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89화
밖에서 외친다고 안에 들릴 리 없었다.
이런 의사소통도 능력 중 하나!
다른 팀원들에게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하느냐도 전략이었던 것이다.
-빠른 사자 소생, 투쟁의 본능, 어둠의 시야!
이세연은 쓰러진 오크들을 바로 언데드로 일으켜 세우며 상황을 노렸다.
지금 두 팀 사이에는 치열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크 vs 플레이어 vs 플레이어!
워낙 정신이 없었기에 상대를 직접 노리기보다는 일단 수비적으로 버티는 게 우선이었던 것이다.
일본 쪽 팀은 미리 토템부터 시작해서 깔아놓은 게 많아 훨씬 더 유리한 입장.
리더인 이세연으로서는 책임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류태수 뒤로 빠지고 류다영 앞으로 들어가! 어그로 부족해! 어그로 끌어!”
“예!”
“오크들 숫자 절반으로 줄면 바로 공격 들어갈 거야! 언데드 앞에 세울 테니까 사이에 붙어서 공격해!”
옆에 있던 이다비는 쉬지 않고 류다영에게 버프와 회복기를 걸어줬다.
솔직히 팀 KL 때보다 훨씬 더 쉬운 편이었다.
팀 KL 때는 케어해야 할 사람이 여럿이었는데, 여기서는 탱커인 류다영만 집중적으로 케어하면 나머지는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다.
류태수도 이세연한테 욕 먹어가면서 혹독하게 단련된 선수였기에 이런 상황에서 힐러에게 부담 가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다.
“길 만들어졌다! 류태수 밀고 들어가! 류다영 버텨! 절대 물러서지 마!”
드디어 오크들의 숫자가 줄고 길이 만들어지자 이세연은 팀원들과 함께 총돌격에 들어갔다.
서로 부딪히는 영혼의 한타!
-부딪힙니다! 부딪혔습니다!!
└일본 팀 토템이 아직 다 파괴되지 않은 상태인데 성급한 거 아냐?
└└언데드들이 막고 있어! 언데드들로 막으면 된다고 판단 내린 거임!
한국 팀이 들어오자 일본 팀도 기겁해서 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막아야 한다!
“모여! 떨어지지 마!”
“탱커 뒤로 붙은 다음 시간 끌어! 시간 끌면 우리가 유리해!”
탱커끼리 부딪히고 그 뒤에서 딜러가 서로 살벌하게 공격을 퍼붓는 도중.
뒤에서 태현이 돌아왔다.
* * *
-아, 늦었습니다! 못 빠졌어요! 김태현 선수 합류합니다! 뒤에서 합류합니다!
-돌아온 김태현 선수! 한 명 잘라내나요? 잘라내나요?? 잘라냅니다!!
오크들로 혼란스럽고, 디버프도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데다가, 토템들이 연신 저주를 퍼부어댔지만….
태현은 도착한 순간 판단을 끝냈다.
사방에서 메테오 날아오고 용암이 차올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게 태현의 멘탈!
태현은 바로 힐러부터 노렸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김태현 왔어!! 도와줘!”
같은 팀 힐러의 비명에 다른 동료들은 허겁지겁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이세연이 그걸 내버려 둘 리 없었다.
-고대 흑마법의 힘, 타락한 자의 족쇄!
[<고대 흑마법의 힘>으로 인해 마법의 효과가 크게 증폭됩니다!]
[<타락한 자의 족쇄>로 인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일순간 묶여 버리는 일본 팀!
상대방이 가장 싫어할 만한 순간에 정확하게 필요한 스킬을 써버리는 그 실력에, 당하는 선수들부터 시작해서 보고 있던 팬들까지 감탄했다.
-와. 둘이 같이 있으니까 진짜 개짜증 나네.
-우리나라 대표팀이지만 좀 양심이 없게 느껴지지 않냐?
-알 게 뭐냐 이기면 그만이지!
-하긴 그건 그래!
억울하면 너희들도 좋은 선수 귀화시켜라!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폭발로 인해…]
[……]
[……]
이세연 덕분에 태현은 확실하게 힐러를 잡아낼 수 있었다.
‘…저 마법 저거 나한테 쓰려고 준비한 거 같은데…?’
좋긴 한데 이상하게 찜찜한걸?
* * *
1라운드는 그 뒤로 별다른 반전 없이 허무하게 끝났다.
한 번 밀린 일본 팀은 다시 모여서 버티려고 했지만 그리 쉽지 않았다.
나름 숨겨 놓은 스킬들을 꺼내서 버티려고 했지만 태현과 이세연은 그걸 맞받아치면서 정면으로 누르고 옆에서 뒤흔들면서 정신없이 몰아붙였다.
완벽한 승리!
“와. 힘들게 이겼다.”
“확실히 힘들었어요. 월드컵이라 그런지 다들 만만치가 않은 것 같아요.”
“…???”
태현과 이다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 힘들게 이겼나?
“이 정도면 되게 쉽게 이긴 편 아니야?”
“되게 쉽게 이긴 편 아닙니까?”
“저도 이 정도는 쉽게 이긴 것 같습니다만?”
태현과 이다비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둘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면 매우 쉽게 이긴 경기가 맞는 것!
도중에 변수도 없었고, 위험한 순간도 거의 없었고….
물론 긴장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이런 경기라면 당연히 하는 긴장 아니겠는가!
이런 경기에서 긴장 자체를 안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말이 안 됐다.
“어… 어렵게 이긴 편 아닌가?”
“어렵게 이긴 거 같은데요…?”
“?????”
그제야 셋은 저 둘이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진심으로 저러는 거였습니까?’
‘저런 양심 없는….’
이세연은 황당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물론 첫 시즌 때처럼, 상대방이 어떤 공격을 하든 살벌하게 밀고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죽이고 나오던 시절에 비하면 힘들게 싸우긴 했다.
지금 1라운드를 돌려보니 태현도 상대 탱커 하나를 잡기 위해 꽤나 고생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그게 정상이었다.
상대도 레벨 똑같고 스킬 있고 머리 있는데 갖고 노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적 팀 선수는 유리한 위치에서 싸우는데도 태현한테 데미지를 별로 주지도 못했다.
“으음. 나름 약팀이라고 평가받은 일본 쪽 팀이 이러면 중국이나 캐나다는 더 심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둘이 심각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던 류태수는 속삭였다.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쟤는 저래야 실력이 나올 거 같으니까 그냥 내버려 두자.”
생각해 보니 태현이 미친 듯한 능력을 발휘하는 건 저래서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판을 끌어야 한다는 책임감!
하는 말은 말도 안 됐지만….
* * *
“으음.”
“으으음!”
“크으으음….”
“다들 말이나 좀 해보지? 자꾸 끙끙 앓는 소리만 내지 말고.”
태현 일행은 몰랐지만, 1라운드 끝나자마자 태현 쪽 경기는 수많은 선수들이 바로 영상 돌려가면서 보고 있었다.
세계수 투기장에서의 첫 경기인 것도 있었지만, 한국 대표팀의 플레이가 어떤지 보려는 것도 컸다.
-팀 KL도, 유성 게임단도 강한 팀이었지만 그 둘을 섞은 데다가 새로운 선수까지 넣었으니 의외로 합이 잘 안 맞을지도 모른다.
-김태현과 이세연은 판온 1에서부터 사이가 안 좋다며? 한 팀에 리더가 둘일 수는 없으니 둘이 싸울지도 모르겠군.
-아니 제발 둘이 좀 싸웠으면 좋겠다! 밸런스 패치 좀 해라!
…같은 마음도 없잖아 있긴 했다.
그러나 실제 경기는 충격적이었다.
강한 선수들만 모아 놓으니까 그냥 더 강해진 것!
새로 등장한 류다영은 안정적인 데다가 스킬셋도 다양해서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케인보다 더 안정적인 거 같았다.
류태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광전사 타입인데 이세연이 유성 게임단 때부터 알아서 잘 통제하고 있었고….
힐러 역할인 이다비 또한 빈틈이 없어 보였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팀 KL 선수들 케어하면서 경험이 쌓일 대로 쌓인 이다비는 한국 대표팀처럼 안정적인 선수들을 케어하게 되자 훨씬 더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래도 좋은 게 하나 있다.”
“?”
“김태현이 저번처럼 혼자 못 날뛰지 않나.”
“…….”
“그건 정신승리 같은데….”
다른 선수들의 중얼거림에 말을 꺼낸 사람이 발끈했다.
“뭐라도 좋은 점을 찾아야지! 그러면 그냥 항복할 거냐!”
“그, 그래. 그래. 김태현이 장비가 없으니까 HP도 깎이고 저주도 걸리고 인간적이 됐네.”
‘대회 평균 킬스탯이 2배에서 3배로 놀긴 하지만….’
‘그보다 저렇게 거칠게 플레이하는데 데스가 0인 게 충격적이다.’
“어떻게든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 봐라.”
“김태현과 이세연이 사귀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둘을 어색하게 만드는 건 어떨까?”
“어. 둘이 이미 사귀는 거 아니었어?”
“그거 헛소문이란다.”
“그런 소문 퍼뜨렸다가 나중에 둘이 진짜 사귀고 리그에서도 같은 팀 하면 어쩌려고? 네가 책임질 거냐?”
“농, 농담한 건데….”
“김태현 이 자식은 진짜 끝이 안 보이네. 기껏 패턴 익혀놔도….”
까도 까도 뭐가 새로 나오는 양파 같은 놈이었다.
기껏 패턴 익혀놓고 스킬들 준비해서 대비했더니, 새 패턴이 나오고 새 스킬들이 튀어나오지 않는가.
“김태현 실력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준비한 스킬들로 최선을 다해야지. 이제 와서 어쩌겠어.”
여기서 욕한다고 해도 갑자기 태현이 약해지진 않았다.
아무리 막강한 피지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태현도 사람.
어떻게든 상대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보다 몬스터들이 좀 이상하지 않아?”
<세계수 투기장>에 새로 추가된 몬스터들.
얼마나 영향을 끼칠까 궁금했는지, 이번 경기에서 확실하게 그 모습을 보여줬다.
팽팽하던 경기를 뒤흔든 수준!
이 정도면 몬스터가 하나의 변수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뭐가 이상했는데?”
“김태현만 보면 도망갔잖아.”
“…! 진짜잖아?”
플레이어들은 다시 돌려보고 확신을 얻었다.
오크들이 움찔하더니 물러섰다!
“레벨 차이 나서 아냐?”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은데 뭔 레벨 차이?”
“칭호네. 칭호밖에 없어. 김태현이 오크 관련 퀘스트 많이 깨지 않았나? 대족장 관련 퀘스트도 깼었지?”
판온의 전설 퀘스트들 목록을 보면 보통 절반 넘게 태현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전설 퀘스트 수집가 수준!
“…아니, 이러면 좋은 칭호 갖고 있으면 너무 유리해지는 거 아니야?!”
“평소에 퀘스트 좀 깨놓을걸…!”
* * *
1왕자 없는 1왕자 진영.
1왕자는 없다지만 그 분위기는 흉흉했다.
[<1왕자가 세운 혼돈의 야전요새>를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저 자식 너무 대놓고 이름 짓는 거 아냐?”
이름에 ‘혼돈’ 붙이고서 굶주린 혼돈과 아무 계약 안 했다고 우기는 건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
“태현 님. 여기 지도요.”
“고마워.”
1왕자 진영에 참가했던 플레이어들이 많아서 관련 지도는 충분했다.
“그런데 1왕자는 갖고 있는 성이나 도시도 있는데 왜 밖에 요새를 세운 겁니까?”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이상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겠지.”
에랑스 왕국에서 들키면 안 되는 순위를 매겨보자면, 아키서스<악신<굶주린 혼돈 정도였다.
악신 교단과 계약을 한 것보다 더 쓰레기 취급받는 게 바로 굶주린 혼돈!
“으음.”
“역시 어려울 거 같아?”
태현이 고민하자 이세연은 옆에서 슬쩍 물었다.
1왕자가 사라졌다지만 그 밑의 부하들은 만만치 않았다.
괜히 안에 들어갔다가 잘못 걸리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응? 아니. 1왕자는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건설했는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
태현은 1왕자의 빠른 건설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저런 규모의 요새를 이렇게 빨리 뚝딱뚝딱 지은 거지?
역시 <굶주린 혼돈>의 힘인가?
‘굶주린 혼돈 능력이 너무 다재다능한 거 같아.’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도 그에 못지않다고 말합니다.]
‘에이, 아키서스는… 아니, 맞나?’
카르바노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듯했다.
닥치는 대로 다른 신들 권능 훔치다 보니 완성된 다재다능함!
사실 신들 흡수해서 삼키는 굶주린 혼돈과 아키서스는 커다란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음. 깊게 생각하면 무서우니까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