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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299화 (1,298/1,826)

§ 나는 될놈이다 1299화

“…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알겠지?”

“알겠어….”

다행히 촬영이 있었기에 태현의 잔소리는 짧게 끝났다.

“그래서 뭔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 불만 있나, 필요한 거 없나, 뭐 그런 거 물으시던데.”

“아하.”

태현은 김 팀장이 왜 그런 걸 물었는지 깨달았다.

혹시라도 불만이 있을 경우 미리 파악해서 대비를 하기 위해서!

역시나 일 잘 하는 사람이었다.

“너 뭐 이상한 소리 하진 않았겠지?”

“훗. 내가 경력이 몇 년인데 그런 실수를 하겠어?”

‘그래봤자 몇 년 안 되지 않았나?’

“훈련 열심히 시키는 것 말고는 불만 없다고 했지.”

‘그걸 물어본 게 아닌 것 같은데?’

훈련 물어본 게 아니라 협찬 관련해서 불만 없냐고 물어본 것 같은데….

“프로스다스 쪽에서 잘해줘서 지금 계속 계약을 연장하고 있긴 한데, 만약 프로스다스 쪽에서 마음에 안 드는 대우라도 하면 참지 말고 말해.”

태현은 혹시 몰라서 케인에게 말을 꺼냈다.

이미 잘나가고 있는 선수한테 푸대접을 하는 경우가 있겠냐만은, 의외로 이런 일은 종종 생겼다.

푸대접이란 게 꼭 대놓고 쫓아내는 것만이 푸대접이 아니었다.

계약을 준비할 때 사람을 불러놓고 기다리게 한다거나, 실수로 다른 선수의 협상 자료를 꺼낸다거나, 순서를 바꾼다거나….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런 실수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실수들이 일어난다는 거 자체가 선수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혼자 놓고 봐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태현은 그럴 확률이 적었지만 케인은 이야기가 달랐다.

어디 가서 괜히 팀 KL 빨이라고 무시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자식은 둔해서 무시당한 것도 눈치 못 챌 수도 있단 말이지.’

“물론이지. 난 그런 거 들으면 바로 눈치채지. 내가 누군데.”

“…….”

케인이 당당하게 말하자 태현은 더욱 못 믿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케인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진짜라니까? 오늘도 바로 알아차렸다고!”

“뭐야. 무슨 일을 겪었는데?”

“아니… 별 건 아니고. 경비원이 날 못 알아보고 안 들여보내줬어.”

“…….”

“…….”

“…….”

옆에 있던 최상윤과 정수혁마저 침묵하게 만드는 일화!

어떻게 반응하기도 힘든 일화였다.

“…화는 냈고?”

“내 팬이라길래 그냥 넘어갔는데.”

“…?”

팬인데 왜 얼굴을 못 알아봤…?

더 물어보려던 최상윤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케인이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맞다. 대우하니까 생각난 건데 걱정이 있어.”

“또 쓸데없는 이야기일듯.”

최상윤의 말에 케인은 발끈했다.

“아니거든? 진지한 이야기거든?”

“뭔데? 너 또 훈련 갖고 투덜대면 아무리 태현이라도 화낼 거다.”

“동생 이야기야.”

케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탄식했다.

“사과해라.”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사과하십시오.”

“맞아. 사과하는 게 좋겠다.”

“…….”

동료들의 따뜻한 반응에 케인의 마음은 분노로 타올랐다.

“내가 잘못한 거 아니거든!?”

“뭐?! 진짜!?”

진심으로 놀란 반응이 더 상처!

케인의 여동생, 김예리는 케인과는 정반대되는 사람이었다.

똑똑하고, 자기 일 알아서 잘 하고….

동생이 케인을 걱정하면 걱정했지 케인이 동생을 걱정한다니.

“대학 일인가?”

“대학이면 태현이 네 후배잖아. 도와줘.”

“과도 다르고… 게다가 난 졸업 직전의 존재감 없는 사람이라고.”

태현은 지금 얌전히 졸업만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없지는 않았다.

“네가 존재감이 없을 리가 있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맞습니다. 가끔씩 선배님 해외 팬들이 캠퍼스로 찾아옵니다. 김태현 어딨냐고 합니다.”

“…진짜??”

태현은 기겁했다.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정수혁의 말은 진짜였다. 해외 팬들은 태현이 대학 가면 바로 나오는 줄 알고 찾아가서 ‘김태현 어딧서요?’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물론 태현은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적은 사람이었다.

“한국대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겠어. 알겠어. 그래서 케인 동생이 뭐 어쨌다고?”

“이번에 동아리에서 드라마 촬영 섭외 왔는데 그거 나간다고 하더라고.”

“좋은 경험 아냐?”

“그러게. 재밌겠네.”

케인 동생이 가입한 동아리 회원들이 잠깐 단역으로 출연하는 것!

여러모로 재밌는 경험일 것이다.

“재밌긴 뭐가 재밌어!”

“??”

케인이 소리치자 다들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왜 저래?

“방송국 관계자들이 얼마나 악독한 인간들인데…! 학생에 엑스트라라고 무시하고 구박하면 어떡하냐고!”

“너무 상상력이 풍부한 거 아냐?”

“그보다 묘하게 구체적인 게 당해본 것 같습니다?”

“케인이 방송국에서 구박 받은 적이 있었나?”

보통 태현이 같이 있어서 환영 받으면 환영 받았지 구박 받은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예전에 알바한 적 있었어.”

“아….”

“어쨌든 그거 때문에 괜히 걱정이야.”

“그렇게 걱정이면 같이 가면 되잖아?”

태현의 말에 케인은 멈칫했다.

“어….”

“잠깐. 김태현. 케인이 훈련을 빠지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 걸 수도….”

“내가 아무리 훈련을 빠지고 싶어도 동생을 팔아 먹겠냐 이 자식아! 그리고… 내가 가면… 좀 창피하잖아.”

“케인 씨.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케인 씨는 훌륭한 선수입니다.”

“…내가 부끄럽다는 게 아니라 동생이 부끄러워한다는 뜻이었다!”

전혀 생각치도 않은 점을 지적하는 정수혁!

케인은 분노해서 대답했다.

“가족이 거기까지 따라가면 괜히 왜 따라왔냐는 말 들을 거고, 동생도 눈치 보일 거고, 집에 가면 구박 받을 거고, 그러면 고기 반찬도 압수당할 거고….”

“알겠으니까 그만해라. 그렇게 걱정되면 내가 가주마.”

“어? 진짜?”

“네 동생 챙겨주는 건데 하루 정도는 낼 수 있지.”

“우리도 갈까?”

“그러든가.”

“…아, 아니. 너희는 왜?”

케인은 질색하며 말했다.

태현이야 모를까 최상윤이나 정수혁까지는 좀….

“우리 가는 거에 뭐 불만 있냐?”

“응. 있는데.”

“…김태현. 저 자식 말은 듣지 말고 같이 가자.”

팀 KL 일원들은 모두 손을 모아 결정했다.

케인 동생 응원가자!

“무슨 이야기 하고 계셨어요?”

“이다비. 쉴 겸 같이 나갈래?”

“네? 또 둘이서요?”

멍하니 있던 케인이 그 말에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또라니. 그러면 전에도 나갔었어?”

“…….”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긴…!

* * *

“정말 감사합니다.”

케인의 동생, 김예리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리고 케인을 쿡 찔렀다.

쓸데없는 짓을…!

“편하게 있어도 상관없어.”

태현은 김태산에게서 (말없이) 빌려 온 승합차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스포츠카는 인원을 다 태울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태현은 유지수를 보며 의아해했다.

“지수야. 너도 참가해?”

“저는 옆에서 구경만 해요.”

‘지수 있으면 별 상관없지 않나?’

생각해 보니 둘이 친했었다.

유지수가 있으면 태현이나 다른 사람들이 구경가는 것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전화 한 방이면 방송사 사장 나올 테니까!

유지수는 작게 속삭였다.

“그런데 진짜 왜 왔어요?”

“케인이 동생 걱정해서.”

“…걱정할 게 뭐가 있다고??”

“그러게 말이야. 사실 크게 걱정하진 않았는데, 쉴 겸 같이 데리고 나온 거지.”

“아하. 확실히 채찍질도 잠깐 쉬었다가 해야 더 아프게 들어가니까.”

“…비유가 좀 이상하다?”

유지수의 비유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 광기는 태현한테 배운 거지만, 태현은 모르는 척했다.

“요즘 넥돈의 친구하고 만나서 퀘스트 하고 있다면서?”

“네. 그 미친 기사.”

“…미안하다.”

딱히 태현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태현은 사과했다.

아키서스 교단 소속 NPC들이 사고를 치면 일단 태현도 책임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전직 근위기사, 넥돈은 한동안 사라졌었지만 유지수가 퀘스트를 깨다가 발견했다.

자신의 친구인 탑지기 앙콜라스를 아키서스 신앙으로 개종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비전 궁술 스킬 배우러 왔던 유지수는 넥돈을 상대해야 했다.

“그래도 타이럼 사냥꾼들만큼 미치지는 않아서 다행이죠.”

“…….”

“맞다. 넥돈이 주는 퀘스트 깨다가 발견한 건데, 아키서스 관련 전직 퀘스트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뭐? 진짜?”

태현은 깜짝 놀랐다.

넥돈이 탑지기 앙콜라스를 개종시키고 있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넥돈이 아키서스 관련 전직 퀘스트까지 주다니!

넥돈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펠마스보다 훨씬 낫군.’

펠마스는 퀘스트 하나 못 찾아오는데 넥돈은 그래도 용케 아키서스 관련 직업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지수 넌 타이럼 레인저 직업 갖고 있으니까 그런 전직 퀘스트는 안 하겠네?”

유지수는 타이럼에서 시작한 얼마 안 되는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게다가 직업도 타이럼 관련 직업을 얻을 정도였으니,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은 보통이 아닐 터.

그런 직업을 쉽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네? 아뇨. 비교해서 좋으면 바로 갈아탈 건데요?”

유지수는 무슨 소리 하냐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아마추어 같은 소리를 하고 계세요?

‘많이 컸구나!’

태현은 살짝 감동했다. 게임 처음 할 때 순진무구하던 애는 어디가고 언제 이런 플레이어가 되었을까.

“하지만 아키서스 관련 직업은 안 좋을 가능성이 더 많지 않나?”

“그래서 안 좋을 거 같으면 바로 퀘스트 실패 띄우고 도망치려구요.”

유지수는 이미 다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한 번 속으면 됐지 두 번 속지는 않는다!

아키서스 관련 직업이 이상할 경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음. 근데….’

태현은 말하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경고해 봤자 별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아키서스 관련 직업은 도망칠 기회도 없이 그냥 바로 전직 때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태현이 바로 그런 경우에 당한 희생자였다.

보통 전직 퀘스트하면 다 깨고 나서 ‘전직하겠습니까?’ 같은 메시지창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아키서스의 화신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전직시킨 다음에 ‘취소 불가능임 ㅎㅎ’라고 떴던 것이다.

아키서스 관련 다른 직업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걸 말해줘봤자 미리 피할 방법도 없을뿐더러, 유지수도 이제 초보자가 아니었다.

‘지수도 알아서 잘 하겠지.’

유지수가 들었다면 ‘아니! 왜! 그냥 말해주세요 좀!’이라고 화냈을 생각!

* * *

“촬영 준비 잘 하고 있지? 엑스트라 애들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대학생 애들 불렀다면서?”

“아. 예. 곧 올 겁니다.”

“잠깐. 지금 촬영장에 남는 공간 없지 않나? 오는 애들 어디에 세워두려고?”

“그냥 세워놔도 될 겁니다. 어차피 다 젊은 애들이고 금방 찍을 텐데요.”

“요즘 젊은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괜한 소리 나오면 어쩌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확실하게 잡아놓겠습니다. 다들 드라마 나오는 것에 정신 팔려서 불만 갖지 않을 겁니다.”

“알겠어. 알아서 잘 해.”

촬영 감독이 OK를 하고 넘어가자 PD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해진 예산 갖고 촬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속도였다.

그러려면 우선 대우를 해야 할 순위가 정해져 있기 마련.

엑스트라들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잘 달래면 충분하지 뭐.’

마침 도착한 것 같았다. PD는 고개를 들었다.

바로 지시를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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