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275화 (1,274/1,826)

§ 나는 될놈이다 1275화

“죄송합니다, 여러분.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

“…….”

“…….”

심사위원들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다른 대회나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볼 수 없는, 판온에서만의 진풍경!

현실에서는 팬이 이렇게 달려나오지 않는 것이다.

“저기 건물 옥상에서 탈것 타고 날아오려는 새끼 뭐야 저거!”

“잡아! 막아!”

“아오 개또라이들!”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허겁지겁 달려갔다.

나름 주변을 통제했는데도 웬 미친놈들이 김태현 시선 한 번 받아보겠다고 미친 짓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제발 골짜기 가서 해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왜 오스턴 왕국에서 이러는 건데!’

“김태현 님! 보고 계십니까! 제가 이 정도 되는 플레이어입니다!”

-대답 안 해줘?

태현은 이세연의 귓속말을 무시했다.

저걸 어떻게 대답해 줘!

“내가 날아간다! 내가 날아간다고! 봐라! 여러분! 길드 동맹 놈들이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미친놈아 조용히 해! 왜 여기서 이러는 거야!”

소란이 완전히 진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려야 했다.

“헉헉… 죄송합니다. 여러분.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

“또 없나? 재밌었는데.”

“…….”

태현의 말에 길드원들은 속으로 욕했다.

너 때문이야 이 자식아…!

사회자는 간신히 표정 관리를 하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팬들답게 반응이 뜨겁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열렬하게 환영을 해줄 줄이야….”

“아니. 저건 반응이 뜨거운 게 아니라 미친 거 아닌…?”

“쉿. 조용히 해.”

에임스의 말에 매킨리가 옆구리를 찔렀다. 에임스가 매킨리를 노려보았다.

“자, 이렇게 소개가 끝났습니다. 참가한 플레이어 분들은 앞으로 심사위원들의 퀘스트를 수행하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게 될 겁니다!”

“오…?”

태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별로 놀라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김태현 선수?”

“아니. 심사위원들이 미션 내주는 건 못 들어서 말입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하긴 그건 그래!

심사위원들은 참석하기 전부터 ‘참가한 플레이어들 걸러낼 수 있는 미션이나 퀘스트를 고민해 주십시오’라고 말을 들은 것이다.

“못 들어서….”

“못 들었다고요? 허. 이런 것도 말 안 해주다니. 너무 당연해서 그랬나?”

사실 길드 동맹은 태현에게만 말하지 않았다.

-이건 너무 당연하고 사소한 거니까 말하지 말자.

-그래도 말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김태현이 귀찮다고 안 하면 네가 책임질래?

-…뭐 이 정도는 너무 당연한 거니까 굳이 말하지 말죠!

“그런데 보통 이런 건 주최 쪽에서 짜지 않나?”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태현이 길드 동맹 입장이라면 오스턴 왕국에 있는 각종 던전과 고난이도 퀘스트를 사용했을 것이다.

대회도 하고 홍보도 하고!

그런데 이런 기회를 그냥 넘겨주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야 그랬다가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항의했을 테니 말입니다.”

“아아….”

맞는 말이었다.

여기 모인 심사위원들은 참가 안 해도 되는, 나름 지위 높은 이들이었다.

홍보가 되고 자기들 이득이니까 참가한 것!

그런 사람들에게 ‘미션 우리가 내줍니다’ 하면 ‘결국 사악한 본색을 드러냈구나 이 길드 동맹 놈들!’ 같은 반응만 나올 것이다.

“근데 심사위원들의 미션들을 따로 해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마 추첨으로 하겠죠? 각자 미션을 써 넣은 다음에.”

“?”

옆에서 듣고 있던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여기 게임 안인데…?’

각자 원하는 미션 써서 상자에 넣은 다음 뽑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평등하게 원하는 미션을 고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긴 판온 안이었다.

‘태현 님 행운 스탯을 모르나?’

주사위만 굴려도 알 수 있지만 태현은 저런 행운 관련된 것에 매우 강했다.

뽑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행운 스탯 영향 받을 가능성이 크다!

‘태현 님이 직접 안 뽑을 테니 괜찮으려나…?’

“그러면 뭐 저도 하나 써야겠습니다. 뭐 쓰셨어요?”

“아무래도 첫 미션은 던전 공략이 무난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긴 올빼미의 공포> 던전을 골랐습니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기에 매킨리는 순순히 대답했다.

<긴 올빼미의 공포>.

어두컴컴한 숲 형태 던전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치고 날아오는 난이도 높은 던전이었다.

그 난이도 때문에 인기가 없을 정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던전은 보상 좋고 사냥하기 쉬운 던전이지, 사냥하기 어려운 던전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렇게 테스트 할 때는 도움이 됐다.

‘난이도가 높으니 실력 판단하기 좋을 거야.’

“던전… 던전이라.”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어느 던전이 좋을까?

“<아키서스 허기의 던전>은 어때요?”

“참가자들 전멸시키게?”

“아니면 내 제국에 있는 사막 쪽 던전은 어때?”

“왠지 배 아파서 싫어.”

“…….”

“꼭 던전일 필요는 없지 않나요?”

“하긴 그것도 그래. 플레이어들을 테스트할 수 있는 거면 되겠지. 그래도 가능하면 던전 같은 게 편리할 거 같은데… 아.”

태현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노드란체 지하 도시에 <고대 제국의 훈련용 탑> 있지 않았나?”

저 북쪽의 추운 섬, 노드란체.

케인이 사기 당해 받은 영지였다.

처음에는 사기당했다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섬 퀘스트를 깨다 보니 의외의 사실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건 바로 지하에 고대 제국 도시가 있었다는 것!

그 도시 중의 시설 중 하나가 <고대 제국의 훈련용 탑>이었다.

물론 대부분이 1층도 못 깨고 탈락하고 있는 극강의 난이도 때문에 지금은 몇몇 사람들만 붙잡고 있긴 한데….

“잘 됐다. 거기 해야지.”

“거기가 뭐하는 곳인데?”

“고대 제국의 훈련용 탑이라면 난이도가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

“난이도가 어려워야 미션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스킬이나 레벨, 직업 차이 없이 테스트할 수 있잖아.”

“뭐하는 곳이냐니까….”

이세연은 시무룩해졌다.

태현하고 이다비가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근히 섭섭하다!

“미안. 그 노드란체라는 섬 지하에 그런 시설이 있어.”

태현은 설명에 나섰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세연의 표정은 기묘하게 변했다.

…그런 곳을 꼭 넣어야 할까?

“그냥 평범한 던전 쓰면 안 돼? 아탈리 왕국에도 평범한 던전 여럿 있잖아.”

“이세연. 미션은 진지하게 생각해야지 그렇게 대충하면 안 되잖아. 여기 참가한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아니…?!”

졸지에 날로 먹으려고 한 사람 된 이세연은 매우 억울해졌다.

그게 왜 대충인데!

순간 태현이 놀리나 싶었는데, 태현 얼굴을 보니 매우 진지했다.

진지하게 저 훈련용 탑 고른 것!

“…마음대로 해. 생각해 보니 추첨이라면 누가 골랐는지도 모르겠네.”

“음. 아마 알지 않을까요….”

이다비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드란체에 있는 훈련용 탑 미션으로 넣을 사람은 태현밖에 없어 보였다.

* * *

“내가 넣은 게 뽑혔으면 좋겠군.”

에임스는 진지하게 말했다.

“오. 뭘 넣으셨습니까?”

“<잊혀진 악룡의 둥지>.”

잊혀진 악룡의 둥지는 오스턴 왕국의 유명 던전 중 하나였다.

물론 드래곤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난이도 높고, 보상 좋고, 사냥이 까다롭지 않아서 인기 좋은 던전이었다.

“아니 거기를 왜 넣어 미친 새….”

“쉿. 쉿쉿.”

문제는 거기가 지금 스미스와 화이트 나이트 길드에게 점령당한 상태라는 것!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지금 우릴 우롱하냐?’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만약 거기 걸리기라도 하면 그쪽 홍보를 공짜로 해주는 셈 아닌가!

“걱정 마십시오. 설마 저게 뽑히겠습니까.”

“그. 그래. 사람은 많으니까. …김태현은 뭐 넣었지?”

“글쎄요?”

“글쎄요는 무슨 글쎄요야! 김태현 옆에 붙어 있었으면서 그것도 몰라!?”

“그, 그게. 김태현이 그런 거 말 안 해주는 사람인 거 잘 아시잖습니까….”

“후. 됐다. 김태현도 그렇고 에임스도 그렇고 저런 놈들이 설마 뽑히겠어. 사람이 몇 명인데. 그리고 김태현도 사람인데 양심이 있지 이상한 던전 같은 걸 넣지는 않았을 거야.”

“아레네 시 궁전 돌파 이런 거 말입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니까 더욱 재수 없군. 입 다물고 있어.”

길드 동맹 궁전에 들어가서 쑤닝 목 따오기 같은 걸 퀘스트로 넣지는 않았겠지?

설마 양심이 있지….

“발표하겠습니다! 노드란체 지하, 고대 제국 도시, <고대 제국의 훈련용 탑>!”

“!”

술렁술렁-

발표가 나오자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고대 제국의 훈련용 탑이 뭐하는 곳이었지?”

“이름은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데….”

“고대 제국 쪽 시설이래.”

“그건 이름만 봐도 나도 알겠다.”

“앗! 거기잖아!!”

기억력 좋은 플레이어가 외치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뭐하는 곳인데?”

“추운 북쪽 프로즈란드 근처에 있는 섬인데….”

“오오….”

“고대 제국 도시가 지하에 있고….”

“오오오…!”

“아직까지 사람들이 1층도 못 깼을 걸.”

“…그거 이상한 곳 아니냐?”

* * *

“지금 도망치려고 수작부리는 건 아니라 믿습니다.”

“감독님…! 아직도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케인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호소했다.

뭐 할 때마다 ‘지금 튀는 거 아니죠?’ ‘지금 게임 접속 끊으려는 거 아니죠?’ ‘밥 먹을 때도 방패 휘두르면서 드세요’ 하고 갈구는 감독, 사베트!

케인도 슬슬 태현이 이 감독을 왜 데리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이 감독은 태현 못지않게 집요하고 끈기 있었던 것이다.

둘이 아주 잘 맞아!

“네. 못 믿습니다.”

“…아니 보통 이럴 때는 믿어준다고 하는….”

“저는 선수를 믿지만 믿지 않습니다. 그게 좋은 감독이죠.”

멋있다!

케인은 순간 감탄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지금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짜 이건 도망치는 거 아니거든요… 진짜 에랑스 왕국 4왕자가 도와달라고 했다구요.”

“알겠습니다. 믿습니다.”

“믿는 눈빛이 아니잖아!!”

케인은 지금 4왕자 캐인의 부름을 받고 노드란체로 내려가고 있었다.

<전국 빡센 던전 순례>를 시키던 사베트도 이건 어쩔 수 없었는지 허락했다.

“오. 여기가 노드란체군요. 영상으로만 봤습니다만.”

“제 영지입니다. 후후.”

“골짜기에 비하면 좀… 휑하네요?”

“…….”

케인은 발끈했다.

“노드란체가 골짜기에 비해 작을 수는 있어도 사기 당해서 끌려온 개척단과 골짜기에서 온 오크나 뱀파이어나 고블린 같은 다양한 종족들이 있는 좋은 영지입니다!”

“오오… 정말입니까? 그건 대단하네요.”

감독의 칭찬에 케인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노드란체는 확실히 발전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역시 부족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사실 태현이 혼자서 피와 땀과 남의 눈물로 키운 골짜기의 발전속도가 이상한 거였고, 혼자서 영지를 키우면 이 정도도 매우 빠른 편이었지만….

‘확실히 부족하긴 해.’

원래 제대로 된 영지를 키우려면 길드 정도는 필요하다!

‘흠. 혼자서 오스턴 왕국 가서 약탈 좀 해볼까?’

PK로 골드 뜯고 그러면….

하지만 케인은 그 생각을 곧 포기했다.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다는 걸 실감한 것이다.

판온은 넓고 PK 잘하는 놈들은 많구나!

“감독님. 혹시 영지를 발전시킬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으십니까?”

“역시 플레이어들이 많이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파워 워리어 길드에 부탁해서 게시판에 노드란체 좋다고 소문을 내보면 어떨까요?”

“…그, 그런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는 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