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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304화 (1,303/1,826)

§ 나는 될놈이다 1304화

태현은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 아닌가.

성기사나 사제 같은 평범한 직업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뭔가 대단한 아키서스 관련 직업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데르고 쪽 놈으로 변신해서 이데르고 관련 마법을 팍팍 써대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저러면 [교단 평판이 깎입니다] [교단 공적치 포인트가 깎입니다] [교단 친밀도가 깎입니다] 3단 콤보 나온 다음에 쫓겨나지 않나?

하지만 신난 태현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는 것 같지가 않았다.

보는 사람이 더 조마조마한 이상한 상황!

[이데르고의 힘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괴식 요리 관련 칭호들을 갖고 있습니다. 독을 다루는 데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

[……]

[이데르고의 하급 독들이 진화합니다! 색깔 독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데르고의 붉은색 독을…]

[이데르고의 푸른색 독을…]

[……]

이데르고의 색깔 독들은 색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갖고 있는 상급 독들이었다.

기존의 하급 독들을 합쳐서 만든 이데르고의 독!

[카르바노그가 너무 빨리 적응하는 거 아니냐며 어이없어합니다.]

-이데르고의 독 연못 소환! 독충 떼 소환! 맹독 폭발! 맹독 구름 소환! 맹독 안개 분산! 맹독 화살 난사! 맹독 마력 전환!

[…카르바노그가 할 말을 잃습니다!]

태현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마법을 사용해댔다.

보통 갑작스럽게 새로운 직업으로 바뀌면 적응하느라 시간이 좀 필요했다.

자기 스탯도 확인하고 장비도 확인하고 스킬도 확인하고….

그런 부분에서 태현의 적응 속도는 무서울 정도였다.

계속 역병 마법사만 해왔나 싶을 정도로 무서운 적응 속도!

콰르르르릉! 콰릉!

순식간에 역병 마법 몇 개를 엮어서 콤보를 완성시키고 위력을 극대화!

주변에 역병 연못이 생겨나고 역병을 품은 독충들이 날아와 공격하자 이데르고 사제들은 비명을 질렀다.

아니 아무리 아키서스 교단이라도 그렇지 저렇게 이데르고 님의 힘을 잘 다룰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저놈 아키서스 놈 맞나?!

-무언가 이상하다!

[역병이 들끓고 번성함에 따라 이데르고의 힘이 강해집니다!]

[이데르고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조각의 목소리 또한 강해집니다!]

가방 속에 넣어 놓은 조각이 주변 상황에 힘입어 입을 열었다.

태현이 닥치고 있으라고 집어넣은 탓에 입 다물고 있었지만 간신히 발언권을 얻은 것이다.

[이데르고가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힘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자신의 힘을 맛보고 싶다면 빨리 복종하라고 외칩니다! 자신의 충실한 종이 된다면 더 강한 힘을…!]

‘아니 뭐 그 정도까진 아니고.’

신나서 날뛰다가 갑자기 냉정함을 되찾는 태현!

평소에는 못 쓰던 마법을 쓰니 이세연 같은 대마법사가 된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데르고로 갈아탈 정도로 취하진 않았다.

‘가끔가다가 한 번씩 이렇게 마법을 써줘야 즐거운 거지. 매번 마법만 쓰면 그것도 별로 재미가 없을 거야. 그렇지 카르바노그?’

[카르바노그가 냉큼 동의합니다! 이런 것도 가끔씩 해야 재밌는 거라고 말합니다.]

짜증 날 정도로 이성적인 화신과 신의 반응에 이데르고의 조각은 성질을 냈다.

마법 쓸 거 다 써놓고 이제 와서 저러는 태도가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이데르고가 그럴 거면 힘을 쓰지 말라고 사납게 외칩니다!]

‘아니. 내가 쓰고 싶어서 쓰냐? 니네 사제가 나한테 강제로 줘서 쓰는 거잖아. 허 참.’

적립된 포인트 사라지기 전에 강제로 쓰라고 해서 억지로 쓰고 있는데 왜 화를 낸단 말인가.

태현은 다시 조각의 말을 무시했다. 조각은 시끄럽게 떠들어댔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하필 왜 이런 화신의 손에 들어가서!

다른 놈이었다면 몇 번이고 타락시켰을 텐데!

* * *

“후. 아키서스 교단 놈들. 정말 무서운 놈들이었군.”

[정체불명의 섬에서 세력이 오릅니다!]

[……]

[……]

-정말 무섭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신의 힘을 뺏어서 쓸 수가 있단 말입니까? 악신 교단 중에서도 이러는 놈들은 없습니다.

“…아, 아니. 그건 꼭 아키서스 교단만 하는 짓은 아니잖아? 다들 못해서 그렇지 할 수 있으면 하지 않나?”

살짝 억울해진 태현이 변명했다. 그러나 이데르고 사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악신 교단 중에서 다른 신의 힘을 뺏는 이들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

[…….]

사실 이건 악신 교단이 선해서가 아니라, 교단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자기 신의 권능을 두고 다른 신의 권능을 뺏어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건 자기 신의 권능이 별로라고 말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아키서스 교단 말고는 저런 짓 하는 사람 별로 없다!

‘그나저나 이놈. 아까 하는 거 보니까….’

태현은 기억을 잃은 이데르고 사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위가 꽤 있는 거 같은데?’

이데르고 NPC도 그렇고, 본인이 쓰는 스킬이 생각보다 강했다.

아까 주변에 모인 이데르고의 신성력을 한 번에 끌어다가 태현한테 주는 걸 보라.

일개 사제가 쓸 수 있는 힘이 아닌 것!

‘후계자라고 했지?’

[카르바노그가 성기사단장이나 대주교, 혹은 사제장의 후계자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럴듯하군.’

교단 고위직 후계자!

그런 제자 포지션의 NPC라면 저런 스킬도 납득이 갔다. 잠재력이 어마어마할 테니까.

‘…잠깐만. 그러면 기억 되찾는 거 막아야 하지 않나? 계속 찾게 하면 위험할 거 같은데?’

지금도 조금씩 기억 회복해 나가고 있는데, 저러다가 기억 완전히 돌아오기라도 하면….

-아키서스 놈이 나, 나를 속이다니…! 같이 죽어서 이 치욕을 씻겠다!!

…반응이 예상이 안 간다!

[그러게 누가 속이라고 했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일을 이렇게 만든 건 화신 탓!

반박할 수 없었기에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이 임시 신전 수리해서 쓸 수 있나?”

“아니. 독 지독해서 안 될 거 같은데. 나 가만히 있어도 지금 HP 쭉쭉 닳아.”

“김태현…! 우리 힘들어 죽겠어! 빠져나가야 할 거 같아!”

검은 바위단 쪽 힐러들은 앓는 소리를 냈다.

태현이 신나서 독을 미친 듯이 뿌린 덕분에 지금 이 주변은 완전 독지옥이었다.

[독으로 인해 HP가…]

[장비가…]

[……]

[……]

가만히만 있어도 죽을 수 있는 맹독지대!

“알겠어. 이동하자.”

어차피 이 임시 신전은 뺏어봤자 별로 남는 것도 없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인도하려 했다.

지금 이 이데르고의 화신 상태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나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최대한 많이 싸워놔야….

쾅!

“?!”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모두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잘 가려진 숲 쪽 통로에서 우르르 적들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데르고 교단…이 아니었다.

‘에랑스 왕국 쪽이다!’

플레이어들은 다 알아봤다.

입고 있는 복장이 에랑스 왕국 쪽 기사들이 입는 갑옷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섬에 기사들이 있을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1왕자 쪽 기사!

‘상태가 너덜너덜한 게 얘네도 고생 꽤나 한 거 같은데.’

섬은 모두에게 똑같이 가혹했다.

기사들이 왠지 모르게 추레하고 거지 같은 건 기분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태현, 저거 1왕자 쪽 기사 아냐?!

-그런 거 같다. 조심하는 게 좋겠군.

너덜너덜해지고 거지 같아졌어도 기사는 기사.

게다가 1왕자 쪽 기사들은 하나하나 레벨이 높은 걸로 유명했다.

저기 앞에 있는 한 명 한 명이 고난이도 던전 보스 몬스터쯤 되는 것이다.

‘600? 설마 700까지는 안 가겠지.’

-…으아아악! 이데르고 교단 놈들이잖아!?

나타난 기사들은 깜짝 놀라 외쳤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길래 1왕자인 줄 알고 찾아왔는데, 이데르고 놈들의 소굴이었던 것이다.

“우린 이데르고 교단 아니야! 여기 이데르고 교단 놈들과 싸우기도 했잖아!”

할러스가 급히 말했다. 일단 싸워서 좋을 게 없으니 말려야 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이데르고 놈아! 지금 저 꼴을 보고서 어디서 가당찮은 거짓말을!!

[설득에 실패합니다!]

기사는 태현을 가리키며 외쳤다.

무슨 리치처럼 온몸에서 강력한 역병 맹독을 뿜어내고 있는 마법사!

저게 있는데 이데르고 교단이 아니라고 하는 건 무리였다.

-자기들끼리 싸워놓고 거짓말을 하다니!

기사들의 반응에 기억을 잃은 이데르고 사제는 확신을 했다.

아, 우리가 진짜 이데르고 교단이 맞긴 맞나 보구나!

-저 1왕자 쪽 기사들을 죽여 버립시다!

“…그래. 젠장.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으니.”

태현은 혀를 찼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준비된 상황에서 싸우고 싶긴 했다.

함정도 깔고 폭탄도 오순도순 준비해서, 기사들 HP도 한 절반 정도로 깎고….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원래 마음대로 굴러가지만은 않았다.

가끔은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도 싸워야 하는 법!

“전투 준비!”

“이, 이런 곳에서?!”

“최소한 독은 좀 치워줘!”

“걱정 마라. 이제 좀 컨트롤에 익숙해지고 있으니까.”

“…잠깐. 그러면 방금까지는 익숙하지 않았는데 쓴 거…?”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이데르고 교단 놈들을 토벌해라!

“…어쨌든 싸우자!”

왕국 기사들이 각종 스킬을 사용했다. 온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버프가 걸렸다.

그에 맞서 태현은 역병과 독을 닥치는 대로 뿌렸다. 주변에 다 퍼져 있던 독 안개들과 연못들이 하나로 뭉쳐지고 기사들 앞으로 모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앙!

“?!??!?”

그리고 숲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하도 덩치가 커서 무슨 산이 굴러오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나타난 건 거대한 토끼였다.

“…….”

-…….

태현 쪽도, 기사들 쪽도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상황.

섬에 있는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강력하고 포악스러웠다.

쥐도 그렇게 강했는데, 토끼면 얼마나 강한 거지?

‘…잠깐. 카르바노그. 토끼면 네가 대화를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대륙의 토끼는 자기 권속이 맞지만 여기 토끼는 사실 별로 알지 못한다고 카르바노그가 우물쭈물거립니다.]

대륙에 있는 토끼들은 전부 카르바노그가 아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섬은 카르바노그도 모르는 섬.

토끼들한테 말이 통할지 안 통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말 걸어서 ‘내가 너희의 신이다’라고 했는데 무시당하면 어쩌지?

‘그래도 대화는 시도해 봐야….’

-괴물이다! 죽여!

다행히 기사들 쪽이 좀 더 멍청했다. 눈치 없게 토끼한테 선공을 시작한 것이다.

-위대한 기사의 검! 에랑스 귀족의 핏줄!

번쩍이는 오러와 함께 기사들의 무시무시한 공격이 거대 토끼한테 들이박혔다.

콰콰콰콰콰콰쾅!

주변을 다 날려 버릴 정도의 살벌한 위력.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미친…!’

‘레벨이 몇이야?!’

저걸 맞는 게 그들이 아니어서 망정이었지, 돌격을 허용했다면 여기서 몇 명 쓰러졌을 것 같았다.

-꾸우우.

그러나 그런 공격에도 거대 토끼는 쓰러지지 않았다. 느릿하게 몸을 돌리더니 기사들을 쳐다보며 울음소리를 냈다.

-꾸우우우.

-이… 이 괴물 놈! 쓰러져라! 쓰러지란 말이다!

오히려 더 겁을 먹은 건 공격하는 기사들 같았다.

퍼퍼퍼퍽! 퍼퍼퍼퍼퍼퍽!

‘잠깐. 반격을 안 하잖아?’

[카르바노그가 왜 바보 같이 맞고 있냐며 안타까워합니다!]

토끼가 어그로를 끌어준 사이에 태현은 준비를 끝냈다.

-<이데르고의 역병지대 소환>! <이데르고의 맹독 비 소환>! <이데르고의…>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MP가 바닥났습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변의 역병과 독이 가득합니다. <이데르고의 역병 섭취>로 인해 MP가 차오릅니다!]

[……]

[……]

그 대단한 기사들도 기세에 압도되어서 버티기만 할 정도였다.

여기가 독의 지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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