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96화
평소에도 태현은 인기 있는 플레이어였다.
그런데도 개인 방송을 잘 하지 않는다는 괘씸함에 사람들은 분노해서 리플을 달곤 했다.
-김태현 님 지금 퀘스트 하고 있는 거 다 압니다 ㅡㅡ 방송 켜주세요 ㅡㅡ
-방송 안 켜주면 노드란체 가서 쓰레기 버리고 낙서할 거임.
└…??? 왜??? 왜???
└└골짜기에 버릴 수는 없잖아?
└└└골짜기 가서 버려!!
└└└└골짜기에 쓰레기 버리고 낙서하라니 너 길드 동맹 스파이냐?
-방송 안 켜면 케인한테 가서 시비 털 거임. 내가 김태현은 몰라도 케인한테는 시비 털 수 있다.
└허언증 심하시네요. 케인 선수가 얼마나 강한데.
└└멀리서 때리고 튈 거임. 어차피 케인 뚜벅이라 못 따라옴.
└└└…….
이런 리플들에도 불구하고 태현은 정말 어지간하면 개인 방송을 잘 하지 않았다.
판온 1 때부터의 뿌리 깊은 습관!
괜히 공개했다가 공격당하느니 아예 숨기는 게 나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차원이 달랐다.
평소의 몇십 배 되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방송을 틀어달라고 애걸복걸!
그나마 가장 가능성 높은 파워 워리어 계정에는 사람이 더 몰려왔다.
-김태현 어딨음?? 김태현 어딨음???
-김태현 씨 제발 손 한 번만 잡게 해주십쇼 국왕 앞에서 손 한 번만 잡겠습니다.
-나 길드 동맹 길드원인데 위치 말해주면 길드 동맹 비밀 창고 지도 위치 알려드림. 제발 말해주셈.
└너 누구야??
리플은 그냥 시작일 뿐, 아예 대놓고 진지하게 제안이 들어오는 곳도 많았다.
<더위가 찾아오는 요즘 건강 괜찮으신지요. 저희 진군 길드에서는 이번 퀘스트에 관해 파워 워리어의 협조를 너무나 구하고 싶어…>
<이번 퀘스트 협조만 해주시면 풍림화산 길드에서 게임 끝날 때까지 무기 제작해서 납품하겠습니다!>
<아카시아 길드는 예전부터 김태현 선수와 향기로운 인연을 유지해 온 길드로서…>
<모베송 길드는 마법사로 치면 미다스 길드보다 더 뛰어난 길드인데…>
평소에는 파워 워리어를 근본 없는 초보자들 집단이라고 무시하던 길드들에서도 닥치는 대로 제안이 날아왔다.
제발 한 번만!
제발 우리한테 기회를 줘!
다들 몸이 달아서 날뛰는 것도 당연했다.
<고대 제국 대학>은 언제 열릴지 모르고, 만약 열린다 하더라도 남이 먼저 들어가면 뺏길 수도 있는 것이다.
비전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만약 선착순이라면?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먼저 들어가야 한다!
“와. 파워 워리어가 이렇게 인기 있었던 건 처음인 거 같은데요.”
이다비는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물론 태현과 함께하면서 파워 워리어도 나름 멀쩡한 곳으로 성장하고 인기도 제법 얻었지만, 지금 반응은 그 차원이 달랐다.
판온에서 내로라하는 길드들 수십 군데에서 연락이 날아온 것!
길드 동맹이나 화이트 나이트, 미다스 길드 같은 초대형 길드에서도 연락이 날아왔다.
심지어 길드 없이 개인으로 떠도는 신진 랭커들한테도….
“나름 인기 좋았지 않아요?”
“음. 대형 길드들은 보통 파워 워리어 보면 무시를 해서요….”
이다비의 말에 이세연은 분노했다.
감히 어떤 놈들이!
“뭐하는 놈들인지 이름 말해주면 나중에 박살 내줄게요.”
“아, 아니. 그러실 거 없어요.”
이다비는 이세연을 달랬다. 이세연이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애초에 무시당한다고 흔들릴 정도로 이다비는 멘탈이 말랑말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상대한테서 골드를 뜯어낸다!
“그런데 이번에 김태현 관련으로 이렇게 연락이 많이 오면 그걸로 또 한 몫 챙길 수 있겠네요?”
“네? 아. 태현 님 관련으로는 거짓말 안 하는데요. 괜히 민폐 끼칠 수 있어서요.”
“…….”
이세연은 매우 민망해졌다.
이다비는 딱히 별생각 없이 말한 거지만, 말한 본인이 부끄러워진 것!
‘아니… 으읏.’
남이 보면 이세연이 되게 나쁜 사람 같지 않겠는가.
“주장님. 이번 건 주장님이 잘못한 겁니다.”
“닥치고 있어.”
“넵.”
류태수는 괜히 끼어들었다가 욕만 먹고 물러섰다.
유성 게임단 주장의 카리스마는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어쨌든 <고대 제국 대학>… 들어가 볼까요?”
이세연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태현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태현도 ‘고대 제국 대학 먼저 들어가서 둘러보고 있어~’라고 흔쾌히 허락을 해준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 관련된 거 있으면 좀 찾아줄래? 아. 그리고 찾기만 하고 건드리지는 마. 던전 같은 거 있어도 들어가지 마. 알겠어?
-알겠어. 걱정 그만해도 돼.
-아니야. 이세연. 똑바로 들어. 아키서스 관련된 석상, 동상, 신전, 아이템 등등… 다 건드리면 안 돼. 알겠지?
-…너 아키서스 교단 사실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정색하고 ‘아키서스 교단 찾아보되 엮이지 마라!’라고 말하는 태현 때문에 이세연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저는 나중에 태현 님하고 같이 들어갈게요.”
“…….”
이세연은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다비를 두고 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 플레이어들 눈깔 뒤집혀서 ‘김태현 찾아야 해!’ 이러는 모습이, 이다비 혼자 둬서 좋을 게 없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설득해.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알 게 뭐야. 하라면 하는 거지.
류태수는 납득했다.
확실히 시키면 해야지!
“이다비 선수. 김태현 선수도 먼저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다리셨다가 중요한 걸 놓치기라도 하면 손해 아닙니까?”
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동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류다영은 인상을 썼지만 그래도 입을 열었다.
힐러인 이다비를 위해서라면야!
“으음. 이다비 님. 김태현 선수도 먼저 들어가라고 말하셨습니다….”
“…동생아. 내가 한 말이랑 똑같잖아.”
“시끄러워. …플레이어라면 언제나 최선의 플레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설득 더럽게 못하는 남매의 모습에 이세연은 한숨을 쉬었다.
-김태현. 김태현. 이다비가 고집부리는데 좀 어떻게 해봐.
-응?
태현은 상황을 듣고 의아해하더니 이다비한테 말했다.
-이다비. 대학 들어가서 쓸 만한 스킬 좀 배워줘.
-앗. 네.
태현은 다시 이세연에게 귓속말했다.
-상황 해결됐어.
-…….
아니…!
말 한 마디로…!?
-나 지금 집채만 한 들쥐 잡아야 하니까 이거 좀 잡고 다시 부를게. 얘가 만만치 않네. 음파 마법을 주로 쓰는데 회피 뚫고 데미지 줄 정도야.
-응. …응? 뭐? 뭔 몬스터가??
이세연은 깜짝 놀라서 다시 되물었지만 태현은 사냥에 집중하는지 답을 하지 못했다.
태현의 회피를 뚫는 몬스터가 판온에 없는 건 아니지만, 필드에 돌아다니는 흔한 들쥐 몬스터가 뚫는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얘 어디 간 거야?’
* * *
“흠….”
숙소 테이블에 앉은 태현의 모습에, 다른 팀 KL 일원들은 긴장했다.
“역시 공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태현이가 저럴 정도면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극비인 퀘스트겠지. 알려지면 타격이 큰 그런 퀘스트.”
태현의 다른 일행에도 불똥이 튀었다.
보이기만 하면 ‘김태현 어딨어! 김태현 어딨냐고! 네가 집에 숨겨놨지! 으흑흑! 제발 같이 쓰자! 나도 같이 찾아왔다고 해줘!!’라며 달려드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팀 KL의 다른 사람들은 태현에게 ‘사람들에게 어디 있는지 위치 알려주면 안 되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태현은 대답 대신 가만히 앉아서 고민만 하고 있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문제가 있다.”
“?”
“나도 지금 내가 어디 있는 건지 모르겠어.”
“…….”
“…에이. 농담하지 마.”
“농담 아닌데? 너 내 옆으로 날아오고 싶냐?”
“아, 아니.”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구박받은 케인은 쭈그러들었다.
지금도 감독과 1:1로 굴려지고 있었지만, 태현과 함께하면 그 난이도는 몇 배로 뛸 테니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지옥보다 더 뜨거운 지옥은 항상 존재했다. 태현은 그걸 매번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하긴 어차피 넌 못 올 거 같다. 섬이 이상해서 그런지 공간이동 마법도 안 되고….”
공간이동 마법이 됐다면 바로 스크롤 찢고 탈출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섬의 신비한 기운은 그런 마법들을 방해했다.
어떻게든 비밀을 풀어낸 다음 빠져나가야 한다!
1왕자 목도 챙겨야 했고….
‘휴. 다행이다.’
“선배님. 케인 씨 안심한 표정 짓고 있습니다.”
“뭐? 이 자식 안심하고 있어? 감히!”
방심한 순간 바로 몰아붙이는 정수혁과 최상윤!
케인은 이를 갈았다.
이 자식들….
“흥. 너희들은 요즘 뭐하고 있냐? 나만큼 열심히는 못 할걸?”
“우리는 하늘섬 경치 구경하면서 즐거운 판온 하고 있는데.”
“맞습니다. 워라밸이라고 아십니까?”
“…….”
물론 거짓말이었다.
둘도 지금 하늘섬에서 처절하게 던전 돌면서 경주에 참가하고 있었다.
낮에는 던전, 밤에는 경주!
하지만 케인 앞에서는 힘든 일도 즐겁다고 해야 했다. 딱히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케인의 표정이 시무룩해지자 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통했구나!
“김태현. 쟤네만 좋은 거 하고 나는 감독님한테 괴롭힘당하고….”
태현은 무시하고 말했다.
“어쨌든 위치 어딘지 모르는데 공개할 수도 없지.”
“그냥 영상만 올리는 건?”
“?”
“영상만 올리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지 않을까?”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아니 케인이 이런 쓸모 있는 아이디어를?
“오기 전에 생각해 왔냐?”
“케인 씨가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기분 좋은데 이상하게 기분 나쁜데.”
케인은 중얼거렸다.
뭔가 욕먹는 기분이야!
“나쁘지 않군. 흠… 그래. 어딘지 모르는 곳에 있다고 하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그러면 정보도 더 얻을 수 있을 거고.”
태현은 검은 바위단과 실베드까지 같이, 외딴 섬에 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의 답답함도 좀 풀리지 않겠는가?
* * *
태현이 오랜만에 개인 계정을 열자 그 반응은 간단하게 나타났다.
[시청자가 너무 많습니다.]
[방송이 일시적으로 종료됩니다.]
-???
-??????
-?????????
-운영자 XXX야 서버 관리 안 하냐?? 그 돈 받아서 어따 쓰냐??
순간적인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설을 터뜨리는 플레이어들!
-야. 늦게 온 놈들은 나가! 너희들 때문에 렉 걸리잖아!
-재방송으로 봐. 재방송으로!
몇 번이고 시도를 하고 나서야, 간신히 개인 방송이 시작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특이한 섬!
그 모습에 다들 의아해했다.
-저기 어딘지 아는 사람?????
-현상금 건다! 1만 골드!! 1만 골드!!!
-야. 근데… 저 옆에 있는 놈들 누구임?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지금 태현이 어디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태현의 손을 잡고 에랑스 국왕 앞에 가느냐도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근데 미리 와 있는 새끼가… 있네…?
-저 새끼들 대체 뭐하는 듣보잡 새끼들임???
-어. 저거 실베드 아닌가?
-실베드네!
검은 바위단보다, 최근에 유명세를 탄 신진 랭커인 실베드가 좀 더 주목을 받았다.
-저 저 저 저 조금 반짝했다고 근본 없는 자식이 어디서 파렴치한…!
-실베드는 양심이 없나요?
-지금 저거 같이 있는 게 저렇게 욕먹을 짓이야? 너무한 거 아니냐 다들?
-응. 욕먹을 짓이야.
-죽여 버린다 실베드. 당장 뒤지기 싫으면 위치 까고 떨어져라.
-실베드 너 보이면 깃발부터 꽂을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