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01화 (1,300/1,826)

§ 나는 될놈이다 1301화

대부분의 사람들은 2라운드에서 한국대표팀이 안전한 전략을 쓸 거라고 생각했다.

1라운드에서 이미 실력 차이가 난다는 건 증명이 된 상황.

굳이 2라운드에서 무리를 하지 않더라도 3라운드를 가면 거의 확정 승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뭐하러 무리를 하겠는가?

괜히 상대방 기세만 올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는 사람들이었다.

“준비됐지?”

“물론이죠!”

큰도끼전사는 바로 준비한 스킬을 사용했다.

다른 나라 대표팀이었다면 선수들이 ‘아니 뭐 이딴 날빌을 써요?’ 하며 말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현이나 이세연은 큰도끼전사의 말을 듣고 ‘재밌겠는데? 마음대로 해봐!’ 하고 허락을 해줬다.

어차피 져도 3라운드에서 이길 자신 있었으니까!

…어쨌든 간에 큰도끼전사 입장에서는 매우 감동적이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저 대단한 랭커들이 큰도끼전사를 믿어주다니!

파아앗!

[아키서스의 변장 스킬을 사용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변장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

파앗!

큰도끼전사의 모습이 갑자기 일본대표팀 선수 중 한 명으로 변했다.

“괜찮나요?”

“괜찮은데?”

“이 정도면 눈치 못 챌 것 같습니다!”

다른 선수들도 대호평했다.

이 정도면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

이세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되니까 괜히 아쉽네.’

이 정도로 좋은 전략이라면 아껴둘 걸 그랬나?

하지만 태현도, 이세연도 이미 동의한 선택이었다.

-이런 전략은 미리 써두는 게 좋겠어. 나중에 팽팽할 때 시도하는 건 너무 부담이 크니까.

-그렇겠지?

아무리 참신한 전략이더라도 위험부담은 있는 법.

미리 한 번 써둔 다음 제대로 먹히는지 확인해두는 게 좋았다.

상대가 안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매번 쓸 것도 아니니까.

“진영으로 가자! 점령해야 해!”

“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변장 스킬이라니!

-생각해 보니 김태현 선수가 투기장에서 변장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변장을 많이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줬었죠?

-아무래도 김태현 선수는 일 대 다수로 많이 싸우다 보니 변장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사실, 변장이란 스킬이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활용도가 정말 크게 갈리는 스킬이지요. 큰도끼전사 선수의 활약이 정말 기대됩니다. 한국대표팀은 경기 하나하나가 눈을 뗄 수가 없어요!

단순히 이기기 위한 전략을 짜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끈다!

-한국대표팀, 1라운드 때와는 진형이 많이 다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김태현 선수가 없으니까요.

한국대표팀의 진형은 태현이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태현은 딜러 중에서도 암살 플레이가 가능한 근접 딜러였던 것이다.

같은 근접 딜러라도 플레이스타일은 천차만별.

암살 플레이가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높은 기동성, 끈질긴 생존력, 그리고 순간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폭발적인 딜링 능력!

거기에 레어 스킬들까지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였는데, 태현은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김태현 선수 같은 딜러는 사실 드문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그런 딜러도 김태현 선수처럼 저렇게 자주 암살을 하지는 않아요!

태현 같은 타입의 선수여도 태현만큼 극단적인 플레이를 하지는 않았다.

위험부담이 있으니 보통 팀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첫 번째 시즌에서 태현의 플레이를 생각해 보면 진짜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 지금 한국대표팀의 포메이션은 아주 정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팬 여러분들. 당황하지 마십시오! 저게 원래 정상입니다!

-변장 스킬이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합니다만… 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작됩니다! 두 팀! 부딪힙니다!

이세연은 언데드를 앞으로 닥치는 대로 보내서 시선을 끈 다음 지독한 안개를 뿌렸다.

그사이 류다영이 앞에서 탱킹 준비하고 류태수가 딜링을 준비했다. 동시에 이다비는 각종 버프를 걸었다.

-큰도끼전사 선수 옆으로 돕니다! 눈치 못 채나요? 눈치 못 채나요? 끼어듭니다!

일본 쪽 선수들은 이세연이 왜 안개를 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뭐야? 무슨 뜻이지?”

“저 안에 숨어서 오려는 거 아닌가?”

“숨더라도 별 의미 없지 않나? 김태현이 숨어서 오는 거 아니면….”

“김태현이 나오는 거 아냐?”

“밴 당했는데 어떻게 나와 미친놈아!”

“조용히 해! 안개 걷힌다. 2라운드에서 최소한 무승부라도 따내야 3라운드 때 희망이 있어!”

안개가 걷히자 언데드 부대를 앞에 내세우고 돌진하는 한국대표팀이 보였다.

평범한 구성!

김태현도 없고, 별다른 것도 없고….

뭐지?

-옆에서 나옵니다!! 옆에서 나옵니다!!! 눈치채야 합니다! 붙었어요!!

그 순간 큰도끼전사가 무기를 휘둘렀다. 갑자기 자기 팀원끼리 싸우자 일본 선수들은 급격히 당황했다.

“미쳤냐!?”

“뭐하는 거야! 멈춰! …왜, 왜 둘이야?”

똑같이 생긴 두 선수가 싸우는 모습에 다른 팀원들은 매우 당황했다.

“내가 진짜야! 내가! 날 도와줘!”

“아니야! 내가 진짜야! 날 도와줘!”

원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면 사람들은 더 당황하기 마련.

아무리 큰도끼전사가 변장을 잘 했어도 그들만 아는 질문을 냉정하게 했으면 구분해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당황한 상황에서는 그런 게 잘 떠오르지도 않았다.

게다가….

“레어오니! 내가 진짜야! 나 저번에 <단풍나무 숲 괴물> 퀘스트 같이 깼었잖아!”

“!!”

“쟤가 진짜다! 쟤가 진짜야!”

일본 선수들은 한쪽의 말에 깜짝 놀라서 반대쪽을 공격했다.

이놈이 가짜였구나!

“아니야 미친놈들아 속지 마 크아아악!”

“이 자식 끝까지 우기기는!”

“잡아! 잡아!”

그러는 와중 제대로 준비를 마친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들이닥쳤다.

진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살벌하게 몰아붙이는 실력에 일본 선수들은 숨이 턱턱 막혔다.

“가짜부터 잘라! 가짜만 자르면 한숨 돌릴 수 있다!”

“오케이! 잡았어!”

일본 선수들은 스킬 꺼내고 딜 집중해 가면서 가짜를 잡았다.

그러자 한국 선수들이 환호했다.

“…?”

“어?”

-아아아아아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선수들은 못 들었지만 지금 해설자들과 팬들은 웃겨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역대급 진흙탕 경기!

큰도끼전사가 미리 준비해 온 퀘스트 정보에 그대로 넘어간 것이다.

-팀원을 잡았어요! 팀원을!!

-무너집니다! 무너져요!!

그렇게 일본대표팀과의 경기는 끝이 났다.

완벽한 승리!

-김태현은 어디서 저렇게 김태현스러운 선수를 찾아서 데리고 온 거냐?

-일부러 찾으려고 해도 못 찾겠다.

-그냥 후보용 딜러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경기 전에 섣부르게 말했던 사람들의 입이 확 다물어지는 경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한국대표팀은 가장 많은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졌다….”

“지금 1패 했으니까 16강으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2번 다 이겨야 하겠지?”

“…무리일 거 같은데.”

“1승 1무라도….”

일본 선수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지금 투기장 대기실에는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일본 선수들에게도 오고 있었지만 그 질문의 숫자부터 내용까지 전혀 달랐다.

한쪽은 ‘어떻게 이겼냐, 기분이 어떠냐, 16강의 적수가 누구라고 생각하냐’ 이런 질문들이 무수히 쏟아졌다면….

한쪽은 ‘졌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김태현 선수한테 당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같은 복장 터지는 질문들만 날아왔다.

차라리 이딴 질문 할 거면 묻지나 마!

“이번 경기에서 인상적인 선수가 있었습니까?”

“!”

태현한테 들어온 질문에 레어오니의 귀가 쫑긋거렸다.

경기의 패배와 별개로 귀가 쫑긋할 수밖에 없는 질문!

경기 시작 전에 레어오니는 다른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경기는 지더라도 김태현한테 한 방 먹여주고 싶다.

-미쳤냐?

-…아, 아니. 경기는 지더라도 김태현한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다 이거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경기는 지면 안 되지….

-근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겠다. 인정받으면 기분 좋을듯.

경기가 불리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에 패배해도 그리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팀이 패배한 거지 내가 패배한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고 싶기는 했다. 특히 그 상대가 태현이라면 더더욱 기쁠 것이다.

판온 최고 선수가 그렇게 평가해 준다면 그 가치는 몇 배로 뛸 것 아닌가!

“내 이름 말할지도 몰라.”

“레어오니.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헛소리 좀 작작해.”

“…이 자식이 왜 내 말마다 시비야!?”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러는 사이 태현이 입을 열었다.

“레어오니 선수가 인상에 남았습니다.”

“!!!!!”

레어오니는 깜짝 놀라서 눈을 깜박거렸다.

“들었냐? 들었어???”

“잘못 말한 거 아냐?”

“협박한 거 아냐?”

“통역 오류라거나….”

질투에 찬 팀원들의 깎아내리기에도 레어오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니들은 이름도 못 불렸는데 난 불렸다! 불렸다고!”

실실 웃는 레어오니의 모습에 다른 선수들은 속으로 욕했다.

‘이런 자식이 뭐가 대단하다고…!’

‘내가 더 잘하지 않았나?’

‘탱커라서 그래. 내가 탱커였다면 훨씬 더 인상에 남았을 거다.’

“김태현 선수. 레어오니 선수가 인상에 남은 이유가 뭐였나요?”

“탱커인데 여러 이동 스킬을 갖고서 끈질기게 버티는 능력이 인상 깊었습니다.”

“과연 그렇군요!”

태현은 좋은 의미로 말해줬고 레어오니도 뿌듯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팀원들은 그 말을 깎아내렸다.

“한마디로 도망 잘 쳐서 인상 깊었다는 거네.”

“아. 내가 그 자리 있었으면 내가 들어갔겠네.”

“완전 거품 아니냐?”

“…….”

일본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의 대화를 보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놈들은 전체적인 전력도 약하면서 이렇게 자기들끼리 싸우면 어쩌려고…!

* * *

정체 불명의 섬에서, 태현은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다.

하나는 이데르고 교단과 1왕자를 수색하면서 이 섬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섬을 빠져나갈 방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베드 쟤 얼굴이 왜 저러냐?”

실베드의 얼굴은 매우 핼쓱해져 있었다.

평소에 (근거 없는)자신감 빼면 시체인 실베드가 저러자 태현은 의아해했다.

“근본도 없는, 반짝 올라온 듣보잡 랭커 새끼가 김태현 옆에 아부해서 붙은 걸로 퀘스트 날먹하는 꼴이 꼴보기 싫다는데?”

“…아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태현은 깜짝 놀랐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이 이렇게 사나웠나?

“아, 아니. 김태현. 내가 한 말이 아니라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그렇다고.”

“아. 그렇군.”

랭커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하게 많아졌고, 새로 치고 올라오는 신진 랭커들의 경쟁도 치열했다.

기존 랭커들을 뚫고 올라가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쓰는데 실베드가 태현과 같이 있는 걸 보니 배가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이 자식들이….”

실베드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개인 플레이를 한다지만 판온 1의 태현처럼 극단적인 개인 플레이를 하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보통 몇몇 길드나 파티들과 친분을 맺어두고 같이 하는 것이다.

…근데 이놈들이 전부 다 ‘김태현 정보 안 알려주면 넌 차단이다’라고 딱 잘라버린 것이다.

“상황을 설명하지 그랬냐?”

“했는데 안 믿어 이 자식들이!”

“저런… 그러게 길드를 만들지 그랬어.”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얄밉게 말했다.

우리는 길드 있는데!

태현은 실베드가 살짝 안쓰러워서 물었다.

“파워 워리어라도 들어갈래? 내가 길마한테 잘 말해줄 수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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