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300화 (1,299/1,826)

§ 나는 될놈이다 1300화

‘어라?’

옹기종기 들어오는 대학생들 뒤쪽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

PD는 팀 KL 선수들을 알아보고 입을 떡 벌렸다.

태현을 탐내는 건 E스포츠 중계방송 전문인 MBS뿐만 아니라 KBC 같은 일반 방송사도 마찬가지였다.

태현이 게임단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리그에 뛰어들기 전에는 KBC 쪽 예능에도 가끔씩 나와 줬던 것이다.

그때마다 시청률은 천장을 뚫었고 PD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었다.

한 번 쓰면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흥행보증수표, 흥행 치트키!

…문제는 그런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태현이 방송 출연에 별 욕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나오려고 애를 쓰고 부탁을 하는데 태현은 아쉬운 게 없으니 이쪽에서 애걸복걸을 해도 나오질 않았다.

사실 예전까지 갈 것도 없었다.

당장 최근에 태현이나 팀 KL 섭외하려고 했던 방송만 네다섯 개는 될 것이다.

월드컵 관련 이야기를 듣거나, 아니면 그냥 태현 불러서 인터뷰를 따거나….

솔직히 말해서 태현만 나오면 뭐든 좋았다. 몇 마디 말만 떠들어도 충분히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다.

‘아니. 근데 왜 여기 있어?’

그렇게 요청해도 매몰차게 거절하던 사람이 여기 나타나다니!

“이봐. 저기 팀 KL 선수들 있는데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와.”

“PD님도 참….”

“?”

“여기 팀 KL 선수들이 왜 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쇼.”

“…….”

부하직원의 말에 PD는 종이를 둘둘 말아서 쥐었다.

딱!

“이 자식이 누구 눈깔을 뭘로 보고… 당장 안 뛰어 갔다와!?”

“죄, 죄송합니다!”

직원은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물론 속으로는 ‘아 저 PD 놈 뭐 잘못 먹었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김태현이 여기 드라마 촬영장에 왜 나온단 말인가!

“…어???”

“?”

“김김김김태현선수 맞으십니까?”

“김태현 선수인데요.”

진짜 태현인 걸 알아본 직원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이렇게 누추하신 분이 이런 귀한 곳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

“으아아악! 거꾸로 말했다! 그러니까, 귀하신 분이, 누추한 곳에는 무슨 일로….”

“케인 동생이 엑스트라로 나온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습니다. 알다시피 케인이 동생 걱정을 많이 해서 말입니다.”

“…!”

적당한 인원이 필요해서, 아는 스태프의 후배 쪽 동아리를 불렀던 일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감동으로 손이 떨려왔다.

‘대박이다!’

직원은 쪼르르 돌아갔다.

PD는 매우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보는 눈만 없었다면 자기가 직접 찾아가서 물어봤을 것이다.

“왜 온 거래?”

“오늘 오는 대학생들 중에 케인 동생이 있어서 구경 왔다는데요?”

“…!!”

세상이 좁다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PD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인 받으러 갈 생각인데, 받아다 드릴까요?”

“그래…가 아니라 이 멍청한 놈아! 지금 그러고 있을 때냐!”

“?”

“안에 치워! 공간 만들어. 애들 쉴 수 있게 휴게실 비워 놔!”

“어, 남는 공간 없어서 세워 놓으신다면서요?”

“내가 언제 그랬어! 빨리 움직이지 못해?!”

PD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직원은 억울했지만 상대가 저러는데 어쩌겠는가.

투덜거리면서 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자리 만들고, 간단한 다과 같은 것도 준비해 놔!”

“???”

뭘 잘못 먹었나?

그러거나 말거나 PD는 열심히 준비에 나섰다.

절대 저분들을 화나게 하면 안 돼!

* * *

“어라? 생각보다 되게 잘해주네?”

케인의 말에 김예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니까. 이상한 걸로 걱정하지 마.”

“내, 내가 창피해?”

“창피하진 않은데 사람들 시선이 모이니까 부끄럽긴 해.”

김예리의 말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촬영장에 배우도 여럿이고 사람은 그보다 더 많았는데 시선은 한쪽에만 모이고 있었다.

팀 KL 선수들!

‘대체 왜 온 거야?’

‘엑스트라 찍으러 온 애가 동생이라던데?’

‘와, 김태현 동생이라고?? 대박이네. 어디 누구야?’

‘아니. 케인 동생.’

‘…그래도 뭐 대단하네.’

벌써 직원들 중 발 빠른 몇 명은 사인을 받아간 뒤였다.

촬영감독도 자기 딸 주겠다며 사인 받아갔을 정도!

“저, 혹시 팀 KL 선수 분들도 잠깐 나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PD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 KL의 카메오 출연이라면 생각지도 못했던 대박이었다.

나오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화제가 되리라!

벌써부터 기사 제목들에 팀 KL 이야기가 나올 걸 생각하니 입가가 올라갔다.

‘아차. 거절하면 어쩌지?’

말하고 나니 태현이 이런 부분에서는 철저하다는 게 생각났다.

거절이라도 하면….

“뭐, 나쁠 거 없죠. 그냥 잠깐 얼굴만 비추면 되는 거죠? 연기 같은 건 저희들한테 무리입니다.”

팀 KL의 선수들에게 연기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럴 만한 능력이 없는 것!

옆에서 듣고 있던 케인이 슬쩍 물었다.

“나, 단역이라면 조금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개소리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

정말 웃음기 하나 없이 정색하고 말하는 태현의 말에 케인은 쭈그러들었다.

“정, 정말 나와주시는 겁니까?”

“예.”

“정말로 정말입니까? 농담이 아니라???”

“…나가지 말까요?”

“아닙니다! 대환영입니다! 아. 제 친구가 이번에 예능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에 나오실 생각은….”

“없습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이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원래 저희가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출연을 꺼리는 편입니다.”

태현의 말에 PD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김태현 선수는 예능에 재능이 있으십니다! 저번에 나온 걸 봤었는데 아주 그냥….”

“그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출연을 꺼리긴 합니다만, 오늘 보니까 PD님께서 엑스트라들한테도 잘 대해주셨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

PD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태현이 오기 전에 ‘대충대충 치워 놔!’ 했던 기억이 생생했던 것이다.

…들키진 않겠지?

‘여기 입 가벼운 놈들 여럿인데….’

한 놈이라도 태현한테 입을 열면 그대로 들키게 되어 있었다.

“제… 제가 원래 그런 부분에는 꽤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게다가 저 대학생 같은 애들은 후배 소개로 데리고 온 건데 힘들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옆에 있던 스태프들이 의아해하며 지나갔다.

거짓말하는 시간인가?

“워낙 일정이 촉박하다 보니 그래도 좀 못 해준 게 많아서 미안합니다. 다음 촬영에도 출연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때는 좀 더 준비를 해줘야겠군요!”

‘아니…?’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깜짝 놀랐다.

다음 회 촬영에는 딱히 저기 엑스트라들이 나올 예정이 없는데?

하지만 PD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태현이 그거 때문에 나와준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태현이 팀 KL 선수들과 나와 주기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 * *

한국 국가대표팀과 일본 국가대표팀의 1차전, 두 번째 라운드!

사실 첫 번째 라운드에서 놀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니, 태현의 플레이나 달라진 전략, 맵에 놀란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결과에 놀라지는 않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일본 국대팀이 이길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일본 팬들도 그랬다.

-일본 팀 화이팅!

-너 근데 한국 팀에 돈 걸지 않았냐?

-돈은 한국 팀에 걸었지만 응원은 일본 팀에 하는 거지. 어느 팀이 이겨도 기분 좋지 않겠어?

-…누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지 뻔히 보이잖아.

그러나 두 번째 라운드는 달랐다.

무엇보다….

-김태현 선수가 빠지지 않겠습니까?

-예. 99% 김태현 선수가 빠질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팀의 선수를 한 명 제외시킬 수 있는 밴픽이 가능!

이세연도 대단한 선수였지만, 네크로맨서는 투기장에서 활약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미친놈처럼 사방팔방에서 번쩍이며 진형을 뒤흔들고 선수들을 잘라먹는 태현에 비하면 이세연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만한 선수였다.

이세연이 시작하자마자 내달려서 선수들 잘라대지는 않았으니까!

-역시,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김태현 선수가 출전하지 않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큰도끼전사를 출전시키는군요.

-큰도끼전사 선수는 좀… 과감한 선택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런 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은 플레이어다 보니 말입니다.

태현이 큰도끼전사를 뽑은 건 여러 변칙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데다가 그 특유의 마인드 때문이었다.

상대방 엿먹이기에 최적화된 마인드!

태현처럼 현란한 플레이는 하지 못하더라도 1인분은 할 것이고, 거기에 추가로 변수까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의아할 뿐이었다.

태현이나 이세연이 대단하다지만 한국에 딜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1부 리그 소속 선수들이 우글거리는데 굳이 이름 없는 큰도끼전사를?

-한국 대표팀의 감독은 꽤나 과감한 것 같습니다. 김태현 선수 같은 초일류 플레이어의 대체로 저런 무명 선수를 넣다니 말입니다.

-저도 좀 감탄했습니다. 사실, 한국 대표팀의 감독이란 자리는 좀… 독이 든 성배 아닙니까?

사람들한테는 ‘김태현하고 이세연 있으면 나도 우승하겠네 선수빨 감독 ㅉㅉ’ 하고 욕을 먹지만, 성적을 못 내면 ‘김태현하고 이세연 있는데도 우승 못하네 쓰레기 감독 ㅉㅉ’ 하고 비아냥을 듣는 자리!

그런데 그런 자리에 앉은 사람이 저런 과감한 선택을 하다니.

솔직히 좀 감탄이 나왔다.

물론 지금 국대 감독은 협회에서 나온, 얼굴만 걸어 놓은 명예직에 가까웠다.

유 회장의 지시로 태현과 이세연이 전권을 쥐고 있었기에 감독은 그저 조언자 역할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저런 칭찬을 들으니 얼굴이 좀 화끈거렸다.

‘내가 뽑은 게 아닌데….’

-하지만 과감한 선택은 뒤집어 말하면, 실패했을 때 그 타격도 크다는 뜻입니다. 김태현 선수의 대체로 넣은 선수가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한다면 그 충격은 몇 배가 될 겁니다.

-맞습니다. 특히 팬분들이 실망하지 않겠습니까.

해설자들은 말을 골라서 조심스럽게 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좀 더 직설적이었다.

-뭐임 저 듣보잡은??

-파워 워리어 랭커라는데.

-파워 워리어 랭커를 데리고 왔다고? 김태현이 추천한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딜러를 왜 데리고 왔대?

-잠깐. 김태현이 추천한 거면 뭔가 생각이 있는 모양인데?

-그러게. 김태현이 추천한 거면 뭔가 생각이 있겠지.

명성은 무서웠다.

태현이 데리고 온 거 아냐? 하는 말이 나오자 바로 ‘어라? 그럼 뭔가 있나?’ 하고 반응하는 사람들!

원래라면 ‘김태현이 잘나간다고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는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었지만, 때로는 명성이 이런 반응을 뒤집어놓았다.

-파워 워리어에서 싸울 일 있으면 끼는 플레이어던데.

-얼마나 잘 싸울지 한 번 보자고.

사람들은 기대 반, 걱정 반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태현과 이세연의 투톱으로 이뤄진 국대팀은 정말 완벽 그 자체였다.

그걸 따라가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절반 정도는 따라가 줬으면 했다.

-…….

-지, 지금 저게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아? 내가 제대로 본 거 맞냐고!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5분도 되지 않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반응하기 시작했다.

저게 대체 무슨 플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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