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12화
물론 그런 건 없었다. 날로 먹고 싶은 태현의 마음일 뿐.
‘아이템 확인.’
굶주린 혼돈이 하사한 혼돈 파편이 섞인 왕가의 갑옷:
내구력 1200/1200, 물리 방어력 600~1000, 마법 방어력 600~1000.
스킬 ‘굶주린 혼돈의 가호’ 사용 가능, 스킬 ‘굶주린 혼돈의 방어막’ 사용 가능, 스킬 ‘굶주린 혼돈의 강림’ 사용 가능, 스킬 ‘굶주린 혼돈의 칼날’ 사용 가능.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상태에서만 착용 가능.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이 착용 시 추가 HP, MP 보너스. 회복 속도에 보너스. 굶주린 혼돈의 공적치 포인트에 따라 방어력 증가.
에랑스 왕가의 찬란한 갑옷에, 굶주린 혼돈이 내린 힘의 조각이 섞인 사악한 갑옷이다.
이 갑옷에 담긴 힘은 어떤 영웅이라도 타락시키고 저주할 힘을 가지고 있다.
(자격 없는 자가 착용 시 굶주린 혼돈에게 저주받음)
‘으으음!’
태현은 아쉬움에 깊은 소리를 냈다.
오랜만에 명품을 만났는데 입을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순수 스탯만 보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갑옷보다 더 좋은데.’
태현의 갑옷도 아다만티움에 태현의 권능 스킬을 섞어 만든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태현보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더 높은 NPC가 만든 갑옷도, 더 좋은 재료로 만든 갑옷도 있을 테지만….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는 직업에 이렇게 어울리는 갑옷은 구하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이 굶주린 혼돈에게 오염된 갑옷은 탐이 났다.
‘혼돈 파편을 넣었다고 이렇게 좋아지나?’
[카르바노그가 제발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제정신 차리라고 호소합니다.]
카르바노그는 태현의 모습에 붙잡고 흔들었다.
저러다 진짜 굶주린 혼돈에게 넘어가는 거 아냐??
‘아니. 내가 굶주린 혼돈하고 계약하겠다는 건 아닌데. 혼돈 파편이 좀 사기적이긴 하군.’
판온 1 때부터 대장장이였던 태현이었다.
각종 희귀한 소재를 보면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다만티움은 분명 판온에서 방어구 최강의 재료로 손꼽혔지만, 거기에 강력한 효과를 더 줄 수 있다면?
‘…재료로 넣고 싶다!’
어디서 혼돈 파편 안 파나?
[카르바노그가 저 갑옷은 입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나도 알아. 저주 받을 걸 알고 입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카르바노그가 솔직히 그냥 입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고 말합니다.]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겠다. 그냥 입을 생각은 없지만, 녹여서 재추출해 보고 싶긴 해.’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고, 다른 놈 주기도 미묘한 아이템이었다.
태현은 어떻게든 재활용 해볼 생각이었다.
영지로 돌아가면 <태초의 불>이 있는 하늘성 대장간과, 드워프 대장장이 NPC들의 힘을 빌려 갑옷을 녹인다!
‘혼돈 파편도 혼돈 파편이지만, 원래는 에랑스 왕가의 갑옷이었으니 쓸 만한 재료들이 나올 거야.’
혼돈 파편뿐만 아니라 갑옷에서 어떤 재료들이 나올지 기대가 됐다.
‘그리고 혼돈 파편도 어떻게 잘 쓰면 저주 받지 않고 내가 쓸 수 있지 않을까?’
[카르바노그가 너무 긍정적인 생각 같다고 말합니다.]
화살을 살살 맞으면 안 아픈 것도 아닌데 과연 가능할까?
아키서스의 권능이 있긴 했지만 혼돈 파편을 그렇게 무력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되면 좋긴 하겠지만….
‘그나저나 새삼 이데르고 조각이랑 차이가 나는군. 이데르고 조각은 이런 것도 없나?’
가만히 있다가 얻어맞은 이데르고 조각은 울컥했다. 조각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데르고의 힘도 강력한 무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네가 쓸 줄 모르는 거라고…]
‘말하라고 한 적 없는데.’
[카르바노그가 조용히 하라고 말합니다.]
[……]
이데르고의 조각은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언젠가 다른 조각들과 합쳐지고 힘이 커지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을 반드시 짓밟아버리겠어!
이데르고의 조각도 신의 힘이 담긴 물건. 잘 다루면 만드는 아이템에 이데르고의 힘을 담을 수 있었다.
태현이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아무리 굶주린 혼돈의 힘이 강대하다지만 자칫 잘못하면 저주 받을 수도 있는데, 저 힘은 쓰려고 하고 이데르고의 힘은 무시하는 모습에 조각은 분노했다.
‘다음 아이템.’
에랑스 왕가의 신성한 비전 반지:
내구력 150/150, 마법 방어력 120, 악 속성 방어력 120.
스킬 ‘에랑스 왕가의 신성한 회복’ 상시 발동.
MP 회복 속도 25% 증가. 스킬 사용 시 일정 확률로 MP 회복.
대대로 에랑스 왕가에 내려오는 신성한 반지다. 왕족의 혈통을 잇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이 반지는 악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한다.
에랑스 왕가의 신성한 비전 귀걸이:
내구력 120/120, 마법 방어력 100, 속성 방어력 80.
스킬 ‘에랑스 왕가의 신성한 회복’ 상시 발동.
MP 회복 속도 30% 증가, 스킬 사용 시 소모된 MP의 10%를 회복.
대대로 에랑스 왕가에 내려오는 신성한 귀걸이다. 반지와 한 쌍을 이루는 이 보물은 같이 착용할 경우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에랑스 왕가의 신성한 비전 팔찌:
내구력 180/180, 마법 방어력 120, 속성 방어력 90.
스킬 ‘에랑스 왕가의 신성한 회복’ 상시 발동.
전체 MP 10% 증가, MP 회복 속도 15% 증가.
대대로 에랑스 왕가에 내려오는 신성한 팔찌다. 반지와 귀걸이, 팔찌 셋을 모두 갖춰 입을 경우 에랑스 왕가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힘이 사용자를 보호한다.
‘이건 확실히 좋다!’
태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태현에게 필요했던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장신구에 원하는 건 특수한 옵션들이었다.
강력한 스킬이나 혹은 HP, MP 회복 옵션.
그리고 레벨이 낮다는 페널티를 갖고 있는 태현에게 가장 필요한 옵션은 MP 관련 옵션이었다.
HP야 안 맞으면 된다지만 MP는 스킬 쓰는 입장에서 안 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MP 관련 옵션이 붙은 장비는 귀했고, 있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내구력이 낮거나 다른 옵션이 약하거나….
태현도 <마력 회복의 귀걸이>나 <칸다타 마탑의 반지>, <마력 응축의 팔찌> 같은 아이템을 꽤 오래 착용해 오지 않았던가.
원래라면 계속 바꿨을 테지만 MP 관련 옵션이 귀해서 끼고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에랑스 왕가의 신성한 비전 반지>, <에랑스 왕가의 신성한 비전 귀걸이>, <에랑스 왕가의 신성한 비전 팔찌>는 달랐다.
기존 장비보다 MP 관련 옵션도 높은 데다가 갖고 있는 기본 스탯도 출중한 것이다!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지.’
태현은 뿌듯함을 느꼈다.
왕자라면 이 정도 장비들은 갖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맨날 보스 몬스터들이 이상한 아이템만 내뱉는 것에 질려 있던 태현이었다.
원래 이렇게 평범하게 좋은 아이템을 줘야 정상이었다.
평범하게 좋은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좋은 수준이었지만….
‘목걸이가 아쉽긴 하군. 하지만 목걸이는 어차피 못 쓸 테니까.’
지금 태현의 목걸이는 <아스비안 제국의 영혼 목걸이>.
물리 방어력, 마법 방어력은 0이었지만, 안에 갇힌 강적의 영혼을 소모해서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옵션을 갖고 있었다.
현재 충전량은 무려 14!
잡기만 하고 안 쓰니까 14번이나 쌓인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좀 쓰라고 합니다.]
‘으음… 하지만 이거 썼다가 나중에 정작 필요할 때 못 쓰게 되면 어떡하지?’
[화신이 공격 14번 막았는데 또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올 정도면 그냥 세계멸망이니 포기하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카르바노그가 보기에도 태현은 좀 심했다.
<부활>에, <거룩한 신앙심의 동상>만 해도 벌써 추가 목숨이 여러 개인 데다가 각종 방어, 회피 스킬까지 포함하면 거의 바퀴벌레 수준의 생명력을 자랑했다.
지금 굶주린 혼돈이 당장 대륙에 쳐들어와서 휩쓸어도 태현은 혼자 살아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
그런데 저 상황에서도 ‘아 이거 아까운데….’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좀 써!!
국 끓여 먹을거야!?
‘알겠어. 앞으로….’
[카르바노그가 쓸 거냐고 묻습니다.]
‘…악마 대공 같은 적을 상대하게 되면… 아니, 악마 대공 두 명 정도 상대하게 되면….’
[카르바노그가 정색합니다.]
하도 많은 적들을 만들어 온 습관은 태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
* * *
국왕 살해의 검:
내구력 47/99, 공격력 666.
왕족을 상대할 경우 강력한 버프, 왕족을 살해할 경우 검 추가 업그레이드.
스킬 ‘굶주린 혼돈의 관통’ 사용 가능.
굶주린 혼돈이 내려준 사악한 국왕 살해의 검이다. 에랑스 왕의 피를 빨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국 피의 맛을 보진 못했다.
(착용 시 굶주린 혼돈의 눈길을 받음)
마지막 아이템은 <국왕 살해의 검>이었다.
<황제 살해자>를 연상시키는 흉악한 마검!
‘뭐 이런 검이 있냐?’
하지만 <황제 살해자>와 달리, <국왕 살해의 검>은 꽤나 평범하게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이름과 성능이 잘 어울렸다.
드는 순간 자기 HP를 미친 듯이 깎아내리는 <황제 살해자>.
게다가 딱히 상대가 황제여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고블린들이 황제 싫어해서 이름 붙인 거였지.
그렇지만 <국왕 살해의 검>은 정말 대(對) 왕족 특화의 검이었다.
왕족 살해할 경우 검의 성능이 증가한다니!
게다가 스킬 ‘굶주린 혼돈의 관통’이 매우 무시무시했다.
<굶주린 혼돈의 관통>
상대의 방어구를 뚫고 데미지를 줍니다.
장비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관통 데미지!
태현처럼 순간 폭딜로 먹고 사는 직업에게 이런 스킬은 정말 궁합이 잘 맞았다.
당장 장비로 버티는 탱커들에게 기습적으로 치명타를 더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아. 굶주린 혼돈 정말 날 너무 잘 아는군.’
어떻게 이렇게 좋은 무기와 장비들을 주는 거지?
날 유혹하는 걸까?
[카르바노그가 그거 화신이 강제로 남한테 뺏은 거라고 말합니다.]
뺏어놓고 뭔…!
‘이건 저주가 아니라 시선 정도니 적당히 눈치 봐서 쓸 수 있겠지?’
보통 굶주린 혼돈에게 시선을 받는다고 하면 찜찜해서 쓰지 않을 것이다.
굶주린 혼돈이 하수인을 보내기라도 하면 매우 위험하니까!
하지만 태현은 그 정도는 이제 일상에 불과했다.
어차피 태현 죽이려는 놈들이 마계부터 시작해서 중앙 대륙까지 줄이 꽉꽉 서 있는데 거기에 굶주린 혼돈 좀 추가된다 하더라도 뭘….
[카르바노그가 저번에 굶주린 혼돈 권속 박살 낸 거 기억하냐고 묻습니다. 그거 굶주린 혼돈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 최대한 자제할게.’
생각해 보니 좀 많이 원한을 쌓긴 했다.
* * *
아이템 확인이 끝나고 태현은 시선을 돌렸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열심히 배 밑을 보강하고 있었다.
평생 안 해보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익히는 시간!
“다 했다!”
-아니. 다 하지 않았다. 다시 해라.
“…….”
길드원들은 배를 노려보았다.
말하는 배가 이렇게 짜증 날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던 것이다.
-빨리! 다시 하지 않으면 떨어뜨려버리겠다!
“…확 침몰해버려라….”
“야. 침몰하면 우리도 죽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그들의 목숨을 구해주고 있는 건 이 말하는 배였다.
“그보다 다들 홍보는 하고 있나?”
“무슨 홍보?”
“우리 여기 있으니까 구하러 와달라고 홍보해야지. 다들 방송용 계정도 없나? 내가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 주지.”
태현의 말에 길드원들은 울컥했다.
‘만들어 놓고 잘 올리지도 않는 너보다는 우리가 더 많이 쓰거든?!’
영상 올린 숫자가 열 개 정도인 사람이 저러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저 인간이 우리보다 구독자 숫자가 몇십배는 더 많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