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291화 (1,290/1,826)

§ 나는 될놈이다 1291화

“없지?”

“…….”

진상 부리고 싶어도 지금 플레이어 한 명 사라진 걸 본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목숨이 여러 개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절대 불가능!

“훗. 멍청한 놈 같으니.”

“?”

“알다시피 김태현은 판온에서도 손꼽히는 근접형 딜러. 그런 김태현 앞에서 깝칠 때는 거리를 두고 버프를 건 다음 말했어야지. 안 그러면 저렇게 죽는 거다.”

“오… 잘 아는 거 같은데, 레벨이 몇이세요?”

“64.”

“…….”

듣고 있던 플레이어는 질색한 표정으로 거리를 벌렸다.

아는 척하면서 떠들길래 ‘와 레벨 높은 랭커인가 봐’ 했는데 그냥 미친놈이었잖아!

하지만 레벨 64인 플레이어는 평범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여기입니다! 여기!”

“진짜 김태현 님 오셨어??”

멀리서 나타나는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

놀랍게도 그들 사이에 있는 건 신진 랭커 중 하나인 실베드였다!

그걸 본 사람들은 놀라서 수군거렸다.

“실베드도 있었나?”

“실베드 여기서 공격받아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무슨 헛소문을 들은 거야? 실베드 같은 랭커가 왜 죽어.”

“실베드가 끌고 다니는 파티인가. 부럽다.”

신진 랭커 중에 유명한 실베드였기에 사람들은 실베드와 그의 파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자식!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죽고 싶어?”

“아… 아니. 너무한 거 아니냐 이거? 지금 내 개인 방송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파워 워리어 이미지가….”

“우리가 이미지 신경 썼으면 파워 워리어 가입을 했겠어?”

“그보다 너 이 자식 개인 방송 끄고 있잖아. 우리가 그런 것도 체크 안 할 줄 알았냐?”

“…….”

실베드는 파티장이 아니라, 파티 사이에 붙잡힌 포로였던 것!

“?!?!?”

“뭐, 뭐야?”

그리고 그 실베드를 끌고 나타난 위풍당당한 파티는 바로 큰도끼전사가 이끄는 파워 워리어 파티였다.

레벨 64인 플레이어는 신나서 손을 흔들었다.

“여기입니다!”

“진짜 김태현 님 왔네?!”

“이런 누추한 곳에 저런 귀한 분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놀라서 수군거렸다.

태현은 지금쯤 밖에서 국왕과 함께 퀘스트를 깨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 구하러 왔대요.”

“과연…!”

주변 플레이어들의 설명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감동했다.

그런 따뜻한 사정이…!

그걸 듣고 있던 실베드가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난 이제 좀 풀어놔도 되지 않냐?”

“안 돼 이 자식아.”

“어디서 도망치려고. 죽고 싶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실베드는 속으로 울컥했다.

나름 신진 랭커로서 주목 받고 있는 그로서는 처음 당하는 굴욕!

길드 동맹 같은 대형 길드들과 충돌하면서도 이런 경험은 한 적 없었는데….

태현은 소란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을 알아보았다.

“어. 너희들도 와 있었냐?”

“예!”

“그런데 그건… 뭐하고 있는 거냐?”

태현은 실베드 옆에 주렁주렁 달린 걸 보고 물었다.

저거….

폭탄 아냐?

“<골짜기 폭탄 망토>입니다.”

“뭔지 묻고 싶지 않지만 그게 뭐지?”

“이 끈을 잡아당기면 터지는 장비입니다!”

“…….”

“…….”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저주받은 장비들도 판온에 많긴 했지만 저건 그 수준을 뛰어넘었잖아!

“터지면 어쩌려고… 일단 풀어.”

“앗. 예.”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순순히 풀어줬다. 태현은 폭탄 망토를 회수했다.

뭐 이런 미친 아이템을 만들었지?

“그보다 우리 만난 적 있었나? 얼굴이 낯이 익은데.”

“…!”

실베드는 감사해하다가 분노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실베드가 1왕자 밑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나름 공적치 포인트 써서 에랑스 왕국 군단 이끌고 다니던 랭커였다.

그러다가 태현 잘못 만나서 좀 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잊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김태현…! 잊은 척 하지 마라! 우리가…!”

“우리가?”

말하려던 실베드는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좋은 추억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하면 폭탄 망토 다시 입는 거 아니야?

뒤에 있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수상쩍다는 듯이 말했다.

“왜 아는 척을 하는 거지?”

“글쎄. 사기를 치려는 걸지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날 모를 리가 없지 않냐!”

“…….”

주변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말고, 일반 플레이어들도 수군거렸다.

“지금 김태현 앞에서 자기 유명하다고 자랑한 거임?”

“저런 미친놈은 처음 본다.”

“돌았나 봐….”

대굴욕!

실베드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데 얘는 왜 잡고 있던 거지?”

“아. 그게….”

원래 큰도끼전사가 이끄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실베드를 PK하려고 했었다.

가진 것도 많고 악명도 제법 있는 실베드는 걸어 다니는 보물창고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실베드는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퀘스트! 퀘스트가 있어! 1왕자의 거처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퀘스트!

-믿어도 되는 건가?

-지금 단서 모으는 중이었다. 다 모으면 통로의 문이 열릴 거라고!

-그래. 믿어주마. 자. 이 망토를 입어.

-…? 입었는데 이게 뭔… 어? 폭탄 망토라니. 뭐지? 공격에 폭발 데미지가 주나?

-아니. 당기면 폭발하는 망토야.

-…….

“오… 그런 퀘스트가?”

“잘 됐네요. 마침 태현 님 오셨으니 이놈을 양보해드리겠습니다.”

“아니. 너희들이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뺏을 수는 없지.”

“아닙니다. 저희가 이제까지 받은 게 얼마인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

태현과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훈훈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물론 실베드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대화였다.

퀘스트 내 거야 이 새끼들아…!

‘그래도 다행이군.’

실베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과 목소리, 행동 하나하나에 광기가 번뜩이는 파워 워리어 놈들과 달리….

태현은 그래도 좀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랭커 아닌가. 그런 사람이 파워 워리어 놈들처럼 미친 짓을 하지는 않으리라.

게다가 여기에 플레이어들 구하러 왔다고 했으니, 실베드도 이 기회를 틈타 밖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

“어쨌든 실베드. 고맙다.”

“어… 뭐가 고맙다는 거지?”

“1왕자 거처로 들어가는 퀘스트 공유해 준다며? 잘 받겠다.”

마침 요새 중심부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저런 퀘스트가 있었다니.

태현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아, 아니. 잠깐.”

“뭐 불만이라도 있나?”

“불만 있으면 이 망토 다시 빌려줄까?”

실베드가 말 한 마디 하기도 전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려고 했다.

태현은 그들을 말렸다.

“너무 그러지 마라. 물론 저 실드란 플레이어가 광고한 거 때문에 여기 속아서 온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실드가 아니라 실베드요.”

“그래. 실베드. 어쨌든 판온에서 그런 일은 꽤 많이 일어나잖아.”

원래 사람이 계속 차갑게 굴다가 한 번 따뜻하게 대해주면 그게 좀 더 감동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이 상황에서 저렇게 말해주니 이제까지 당한 것과 별개로 감동이 사무친다!

“그러면 실베드 빼고 플레이어들 탈출시켜주고 올 테니까 다들 기다리라고.”

“예!”

“…….”

가만히 있던 실베드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감동받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딱히 이득 본 게 없잖아…?

* * *

[모험가들을 탈출시켰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필립 3세의 힘이 더욱 오릅니다!]

[귀족들이…]

[……]

[필립 3세가 매우 만족해합니다!]

플레이어들을 전부 탈출시킨 태현은 감사인사란 인사는 다 받고서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1왕자 거처로 들어가는 퀘스트 조건이 뭐지?”

1왕자가 머무르는 곳은 드넓은 요새 한가운데에 위치한 탑이었다.

대기하고 있는 NPC들이 만만치 않아 태현도 잠입할 엄두를 쉽게 내지 못했던 곳!

여길 들어갈 수 있다면 어떤 퀘스트든 감지덕지였다.

“그게 좀 까다로운데….”

“조건이나 말해봐.”

“일단 여기 돌아다는 귀족 NPC들 중에서 일정 지위 이상 갖고 있는 귀족 NPC 다섯 명에게 친밀도 포인트를 쌓아서 열쇠를 받아야 해. 이게 만만치 않아서 지금 간신히 한 개 얻었는데 나머지 4개를….”

“그렇군.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이건 혼자 갔다 오는 게 낫겠다.”

“?”

실베드는 고개를 돌렸다.

태현 뒤를 따라다니던 거지 꼴 하인들.

처음에는 당연히 NPC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어….

플레이어다?

“검, 검은 바위단?”

실베드는 깜짝 놀랐다.

<검은 바위단> 길드는 실베드도 이름을 들어본 적 있었다.

대형 길드에 들어가는 대신 개인 플레이로 실력을 보여주는 신진 랭커들과, 소규모 친목 실력파 길드인 <검은 바위단>은 궁합이 꽤나 맞았던 것이다.

가끔 같이 파티 플레이 했던 적도 있었는데….

-아니, 저 자식이 왜 알아보고 난리야?

-쪽팔리게….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눈치 없는 실베드의 반응에 분노했다.

“검은 바위단 맞지? 검은 바위단이네! 당신 필이잖아?”

“…크흠. 크흠.”

“실망이군. 검은 바위단.”

“이 자식이 자기는 파워 워리어한테 잡혀서 폭탄망토 차고 있던 주제에 누구한테 실망을 해?”

검은 바위단 길드원이 발끈했다.

친분이 있다지만 저딴 폭언은 참아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인으로 위장한 것보다는 파워 워리어한테 붙잡혀서 폭탄망토 찬 게 더 수치스러운 일!

하지만 실베드는 하인 옷차림을 말한 게 아니었다.

“김태현 밑으로 들어가다니. 자기들은 누구한테도 굴복하지 않는다고 폼을 잡더니….”

“…아니야 인마!!!”

“누가 누구 밑으로 들어가!”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아까보다 더 발끈했다.

이런 미친 자식이 미친 소리를!

“너 진짜 뒤지고 싶냐?”

“아… 아니. 들어간 게 아니었다고?”

“그냥 서로 목적이 맞아서 협력하고 있는 거다!”

“그, 그렇군. 미안하게 됐다. 복장도 그래서 착각했군.”

“…….”

“그런데 김태현은 퀘스트를 어떻게 깨려고 혼자 간 거지? 친밀도 올려야 해서 혼자 깰 수가 없을 텐데.”

귀족 NPC들의 친밀도를 올리는 건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 귀족의 성격에 따라 온갖 퀘스트들을 다 해내야 조금 오르는 것이다.

몬스터 사냥이 될 수도 있었고 제작 의뢰가 될 수도 있었고….

그런데 그걸 혼자서 하러 가는 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침 태현이 돌아왔다.

“퀘스트 확인하고 온 거냐? 누구부터 깰 거지?”

“열쇠 다 얻어왔다. 통로 입구로 안내해.”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뭐 김태현이라면….”

“저렇게 해도 이상할 거 없지.”

실베드만 혼자 바보가 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내… 내가 이상한 건가?

* * *

[<1왕자의 철혈탑>에 입장하셨습니다!]

[<탑의 지하 통로>로 들어왔습니다. 발각될 경우 공격 받을 수…]

태현과 하인, 아니 일행들은 빠르게 통로를 내달렸다.

다행히 지하 통로에는 별다른 감시가 없었기에 진행이 빨랐다.

태현은 <신의 예지>를 사용해 출구와 이어지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아냈다.

“여기군. 먼저 올라갈 테니 대기하고 있어라.”

태현이 올라갔다.

-올라와도 좋다.

“오. 별 거 없나 보다.”

“다행이네.”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올라갔다. 그리고 경악했다.

1왕자의 호위로 보이는 기사들이 전부 다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레벨 600, 700은 넘을 텐데 대체 어떻게!?

‘김태현 이 자식 진짜 괴물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걸 어떻게 혼자서 그 짧은 사이에!?’

“올라 왔을 때 다 죽어 있더군.”

“…아!”

플레이어들은 민망하다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