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76화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어요??”
케인은 진심으로 놀랐다.
그런 방법이 있단 말이야?
“…영지 세금을 깎고, 시설 이용료를 내리고, 좋은 NPC들을 많이 데려오고, 양질의 퀘스트들을 찾아오고, 미발견 던전들을 찾아오고, 플레이어들이 못 잡는 몬스터를 도와주고, 이런 식으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
“하지만….”
“하지만?”
“그건 힘들잖습니까…!”
“…그럼 뭐 날로 드시려고 했습니까 이 새….”
“감, 감독님. 화나신 거 아니죠?”
“하하. 그럴 리가요. 저는 선수들한테 절대 화를 내지 않습니다.”
“베이징 파이터즈에 있을 때 선수들하고 싸우셨지 않아요?”
“그건 그 새… 아니, 케인 선수. 왜 자꾸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시는 겁니까?”
사람 좋은 사베트였지만 계속되는 케인과의 대화에 슬슬 목소리에 분노가 감돌기 시작했다.
케인은 놀랍게도 그 기운을 눈치챘다.
수없이 태현에게 구박받으면서 향상된 눈치!
“그렇군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케인 선수. 진작 그랬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는 사이 4왕자가 멀리서 호다닥 달려왔다. 어찌나 급히 왔는지 주변에 호위도 없었다.
보통 한 나라의 왕자면 주변에 호위들부터 시작해서 등장하면 메시지창 깔고 후광을 촥촥 뿌려가면서 나와야 하는데….
[4왕자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다른 왕자들의 암살자로부터 4왕자를 보호하십시오!]
[4왕자가 죽을 경우 명성이 크게 하락…]
[……]
[……]
“아니….”
케인은 메시지창에 움찔했다.
왕국 암살자로부터 보호하는 퀘스트라니!
“이거 어려울 거 같은데….”
“방금 최선을 다하신다면서?”
“아, 아니. 최선은 다 하는데, 감독님. 제 직업이 뭡니까.”
“노예죠.”
“…풀네임을 말해주셔야지 그냥 뒷말만 말하니까 이상하잖아요!!”
“어, 그냥 노예 아니었습니까? 다른 선수들이 노예라고 하던데. 김태현 선수도 노예라고 하고….”
“아키서스의 노예입니다! 아키서스의!”
“아아. 그렇군요.”
사베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냥 ‘노예’는 직업 이름으로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어쨌든 제 직업은 그, 맞고 버티는 건 잘해도 암살자 찾는 건 잘 못한단 말이죠.”
“확실히 그럴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왕자 대신 맞을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제가 죽으면요?”
“안 죽게 잘 해야죠?”
“…….”
케인은 울컥했지만 참았다. 상대는 감독이었으니까.
사베트는 그냥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진지하게 다른 조언도 곁들여줬다.
“그래도 여기 섬에 사람 없으니까 몰래 숨어들어 올 사람은 적을 겁니다.”
“없는 건 아니고 적은 거.”
“그래요. 사람 적으니까 새로 오면 티가 날 겁니다. 4왕자는 한적한 탑 같은 곳에 넣고 그 주변을 철통처럼 지키시죠.”
“좋은 방법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랑스 왕국 암살 퀘스트면 암살자 NPC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들도 여럿 받을 게 분명했다.
케인은 그런 게 더 두려웠다.
암살자 플레이어들이 작정하면 정말 끈질기고 교활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 위험한 놈들은 무려 0.1 김태현만큼이나 위험했다.
그런 걸 막기 위해서는 아예 탑 안에 4왕자를 가두는 게 좋아 보였다.
“4왕자. 날 믿지?”
“아니. 안 믿는데….”
“그래. 날 믿… 뭐?”
“널 좋아는 하는데 믿지는 않지. 좀 허술하잖아.”
못 본 사이에 지능 스탯이 많이 올라간 4왕자!
“그 교황은 어디 있나? 교황이 있어야 안심이 갈 거 같은데….”
“…내가 만나게 해주지. 자. 따라와.”
“어디로 가는 건데?”
“아주 좋고 안전한 곳이지.”
케인은 4왕자를 속여서 노드란체 지하에 있는 탑으로 끌고 갔다.
안에 가둔 다음 아무한테도 말해주지 않을 생각!
그러는 사이 사베트는 저 멀리 수평선에서 뭔가 몰려오는 걸 발견했다.
‘?’
그건 어마어마한 숫자의 함선이었다.
‘?????’
* * *
“1왕자 사냥….”
“으으음.”
“…….”
돌아온 태현 일행의 분위기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들 앞에 닥쳐온 퀘스트 때문이었다.
1왕자 사냥!
류다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말했다.
“제 생각이지만, 이 퀘스트는 미루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야.”
이세연도 공감했다.
솔직히 지금 에랑스 왕국 1왕자를 잡겠다고 나서는 건 드래곤 사냥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난이도가 비슷했다.
“근데 김태현 선수 드래곤 잡았….”
“…좀 닥쳐.”
이세연은 후회하면서 말을 바꿨다.
“드래곤을 사냥하는 것보다 더 난이도가 높을 수도 있어.”
에랑스 왕국 1왕자는 현재 에랑스 국왕의 위치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
각종 살벌한 귀족 기사단과 마법사들을 동원 가능한 위치!
레벨 500, 600은 기본으로 시작하는 기사들이 합공으로 덤벼오고 왕궁 마법사들이 온갖 강력한 마법을 뿌려대면 태현도 위험했다.
“에랑스 왕궁 마법사 정도면 그 수준이 어마어마할 텐데, 네 갑옷도 뚫고 저주를 넣을 수 있잖아.”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도 상대를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태현의 약점은 낮은 HP.
그 약점을 받쳐주고 있는 건 높은 행운과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스킬, 그리고 강력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아다만티움이 아무리 사기여도 무적은 아니었다.
레벨 높은 마법사나 강력한 저주 스킬 등에는 언제든지 뚫릴 수 있었다.
태현처럼 낮은 HP인 플레이어는 그런 저주들이 쌓이기만 해도 위험해지기 마련.
‘특히 회피율 내려가면 위험하지.’
플레이어들은 아직 아다만티움 갑옷을 막 뚫을 정도로 레벨이 높지 않았지만 NPC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하게 되면 암살할 생각이야.”
“!”
“…어, 직업이 암살자… 아니지 않습…니까?”
류다영이 당황했다.
태현의 직업은 아키서스 관련 전설 직업이라고 알고 있었다.
암살자랑은 상관이 없지 않나?
“뭐 암살자만 암살하란 법은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어라?
그런가?
아니 그래도…?
류다영이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태현은 이다비를 보며 물었다.
“맞다. 1왕자 암살은 그렇다 치고, 이다비 직업 퀘스트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아키서스의 황금 주교>.
이다비가 받은 전직 퀘스트였다.
다만 누굴 잡거나 속이거나 협박하거나 사기 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뭔가 건설해야 하는 퀘스트라 미뤄두고 있었을 뿐!
별생각도 없었는데 질문을 받자 이다비는 당황했다.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요….”
“왜? 진행해야지.”
“돈 아깝잖아요.”
“…….”
“…농담하는 거죠?”
이번에는 이세연이 당황했다. 태현은 속삭였다.
“아냐. 진심이야.”
“아니… 이다비 선수 정도면 수입이….”
“게임은 돈 버는 곳이지 돈 쓰는 곳이 아니라는 게 원칙이거든.”
“알겠으니까 그만 속삭일래?”
이세연은 태현을 밀어냈다. 이다비가 직접 말하면 됐지 왜 태현이 말한단 말인가.
“하지만 건축물을 만드는데 꼭 돈을 써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긴 해.”
“…???”
태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돈을 안 쓰면 뭘로 만들어?
태현은 당당하게 항변했다.
“잘 생각해 봐. 골짜기에 있는 하늘성. 그게 돈을 써서 만든 걸까?”
“하지만 그건 제작이 아니라 훔친….”
이다비의 말을 태현은 못 들은 척하고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왕국에 있는 여러 요새들과 길들. 이것도 돈을 써서 만든 게 아니야.”
“그건 길드 동맹 사람들 협박해서 퀘스트 시킨….”
왕국 쳐들어왔다가 붙잡힌 길드 동맹 사람들은 노동으로 대가를 치르고 떠나야 했다.
정말 (남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아탈리 왕국!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꼭 골드를 쓰지 않아도 이런저런 건설을 할 수 있다는 거야.”
“이해했습니다. 김태현 선수.”
류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가서 길드 동맹 놈들을 붙잡아 온 다음 협박하란 뜻이겠지요.”
“…아, 아니. 그렇게까지 말한 건 아닌데.”
방금 대회 심사위원 관련으로 거액을 입금받았는데 바로 길드 동맹 길드원들 붙잡아 가면 아무리 태현이라도 양심이 찔렸다.
그건 좀… 너무하잖아!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나 골짜기 쪽 플레이어들은 이런 건설에 잘 응하지 않나?”
“그런데 이건 제 퀘스트라서 그런 사람들 쓰는 건 규칙에 어긋난….”
파워 워리어가 개나 소나 다 받아주는 길드라지만, 길드의 원칙이 없다면 그런 길드가 이제까지 계속 유지될 리가 없었다.
파워 워리어가 유지되어 오는 데에는 이다비의 원칙이 가장 컸다.
나름 철저한 선이 있는 것!
그중 하나가 길드원들 멋대로 쓰지 않는 거였다. 특히 길마인 본인 일에는 더더욱.
“내 퀘스트에는 다들 참가 많이 했잖아?”
“그건 태현 님 이름만 말해도 다들 대박 노리겠다고 참가하는 거고, 제 퀘스트는 다른 이야기죠. 길마로서 그렇게 멋대로….”
“그러면 내가 모집하지 뭐.”
“아, 아니…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닌데요….”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이다비가 길마로서 원칙을 지키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내 이름으로 부르지 뭐!
태현은 아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몇을 불렀다.
-자니?
-안 잡니다! 24시간 동안 깨어 있습니다! 뭐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
간단하게 귓속말 보냈다가 뜨거운 반응이 돌아오자 태현은 움찔했다.
-내가 퀘스트 도움이 필….
-갑니다!!! 지금 갑니다! 가고 있습니다! 10분 안에 도착합니다!
-내가 어디인지 모르지 않….
-그래도 10분 안에 도착합니다!!
-그, 그래.
태현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몇몇한테 말해서 건축할 사람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길드원들은 또 다른 길드원들을 불러왔고….
“헉, 헉헉, 헉헉헉. 헉헉헉헉.”
“여기서 건축 쪽 직업인 사람?”
“제가 레벨 8 때 골짜기 신전 1층 벽돌을 날랐습니다!”
“저리 꺼져! 전 건축 스킬이 중급입니다!”
“저는 <아키서스의 일꾼> 칭호도 있습니다!!”
길드원들은 서로 치고받으며 싸웠다. 그 결과 승리한 몇몇의 플레이어들이 나왔다.
“싸고, 커다란 건축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역시 동상….”
“동상 말고.”
태현은 정색했다.
자기 얼굴 달린 동상이 곳곳에 있는 걸 보는 건 솔직히 좀 민망한 일이었다.
지금도 골짜기 돌아다니다가 동상 만날 때면 움찔움찔하게 되는 것!
“탑 어떻습니까?”
“탑이라… 확실히 좋군.”
거대한 탑이 아니라, 높이를 목적으로 최대한 높게 세우는 탑!
[카르바노그가 예전에 어떤 교단이 엄청나게 높은 탑을 세운 적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적이 있었어? 어땠는데?’
[카르바노그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합니다.]
위대한 건축물은 원래 강력한 추가 효과를 불러왔다.
성기사들의 성소는 성기사들에게 전체 버프를 주고, 화신의 동상은 신도 전원에게 버프를, 화신 본인에게는 쪽팔림을 주고….
분명 예전에 어마어마하게 높은 탑을 세웠던 교단이 있었던 거 같은데….
카르바노그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싱겁기는.’
새로운 건축 퀘스트가 아탈리 왕국에서 시작된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방송 켜서 말 한 마디 하면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태현이었다.
물론 아직 방송은 하지도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