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274화 (1,273/1,826)

§ 나는 될놈이다 1274화

상처뿐인 승리였지만 매킨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겼다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그리고 스카우트는 원래 선수들한테 까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거 하나하나에 연연하다가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김태현 선수, 반갑습니다. 저번에 제 제안을 거절한 뒤로 못 뵈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반갑군요. 제 제안을 거절하신 게 아쉽지만 그래도 전 괜찮습니다. 아. 제 옆에 앉으시겠습니까?”

“아니. 다른 곳 가서 앉겠습니다.”

태현은 정색하고 말했다.

매킨리 옆에 앉았다가는 불편해서 목구멍에 뭐가 넘어가질 않겠다!

하지만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태현은 매킨리와 에임스 사이였다.

“…….”

“이야. 김태현 선수. 정말 인연입니다.”

“인연인 거 맞냐? 매우 불편한 표정이신데.”

태현은 둘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직원에게 물었다.

“같이 온 일행 있는데, 일행은 저 안쪽에서 구경해도 되죠?”

“물론입니다. 헤헤.”

길드 동맹 직원은 간사한 목소리로 양손을 비비며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단단히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이번 대회 망치면 안 되는 거 알지? 김태현 옆에 붙어서 놈이 난리 치지 못하게 해!

-제, 제가 어떻게 김태현을 막습니까? 검 뽑으면 5초 안에 잘릴 텐데?

-5초는 무슨. 1초겠지. 싸워서 막으란 게 아니라 비위를 맞추란 거야!

이런 명령을 받았는데 태현의 말을 거절할 리 없었다.

“일행이 누구입니까? 팀 KL 선수?”

“팀 KL 선수하고, 유성 게임단 선수….”

“이세연?!”

“네. 이세연.”

벌떡!

매킨리와 에임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은근슬쩍 일어섰다.

태현도 태현이지만 이세연도 놓칠 수 없는 인재였던 것이다.

게다가 가능성으로만 보면 태현보다는 이세연이 좀 더 영입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무엇보다 태현은 대표이자 사장이었던 것이다.

시즌 초창기에는 팀 KL이 얼마 못 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저런 소규모 게임단이 1부 리그에서 어떻게 버티겠나?

-선수들의 실력은 대단하지만 요즘은 저런 아마추어리즘이 버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자본 없으면 버틸 수가 없어.

-내로라하는 대형 게임단들도 다 떨어져 나가는데 무슨. 곧 해체될 거고, 그러면….

-김태현은 무조건 우리 팀에서 데려간다! 찜!

-찜이 어디 있어 미친놈아.

하지만 그런 기대는 팀 KL의 돌풍 이후로 바뀌었다.

-팀 KL 선수들의 믿음, 획일화된 리그를 뒤흔들다!

-결국 중요한 건 실력이다!

-김태현, 대표와 선수로서 동시에….

└아오. 팀 KL 안 망하냐??

└└이거 베이징 파이터즈 쪽 IP 아닌가?

└└└아님니다. 저희 베이징 파이터즈 아님니다.

└└└└그러게 내가 시즌 시작하기 전에 김태현 샀어야 했다고 했는데, 아무도 내 말 안 들어가지고….

└└└└└개나 소나 다 김태현 사자고 했거든? 게임단들도 했다가 포기한 거야.

망해야 할 팀이 신화를 만들어 내가며 잘 굴러가자 다른 게임단들은 태현을 영입하는 걸 반쯤 포기했다.

저 정도가 되면 도저히 영입할 각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세연이라면…!

유 회장이 들었다면 뒷목 잡았을 생각이었다.

* * *

이세연한테 가서 명함 주고 ‘저희 게임단도 유성 게임단 못지않게 좋습니다’ 한 심사위원들은 다시 사이좋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니. 유성 게임단은 왜 이리 조건이 후한 거지?”

“이세연 정도면 그럴 만하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보통 한국 쪽 게임단은 중국이나 미국보다 자금력이 부족하다고.”

한국 쪽 게임단은 전통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밀리고 있었다.

결국, 돈의 차이!

뛰어난 한국 선수 있으면 그냥 해외 게임단이 사가고, 굳이 사가지 않더라도 더 좋은 시설, 더 좋은 훈련 받는 선수들이 유리한 게 사실이었다.

보통 초일류 선수들이 한국 쪽에 남는 데에는 돈보다는 명예나 애국심, 혹은 같은 나라라는 프리미엄이 더 컸던 것이다.

근데 유성 게임단은 돈으로도 안 밀렸다.

“유성 그룹이 대기업이긴 한데.”

“기업이야 대기업이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나. 얼마나 전문적으로 접근하고 투자를 받아내느냐의 문제라고.”

모기업이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E스포츠에 관심이 없으면 투자가 안 떨어졌다.

그런 부분에 있어 한국 쪽 게임단은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해외는 굴러가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다.

“거기 회장이 관심 있다는 소문이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차라리 회장 손주들이 판온 좋아한다는 게 더 말이 되겠군.”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지. 예전에 로스앤젤레스 파이어였나? 그쪽 단장도 자기 손자가 좋아하는 선수 영입하려다가 욕먹었잖아.”

게임단 운영은 냉정한 사업이었지만, 사람은 언제나 이성적일 수 없는 법.

가끔 미친 사람 나오면 미친 투자가 나오게 되어 있었다.

“자. 여러분. 준비되셨으면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시죠.”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자가 소개를 다 했으니 이제 심사위원들이 나와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나름 대단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굳이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지만, 그래도 이런 소개는 중요했다.

‘무엇보다 홍보가 되지.’

‘저 옆의 뉴욕 라이온즈 놈한테 밀릴 수는 없으니까.’

이미지메이킹!

게임단은 이런 이미지메이킹에도 매우 매우 신경을 써야 했다.

여기서 얼마나 잘 소개하느냐에 따라 참가한 선수들의 흥미가 바뀌는 것이다.

꼭 여기 참가한 선수들이 아니더라도 이걸 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리라.

“내가 먼저 하겠다.”

“그러시든가.”

에임스가 먼저 나섰다.

보스턴 타이거즈 전 수석코치!

지금은 보스턴 타이거즈의 일선에서 뛰고 있지만, 팀에 대한 애정은 진짜였다.

“보스턴 타이거즈가 어떤 팀이냐! 예로부터….”

처음에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광장에 몰린 플레이어들은 시간이 지나자 슬슬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지루하다!

보스턴 타이거즈가 유명한 게임단이긴 했다. 명문이기도 했고.

근데 어느 시설이 있고 뭐가 있는지 여기서 구구절절하게 다 늘어놓으면 지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커리큘럼을 갖고 선수들을 진지하게 대하는 곳이 바로 보스턴 타이거즈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예! 잘 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다음 순서….”

“아니 말 다 안 했는….”

에임스가 말하기도 전에 사회자가 차례를 넘겨 버렸다.

매킨리는 그걸 보고 혀를 찼다.

에임스는 괜찮은 친구긴 한데 너무 고지식했다.

이런 자리에서 인기 없을 수밖에 없는 법!

“뉴욕 라이온즈 스카우트 총괄팀장 매킨리입니다. 여러분.”

매킨리가 입을 열었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뉴욕 라이온즈면 전통 있는 명문 게임단!

그런 곳의 스카우트 팀장이 나오다니.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참석한 플레이어들 중에 꼭 뛰어난 선수를 저희 팀에 데리고 오고 싶습니다. 아. 물론 저희 팀에 오고 싶어 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매킨리는 굳이 일일이 다 혜택을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아니까!

“스미스 선수도 여기 오고 싶어했는데 퀘스트 때문에 오지 못했습니다.”

“…….”

“…….”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퀘스트가 지금 오스턴 왕국 공격하는 퀘스트는 아니겠지…?

“지루한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여러분. 뉴욕 라이온즈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 뒤로 다른 심사위원들이 간단한 소개를 했지만 매킨리만큼 호응을 받지 못했다.

‘큭. 매킨리 자식.’

‘뉴욕 라이온즈 돈 많다 이거지?’

‘게다가 미국이니….’

기본적으로 돈 많은 게임단은 미국이나 중국이었지만, 보통 같은 연봉이라면 미국이 더 인기가 좋았다.

아무래도 다들 중국 쪽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미국 쪽에서 생활하는 걸 더 선호하는 것이다.

‘저러다가 뉴욕 라이온즈가 다 뺏어 가면 어쩌지?’

‘저 재수 없는 놈이 남의 나라에 와서…!’

평범한 자기소개인데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각자의 게임단을 위한, 양보할 수 없는 싸움!

‘다들 열심히 노려보는군.’

그 사이에서 태현만 한가했다. 태현은 하품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세연도 앉힐 거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세연 본인이 거절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러는 사이 오사카 드래곤즈 쪽 심사위원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푸근해졌다.

일본 쪽은 E스포츠 풀이 빈약했던 것이다.

오사카 드래곤즈는 1부 리그 최하위권 팀.

워낙 팀 이미지가 약체 이미지라, ‘판온 운영진이 국가 배려해서 1부 리그 넣어준 거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굳이 약한 팀에 가고 싶어 하는 선수는 없는 법. 다들 긴장을 풀고 무슨 말을 하나 지켜봤다.

“오사카 드래곤즈 기획팀장, 구로다입니다. 앞에서 말하신 쟁쟁한 분들과 달리… 저희 오사카 드래곤즈는 딱히 장점이… 없군요. 저희가 워낙 약해서….”

자학하는 내용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구로다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물, 물론 저희도 좋은 팀입니다. 좋은 감독님과 좋은 코치들과 좋은 시설이 있고 지원도 있고… 물론 성적은 안 좋습니다만….”

태현은 살짝 감탄했다.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자기 팀 못나가는 걸 개그로 써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 이미지를 환기시키다니.

발상도 발상이지만 어지간히 체면을 버리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베이징 파이터즈는 저런 거 안 하나?”

“…….”

길드 동맹 직원은 못 들은 척했다.

베이징 파이터즈에서 저런 마케팅 했다가는 책임자 목이 날아갈 것이다.

“저희는 그… 주전 풀이 엄청 약한 편이라, 들어오면 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장점이 그래도 하나는 있네요!”

구로다가 슬슬 분위기를 휘어잡자 다른 심사위원들도 당했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놈이…!

“그 다음은 김태현 선수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현역 선수군요!”

태현이 일어나자 심사위원들은 더더욱 긴장했다.

여기서 가장 위험한 상대!

태현이 가진 발언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플레이어들의 우상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팀 KL은 돈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김태현의 발언력은 위험해. 선수들 데려가는 것보다 이런저런 말들이 더 위험….’

그러는 사이 태현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까와는 명백히 차원이 다른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직 말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심사위원들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직 말도 안 했는데 무슨.’

‘말이나 듣고 해야지!’

“저는 김태현….”

“우오오오오오아아아아아!”

어찌나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대는지, 길드원들이 나서서 진정시키고 나서야 다시 말할 수 있었다.

“들으면서 저도 오사카 드래곤즈에 공감을 했습니다.”

“?”

“???”

뭔 공감?

1등 팀이 하위권 팀에게 공감을 한다니, 약 올리나?

“저희 쪽도 선수 풀이 꽤나 좁은 편이라….”

“…….”

“…….”

아…!

그랬었지!

스케일 큰 게임단은 아예 후보로만 이뤄진 예비 팀 여럿을 만들어서 주전 경쟁을 시키고, 그렇지 않은 게임단도 후보 몇 명은 만약을 대비해서 갖고 있었다.

그리고 팀 KL은 그냥 후보 없이 살아 온 게임단.

“으아악! 들어갈 거야! 나도 들어갈 거야!”

“저 새끼 막아! 뭐하는 놈이야!”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관중들 사이에서 미쳐 날뛰는 사람들이 달려 나오자 길드원들이 급히 막아섰다.

진짜 김태현 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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