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82화
태현은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네놈이 우리의 의식을 망치려고 왔지만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 우리의 의식은 멈추지 않으리라!
“어….”
태현은 당황했지만 곧바로 장단을 맞춰줬다.
“네놈들의 사악한 의식을 멈추러 왔다! 네놈들이 하는 짓은 이미 다 알고 있었지.”
-역시…!
-아키서스 교단 교황이 다른 건 몰라도 악신 하나는 참 잘 패는군!
뒤에 있던 귀족 NPC들이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아키서스 교단이 사악하고 비열하고 치사하고 더럽고 교활하긴 해도, 악신 교단 상대할 때 아군에 있으면 이렇게 든든한 교단도 드물었다.
“뭐? 다른 건 몰라도?”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오.
-이놈! 자꾸 교황님 앞에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다른 귀족들이 재빨리 동료를 공격했다.
그러는 사이 이데르고 교단 암살자는 이를 갈며 외쳤다.
-두고 보아라, 이 아키서스 놈아! 의식이 끝나면 이데르고 님께서 네놈을 벌할 테니까!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적을 속여서 퀘스트를 얻었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역병의 의식-이데르고 교단 토벌 퀘스트>
사악한 역병과 포식의 신, 이데르고 교단의 사제들은 지하에 숨어 암암리에 거대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대륙의 혼란으로 인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당신은 다르다.
모든 이들이 대륙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을 때 홀로 대륙을 지키는 아키서스의 화신으로서…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퀘스트에 당황했다.
뭐?
…이데르고 교단의 사악한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
보상 : ?, ???
‘흠 뭐 나쁠 건 없지.’
이미 태현은 이데르고 교단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지난 셈이었다.
선신 교단들과도 화해하기 힘든데 악신 교단들과는 얼마나 화해하기 힘들겠는가.
[카르바노그가 사디크처럼 만들어주라고 합니다.]
‘하긴 그것도 화해는 화해지.’
지금 사디크 교단은 오랜 원한을 잊고 아키서스 교단과 손을 잡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다.
…사디크 대주교나 성기사단장이 알게 되면 뒷목 잡을 소리였지만 어쨌든….
“이데르고 교단이 뭐 하는 모양인데. 안에 자세히 찾아봐야겠다.”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많은데 알아서 나오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데르고 교단 비밀 신전은 플레이어들로 바글거렸다.
-아, 좀 비켜봐요! 지나가지도 못하겠네!
-어떤 새끼가 매너 없게 광역기 쓰냐! 너만 사냥하냐!
-나 치면 내 친구 부른다! 내 친구 파워 워리어 소속이야!
-아 사냥도 못 하겠네! 그냥 옆으로 빠지자!
태현의 이름도 있고, 국왕의 이름도 있어서 그만큼 플레이어들이 많이 몰린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던전 안에 숨겨진 입구나 통로가 있다면 바로 발견되게 마련!
“그것도 그렇긴 한데. 원래 교단 관련 비밀 통로나 퀘스트는….”
“…관련 스킬이나 정보 없으면 찾기가 힘들죠.”
이다비가 말을 받았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이야 <신의 예지>나 미친 행운 스탯으로 이런 탐색 퀘스트가 꽤 쉬운 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키서스의 화신이 이런 장점은 있는 것!
하지만 그런 게 없다면 일일이 뒤지거나, 혹은 이데르고 교단 관련 정보가 필요해야 찾을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많으면 들어가서 찾기 힘들 것 같은데요.”
“나오라고 해도 말 안 듣겠지? 공….”
“…격하면 당연히 안 되죠.”
“…공손하게 나오라고 하자.”
* * *
도동수와 제카스는 위층에서 날뛰는 소리에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도적 직업에 탐험가 직업이었지만, 둘은 이데르고 교단에 가입해서 착실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목적은 하나!
김태현한테 복수하기 위해서… 도 있긴 했는데, 사실 마땅한 기회가 별로 없어서였다.
물론 나중에 잘 나가서 김태현한테 복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들도 자기 코가 석 자였던 것이다.
친하게 지내던 길드 동맹 놈들은 김태현과 은근슬쩍 손잡고 자본의 단맛을 즐기고 있었고, 김태현을 적대하던 판온 1 출신 랭커들은 ‘김태현 놈 얄밉긴 한데 지금 걔랑 싸우면 잃을 게 너무 많다’하며 손을 빼고…
그러자 이제 곤란해진 건 도동수나 제카스처럼 노골적으로 김태현하고 원수 진 플레이어들이었다.
길드 동맹 같은 놈들의 도움도 못 받고, 다른 랭커들 도움도 받기 힘들고, 김태현 추종하는 놈들은 ‘저기 도동수다! 저기 도동수다!’하면서 현상금 사냥하려고 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이데르고 교단처럼 새로 나타난 악신 교단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이거 방송….”
“개인 방송 다시 시작한다는 얼간이 같은 소리는 그만하라고 했지!”
제카스가 짜증을 냈다.
둘 다 개인 방송을 정지한 지는 꽤 됐다. 켜기만 하면 공격을 받으니 켤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개인 방송을 하려면 얼굴을 가리고 하거나 어지간히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그러려면 한동안 힘을 기르는 게 맞았다.
“내 방송 켠다는 게 아니라!! 지금 위에서 날뛰고 있는 놈들도 방송하고 있을 테니까 그거 보자고!”
“아. 그 소리였군.”
지금 신나서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개인 방송을 많이 하고 있었다.
둘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김태현 이 자식이?!?”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제카스는 도동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멍청한 놈이 어디 가서 입을 놀리고 다닌 건 아니겠지?’
도동수는 제카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새끼 나 팔고 김태현한테 가려는 건 아니겠지?’
누가 같이 다니는 거 아니랄까 봐 의심하는 수준도 비슷했다.
“…일단 쉽게 여기 오지는 못할 거다.”
“그, 그렇지.”
“빨리 <이데르고의 역병 항아리> 챙겨서 빠져나가자.”
현재 이데르고 교단이 진행하고 있는 의식은 바로 이데르고의 화신을 대륙에 강림시키는 의식이었다.
신들이 전부 대륙을 떠났기에 그 화신을 일시적으로 강림시키는 것은 어마어마한 난이도의 의식.
많은 준비와 기다림이 필요했다.
다행히 이데르고 교단은 여러 성물들을 갖고 있었고, 그 시기도 좋았다.
대륙이 마침 혼란스러운 시기!
<역병의 의식-이데르고 교단 퀘스트>
위대한 역병과 포식의 신, 이데르고 님의 강림을 위해 역병 항아리를 가득 채워야 한다!
각 비밀 신전에 있는 역병 항아리를 가득….
둘도 이제 나름 이데르고 교단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역병의 기수>, <역병의 전령> 직위를 받은 것이다.
직위가 올라가면 퀘스트 난이도와 책임도 올라가게 마련.
다른 건 몰라도 역병 항아리는 확실히 챙겨야 했다. 이거 부서지면 뒷감당이 안 됐다.
화르륵-
“?”
뭔가 타는 소리에 둘은 고개를 돌렸다.
저 위에서 화염이 번져오고 있었다.
“?!?!?”
“뭐야! 꺼!”
둘은 허겁지겁 불을 끄려고 했다.
[사디크의 신성한 화염이….]
[….]
[진화에 실패합니다!]
그러나 쉽게 꺼지지 않았다. 사디크의 화염은 질기고 오래 가는 것이다.
-어, 어떻게 합니까? 기수님?
“탈출한다! 신전은 버리고 탈출해!”
[신전을 포기할 경우 공적치 포인트가 하락할 수 있….]
[평판이 깎일 수….]
“지금 신전 챙길 때냐! 김태현 놈이 가까이 와 있을 수도 있다!”
* * *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태현이 공손히 부탁하자 사람들이 정말로 질서정연하게 던전에서 나온 것이다.
“말도 안 돼!”
정작 당사자인 태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말이 되나?
‘던전에 폭탄 몇 개는 터뜨려야 할 줄 알았는데….’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의 진심이 닿은 겁니다. 삭막한 판온 세상에도 한 줄기 따뜻한 진심은 통하는 것을….”
“그게 아니라 김태현 무서워서 같은데…?”
“쉿. 이세연 씨, 굳이 감동을 깨진 말죠.”
아무리 봐도 진심이 닿았다기보다는 ‘김태현이 나오라고 했다고?’->‘김태현이 나오라는데?’->‘뭐? 김태현이 안 나오면 죽인대? 힉!’ 같은 식으로 흘러갔을 것 같지만….
“일단 사디크의 화염부터 뿌려야지.”
“그래. …응???”
이세연은 당황했지만 태현은 이미 던전으로 들어가 사디크의 화염을 닥치는 대로 뿌린 뒤였다.
“왜!?”
“이데르고 교단 놈들은 사악하고 끈질겨서 무슨 짓을 할 줄 몰라. 대비해야 해.”
태현은 비밀 신전 안쪽에 강력한 괴수 몬스터나 사제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거 없었지만….
일단 사디크의 화염을 닥치는 대로 뿌려 놓으면 밖으로 뛰어나오겠지!
잠시 후.
“안 나오는데?”
“안에서 잡혔나 보군.”
“경험치 올라?”
“자, 안으로 들어가자. 마저 수색해야지.”
“안 올랐지? 안 오른 거 같은데?”
태현은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순간 태현이 갖고 있던 <이데르고의 조각>이 강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이데르고 교단을 한 번 토벌하고서 얻은, <이데르고의 조각>!
이데르고의 힘이 강하게 담긴 성물 중 하나였다.
[<이데르고의 조각>이 강하게 반응합니다!]
[강한 역병이 담겨 있는 곳을 향해 <이데르고의 조각>이 날아가려고 합니다!]
[<이데르고의 조각>을 붙잡습니다!]
[역병이….]
[신성 권능으로….]
[회피에 성공합니다!]
‘뭔가 있나 본데?’
이데르고의 조각이 지멋대로 이동하려고 하자 태현은 그 방향을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덜컥!
[지하통로를 빠져나왔습니다!]
“가자!”
“그래!”
“어디 가게?”
“어디냐니 당연히 다른 신ㅈ… 잠깐.”
목소리가 왜 뒤에서 안 들리고 앞에서 들려오지?
도동수는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서 있었다.
“ㄱ… ㄱ… ㄱ…!”
“왜 그러는 거냐? ㄱ…!”
“?”
나온 플레이어들이 자기 얼굴을 보고 ‘ㄱ’만 외치자 태현은 의아해했다.
단체로 미쳤나?
‘뭐 중요하지 않지.’
딱 봐도 이데르고 교단에 가입한 플레이어들!
이데르고 교단이 갖고 있는 정보를 탈탈 털어내야 했다.
“이데르고 교단에 가입한 플레이어들 맞지?”
태현의 말에 둘은 상황을 깨달았다.
‘김태현 이 자식 우리를 눈치 못 챘다!’
복장도 전혀 다른 데다가 얼굴도 역병 가면을 쓰고 있었다.
김태현은 그냥 이데르고 교단 플레이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살아나갈 길이 있다!
“살려주십쇼! 살려주십쇼! 이데르고 교단에 가입한 게 잘못은 아니잖습니까!”
“으음.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는군.”
아키서스 교단에 강제가입하게 된 태현 입장에서는 꽤나 와 닿는 호소였다.
확실히 이데르고 교단에 가입해서 열심히 하고 있는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
“하지만 나도 퀘스트를 깨야 해서….”
“물으시는 질문에는 뭐든지 대답할 테니 제발 로그아웃만 시키지 말아 주세요!”
“그래? 음.”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목숨은 봐줘야 하나?
“그래. 알겠다. 일단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가면 벗어봐라.”
“…….”
“…….”
별생각 없이 꺼낸 태현의 말에 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망했다…!
“가면 벗으라니까?”
“이게, 그, 저주 템이라, 저희도 정말 벗고 싶은데 벗을 수가 없습니다!”
“저런… 어쩔 수 없지.”
‘휴.’
“내가 풀어주지.”
“……!”
제카스는 속으로 절규했다.
‘김태현 이 새끼야! 너 판온 1에서는 이렇게 안 친절했잖아!!’
갑자기 친절을 베푸는 태현 덕분에 일이 다 꼬이게 생겼다.
‘제발 저주 풀리지 마라, 제발 저주 풀리지 마라, 제발 저주 풀리지 말….’
꽝!
태현은 고대의 망치를 들어 얼굴을 후려갈겼다. 치명타 터지면서 가면이 그대로 박살 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