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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298화 (1,297/1,826)

§ 나는 될놈이다 1298화

초심을 잊으면 안 된다고들 말하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드물었다.

사람인 이상 인기를 얻으면 마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많은 선수들이 인기 좀 얻었다고 해서 팬들한테 건방지게 군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대놓고 해서 걸린 경우가 그 정도인데, 걸리지 않은 경우는 더 많으리라.

당장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김 팀장이었기에 그런 일을 더 많이 봐왔었다.

뒤에서까지 인성 좋은 선수는 정말 드문 것!

그런데 케인이 저렇게 팬을 배려해 주다니.

솔직히 감동이었다.

“케인 선수. 팬을 이렇게 신경 써주시다니. 감동했습니다. 제가 저 친구한테 잘 말해놓겠습니다. 저 친구도 기뻐할 겁니다.”

“제 외모나 좀 기억하라고 해주세요.”

“하하하! 물론이지요. 케인 선수,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혹시 필요하신 거라도 있습니까?”

김 팀장은 슬쩍 케인에게 말을 걸었다.

마침 케인과 1:1로 독대하는 귀한 상황. 좋은 기회였다.

예전에, 한때 업계 사람들에게서 돌아다니던 말이 있었다.

-팀 KL 섭외하고 싶다면 가장 약한 사람부터 노려라.

물론 여기서 가장 약한 사람은 케인이었다.

팀 KL의 유명한 구멍!

하필이면 옆에 있는 주장인 태현이 E스포츠 역사상 손에 꼽히는 선수였기에 더 비교되는 것도 있었다.

태현이 손에 꼽힌다는 건 단순히 실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실력 외적인 부분도 같이 이야기하는 거였다.

팀 KL이 당당하게 소규모 게임단으로 시작했을 때, 업계의 모든 관계자들이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 예상을 깬 게 바로 태현이었다.

스스로 광고와 스폰서를 따오고, 자기 사비 들여서 투자를 하고, 대회에서 성적을 내오고….

초월적인 관리 능력!

일개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보통 저런 젊은 선수들은 자기 게임 하기도 바쁜데, 태현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 나가면서 저런 일들을 다 해낸 것이다.

팬들은 그냥 환호할 뿐이지만, 사정을 아는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태현이 괴물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괴물!

그런 태현이 딱 버티고 있으니 처음에는 만만하게 보고 접근한 기업들은 다 피를 봤다.

그런 그들이 발견한 구멍이 바로 케인!

사람 좋고 입 가볍고 마음 약한 삼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는 구멍이었다.

물론 이제 그것도 태현이 확실하게 틀어막은 덕분에 불가능한 이야기가 됐지만….

‘여전히 케인 선수는 좋은 기회지.’

김 팀장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팀 KL이 갖고 있는 불만이나, 원하는 점, 솔직한 속마음 등등을 듣고야 말겠다!

태현이 의리 있고 돈에 휘둘리지 않는 선수라지만, 세상에 절대란 건 없었다.

얼마나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경쟁 기업으로 홀라당 넘어갔는가!

만약 태현이 프로스다스에 불만을 갖고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프로스다스는 E스포츠 역사에 이름이 남을 것이다.

-자기 손에 든 떡도 간수 못 하는 천하의 멍청이!

…로 말이다.

만약 팀 KL 선수들이나 태현이 불만이 있다면 꼭 미리 듣고 준비해야 했다.

‘당장 지금도 큰일날 뻔했지.’

팀장이 늦게 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필요한 거요?”

“예!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혹시 방금 있었던 미담 SNS에 올려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미담이 부족해서….”

“…….”

김 팀장은 케인에 대한 평가를 아주 조금 낮췄다.

* * *

“와, 김태현 선수잖아?!!”

옆 스튜디오에 촬영 와 있던 사람들은 팀 KL이 왔다는 소식에 흥분했다.

연예인이나 배우들도 판온은 했다.

판온에 관심 많은 사람들에게 태현은 스타일 수밖에 없는 것!

“김태현이라고? 진짜??”

“가서 말 걸어보면 안 되나?”

“뭐라고 말 걸려고?”

“안녕하세요. 제 팬이십니까?”

“…김태현이 이상한 사람 만났다고 SNS에 올리면 검색어 순위에 오르긴 하겠다. 김태현이 널 모르면 어쩌려고?”

“알, 알지 않을까….”

지금 여기 있는 연예인들은 SI 엔터 소속의 배우들이었다.

간단한 화보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모여 있었는데, 옆에 태현이 왔다는 걸 들으니 호기심이 솟구쳤다.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

대회 소감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 선수들의 생생한 경험담….

‘그리고 지금 있는 섬이 어디 있는지 힌트 같은 것도!’

“무슨 생각해?”

“어? 아. 아니.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방금 되게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

배우, 장제성은 울컥했다.

물론 그가 태현이 어디 있는지 힌트를 듣고 퀘스트를 좀 앞서가려고 하긴 했다.

그걸 비열하고 탐욕스럽다고 하다니!

“설마 퀘스트 좀 물어보려고 한 건 아니겠지?”

“앗. 그러고 보니 김태현 찾는 퀘스트 있다며? 설마 그걸 물어보려는 건가? 양심 없이?”

“제성이가 탐욕스러운 놈이긴 해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닐 거야.”

“…….”

나쁜 놈들!

다음부터 퀘스트 절대 안 도와준다!

“너희 뭐 하고 있어?”

“아. 선배님. 옆에 김태현 선수 있다고 해서 말 걸어볼까 떠들고 있었습니다.”

“아. 태현이?”

“…선배님. 선배님께서 나쁜 뜻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누가 보면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말씀하실 때는 좀 조심을 하셔야….”

“알고 있는 사이야!!”

김춘식은 분노해서 외쳤다.

같은 체육관 다녔고 같이 방송도 나왔었는데!

후배들이 ‘아무리 그래도 김태현 알지도 못하면서 벌써 친한 척을 하세요’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울컥했다.

“헉. 정말요?”

“진짜 알고 있는 사이 맞습니까? 지나가다가 한 번 봤는데 알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안 됩니다. 그런 거면 저도 있어요.”

“나도 판온에서 한 번 본 적 있는 듯.”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했다 나쁜 놈들아.”

김춘식의 말에 배우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깊은 관계를?

“거기가 어딥니까? 저희 가서 운동해도 되나요?”

“거기 프로 전문 하는 곳이라 좀 빡셀 텐데.”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태현이는 요즘 잘 안 와. 숙소 구한 다음 그 근처에서 팀원들이랑 같이 운동해서.”

“…….”

김춘식의 말에 배우들은 정색했다.

괜히 기대했잖아!

누가 배우 아니랄까 봐 표정 한 번에 바꾸는 모습에, 김춘식은 속으로 욕했다.

연기 배워서 저런 곳에 쓰고 있나!

“…너희 사인 받아다 줄 수는 있는데.”

“선배님!”

“저희가 옷 들어드리겠습니다!”

“너희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후배들의 대접을 받으며 김춘식은 투덜거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놈들 같으니….

“저쪽 촬영하고 있는 거 같으니 기다렸다가 들어가자.”

“설마 이제 와서 겁을 먹으신….”

“넌 사인 없어. 그리고 너희는 SI 엔터 소속이잖아? 같은 회사 소속이었으면서 왜 김태현 얼굴도 몰라?”

“회사에 소속이 몇 명인데… 그리고 김태현 선수 나간 지가 언젠데요.”

팀 KL 만들고 본격적으로 에이전트 두고 활동하면서 태현은 SI 엔터를 나왔다.

팀원들과 같이 활동하면서 직접 케어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때 이야기만 나오면 대표 이동팔은 펑펑 울었다.

-배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그래도 생각해 보니까 같은 회사였다는 핑계로 말은 걸 수 있을 듯?”

“다들 뭐하고 있어?”

뒤늦게 도착한, 아이돌 그룹 메이플 민트의 남우연이 의아해했다.

요즘 나름 잘나가는 배우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벽에 귀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스토커 연기하나?

“옆에 김태현 있대.”

“아. 그래? 만나서 인사하고 와야겠다.”

“…어허!!”

“뭐하는 거야!”

배우들은 기겁해서 남우연을 붙잡았다.

이 여자가 미쳤나!

“왜 이래?”

“너 SNS에 김태현 스토커로 올라가고 싶어? 어딜 감히!”

“지금 김춘식 선배님이 타이밍 맞추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뭐하는 거야!”

배우들이 극성맞게 외치자 남우연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 인간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설마 말 걸고 싶은데 만나본 적도 없고 쑥스러워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겠지?”

“…….”

“아, 아니거든. 촬영 도중에 쉬는 거였거든.”

“보고나 있어.”

남우연은 자신만만하게 걸어갔다.

그 뒷모습에 배우들은 그녀를 욕했다.

“쟤는 겁이 없나 봐.”

“저러다가 한 번 크게 까여봐야 정신을 차리지.”

“얼굴 예쁘다고 다 되는 세상이 아니야! 김태현 선수 주변에 예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누구 말하는 거야?”

“이세연 씨.”

“아. 이세연 씨.”

SI 엔터 소속 배우들은 이세연을 부를 때 존칭으로 불렀다.

대표 조카였으니까!

그러나 남우연은 외모만 믿고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남우연은 태현과 예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요리 방송에서!

“!!!”

“말… 말도 안 돼!”

배우들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남우연을 보았다.

남우연이 말을 걸자 태현이 반가워하며 대답한 것이다.

누가 봐도 반가워하는 모습!

“우연이가 지금 권총 겨누고 있는 거 아니야? 안 반가워하면 죽이겠다고?”

“그럴듯한데?”

“아니. 진짜 반가워하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남우연은 뿌듯해했다.

지금쯤 배우들은 영문을 모른 채 놀라워하고 있겠지!

사실 배우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달랐다.

“저번에 사인 감사했습니다. 이다비가 정말 팬이었거든요.”

“별거 아니었어요.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랬다.

이다비가 남우연의 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태현은 남우연의 사인을 받기 위해 부탁을 했고….

태현이 자기 팬인 줄 알고 김칫국을 먼저 들이켰던 남우연은 쓴맛을 봐야 했다.

게다가 둘이 앞에서 서로 챙겨주며 염장질하는 모습까지!

…지금 생각해도 뒤통수를 한 대씩 때려주고 싶은 얄미운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분노는 사라지고 이성이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김태현 같은 선수한테 이렇게 반갑게 인사를 들을 수 있는 연예인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남들은 얻고 싶어 해도 못 얻어내는 기회인데.

“이다비 씨. 월드컵 기대하고 있어요. 파이팅!”

“감, 감사합니다!”

이다비와 인사까지 마치고 남우연은 유유히 돌아왔다.

숨겨진 사정을 모르는 배우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진 얼굴로 쳐다보았다.

“김태현 선수가 너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체 왜 너한테….”

“…….”

아무리 친하다지만 대놓고 시비를 터는 배우들의 모습에 남우연은 울컥했다.

‘절대 진실을 알려주지 말아야지.’

“김태현 선수 이야기 들어보니까 오늘 기분 되게 안 좋아 보이던데?”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사인해달라고 말 걸면 주먹 날릴 거 같다던데?”

“!!!”

배우들은 눈을 크게 떴다.

안 돼!

듣고 있던 김춘식이 입을 열었다.

“잠깐.”

‘앗. 거짓말한 거 들켰나?’

“…진짜 팬대?”

“…….”

“…….”

“선배님….”

“아니. 태현이는 진짜 팬다면 팬다고….”

* * *

“너 어디 갔다 왔냐?”

태현은 케인을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밖에서 마실 것 좀 사오느라….”

“여기 스튜디오에도 먹을 것 있고 마실 것 있는데 지금 밖에 나갔다 온 거냐?”

케인은 찰칵하는 소리를 들었다.

태현의 잔소리 스위치가 켜지는 소리!

‘…망했다!’

“너 때문에 많은 스태프들이 기다릴 수 있….”

“팀장님! 팀장님 만났어! 팀장님!”

“누구?”

“여기 김 팀장님 있잖아! 우리 담당해 주셨던!”

“아. 그분.”

간신히 화제를 돌리는 데에 성공한 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그런데 너 때문에 스태프들이 기다릴 수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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