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283화 (1,282/1,826)

§ 나는 될놈이다 1283화

아….

이렇게 저주를 풀어준다고…!

태현이 교황이고, 아키서스 관련 직업이다 보니까 뭔가 신성한 스킬로 저주를 풀 줄 알았던 제카스였다.

실제로 저주 안 걸렸으니까 ‘아 저주 안 걸렸네요!’라고 변명할 수도 있는, 아주 영리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태현은 신성한 스킬 대신 망치를 꺼내 아이템을 부숴버렸다.

하필이면 가면 내구도도 낮은 탓에 태현의 공격 한 방에 박살!

“…….”

순간 침묵이 사이를 맴돌고, 제카스와 도동수 머릿속에 수십 가지 생각이 번쩍이며 지나갔다.

그리고 도동수는 온몸을 타고 흐르는 본능으로 외쳤다.

“저 자식이 제카스다 김태현!!”

친구와 같이 길을 걷다 곰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은 척도 좋고, 뒷걸음질도 좋고, 뭐든 다 좋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옆의 친구보다 빠르게 도망치는 거였다.

곰은 느린 놈을 잡아먹을 테니까!

김태현이 곰은 아니었지만 뭐 어쨌든 비슷한 존재 아닌가.

‘제카스를 넘기면 돼!’

김태현을 상대로, 그것도 주변에 김태현 도와줄 놈들이 우글거리는데 PK를 시도하는 건 미친 짓이었고….

가장 중요한 건 무사히 탈출하는 거였다.

‘미안하다, 제카스. 하지만 판온은 원래 이런 법이다. 약한 놈은 살아남을 수 없는 게임이지.’

도적 출신답게 뻔뻔한 생각을 하며 도동수는 제카스를 쳐다보았다.

분명 제카스는 당황과 배신감으로 놀라 그를 쳐다보고 있겠….

-탐험가의 작은 족쇄, 눈먼 주술사의 저주 주문서!

[<탐험가의 작은 족쇄>로 인해 이동속도가 내려갑니다!]

[<눈먼 주술사의 저주>로 인해 스킬 실패 확률이 올라갑니다. 시야가 좁아집니다.]

제카스는 도동수가 외치는 동안에 이미 스킬과 주문서를 갈기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이 아니라 도동수한테!

그러고 나서 제카스는 외쳤다.

“저 자식이 도동수다. 김태현!”

제카스는 말과 함께 뒤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이 자리를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뿐.

“…….”

“…야 이 개새….”

도동수는 분노했다.

물론 자기도 제카스를 팔아넘기긴 했지만 제카스한테 스킬을 걸고 팔아넘기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정정당당하게 배신을 해야지 이렇게 부도덕하게 배신을 하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저놈은 정말 못된 놈이다!

팟!

도동수도 일단 달렸다. 랭커답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움직임이 빨랐다.

제카스보다는 늦었지만….

“어. 음.”

도망치는 둘을 보면서 태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현 입장에서는 플레이어 하나 도와줬더니 갑자기 둘이 ‘저놈 제카스다!’, ‘저놈 도동수다!’ 하면서 투닥거리더니 도망치기 시작한 셈이었다.

황당 그 자체!

‘뭐 가깝고 약한 놈부터 잡아야지.’

상대가 저렇게 나온 이상 안 잡아주는 것도 웃긴 상황. 태현은 바로 움직였다.

“왜 쫓아오는 거냐 김태현 이 자식아!”

“…진심으로 묻는 거냐?”

카캉!

도동수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며 태현은 검을 휘둘렀다. 도동수는 펄쩍 뛰며 공격을 피했다. 태현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고 찔러 넣었다. 도동수는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

도동수가 생각보다 평타를 잘 받아내자 태현은 의아해했다.

흔히 사람들은 판온 랭커들하면 화려한 스킬들에만 집중했다.

저 랭커는 A 스킬을 갖고 있으니 강하다, 아니다 저 랭커는 B 스킬을 갖고 있으니 더 강하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기본기였다.

근접 직업이라면 평타를 때려 넣는 기술이, 원거리 직업이라면 평타를 맞추는 기술.

그리고 태현은 이런 기본기에서 거의 완성된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각종 게임단에서 태현 영상 따오고 AI로 분석 돌려서 교본으로 삼을까!

그냥 베고 찌르기부터 시작해서 왼쪽 베려다가 살짝 페이크 걸고 오른쪽 베기, 왼쪽 벨까 싶다가 오른쪽 베려는 것처럼 페이크 걸었는데 하단 찌르기….

랭커쯤 되면 이런 기본기 능력도 상당해서 대응하는 능력도 강했지만 태현의 컨트롤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말 짧은 시간 내에 미친 듯이 페이크를 겁니다. 한 수십 번?

-밖에서 보면 왜 반응 못 하고 두들겨 맞냐고 하는데, 이건 진짜 싸워봐야 해요. 진짜 일대일로는 지옥 같은 놈이에요. 근접전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고 해야 하나….

-내 공격은 바로 눈치채고 피하는데, 그놈 공격은 바로 들어오고….

그런데 도동수가 평타를 피해낸 것이다.

방패를 들고 막아낸 것도 아니라 그냥 피하자 태현은 살짝 놀랐다.

‘컨트롤이 늘었나?’

“헉, 흣, 컷, 저기, 제카스, 쫓, 큭, 켁!”

대충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카스를 쫓아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 혹시 게임단에서 뭐 줬냐? 이거 보고 연습하라고?”

태현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도동수도 나름 중국 쪽 게임단 들어갔으니 게임단에서 태현 공략 관련으로 조언을 받았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떻게 알… 큭!”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다리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맞은 탓에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

“비겁한 자식아!”

“난 아까부터 말하면서 패고 있었는데. 집중 안 한 놈 잘못이지.”

태현은 패턴을 바꿨다. 말이 쉽지 공격 패턴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 습관이나 행동 같은 걸 전부 다 바꾸는 것이다.

의식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

순식간에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도동수는 숨이 턱 막혔다.

김태현 공략을 하면서 나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착각이라는 게 뼈 저릴 정도로 느껴졌다.

퍼퍼퍼퍽!

평타의 공방전이 오가고, 십여 개의 스킬이 서로 날아가자, 도동수는 순식간에 몰리기 시작했다.

HP가 20% 밑으로 훅 떨어진 것이다.

‘제기랄!’

탱커도 아닌 도동수였다. HP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20% 밑으로 내려간 건 매우 위험했다.

나름 많이 때린 거 같은데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고….

“김태현, 협상하자! 이데르고 교단에 대해 아는 걸 말해주겠다!”

“앗.”

푹!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상대가 로그아웃 당합니다!]

[이데르고 교단의 기수를…]

[……]

[……]

[명성이 오릅니다!]

너무 신나게 패던 도중이라 공격을 도중에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안. 미리 말하지 그랬어.”

“크으윽…!”

도동수는 말 한 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로그아웃당했다.

매우 억울한 표정과 함께!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아이템을…]

도동수는 이데르고 교단에 들어가기 전부터 악명 스탯이 높았던 데다가 PK 전적도 많았다.

그 상황에서 악신 교단 퀘스트까지 했으니, 죽었을 때 아이템을 많이 뿌리는 것도 당연했다.

[<이데르고의 역병 항아리>를 얻었습니다.]

[<이데르고의 조각>이 반응합니다!]

[<이데르고의 조각>이 당신을 유혹합니다.]

태현이 갖고 있는 이데르고의 조각이 미친 듯이 힘을 뿜어내며 외치기 시작했다.

안에 담긴 이데르고의 파편이 태현을 설득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데르고가 자신의 무한한 힘을 받아들이고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대륙을 떠난 신들과 달리 자신의 힘은 그 차원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흠.’

태현은 이데르고의 제안을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이데르고는 카르바노그처럼 대륙에 꼼수를 써서 남았다는 점에서 다른 신들과 다른 포인트가 있긴 했다.

[카르바노그가 꼼수라고 하지 말라고 화냅니다!]

하지만 이데르고의 제안이 그렇게 매력적일까?

당장 굶주린 혼돈의 제안도 수상쩍어서 거절했는데….

-이데르고 교단: 드래곤이나 다른 교단 같은 강한 존재들은 무시함. 자기네들은 강하다고 주장하지만 별로 존중은 못 받음.

-굶주린 혼돈: 드래곤이나 다른 교단들도 두려워서 벌벌 떰.

…굶주린 혼돈 하위호환 아냐?

[이데르고가 매우 분노합니다!]

‘분노해 봤자 아닌 건 아닌 거지.’

마음 같아서는 그냥 ‘야 안 줘 꺼져!’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데르고 입장에서도 태현은 버릴 수 없는 선택지였다.

자기 조각을 갖고 있는 데다가 역병 항아리까지 챙기지 않았는가.

어떻게든 유혹시키고 타락시켜야 했다.

[이데르고가 자신의 권능을 맛보여주겠다고 말합니다.]

[<이데르고의 역병 항아리>가 소모됩니다!]

[<이데르고의 역병 마법>을 얻습니다!]

[독 관련 스킬들이 전부 다 <이데르고의 역병 마법>으로 합쳐집니다!]

[독 관련 저항력이 증가…]

[……]

“…?!”

태현이 가진 마법 스킬은 크게 두 개였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과 냉기의 저주.

원래 더 많았는데 강제로 다 뺏기고 저것만 남은 셈이었는데….

여기에 <이데르고의 역병 마법>이 추가된 것이다.

‘정말 극단적인 라인업….’

[카르바노그가 정말 노리고 해도 저렇게 배우지는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고급 이데르고의 역병 마법 (1%)

<이데르고의 역병 안개>

<이데르고의 역병 장막>

<이데르고의 역병 망토>

<이데르고의 역병 창조>

이데르고는 느부캇네살이나 카르바노그, 아키서스처럼 양심 없는 신이 아니었다.

역병 마법을 주면서 기본 스킬들을 충실하게 챙겨줬다.

메인 메뉴 하나에 반찬들까지 여럿 챙겨준 셈!

‘아니 뭘 이렇게?’

태현은 태연한 척 하려고 했지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마법 스킬이 빈약하고 부족한 건 언제나 태현의 고민이었으니까!

‘역병 안개는 약한 광역기 마법이고, 장막은 방어, 망토는 버프, 그리고 창조는 뭐지?’

<이데르고의 역병 창조>

위대한 이데르고의 힘을 빌려 사악한 역병을 만들어냅니다. 이데르고 님에 대한 믿음이 깊을수록 강력한 역병이 만들어집니다.

‘아. 독 제조 스킬인가.’

도적 같은 직업이나 괴식 요리사들에는 이런 부류의 스킬이 있었다.

독 제조!

이렇게 만들어진 독은 무기에 바르거나 암기에 바르거나 요리에 넣는 식으로 활용이 됐다.

잘 만들어진 독은 정말 밥값을 제대로 했다.

잘만 쓰면 같은 실력의 상대와 싸울 때는 물론이고 더 강한 상대도 훅 보낼 수 있었다.

‘근데 이건 이데르고 교단 공적치 포인트나 평판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데르고가 자신의 힘을 맛보고 싶다면 무릎 꿇고 복종하라고 외칩니다. 자신의 충실한 종이 되라고 외칩니다!]

‘뭐 안 쓰면 되지.’

[……]

독 하나 만들자고 이데르고 교단 도와주고 싶지는 않았다.

잃을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얼마나 나오나 확인해 볼까.’

-이데르고의 역병 창조.

[괴식 요리 스킬이 매우 높…]

[행운이 매우 높…]

[아키서스의 권능…]

[칭호…]

[……]

[……]

[매우 많은 보너스로 인해 추가적인 효과가…]

[……]

하지만 태현이 잊고 있던 게 한 가지 있었다.

딱히 이데르고 도움 안 받아도 태현은 다른 업적과 능력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행운과 권능 스킬들, 그리고 이제까지 역병과 맹독 관련해서 해왔던 업적과 칭호들.

…그냥 써도 엄청나게 강하다!

[현재 스킬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아키서스의 기묘한 역병>이 만들어집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아키서스의 기묘한 역병>

이 역병에 중독된 상대는 일시적으로 종족이 변화합니다.

‘…?!’

생각지도 못한 특이한 효과!

하지만 나쁜 효과는 아니었다. 상대 종족 바꾸는 건 은근히 쓸모가 있는 효과인 것이다.

‘생각보다 정말 괜찮은데? 이야. 도움 정말 필요 없겠다.’

[이데르고가 그 힘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르침이 필요할 거라고…]

태현은 이데르고의 조각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시끄러워서 나중에 듣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카르바노그가 자기는 안 시끄럽다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이데르고에 비하면 카르바노그 네 목소리는 아주 듣기 좋은 편이지.’

[카르바노그가 우쭐해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