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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281화 (1,280/1,826)

§ 나는 될놈이다 1281화

에랑스 왕국 왕궁!

생각지도 못한 선택지에 일행의 얼굴이 굳었다.

이세연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태현에게 속삭였다.

“네가 시킨 거야?”

“안 시켰거든?”

“이다비 씨가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네가 이다비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나하고 더 오래 다녔거든?”

태현은 살짝 억울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데 에랑스 왕궁에서 싸워도 되는 겁니까?”

에랑스 왕국 왕궁.

판온에서 가장 커다란 궁전 중 하나였다.

단순히 궁전 하나뿐만 아니라 온갖 시설들이 있는 여러 궁전들이 모여 있는 에랑스 왕국의 자존심!

거기서 싸운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잘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음. 확실히 왕궁에서 싸우면 상대가 잘 공격 못하긴 하겠군.”

1왕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들어가야 할 궁전에서 싸우는 셈이니 대규모 마법 같은 건 쓰지 못할 것이다.

궁전 다 부서지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왕궁의 대부분은 다 폐쇄됐을 텐데. 들어갈 수는 있어?”

지금 에랑스 왕국 왕궁은 대부분이 폐쇄된 상태였다.

1왕자도 몇몇 궁전에만 들어갈 수 있었고 나머지는 아예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검과 왕관이 있어야 왕궁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꼭 궁전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앞에서만 싸워도 돼. 그것만으로도 쉽게 공격하지 못할 테니까.”

“하긴 그것도 그러네.”

“게다가 필립 3세는 왕궁에 대해 잘 알 테니 거기서 싸우기 좋은 곳도 알겠지.”

태현과 이세연이 수군거리면서 대답하지 않자 이다비는 살짝 불안하다는 듯이 물었다.

“별로 안 좋은가요?”

“아니. 아주 좋은 것 같아.”

“맞아요. 정말 좋은 곳 같은데요?”

태현과 이세연 둘이 보장해 주자 이다비의 얼굴이 그제야 풀렸다.

“저도 생각만 했는데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물론이지. 에랑스 왕국 왕궁이라니. 싸우기 좋은 장소로 거기만 한 곳이 없잖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원래 왕궁은 네크로맨서가 싸우기 정말 좋은 곳이거든요.”

둘의 말을 듣고 있던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궁이 싸우기 좋은 장소인 건 그렇다 치더라도 네크로맨서가 싸우기 좋다는 건 대체 왜…?”

“자! 필립 3세한테 말하러 가자!”

* * *

-아무래도 폐하께서 좀 이상합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네.

-폐하와 같은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준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인가?

-게다가 생전이라니. 지금 폐하께서는 죽었다가 깨어나시기라도 했단 건가?

귀족 NPC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는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서 생각하지 못했지만, 자리가 끝나니까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필립 3세의 군세에 참여한 귀족 NPC들이 당신에게 불만을 상담하러 찾아옵니다!]

[주의하십시오! 들킬 경우…]

‘이런.’

필립 3세 만나러 가려다가 귀족 NPC들 만나게 된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필립 3세가 뇌에서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을 내뱉은 덕분에 귀족들이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교황 성하.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입니다.”

[카르바노그가 훌륭하다며 감탄합니다.]

-예? 아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차.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오신 겁니까?”

-그게 말입니다….

귀족 NPC들은 자기들이 느낀 수상한 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국왕이 마치 죽었다가 깨어난 것처럼 이야기하고, 사람이 폭력적이고 난폭하게 변하고, 피와 어둠의 마력을 탐하고….

멀쩡하던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

태현은 긴장했다.

‘젠장. 언데드인 거 벌써 들키면 안 되는데….’

그러면 태현한테도 불똥이 튄다!

-제 생각에, 폐하께서 사악한 악신 중 한 명과 계약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연!”

결정적인 부분에서 헛다리를 짚는 귀족 NPC들!

설마 국왕이 죽었다가 언데드로 부활한 상태라고는 차마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감히 고귀하신 국왕 전하를 언데드 라이즈시켜서 데리고 다닌단 말인가?

-분명 그 포악한 1왕자의 배신 때문에 크게 다치셨고, 상황이 어려워지자 악신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겠지요.

“허어. 그런 일이.”

태현은 모르는 척 연기했다.

그렇게 무서운 일이 있었다니!

-차라리 아키서스와 계약을 하면 모를까 악신이라니….

“…차라리가 무슨 뜻?”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자네는 왜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러나!

본심을 내뱉은 귀족 NPC 한 명이 구박을 받았다. 태현은 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역시 머릿속에 악마가 있….”

-아닙니다! 아닙니다!

-교황님! 여기 있는 분들 중 가장 악신 교단을 많이 상대한 분 아니십니까?

“확실히 그렇긴 하지.”

나름 대륙에서 악신 교단 전문가로 뽑히는 태현이었다.

여러 악신 교단들을 토벌하고 상대해 온 영웅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걸 다른 나라 사람인 나한테 말한다고 되나?”

태현은 슬쩍 말을 돌렸다.

국왕이 언데드인 걸 아는 입장에서는 발을 깊게 들이밀 수가 없는 것이다.

-악신과 계약하셨다면 국왕 폐하께서는 점점 더… 폭군이 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긴 하지.”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글쎄. 사람마다 달라서. 뭐 적당한 수준에서 멈출 수도 있고 끝도 없이 미쳐 날뛸 수도 있고….”

-저런…!

-대체 어떤 사악한 놈들이 국왕 폐하를!

-사디크 교단 아닌가?

-아니야. 그놈들은 예전에 멸망했잖나. 가장 최근에 들고 일어났던 건 역시 이데르고 교단 아닌가.

역병 교단, 이데르고 교단!

혼란스러워지는 대륙의 상황을 틈타 일어났다가 악마 공작한테 얻어맞고 태현한테 얻어맞고 한 풀 꺾인 악신 교단이었다.

사디크 교단처럼 뿌리째 토벌당하지 않은 상태라 언제 다시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과연! 생각해 보니 국왕 폐하께서 역병 이야기도 좀 했던 거 같고.”

-허억…!

-이데르고 교단이었나 역시!

귀족 NPC들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모시는 국왕이 악신과 계약해서 힘을 얻었다니.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다.

원래라면 ‘국왕 폐하!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지금 그랬다가는 당장 우리의 목을 치려고 하시겠지?

-게다가 1왕자와의 싸움을 앞두고 이런 소문이 퍼져 나가면 어떻게 되겠소? 폐하의 편에 서려는 귀족들이 줄 거 아니오?

그랬다.

일단 지금 가장 위협적인 건 1왕자였던 것이다.

필립 3세는 앞에서 고분고분 충성하면 목을 날리진 않겠지만, 1왕자는 확실히 그들의 목을 날리려고 할 테니까!

‘이 반역자 놈들!’ 하며 칼을 휘두를 게 뻔했다.

-…생각해 보니 꼭 악신 교단과 계약했다고 나쁜 건 아닌 거 같소. 폐하께서 그냥 돌아가셨다면 그게 더 최악이었겠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니 여러분 무슨 개소리를 하시는 겁…?

-닥치고 있게!

-폐하께서 몸 건강히 살아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지, 이런 불충한 자 같으니!

-이데르고 교단 놈들은 나중에 쫓아내면 되네. 그러면 폐하께서도 원래대로 돌아오시겠지.

-암. 암.

-일단 지금은 모두 다 입을 다물고 있도록 하게. 성하. 성하께서도 이 건은 밖으로 말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이지요.”

태현은 믿음직스러운 태도로 답했다. 귀족 NPC들은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까 이데르고 교단 놈들은 접근도 못 하게 해야겠군.

-모험가들을 시켜서 오지 못하게 합시다.

[퀘스트, <이데르고 교단 사제 토벌>…]

[퀘스트, <이데르고 교단…]

[이데르고 교단을 토벌할수록 공적치 포인트가 오릅니다!]

“어? 왜 갑자기?”

“이데르고 교단이 뭐라도 했나?”

필립 3세 진영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갑자기 이데르고 교단이 뜨는 거지?

* * *

“폐하의 정당한 재산인 왕궁에서 싸우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나쁘지 않군. 그보다 보게. 내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콰드득!

필립 3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어두운 죽음의 마력이 손으로 모여 폭발했다.

“…….”

[카르바노그가 저거 슬슬 무섭기 시작하다고 말합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는 필립 3세!

주변의 플레이어들이 각종 퀘스트를 깨오고 아이템을 바친 덕분이었다.

‘골골이보다 몇 배는 강한 것 같은데…?’

“훌륭하십니다.”

-그래! 이 힘으로 못난 자식 놈들을 모조리 베어버릴 것이야! 한시라도 빨리 싸울 수 있어야 하는데…!

[필립 3세가 죽음의 힘을 더욱더 늘리고 싶어합니다.]

[필립 3세가 강한 상대를 원합니다!]

[……]

‘네가 가루다 종족이냐?’

강한 적을 상대해서 강해지고 싶다니 무슨 가루다 종족도 아니고….

죽음의 힘을 다루는 필립 3세 vs 굶주린 혼돈의 힘을 다루는 1왕자.

정말 자존심 강한 두 왕족들의 싸움이었다.

“곧 싸우게 되실….”

-자식 놈들이 오려면 멀었으니 그 전에 필요하다. 내가 들어보니 주변에 이데르고 교단 놈들이 있다고?

“아니. 그건….”

귀족들이 이데르고 교단 사제들 잡아오란 게 이상하게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데르고 교단 놈들이 있는 모양이군. 그 불쾌한 놈들을 찾아오게. 내가 직접 가서 쓸어버려야겠으니!

힘이 점점 강해지자 필립 3세는 태현이 만들어 준 마차 안에서 가만히 있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직접 가서 모조리 베어버리고 힘을 흡수하겠다!

어떻게 말려야 하나 고민하던 태현은 문득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이데르고 교단 정도는 뭐 쓸어버리게 해도 되지 않나?’

1왕자와 싸우기 전에 전초전 정도 느낌으로….

“알겠습니다. 위치를 찾아오겠습니다!”

* * *

“저기 이데르고 교단이다! 저기 이데르고 교단이다!”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근처 이데르고 교단 비밀 신전을 찾아냈다.

이런 토벌 퀘스트는 언제나 든든한 국밥처럼 남는 게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악신 교단이라 명성 같은 보너스는 덤!

-이… 이놈들이 갑자기 왜?!

이데르고 교단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당황했다.

에랑스 왕국은 혼란스러웠고 왕족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덕분에 차근차근 힘을 쌓아나갈 수 있었는데….

갑자기 대뜸 토벌대가 찾아온 것이다.

-역병을 풀고 괴수들을 꺼내라! 막아야 한다!

-감히 내 땅에서 신성력을 뿌리다니! 신성한 놈들은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

필립 3세는 언데드답게 신성 관련에 예민했다.

“폐하. 아키서스는 예외겠죠?”

-그래. 아키서스는 예외로 쳐주겠다. 어쨌든 신성한 놈들은 모조리 쓸어버려라!

필립 3세가 호령하고 플레이어들과 귀족 NPC들의 부하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에 비밀 신전의 벽은 그대로 파괴되고 쓸려나갔다.

-역시 폐하시다!

-힘을 회복하기 위해 이데르고 놈들의 손을 빌리셨을 뿐, 놈들의 뜻에 따라주실 생각은 조금도 없으셨던 거다!

귀족들은 매우 감동했다.

필립 3세에 대해 의심하고 있던 마음이 싹 씻겨 내려가는 토벌!

[귀족들의 충성도가…]

[……]

[……]

[매우 높은 행운으로 이데르고 교단 암살자를 발견했습니다!]

“!”

태현은 옆에서 다가오던 교단 암살자와 눈이 마주쳤다.

높은 행운 덕분에 풀려버린 은신!

“…….”

-…죽어라!

퍼퍼퍽!

태현은 암살자를 쓰러뜨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은 압도적이었지만 여전히 방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키서스의 교황 이놈…!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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