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297화 (1,296/1,826)

§ 나는 될놈이다 1297화

새치기를 당할 것 같다는 초조함에 플레이어들은 미친 듯이 분노를 터뜨렸다.

잘난 신진 랭커라지만 결국 혼자서 돌아다니는 플레이어.

보통 판온에서 혼자 활동하는 플레이어는 싸움 터졌을 때 불리했다.

극소수의 예외를 빼고는 당연한 것!

-실베드. 네게는 기회가 있다. 지금 살고 싶으면 당장 판온 끄고 김태현 곁에서 떨어져라.

-실베드야. 나도 인정이 있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내 인정을 짓밟으면 나도 깡패가 되는 거야!

-근데 실베드 말고 저기 옆에 있는 놈들 누구임?

-검은 바위단 같은데?

-또 뭔 듣보잡이야?

-검은 바위단 친목 길드 중 하나임. 애들 실력 나름 괜찮음.

-어쩌라고. 모여서 다굴 놓으면 실력이고 뭐고 그딴 거 없음. 검은 바위단 조질 사람들 구한다.

-내가 입찰한 김태현 입장권에 상회입찰하지 마라 다 죽여 버린다.

뜨거운 반응이 터져 나오는 동안, 태현은 묵묵하게 설명했다.

“지금 여기 섬이 어딘지 나도 모르는 상황이라. 탈출하려면 밖에서 누가 도와줘야 할지도 모르겠군.”

-!

-밖에서 도와주러 오면 손잡고 국왕 앞까지 가준다 이거지??

-가장 먼저 찾아오는 플레이어한테 고대 제국 대학 입장권을 준다 이거지???

태현은 딱히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보고 있던 사람들은 알아서 다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저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도와달라 이거 아닌가!

-기다려라 김태현! 내가 간다!

-다른 놈들은 꺼져! 내가 먼저 갈 거니까!

-그런데 그래서 저기가 어딘데??

* * *

프로스다스.

유명 패션 브랜드였지만 판온 관련자들에게는 좀 다른 의미로 통했다.

-팀 KL 유니폼 스폰서.

-판온 관련 가장 성공한 마케팅.

-모델에 관한 완벽한 투자.

그랬다.

태현이 팀 KL을 만들고 나서, 많은 기업들이 ‘게임단 스폰서십은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소규모 게임단은 좀….’ 하고 난색을 표할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게 프로스다스였던 것이다.

그 인연은 팀 KL이 화려하게 데뷔한 뒤로도 이어져, 다른 브랜드에서 거액을 제안하면서 유니폼 스폰서십을 요청해도 태현은 프로스다스와의 의리를 지켰다.

프로스다스 입장에서는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팀장님. 팀장님은 어떻게 팀 KL이 성공할 거라는 걸 확신하신 건가요? 소규모 게임단들이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요.

-허허. 이 장사는 사람을 보고 하는 장사지. 데이터와 숫자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눈동자를 직접 마주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야 해.

일을 진행한 김 팀장은 프로스다스 안에서는 전설 수준이었다.

일개 팀장으로 시작해서 한국 쪽 총괄을 맡게 될 정도로 출세한 것!

-아아…! 과연 그런 거군요! 앞으로 숫자가 아닌 사람의 눈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아, 아니. 그래도 숫자는 봐야지.

김 팀장은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사실 그도 팀 KL의 미래를 확신했다기보다는, 태현이라는 선수 개인의 팬이다 보니 주장한 것에 가까웠다.

‘김태현 인기를 생각해 보면 게임단 망하고 개인으로만 뛰어도 나중에는 남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팀 KL이 미친 듯이 잘 나가자, 덕분에 팀장의 안목도 높게 평가를 받았다.

프로스다스 안에서는 거의 신의 눈을 가진 사람 취급!

어쨌든 간에 프로스다스 입장에서 태현과 팀 KL은 대박이었다.

오죽하면 그 이후에 계속해서 판온 관련 브랜드 라인업을 늘려가고 있을까.

덕분에 프로스다스 기획팀들의 주 업무 중 하나는 바로 플레이어 발굴이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판온 플레이어를 미리 발굴해내는 것!

“이번에 LK 갤럭시 선수들을 섭외해서 광고를 해보려고 하는데 어떨까요?”

“2부 리그 팀인데 좀 안 어울리지 않을까?”

“말이 2부 리그지 곧 1부 리그로 올라올 팀입니다. 이때 미리 투자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아니면 ST 파이브는 어때? 1부 리그에 한국 팀이잖아.”

“하지만 ST 파이브는 인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건사고도 많고 게임도 지루한 편이고….”

-이미 스타가 된 선수는 어지간하면 다 스폰서가 있고 계약이 꽉꽉 들어가 있지. 뛰어난 마케터라면 스타가 되기 전에 찾아야 해! 제2의 김태현을 찾는 거야!

-제2의 김태현을 찾으라니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닙…?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원석을 찾으라는 거다!

맞는 말이었다.

판온 리그는 이제 첫해를 넘겼을 뿐이었고, 월드컵부터 시작해서 두 번째 시즌까지 수많은 기회들이 남아 있었다.

두 번째 시즌에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나타날지 몰랐다. 좋은 선수는 미리 투자해놔야 했다.

“이 플레이어는 선수는 아니지만 최근에 꽤 인기가 많습니다. 방송에 자주 나오고 팬들도 많고요.”

“이 플레이어는 뭘 주로 합니까? 희귀한 퀘스트를 깹니까?”

“아닙니다. 하늘섬 경주를 주로 합니다.”

“그게 대체 뭔 듣도 보도 못한 콘텐츠…? 그런 걸로 오래 갈 수 있을까요?”

“아니. 하늘섬 경주를 안 보셔서 그러는데 이게 정말….”

팀원들의 대화를 흐뭇하게 들으며, 김 팀장은 나갈 준비를 했다.

“팀장님. 오늘 일정 있으셨습니까?”

“오늘 팀 KL 촬영 있잖나.”

“촬영장에 이미 스태프들 다 가 있습니다만? 팀장님께서 굳이 가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냐. 그래도 내가 직접 챙겨야지.”

이런 건 밑의 부하직원들이 가도 충분한 일이었다.

현장에는 촬영 전문 스태프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팀 KL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김 팀장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팀이었던 것이다.

‘팀 KL이라면 직접 챙겨야지.’

“역시 팀장님… 저렇게 출세하셨는데도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존경스럽지 않냐?”

“그런데 저번에 KG 위자드 선수들 촬영할 때는 바쁘다고 안 가시지 않았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 * *

‘받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참 신기하단 말이지.’

간단한 메이크업을 마치고(특히 눈매를), 프로스다스에서 준비한 신상 라인업들을 본 태현은 의아해했다.

대체 왜 이걸 팀 KL 선수들한테 입히는 걸까?

유니폼까지는 이해가 갔다. 유니폼이야 아무리 옷걸이가 볼품없어도 일단 선수들이 입고 모델을 서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유니폼이 아닌 그냥 다른 신상들까지 굳이 팀 KL 선수들을 불러서 모델을 시켜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네?”

준비 마치고 긴장한 표정으로 호흡하고 있던 이다비는 뭔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무슨…?

“하지만 인기가 좋잖아요?”

팀 KL은 유니폼뿐만 아니라 다른 옷들에서도 압도적인 광고 효과를 자랑하고 있었다.

회사가 바보가 아닌 것이다.

정기적으로 계절 신상 나올 때마다 팀 KL 선수들 불러서 사진 한 방 꼭 찍고 영상 올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래. 그것도 생각을 해봤지.”

“?”

“이다비 너는 옷을 뭘 입어도 잘 어울리니까 사람들이 그걸 보고 솔깃해하는 거야. 그것 때문에 광고 효과가 있는데 회사가 착각하는 거지.”

“…….”

정말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이론!

이다비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살짝 어이가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태현 님. 태현 님도 옷 잘 어울리시는 편이거든요.”

눈에 콩깍지가 껴서 하는 말이 아닌, 객관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키가 크고 근육이 딱 붙어 있어 옷을 입으면 핏이 사는 것이다. 게다가 날카로운 눈매야 메이크업으로 가리면 됐으니….

맨날 게임에서 미친놈처럼 날뛰던 캐릭터만 주로 방송에 나와서 잊기 쉬웠지만, 태현은 이런 광고에서 서도 딱히 꿀릴 것 없는 사람이었다.

“이다비 넌 날 너무 과대평가한다니까.”

“태현 님이 이상한 거거든요…?”

‘저 인간들 뭔 쓰잘데기 없는 대화를 하는 거야?’

옆에서 지나가던 최상윤이 속으로 생각했다.

태현은 옆에 있는 직원을 보며 물었다.

“이 옷 잘 어울리는데, 촬영 끝나고 가져가도 됩니까?”

“네! 물론이지요. 김태현 선수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신다니 기쁩니다! 어떤 옷이 특히 마음에 드셨죠?”

“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하는 걸 보니 디자인 쪽에 참가했던 직원 같았다.

태현은 곤란해졌다.

‘이다비 입고 있는 옷 말한 거였는데….’

이런 협찬이나 홍보 관련 행사는 수입도 수입이지만, 한 가지 부가효과가 있었다.

그건 바로 협찬받은 옷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있는 옷이 충분한 태현이 프로스다스 옷을 탐내는 건 아니었고, 사실 이다비 때문이 컸다.

팀 KL의 수입도 있고, 파워 워리어 수입도 있고 해서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손꼽히게 버는 이다비였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씀씀이가 바뀌지 않는 것이다.

동생들 말고 자기 옷 좀 사라고 해도 안 사고, 사주려고 하면 펄쩍 뛰면서 거부하고, 안X탕면 말고 무X마 먹으라고 해도 안X탕면 먹고….

그렇다고 싫다는 사람 억지로 뭘 해줄 수도 없으니, 태현이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 정도였다.

“이다비 선수가 입은 옷이 괜찮아 보여서 갖고 가게 하고 싶었습니다만, 괜찮습니까?”

“아아~”

직원은 알겠다는 듯이 눈을 찡긋거렸다.

태현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 눈을 깜박였다.

뭐 어쩌라고?

직원은 민망해졌는지 헛기침을 했다.

“크, 크흠. 이다비 선수가 마음에 들어하신다니 정말 기쁘네요. 기능성과 디자인을 모두 충족시킨 이 스포츠의류 라인업의 혁명 같은 옷….”

“…그 문구 외우고 다니십니까?”

“홍보용이라고 당연히 외우고 있지요. 이걸 이다비 선수가 입어주시고 다닌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두 분 밖에서 돌아다니실 때 영상이나 사진 SNS에 올려주신다면 더더욱 감사하겠어요.”

“으음!”

이다비가 보통 저 옷을 입을 때는….

아마 신발 구겨 신고 머리 질끈 묶은 다음 장보러 갈 때 정도 아닌가…?

‘그걸 올려도 되나?’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갖고 가도 되는 거 맞습니까? 촬영용인데….”

“김태현 선수가 갖고 가신다면 안 되는 것도 가져가셔도 됩니다.”

진지하게 궁서체로 말하는 직원의 기세에 태현은 살짝 압도되었다.

* * *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아니, 저 오늘 촬영 때문에 왔거든요. 저도 선수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아, 아니….”

케인은 당황 섞인 표정으로 경비원을 쳐다보았다.

준비 도중에 편의점에서 음료수랑 과자 좀 사러 나갔다 왔는데 경비원이 막아서니 황당했던 것이다.

핸드폰도 안에 있는데!

“저… 제가 케인입니다.”

“…이보쇼. 사람을 뭘로 보는 겁니까? 내가 케인 선수 팬인데!”

“감, 감사합니다. 그러면 열어주셔야….”

“케인 선수는 당신처럼 안 생겼어!”

“아니 게임이랑 현실을 착각하면 어떡합니까! 당연히 다르지!”

경비원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케인은 앞으로 최대한 게임 캐릭터가 아닌 실제 얼굴로 돌아다녀야 하나 고민했다.

“뭐하십니까, 케인 선수?”

차에서 내린 김 팀장은 경비원과 실랑이하고 있는 케인을 보며 의아해했다.

케인은 눈물이 핑 도는 걸 느꼈다.

“…으헝헝! 저 사람이!”

“예? 뭔 일이….”

상황 설명을 들은 김 팀장은 대경실색했다.

팀 KL은 지금 프로스다스의 VIP 중에서도 VIP. 그런 선수한테 이렇게 무례하게 굴다니!

“당장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니. 제 팬이라니까 그러지 마십쇼. 제 팬인데.”

“…!”

김 팀장은 감동했다.

이런 훈훈한 선수를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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