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87화
-오사카 드래곤즈에 근데 일본인 선수 별로 없지 않냐? 외국인 선수들이 더 많을 텐데.
-…….
곧이어 들어오는 추가타!
얼마 안 되는 일본 팬들이 절망하고 있는 동안,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캐나다 팬들밖에 없었다.
한국 팬들?
-에이, 설마 저 나라 사이에서 16강을 못 가겠어.
중국 팬들?
-에이, 설마 저 나라 사이에서 16강을 못 가겠나.
일본 팬들?
-에이, 설마 저 나라 사이에서 16강을 가겠냐….
고민할 것도 없이 다 확신에 찬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팬들은 달랐다.
-16강 가는 경우의 수가 어떻게 되지?
-일본 이기고 중국 이기고 한국 이기면….
-…그딴 경우의 수 말고.
-한국한테 지면, 일본한테 이기더라도, 최소한 중국한테는 비겨야 하나?
-1승 1패 1무로는 좀 약한데….
-근데 비길 수 있나?
-리그랑은 달라. 1차전은 3판밖에 안 하잖아. 두 판만 버티면 무승부 떠.
1차전의 경기는 3라운드 2선승제.
여기서 두 번 무승부가 뜨거나, 1승 1패 1무가 뜨면 그 경기는 연장을 가지 않고 무승부가 됐다.
리그보다 훨씬 무승부 띄우기 좋은 상황!
게다가 상대 선수도 밴을 때릴 수 있었으니, 전술만 잘 짜면 어떻게든 비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 * *
-첫 경기는 한국vs일본. 한국vs일본입니다.
-어… 첫 경기가 너무… 박진감 없는 거 아니야?
-이건 뭐 경기보다는 처형에 가까울 거 같은데.
팬들의 말처럼, 해설자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양 팀의 균형이 너무 차이 났던 것이다.
E스포츠 쪽이 빈약한 일본은 선수 풀이 극단적으로 좁았다.
그나마 1부 리그에 있는 게임단인 <오사카 드래곤즈>는 해외 선수들이 여럿이었고(그중 절반이 한국인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밥만 먹고 게임만 하던 전통부터 시작해서 최근 판온에서 다시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기라성 같은 플레이어들의 등장 덕분!
하지만 게임은 하기 전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고, 이번 월드컵 전용 세계수 투기장은 처음으로 공개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몇몇 신중한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그리고 해설자 입장에서 ‘야 이건 순삭이네요 ㅎㅎ’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대표팀의 라인업은 살벌합니다. 김태현 선수, 이세연 선수 두 딜러의 모습을 보십시오.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습니까?”
“리그 보면서 생각했던 꿈의 조합 아닙니까?”
“하지만 일본 팬분들도 실망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본 선수들도 그에 못지않게 대단한 선수들이니까요!”
-?
-해설자 저 새끼 지금 우리 놀리냐?
-브라질 축구팀이랑 일본 축구팀이랑 붙는데 팽팽하다고 할 놈이네.
해설자들은 배려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지만, 일본 쪽 팬들에게는 더 짜증 날 뿐이었다.
그냥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새끼야!
“류태수 선수와 이다비 선수는 이미 1부 리그에서 실력을 증명한 선수죠?”
“네. 둘 다 제 몫을 확실하게 해 줄 선수라고 봅니다. 류태수 선수는 이세연 선수와, 이다비 선수는 김태현 선수와 워낙 호흡을 잘 맞춰왔기에 그것 때문에 선발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5명이 갖고 있는 개개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팀워크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맞습니다. 투기장은 선수들 간의 조화도 만만찮게 중요한 곳입니다. 이게 간단해 보여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가대표팀쯤 되면 전부 다 대단한 선수들이거든요.”
흔히 간과하기 쉬웠지만, 초일류 선수들을 모아 놓는다고 초일류가 되는 건 아니었다.
서로 싸워서 약해지는 건 드물지도 않은 일!
팀 KL 같은 경우는 태현 같은 절대적인 리더가 있었고, 유성 게임단의 경우도 이세연 같은 좋은 리더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리더들이 한 팀에 모아 놓으면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3번으로? 4번으로?”
“4번.”
“첫 번째 싸움 이후에는?”
“프리로. 시간 끌 테니까 뒤로 돌아서 하나 잘라줄 수 있어?”
“물론이지. 다섯 명도 잘라봤는데 한 명을 못 할까.”
“…그런 짓 하지 마!”
“할 생각 없거든? 나도 좋아서 한 게 아니라고.”
태현이 남의 팀 다섯 명을 다 자르려고 날뛰었던 건, 장비 허용이라는 리그 규칙도 규칙이었지만 팀의 불안요소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다.
초반에 밀려 버리면 태현 팀은 회복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확실하게 상대를 몰아붙여서 이득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 없었다. 태현이 없어도 이세연이, 류태수가, 그 일을 해줄 테니까.
훨씬 부담이 덜한 것이다.
“선수들의 표정이 굳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긴장이 심한 걸까요?”
“그렇겠지요. 리그 때의 경기와 달리 이건 국가대표팀으로서 뛰는 경기 아닙니까? 이런 멘탈적인 부분도 간과할 수 없어요!”
태현은 매우 편한 마음으로 있었지만 해설자들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했다.
저 굳은 표정은 긴장한 게 틀림없구나!
이야, 김태현 선수도 사람은 사람이네!
* * *
규칙은 <화물 호송>.
맵은 <오크들이 습격하는 산의 길>.
1라운드는 한국 쪽이 공격을 맡았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
일본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나라 팬들한테는 ‘와!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와요! 신기해요!’ 같은 비아냥을 듣는 플레이어들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국가대표로 뽑힐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랭커 이상은 됐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도 질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비비는 거다!”
선수들 구성도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에 중점을 뒀다.
탱커들에, 각종 저주와 환영 마법 전문 마법사에….
“후욱. 후욱.”
“넌 왜 그러냐? 긴장한 거야?”
“아, 아니. 김태현하고 이렇게 맞붙을 기회가 오니까 믿기지가 않아서….”
“…….”
“…….”
“아니, 미친놈이 지금 상황에서 팬심을 보여주고 있어? 돌았냐??”
다른 선수들에게서 바로 구박이 날아왔다.
지금 피 튀기게 싸워도 모자랄 상황에 무슨 팬심을 보여주고 있어!
일본 쪽 감독이 마지막으로 선수들을 불렀다.
“잘 들어라. 이건 리그와 달라. 장비도 없고, 2라운드 때는 김태현도 안 나올 거다. 1라운드만 버티면 2라운드는 더 버티기 좋아져. 알고 있냐?”
“예!”
“너희들은 하나도 유명하지 않다!”
“…?”
선수들은 감독의 폭언에 정색했다.
“하지만 그 점이 바로 너희의 무기다. 김태현은 너희를 알지도 못할 테니까. 대비도 거의 못 했을 거다. 너희들이 가진 스킬에 놀랄 수밖에 없다!”
‘감독님… 기분만 더러워지는데요….’
나름 격려긴 한데 왜 기분이 더 더러워지는 걸까?
“너희들은 김태현의 모든 걸 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쪽 선수들의 스킬들은 어지간한 건 다 안다! 가라! 가서 물어뜯어라!”
“예!”
* * *
투기장에서 직업마다 전략이 다 달랐지만, 보통 네크로맨서 같은 직업들은 슬로우스타터였다.
즉….
좀 손해를 보더라도 준비를 하고 움직이는 편!
언데드를 소환하고 버프를 걸고 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시간 손해가 적은 게 일류 네크로맨서였고.
이세연은 시작하자마자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언데드를 불러내고 강화 걸고 하면서 화물 옆에 붙었다.
플레이어들이 화물 옆에 있으면 알아서 움직이는 화물!
이 화물이 목적지까지 가도록 계속 있는 게 공격 쪽 목표였고, 이걸 방어하는 게 수비 쪽 목표였다.
-이세연 선수, 대단합니다! 저게 네크로맨서죠!
-시체 따위 필요 없습니다! 순식간에 최상급 스켈레톤 전사들이 나왔습니다. 벌써부터 상대들은 압박이 심하겠는데요.
-어… 그런데 김태현 선수…? 뭐하는 거죠?
태현도 뭔가 하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챙기더니 땅땅땅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거 폭탄 아닙니까?
-폭탄을 만들었어요! 폭탄을!! 와, 대체 어떻게 만든 거죠? 재료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대장장이가 투기장을 뛰는 일은 거의 없었고, 기계공학 대장장이의 경우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태현의 플레이는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재료도 시설도 부족한 상황에서 스킬빨로 폭탄을 만들어내다니!
‘데미지는 별로 크지 않겠지만 상대방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태현이 좋아하는 건 변수였다.
상대방이 한 번 멈추는 것만으로도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화물이 1차 포인트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일본 쪽 선수들, 벌써 진형 갖추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저주 토템부터 시작해서 살벌합니다!
-김태현 선수, 리그 때처럼 우회해서 혼자서 쓸어버리는 플레이는 하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특히 장비가 제약된 게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태현 선수하면 그 특유의 회피 능력이죠?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환장하죠!
-그렇습니다. 어지간한 공격은 다 빗나가는데, 이걸 그나마 묶으려면 저주 같은 걸로 깎아야 하거든요. 든든한 장비 없으면 상대방 진영에 멋대로 들어가는 건….
화물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두 팀이 부딪힐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 숨을 죽였다.
-취이이이이익!
“?”
“???”
“어, 일본 선수 중에 오크 종족이 있었나? 없었는데?”
-취이이이익! 취이이익!
[오크들이 나타납니다!!]
“…!!”
생각지도 못했던 옆의 산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오크들!
한국 팀도, 일본 팀도 황당하다는 듯이 오크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태현이었다.
“기회다, 이세연!”
“알고 있어. 들어가!”
이세연은 바로 언데드들을 불러서 화물 주변에 진형을 쳤다.
난전이 벌어질 경우 버티기 위해서였다.
-김태현 선수 달립니다!
-과감합니다! 오크들이 나타난 걸 기회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당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기회로 역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태현이 그랬다.
오크들이 옆에서 갑자기 우르르 쏟아져 내리자 태현은 그들 사이에 끼어서 적 한 명을 잘라내기로 결심했다.
태현 같은 딜러는 이런 식의 싸움에서 한 명 잘라내야 하는 법!
-이번 투기장은 바로 이런 식의 변수가 있습니다!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런 변수!
-아무리 그래도 김태현 선수, 너무 무모한 거 아닐까 싶습니다. 오크들의 레벨이 낮지가 않아요! 투기장 안에서는 몬스터들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필드에서야 랭커들은 몬스터들을 우습게 봤지만, 투기장 안에서는 레벨이 확 내려간 상황.
몬스터들을 만만하게 봤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칭호, 오크의 입맛을 아는…]
[칭호, 오크 대군세…]
[칭호, 오크 사냥…]
[……]
[오크들이 일시적으로 두려움에 질립니다!]
오크 주술사들은 태현을 공격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공포 상태에 빠져 멈칫했다.
그 짧은 틈이면 됐다.
태현은 오크 사이를 질풍처럼 내달렸다.
-폭발 도약!
콰콰쾅!
폭발과 함께 태현의 모습이 가려지자 보고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뭐지?
-김태현 선수가 만들었던 폭탄이 폭발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앗, 아닙니다!
폭발의 효과가 사라지자 태현은 날듯이 앞에 와 있었다. 그리고 검이 휘둘러졌다.
-광기의 폭발 검법!
콰콰쾅!
[이동 저주의 토템이 파괴됩니다!]
[이동 저주의 토템이 파괴됩니다!]
[……]
“김태현이 파고들었다!!”
후방에 있던 선수는 태현이 달려들자 비명을 질렀다.
리그에서 몇 번이고 봐왔던, 화려한 플레이의 예고!
동시에 보고 있던 팬들은 함성을 질렀다.
이제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