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95화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모두 당황했다.
뭐라고?
-크윽. 머리가 아프고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게….
“…저거 기억을 잃은 거 같은데?”
“야. 어떡하냐?”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원래 태현이 사제를 붙잡으려던 목적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상대가 기억을 잃었다면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그냥 처치해야지.”
“하긴. 김태현. 처치할까?”
“아니.”
“?”
태현이 거부하자 다들 의아해했다.
여기서 처치하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판온에서 NPC가 기억을 잃는 경우는 종종 있지. 그럴 때마다 처치하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야.”
“…어?”
“아니, 종종 없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기억 잃은 NPC를 만나본 사람은 없었다.
진짜 종종 있나?
‘아키서스 교단에 기억 상실한 사람이 있나 본데?’
‘그런 놈이 왜 있어?’
기억 상실할 정도로 다쳤으면 은퇴해야지 왜 교단에…?
다들 의아해하는 사이 태현은 행동에 나섰다.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보여주는 게 나았다.
“물론 네가 누군지 안다.”
-아…! 저는 누굽니까?
“너는 아키서스 교단….”
[카르바노그가 한 번 써먹었던 방법을 또 써먹는다고 감탄합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다른 교단의 영웅들한테 써먹었던 방법!
너는 사실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었단다!
…물론 그 대상이 이번에는 악신 교단 상대로 바뀌긴 했지만, 효과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었다.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사기치면 이야기가 편해지지.’
사제 NPC를 공짜로 부려먹는 건 물론이고 혼란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냥 처치하는 것보다는 몇 배는 나았다.
-지금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사기치려는 거냐?
-맞는 거 같은데??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뭘하나 했더니 NPC 상대로 사기치고 있잖아!?
-저게 될 리가 없잖아. 뭐하는 거냐?
-기다려봐. 김태현이 아무 생각 없이 저런 걸 했겠냐? 당연히 생각이 있으니까 했겠지.
길드원들은 기대 반, 걱정 반 섞인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과연 저게 통할까?
-아! 잠깐. 아키서스 교단! 그 이름은 기억이 납니다!
“오. 그래?”
됐다!
…라고 생각했던 태현은 멈칫했다. 뭔가 상대의 반응이 좀 달랐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 속았으면 반응이 좀 달라야 하지 않나?
‘아키서스 교단이 뭐하는 교단입니까?’ 같은….
-그렇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이름. 그 이름은 바로 원수의 이름입니다!
“…….”
“…….”
쓸데없는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데르고 교단 사제는 다른 건 기억 못 해도, 아키서스의 이름을 듣자 원수라는 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윽… 머리가… 아앗! 이데르고 님…! 저는 이데르고 님을 믿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랬던 거 같습니다! 이데르고 님의 명령으로 아키서스 교단을 멸망시켜야 한다고….
이름, 직업, 기타 등등은 다 잊어먹어도 확실하게 아키서스 교단은 기억하고 있는 모습에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날로 좀 먹으려고 했더니 이렇게 되나!
-그런데 아키서스 교단 이름은 왜 꺼내신 겁니까?
“…그야 나도 아키서스 교단을 멸망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이데르고 교단 소속이니까 그렇지.”
“!?!?!??!”
태현이 NPC들을 갖고 노는 솜씨는 이미 경지에 올라 있었다.
상대가 기억 좀 되살아났다고 해서 멈추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태현은 바로 이데르고 교단으로 커브를 틀었다.
-야. 이데르고 교단 사칭해도 되는 거 맞아??
보통 교단들은 이런 부분에서 매우 까다로웠다.
교단 욕하다가 걸리거나, 다른 교단 믿다가 걸리거나 같은 실수를 하면 바로 [공적치 포인트 떨어집니다] [평판 떨어집니다] 뜨는 것이다.
그런데 태현은 그 수준을 뛰어넘어서 아예 다른 교단 사칭하면서 자기 교단 멸망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
-별로 상관없다.
-…아니…!
진짜 상관없나!?
길드원들은 상식이 붕괴되는 현장에 경악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상대가 기억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입니다!]
[……]
[……]
[설득에 성공합니다!]
-역시! 이데르고 교단 소속이셨군요! 어쩐지 이데르고 님의 힘이 느껴진다 했더니!
“그래. 이렇게 만나서 기쁘다! 우리 힘을 합쳐 아키서스 놈들을 멸망시키자!”
-아키서스를 토벌하라! 아키서스를 토벌… 으윽.
외치던 사제가 멈칫했다.
“왜 그러지? 아키서스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방법들이 떠오르기라도 했나? 있으면 자세하게 말해보도록.”
태현은 메모할 준비를 하고 사제를 다독였다.
아키서스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법이 있다면 미리 선수를 칠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라… 지금 문득문득 떠오르는데, 지금 제 당장의 목표는 아키서스 놈을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왕자를 잡는 거였습니다.
“!”
생각해 보니 이데르고 교단 NPC들은 1왕자를 잡으러 왔다가 사고로 여기로 날아온 상황.
태현보다 1왕자를 우선시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왕자는 바로 에랑스 왕국의 1왕자, 존을 말하는 거겠군.”
-맞습니다!
[이데르고 교단 사제의 기억이 조금 되돌아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이데르고 교단 내 공적치 포인트가 오릅니다!]
‘…저거 공적치 포인트 얻어서 쓸 수 있나?’
안 들키고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전에 들킬 것 같은데….
태현이 이데르고 교단 신전 가서 ‘저기 공적치 포인트 교환하러 왔습니다’ 하면 반응이 매우 격렬할 것이다.
“그래. 1왕자는 이데르고 교단을 매우 핍박했지. 최근에 신전을 토벌한 것도 놈의 짓이었고.”
-아주 죽일 놈입니다. 감히…!
“?”
옆에서 듣고 있던 길드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 토벌한 건 네가 했잖아…?
자기가 한 짓을 은근슬쩍 떠넘기는 솜씨에 길드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 사제 NPC와 짧은 대화만 했는데도 너무 현란해서 어지러울 정도!
탐험가 플레이어, 할러스는 눈을 크게 뜨고 받아 적었다.
‘이건 배워야 한다!’
사실 처음에 태현을 따라올 때만 해도 크게 내키지 않았던 할러스였다.
-김태현 따라다니면 내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여줄 수가 없잖아!
-누군 좋아서 하는 줄 아냐? 너 저번에 김태현하고 같이 플레이할 때 없었지? 경험한 우리도 가는데 그냥 따라와!
-크윽….
판온의 탐험가들은 자부심이 있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가장 먼저 퀘스트를 찾아서 깬다!
퀘스트가 막혀서 헤맬 때 가장 믿음직한 건 전사도, 마법사도, 도적도 아니었다. 바로 탐험가였다.
숙련된 NPC 상대 스킬과 단서 수색 스킬들로 퀘스트를 해결하는 탐험가는 일종의 해결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태현을 따라다니면 그런 활약을 할 수가 없었다.
퀘스트 주도도 태현이 할 거고, 저번에 들은 걸 보니까 무식하게 사냥만 할 것 같고….
그런데 여기 와서 본 모습은 전혀 달랐다.
세련 그 자체!
칼 한 번 안 휘두르고 NPC를 갖고 놀면서 퀘스트를 쭉쭉 뽑아내는 솜씨에 할러스는 감동했다.
‘김태현은 탐험가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탐험가를 했으면 퀘스트 몇 개는 더 깼겠는데?’
플레이어들이 아쉽게 실패한 퀘스트들도 태현이 있었다면 깰 수 있었을 것 같다!
흔히들 태현하면 딜러의 이미지가 강해서 착각하기 쉬웠지만, 이렇게 보니까 딜러만 아니라 다른 것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 보였다.
“너 왜 아무 말도 없이 그러고 있냐?”
옆에 있던 길드원들이 할러스를 보며 의아해했다.
왜 이러지?
“너….”
‘헉. 내 생각을 들켰나?’
“오기 싫었는데 억지로 와서 그러는 거야?”
“미안하다. 할러스. 같은 길드원끼리 도와야 한다지만, 하기 싫은 걸 억지로 데리고 오는 것도 안 되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내가 사과할게. 할러스.”
“…!”
길드원들은 할러스가 불만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 오기 전에도 할러스는 참가하고 싶지 않아 했으니까.
게다가 할러스 같은 탐험가 직업은 김태현과 같이 돌아다니는 게 지루할 수밖에 없을 터.
태현이 미친놈처럼 던전을 돌고 경험치를 잘 먹긴 했지만 탐험가 직업에게는 다른 게 중요한 것!
“…그, 그렇게 사과할 건 없는데.”
할러스는 슬쩍 대답했다.
오기 전에 싫다고 했던 것 때문에 이제 와서 ‘아니야! 김태현 옆에서 구경하는 거 재밌는데??’ 같은 말을 하기가 뭐했던 것이다.
체면의 문제!
“할러스가 저러는 거 보니까 더 이상한데.”
“쟤 정말 여기 있기 싫은가 보다.”
“할러스. 꼭 탈출 방법 찾은 다음에 돌려보내 줄게. 다음에 김태현하고 엮이게 되면 넌 꼭 빼주고.”
“…다음에? 다음이 또 있어?”
“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불길하게 그딴 말 하지 마라….”
길드원들의 수군거림에 할러스는 표정 관리하며 말했다.
“아니. 같은 길드원인데 다음에도 같이 해야지.”
“다음 같은 거 없다니까. 불길한 소리 하지 말라고.”
“어쨌든 김태현한테 말 좀 걸어보자. 할러스한테 할 거 만들어달라고.”
길드원들은 할러스를 위해 태현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퀘스트 관련 일들을 좀 맡겨달라고!
…원래라면 태현한테 이런 걸 말하는 건 겁이 나서 하지 않았겠지만, 같은 길드의 사람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할러스는 다급히 말렸다.
지금 태현이 퀘스트하는 거 신나게 구경하면서 배우고 있는데 산통을 깨려고 하다니!
“아냐. 할러스. 사양할 거 없어. 지금 네가 아무것도 못 해서 속이 상한 거 다 안다.”
“같은 길드원을 위해서라면 김태현한테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지.”
* * *
<고대 제국 대학>!
갑작스러운 고대 제국 시절 건물이 나오자 플레이어들은 당황스러워했다.
-고대 제국 대학이 뭐하는 건물이죠?
-고대 제국 대학 아시는 분? 정보 구합니다. 10골드에 살게요.
└고대 제국 대학은 고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오던 유서 깊은 대학 건물입니다. 10골드 감사합니다.
└└…그게 다야?
하지만 혼란도 잠시, 플레이어들은 알아서 정보를 구하고 모으기 시작했다.
-고대 제국 대학 대박이다!! 온갖 직업 비전 스킬들 다 있는 곳이래!
비전 스킬 갖고 있는 NPC 하나 찾으려면 판온 대륙을 뺑뺑 돌아도 힘든 판에, 그런 스킬들이 우르르 모여 있다니.
플레이어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진짜로??
-무조건 들어간다. 바로 에랑스 왕국부터 간다!
-비전 스킬 뭐 있는데? 누구 있는데??
-야. 근데 지금 안 열려서 못 들어가….
-…!
그랬다.
고대 제국 대학이 얼마나 좋든 간에 지금 플레이어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현재 입장할 수 없습니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국왕이 아직 입장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 <교황을 찾아서…>]
[아키서스의 교황을 찾아올 경우 먼저 입장할 수 있는 특권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실종된 아키서스의 교황을 찾아오는 것!
국왕이 준 퀘스트에 사람들의 눈이 뒤집어졌다.
-김태현!! 김태현 씨!!! 김태현 씨 어디 계십니까!!
-김태현 어디 있냐!?
-이것도 김태현이 유도한 거 아니지?
-그걸 어떻게 유도해? 그게 말이 되냐?
-그럼 이제까지 김태현이 한 건 말이 되는 일이었고?
-…시끄럽고 김태현이나 찾아! 무조건 먼저 데리고 가야 해!!
팀 KL 공식 계정, 파워 워리어 계정 등 접촉 가능한 모든 곳에 어마어마한 연락이 쏟아졌다.
어디 있니!
제발 한 번만 만나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