고 밝혀….
-김태현, 레벨 300 이하는 랭커도 아니다?
-솔직히 레벨 300 이하면 랭커 아님. 랭커 너무 많음. 랭커 기준도 빡세게 해야 함. 개나 소나 다 랭커래.
-레벨 300도 안 되면 양심상 김태현 구하러 가지 말자.
사람들의 개무시에 비교적 레벨 낮은 랭커들은 더욱 분노했다.
김태현이야 솔직히 무시를 해도 이해가 갔다.
레벨 300을 넘긴, 어쩌면 350도 넘긴 채 400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최상위권 랭커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방송 보면서 떠드는 놈들은 레벨 200도 안 되는 놈들이 수두룩할 텐데!
어디서 개무시를…!
-스킬하고 스탯으로 레벨 차이는 비비고도 남아! 무조건 간다!
-레벨 조금 차이 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거 내가 보여준다! 떠든 놈들 바다 위에서 나 안 만나게 조심해라!
그냥 위치를 최대한 알려주려고 켠 방송이었지만, 랭커들에게는 기름을 부어버린 꼴이 됐다.
활활 타올라서 나서는 이들!
* * *
“…….”
“…….”
“이,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일 아닙니다.”
사회자는 어색하다는 듯이 영상을 쳐다보았다.
전 세계 게임단의 유능한 심사위원들이 모여 새 선수를 뽑는,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
…그런데 지금 태현이 참석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망망대해 위의 배에 있는데 어떻게 참석한단 말인가.
그래서 태현은 그냥 캡슐 밖으로 나와서 카메라를 켜고 참석했다.
판온 안 캐릭터가 아닌 판온 밖 사람의 모습이 옆에 뜨자 그것도 꽤나 신선했다.
‘김태현 저 자식은 게임 안이나 밖이나 별 차이가 없군.’
게임 밖이 좀 더 인상 사납게 생긴 것 같긴 한데….
쑤닝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는 대성공이었다.
물론 아직 진행이 많이 남긴 했지만, 초반 반응만 보면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열광적인 반응!
처음에는 ‘중국 기업에서 주최하니까 또 중국 애들만 뽑겠지 ㅉㅉ’ 하는 반응도 많이 나왔지만, 라인업 덕분에 꽤 사라진 상태였다.
전 세계의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참가했으니….
덕분에 중국 쪽 언론에서는 온갖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쑤닝, 판온의 새로운 기회를 열다!
-전 세계로 시야를 넓힌 쑤닝… 세계의 찬사를 받다!
-중국 선수가 아닌 해외 선수를 뽑으려는 쑤닝은 매국노다!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 대흥행! 전 세계에 길드 동맹의 이름을 날리다!
…물론 그 와중에도 욕을 하는 놈이 있긴 했는데 그건 어쩔 수 없긴 했고.
덕분에 투자자들도 만족하고, 길드 동맹 길드원들도 만족하고, 쑤닝도 만족 중이었다.
오스턴 왕국에서 전쟁 터진 바람에 날아간 돈도 충분히 복구 가능!
“와.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입니까? 개최식도 아닌데.”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줄지를 않네.”
길드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첫 개최식도 아닌데 <올스타 슈퍼플레이어> 하는 날에는 사람들이 광장에 구름같이 몰렸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을 모집하라고 해도 이렇게는 모이지 않을 것이다.
-팝콘 하면 파워 워리어! 파워 워리어하면 팝콘! 품질 보장된 파워 워리어표 팝콘을 드셔보세요!
-길드 동맹 가게에서 파는 팝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품질!
“…저 XX끼들이….”
“양심 없는 거 아니야 저거!?”
장사 허락해 줬더니 길드 동맹 가게를 욕하고 있어!
길드원들은 분노했지만 참아야 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태현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으니까.
파워 워리어와 태현이 친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준비가 끝나자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시험은 꽤나 성공적이었습니다!”
노드란체에 있던 고대 제국 훈련 탑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처음에는 다들 죽어 나가서 ‘이거 망하는 거 아냐?’ 했는데.
나름 재능 있는 플레이어들을 계속 갈아 넣으니 합격자가 하나둘씩 나오며 쉬운 공략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태현이 먼저 간 길은 솔직히 따라 하기 힘든 공략법이었고….
‘나중에 돌아가면 위층 공략도 해봐야겠군.’
“심사위원 분들이 다음 시험으로 어떤 걸 제안할지 더욱 기대됩니다!”
“…?!”
가만히 있던 심사위원들은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아니…!
그렇게 허들을 올리면…!
‘뭐 생각해 놓은 거 있으십니까?’
‘나, 나는 그냥 우리 게임단 갖고 있는 던전 가서 타임어택 시킬 생각이었는데.’
‘저는 투기장이나 갈 생각이었습니다만….’
옆에 있던 다른 출연자가 사회자의 말에 웃으면서 말했다.
“설마 여기 모인 쟁쟁한 분들께서 심심한 시험을 준비하셨겠어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자! 다들 준비는 되셨겠죠!”
“…….”
광장 앞에 모인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