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78화
“하긴 검은 바위단은 저번에 같이 싸웠을 때도 그렇고, 확실히 강했지.”
태현의 말에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태현을 피하고 두려워하는 것과 별개로, 실력을 인정받는 건 매우 뿌듯한 일이었던 것이다.
“인정해 주시다니 기쁩니다.”
“요즘 신진 랭커들이다 뭐다 이런저런 플레이어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검은 바위단은 괜찮나?”
“저희야 잘나가고 있습니다.”
대형 길드들이야 세력이 줄고 이리저리 휘청거렸지만, 애초에 소규모 친목 길드들은 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영지 같은 거 없고, 괜찮은 도시에 길드 하우스 하나 두는 게 전부인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다 자유!
‘그건 좀 부러운데…?’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골짜기부터 시작해서 왕국 관리하느라 솔직히 일이 너무 많기는 했다.
가끔은 판온 1처럼 편하게 플레이하고 싶을 때가 있을 정도!
“어쨌든 잘나간다니 좀 난이도 있는 레이드를 해도 상관없긴 하겠군.”
“잠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길드원 한 명이 말을 막았다.
태현은 순간 움찔했다.
‘들켰나?’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케인 삼년이면 머리를 쓸 줄 알았다.
검은 바위단도 슬슬 눈치를 채도 이상할 게 없었다.
“드래곤입니까??”
“어?”
“잡으려고 하는 게 드래곤입니까?”
“…!”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설마…!
“야. 무슨 드래곤을 또 잡아?”
“아니.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드래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드래곤 아닌데.”
“거봐. 아니래잖아.”
“그러면 악마 공작입니까??”
‘예리한데?’
태현은 검은 바위단 길드원의 추리에 감탄했다.
드래곤에 악마 공작에, 태현과 싸울 가능성이 높은 보스 몬스터를 잘 추리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둘 다 아니었다.
“아닌데.”
“어… 어? 진짜 아니라고요?”
태현이 둘 다 아니라고 하자 길드원은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는데….
“넌 왜 쪽팔리게 아는 척을 하고 그래?”
“맞아. 같은 길드원인 게 창피하다.”
“아, 아니. 제가 나름 김태현 퀘스트 많이 챙겨봐서 아는데 둘 중 하나일 텐데…?”
다른 동료의 구박에 길드원은 억울해했다.
분명 맞을 텐데!
“진짜 아닙니까?”
“아. 아니래잖아! 미련을 버려!”
“그래도 다행이다. 드래곤도 아니고 악마 공작도 아니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 모양이네.”
* * *
“그래서 가레티아. 가루다 왕족이기도 하고 성기사단장의 후예기도 한데. 뭐… 갖고 있는 거 없나?”
-뭘 말하는 거야?
“그. 있잖아.”
태현은 은근슬쩍 눈치를 줬다. 옆에 있던 이다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돈을 말하시는 거군요.”
“…아니. 그런 거 아니거든?”
가레티아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주한테 삥 뜯는 교황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돈 얼마 없는데….
“돈 이야기하는 거 아니거든? 가루다 왕족을 지키는 근위대나, 혹은 성기사단장의 후예를 지키는 호위기사 같은 거 없냐는 거지.”
-아….
가레티아는 태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깨달았다.
가루다 왕족들은 가루다 전사들을 소집해서 데리고 다닐 권리를 갖고 있었다.
지위가 높을수록 더 강한 전사들을 더 많이 소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건 강함에 도움이 안 되니까 안 데리고 다니지.
“…….”
태현은 정색했다.
“그건 아주 좋지 않은 생각이야. 지금이라도 가서 데리고 오라고.”
-주신다는 걸 예전에 거절했는데 갑자기 어떻게 만들어…?
가레티아는 당황해했다.
예전에 거절한 걸 지금 당장 어떻게 받는단 말인가. 근위대나 호위들은 다른 왕족들 주변에 있는데.
“그러면 뭐 성기사단장으로서 가진 스킬이나 아이템이나 보물이나 악마 공작의 약점 같은 건 없나?”
“마지막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아키서스 교단이라면 그런 게 전해져 와도 이상할 게 없어 보여서.”
-있어!
“!”
“있다고요!?”
이다비가 더 놀랐다.
진짜 악마 공작 약점 같은 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나?!
-아키서스 성기사단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고대 신전이 있어.
“…!”
태현의 눈이 커졌다. 생각치도 못했던 귀한 정보였던 것이다.
[신전의 위치가 지도에 추가됩니다!]
[……]
마음 같아서는 1왕자 레이드고 뭐고 그냥 포기한 다음 신전에 가고 싶을 정도!
‘아니. 그러면 안 되나? 1왕자야 뭐 알아서 에랑스 왕국에서 잘 살라고 하고.’
사실 태현이 1왕자를 꼭 잡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1왕자가 태현을 죽이려고 이를 갈고 있다는 점만 빼고!
[카르바노그가 1왕자 빨리 안 죽이면 1왕자가 화신을 먼저 죽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야 하지만 지금 1왕자는 다른 왕자들하고 싸우기도 바쁠걸.’
다행히 다른 왕자들부터 시작해서 오스턴 왕국의 기라성 같은 플레이어들이 왕자의 발목을 묶어놓고 있었다.
스미스의 화이트 나이트!
쑤닝의 길드 동맹!
거기에 미다스 길드까지 열심히 맞서 싸우고 있었으니 아무리 에랑스 왕국이라도 발이 묶일 수밖에.
-그런데 그 신전에 들어가려면 필요한 게 있어.
“그게 뭐지?”
-원수의 피야. 바로 에랑스 왕가의 1왕자를….
“…….”
태현은 정색했다.
아니 이놈의 교단은 무슨…!
“무슨 놈의 악신 교단도 아니고 뭐 이리 야만적이야? 원수의 피를 바쳐야 신전의 문이 열린다니?”
-원수를 잊지 않는 철저함이 정말 아키서스답지 않아? 사디크 교단처럼 미적지근한 교단과는 전혀 다른 이 철저함!
“아니. 별로.”
졸지에 끌려 나와서 욕먹은 사디크 교단만 불쌍하게 되었다.
‘어쨌든 신전 들어가려면 1왕자 모가지를 따야 한다는 건데….’
태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가레티아가 강하다고 해도 1왕자 쪽에 있는 쟁쟁한 NPC들을 모조리 뚫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태현이 1왕자를 잡을 방법을 꺼내야 한다는 건데….
“이세연.”
“?”
“국왕 언데드로 일으키자. 그것밖에 답이 없다.”
“…정말 괜찮겠어?”
이세연은 이미 몇 번이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
-에랑스 국왕 정도 되는 언데드는 일으켰을 때 내 통제를 벗어날 확률이 매우 높아.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가 없어! 최악의 경우, 우리를 공격할지도….
태현이라고 그 위험성을 왜 모르겠는가.
안 그래도 아키서스의 노래 때문에 에랑스 왕국 국왕의 선조 한 번 만난 입장으로서 별로 하고 싶은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태현이 쓸 수 있는 패 중 그나마 1왕자 상대로 유리한 패는 국왕밖에 없었다.
1왕자는 아직 국왕이 죽은 것도 모를 테니까!
‘게다가 에랑스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에랑스 왕국의 검과 왕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1왕자는 넘어가지 못할 거다.’
태현도 마음 같아서는 에랑스 왕국의 검과 왕관을 찾아서 1왕자를 협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음흉왕한테서 ‘국왕만이 탈 수 있는 페가수스가 있다’면서 에랑스 왕국 마굿간 위치를 얻긴 했지만 지금 접근했다가는 1왕자한테 들킬 것이고….
무엇보다 딱 봐도 어마어마한 연계 퀘스트의 냄새가 났던 것이다.
1왕자가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왕국 내에서 그런 퀘스트를 했다가는….
“진짜 일으킨다? 나중에 뭐라고 하기 없기다?”
“…자꾸 그러니까 결심이 흔들리잖아.”
하지만 태현은 결심을 내렸다.
국왕을 되살리자!
아니, 되살리는 건 아니었지만….
* * *
이세연은 긴장된 표정으로 섰다.
수많은 언데드를 일으켜 세웠던 그녀였지만, 이렇게 거물은 처음이었다.
무려 왕국의 왕!
‘살다 살다 국왕을 언데드로 일으켜 세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면 갈게.”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태현은 각종 준비를 한 상태였다.
폭탄 중에서도 언데드 전용 신성 폭탄들을 챙기고, 뒤에는 아키서스 교단 사제 NPC들과 그들을 이끄는 펠마른까지 대기시키고….
국왕 일으키자마자 다시 국왕 레이드하는 매우 웃기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동생아. 뭔 생각을 하고 있길래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냐?”
“…판온에서 대체 이런 퀘스트를 누가 하는지 생각하고 있었어.”
국왕 살리는 데 실패하면 다시 레이드해야 한다니 이 무슨…!
지금 골짜기에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었지만, 이 일은 극비로 진행되고 있었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도 밖에서 멋모르고 대기 중!
파아아앗!
이세연의 스킬들이 연속적으로 사용되고, 이세연은 앞을 보며 외쳤다.
“일어나라!”
[에랑스 왕국의 전 국왕, 필립 3세가 죽음에서 되돌아옵니다!]
[필립 3세의 레벨이 매우 높습니다.]
[자아를 잃지 않습니다!]
[명령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흑마법 스킬이 낮습니다. 페널티…]
[……]
[……]
말했던 대로, 필립 3세는 이세연의 명령을 떨쳐냈다.
네임드 언데드인 만큼 강력한 힘!
‘그래도 장비는 없다. 싸움이 벌어져도 제압할 수 있어!’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국왕을 노려보았다.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이….
“이?”
-이… 이… 이 버릇없는 놈의 새끼들…!
“???”
“나, 나?”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스킬을 쓰면서 뭔가 무례라도 저지른 것일까?
“이세연. 뒤로 물러서!”
태현은 이세연을 뒤로 당기면서 앞으로 나갔다.
만약 국왕이 공격하기라도 하면 이세연은 위험했던 것이다.
이세연을 감싸며 앞으로 나선 태현이었지만, 1초만에 후회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세연이 바보도 아니고 가까이서 공격받았을 때 대비를 안 했을 리가 없겠군.’
마법사가 근접전에 약하다지만 랭커쯤 되면 그에 대비한 스킬 몇 개 정도는 당연히 갖고 있었다.
굳이 태현이 먼저 나서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미안하게 됐다. 이세연. 생각해 보니까 널 무시하는 짓이었네.”
“어? 응? 뭐? 아니? 아닌데?”
“…뭐 잘못 먹었어? 정신 차려. 앞에 국왕 있다고.”
태현의 질책에 이세연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 둘 다 프로는 프로였던 것이다.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국왕 폐하. 지금 여기는 포위되어 있습니다. 저를 공격하면….”
-존! 토마스! 데이비드! 사악한 버러지들! 이 아비를 배신하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누구야?”
“…왕자들!”
다행히 필립 3세는 태현이나 이세연한테는 별다른 원한이 없어 보였다.
일어나자마자 보여주는 건 왕자들에 대한 극심한 증오!
국왕은 왕자들을 잡아서 죽이겠다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위험한 거 아니야?”
언데드들 많이 봐 온 이세연은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언데드들 중에서 저런 부정적인 감정이 심한 언데드는 위험하기 마련이었다.
증오, 원망, 원한 등 이런 감정들이 그 언데드를 매우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언데드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뭐 어때. 우리만 안 미워하면 됐지.”
“…너무 긍정적인 거 아니야?”
그러나 태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공격 안 하는 것만으로도 1차 목적은 성공한 것이다.
“폐하! 그 버러지 같은 왕자들을 잡아 족치는 것을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생전에도 제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는데….
죽음의 충격으로 국왕은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폐하께서 일을 맡길 정도로 신뢰하던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폐하께서 여기 어떻게 있겠습니까? 자. 같이 자식들을 죽이러 가시죠!”
[카르바노그가 그런 말을 상쾌하게 외치지 말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