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273화 (1,272/1,826)

§ 나는 될놈이다 1273화

물론 물어볼 방법은 없었다. 그걸 알았기에 사람들은 더욱더 뻔뻔하게 우기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 양심을 팔아먹은 플레이어들은 아예 대놓고 ‘내가 그 선수다’라고 개인 방송에서 주장하기 시작했다.

-뭘 더 숨기겠나? 인정한다. 내가 사실 저번 에랑스 왕국에서 김태현 선수를 만났는데, 날 보면서 이렇게 말하더라. ‘네 눈빛이 맑고 번쩍이는 게 왕이 될 상이다’라고….

└어떤 미친놈이 사람을 보고 그렇게 말해?

└└한국 드라마에서는 저렇게 말하던데?

└└└미친놈들아 그건 사극이고…!

어디서 드라마 잘못 보고 와서 흉내를 내는 모습에 진짜 한국 사람들은 기막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플레이어들은 뻔뻔하게 말했다.

-이런 내가 대표팀에 들지 않으면 누가 들겠나? 솔직히 나 안 뽑으면 감독 통장 조사해야 한다.

└그래서 님 직업이?

└└그래서 님 레벨이?

-레벨이나 직업, 스킬로는 알 수 없는 그런 게 있다고!

* * *

세계수 투기장 공개를 마치고 나서도 태현은 쉴 수 없었다.

다음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오스턴 왕국 같이 갈 사람?”

“왜 오스턴 왕국에 가려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류다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류태수가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동생아. 그 이유가 무엇이겠냐? 당연히 PK 때문이겠지.”

지금 오스턴 왕국은 가장 뜨거운 장소 중 하나였다.

에랑스 왕국, 길드 동맹, 미다스 길드, 화이트 나이트 등 굵직굵직한 세력들이 정말 전력을 다해 싸우는 곳!

한 번 시작하면 조회 수가 몇백 배로 뛴다는 공성전이 하루에도 열 번 넘게 일어났고, 플레이어들끼리의 대규모 전투도 셀 수도 없었다.

PK에 자신 있는 플레이어들은 아예 기회라고 생각하고 오스턴 왕국으로 몰려갈 정도였다.

던전 돌기, 퀘스트 깨기만이 레벨업의 방법은 아니었다. PK도 만만찮게 레벨 업하기 좋았다.

게다가 상대방의 비싼 장비는 덤!

단점은 사람 많이 잡다 보면 악명 오르고 자기도 페널티가 붙는다는 거였는데….

오스턴 왕국에서 뛰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다들 PK 많이 한 상태라서 그런 페널티도 적었다.

서로 잡기 정말 좋은 곳!

“그런 곳이라면 실전 경험을 쌓고 합을 맞추기 가장 좋지 않겠니?”

“아니. 그런 거 아닌데.”

태현의 말에 류태수는 매우 민망해졌다.

“아… 아닙니까?”

“길드 동맹 쪽에서 이번에 여는 대회 있잖아. 판온 올스타 슈퍼플레이어.”

“그거 헛소문이 아니었습니까?”

“아냐. 그거 가주기로 했어.”

“대체 왜…? 협박이라도 받으신 겁니까?”

“어? 아니. 돈 많이 받아서.”

“…….”

“…….”

생각지도 못했던 현실적인 이유!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중국 쪽까지 가서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판온 게임 내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몇 번 말하는 것으로 거액을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스턴 왕국 같은 경우는 갈 일이 좀 적었지. 이번 기회에 자세히 둘러볼까 싶은데.”

“…태현 님…?”

사실 태현이 오스턴 왕국에 안 가봤던 건 아니었다.

보통 공격하러 가긴 했지만….

게다가 정보를 얻으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오스턴 왕국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이 올린 영상이 몇 개인가.

그런데 태현이 저렇게 직접, 자세히 둘러본다고 말하는 뜻은?

‘사전조사!’

아무리 생각해도 사전조사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오스턴 왕국 갔을 때 깽판 치기 좋은 곳 미리 확인하기 위한 사전조사 말이다.

“이다비. 같이 갈래?”

“당연히 같이 가야죠.”

이다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전조사를 한다면 그녀로서 빠질 수 없었다.

같이 참석해서 어디가 취약하고 어디가 약점인지 두 눈으로 직접 체크하리라!

“이세연. 너도 혹시 생각 있어?”

“나도 심사위원으로 참석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아닐걸. 돈이 얼마인데.”

“…나 그렇게 출연료 철저하게 따지지 않거든. 의미 있는 행사면 적당히 참석하거든.”

“근데 여기는 돈 많이 받을 거잖아.”

“그렇긴 해.”

이세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동맹이 무슨 자선행사 여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오디션 열어서 조회수 빨아먹겠다는데 배려해 줄 이유가 없었다.

“네가 참석하겠다면 그쪽에서도 반대할 것 같진 않은데 뭐… 안 해도 돼.”

“너 혹시 만약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전력 필요해서 제안한 거 아니지?”

“…아, 아니거든.”

“맞잖아…!”

“농담이야. 거기서 설마 공격하겠어?”

이건 게임 내 싸움이 아닌,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사였다.

길드 동맹만이 하는 일이 아니고 각종 기업들이 스폰서를 서고 투자를 했던 것이다.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대회에서 ‘큭큭… 김태현! 속았구나! 죽어라!’이딴 짓을 했다가는 ‘미쳤냐??’ 소리만 들을 것이다.

“좋아. 같이 갈게.”

“싸움 일어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친 소리 하지 마….”

* * *

길드 동맹의 본거지, 아레네 시.

길드 동맹의 수도나 마찬가지 같은 도시였기에, 어마어마한 투자와 현질이 들어간 도시였다.

덕분에 도시가 갖고 있는 시설들도 장난이 아니었다.

에랑스 왕국의 유명한 도시들 뺨치는 수준!

마탑은 물론이고 전사들을 위한 훈련소, 제작 직업 길드, 각종 희귀 NPC들….

이 모든 것들이 길드 동맹 길드원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현질로 이뤄진 것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시의 규모는 어마어마해서 수십만 명이 한 자리에 모여도 수용이 가능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1광장부터 2, 3광장까지 모두 다 플레이어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

“…이, 이거 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 아니지?”

태현은 순간 긴장했다.

길드 동맹이 못 보던 사이에 전 세계로 확장해서 길드원들 늘렸나?

“길드원들이 아니라 대회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래요.”

“휴. 다행이군. 이 인원이 다 덤비면….”

“덤비면?”

“힘들겠지.”

“…….”

‘답이 없다’거나 ‘큰일이야’가 아니라 ‘힘들겠지’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태현의 멘탈이 느껴졌다.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태현 일행이 등장하자 그걸 알아챈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오크 종족 전투 함성이라고 생각했을 수준의 괴성이었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떴다!”

“잡아! 절대 놓치지 마!”

살벌한 소리를 주고받으며 플레이어들이 달려왔다.

태현을 암살하려는 암살자…는 아니었고,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이었다.

평소 판온 안 하던 사람들이 접속하면 티가 났다. 초보자용 장비에, 몇몇 취재용 아이템만 좋은 걸 가지고 있고….

“여기는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왜, 왜!? 이거 뭐하는 짓이야!”

그러나 길드원들이 기자들 앞을 막았다.

중국 쪽에서 나온 기자들이 먼저 태현에게 인터뷰 딸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이런 치사하고 비열하고 야비한 놈들 같으니!”

“안 들립니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너희 방송 볼 거 같냐!”

뒤에서 항의가 일어나는 동안 재빠르게 온 중국 쪽 기자들이 태현 앞에 도착했다.

다른 나라 기자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나쁜 놈들!

얼마나 대단한 질문을 하나 보자!

“두….”

“두?”

“두유 노우 쑤닝?”

“…….”

“왜 영어로 해!”

“아차. 쑤닝 아십니까? 쑤닝? 김태현 선수. 쑤닝 알아요?”

“당연히 알겠지 미친놈들아! 게임에서 팬 적이 몇 번인데!”

뒤에서 욕이 날아왔지만 기자들은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건 사실관계가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건 자극적인 헤드라인!

-김태현 선수, 평소 쑤닝을 잘 알고 게임 플레이를 존중한다고 밝혀….

-게임에서는 다투지만 좋은 라이벌이라고 생각함….

이런 제목이 얼마나 보기 좋겠는가?

“베이징 파이터즈 아십니까? 베이징 파이터즈?”

“베이징 파이터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 있습니까?”

“상하이 팬더즈하고 청두 베어즈에서 어디 마스코트가 더 좋습니까?”

“짜차이 좋아하십니까? 어떤 중국음식 좋아하십니까??”

상상치도 못한 알맹이 없는 질문에 태현은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미친 수준의 질문!

간신히 길드원들을 뚫고 온 다른 나라 기자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당신들도 당신들 나라에 김태현 오면 해! 여긴 우리 나라야!”

“나라는 무슨… 게임 안이야! 헛소리하지 말라고!”

“…그냥 지나가야겠다.”

태현의 말에 다른 일행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천 명이 덤벼들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지만, 이 사람들에게서는 진짜 광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 * *

뉴욕 라이온즈 스카우트 총괄팀장, 매킨리.

보스턴 타이거즈 전(前) 수석코치, 에임스.

오사카 드래곤즈 기획팀장, 구로다.

그 외에도 여러 굵직굵직한 게임단에서 온 이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섭외했다는 점에서 중국 쪽 자본력이 느껴졌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

게다가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중국 쪽 잔치에 우리가 끼고 싶지 않소.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하더라도.

-여기서 뽑히는 선수들은 참석한 게임단에서 제안해서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선수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래봤자 주최 쪽에서 고른 선수겠지. 게다가 중국인이라면 당연히 중국 팀에 가고 싶어 할 텐데?

-후후… 놀라지 마십시오. 여기에는 전 세계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습니다.

-…구라 아냐?

-말, 말씀이 너무 심하신…!

-안 믿기는데….

정말 믿기지가 않았지만 놀랍게도 전 세계 참가가 맞았다.

각 게임단에서 온 사람들은 ‘길드 동맹이 미쳤나?’ ‘투자자들이 압박했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며 수군거렸다.

그렇게 되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요즘 게임단은 홍보도 중요하니까.

-맞는 말이십니다.

게임단의 홍보라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계정에다가 ‘우리 게임단이 이렇게 대단하고 시설도 좋고 역사도 길고…’ 떠들어봤자 팬들은 늘어나지 않았다.

뭔가 강한 걸 보여줘야 했다.

보라!

김태현 쪽 팀 KL 계정에는 영상이 가뭄에 빗방울 오듯 한두 개 올라오는데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다른 게임단 입장에서는 부러워서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입장에서 이런 대회는 좋은 기회였다.

자기네들 게임단이 얼마나 좋은 게임단인지 전 세계에 보여주고, 또 예비 후보들한테 알려줄 수 있는 기회!

‘좋은 선수를 데리고 갈 수 있으면 좋겠군.’

‘저 뉴욕 출신 놈한테 밀릴 수는 없지.’

‘김태현이 정말 참석하는 거 맞나? 길드 동맹 놈들이 사기 치는 거 아닌가?’

‘지금 개최식 열리는 곳에는 한식까지 있다던데.’

‘그렇게 준비하니까 더 수상해.’

“김태현 왔다!!!”

“뭐?!?! 김태현 왔다고!?”

나이 먹고 나름 묵직한 위치에 앉아 있는 이들이 자리에서 전부 벌떡 일어났다.

“백 달러 내놔!”

“아… 아니 이런 젠장! 진짜 온다니!”

“…….”

옆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던 길드 동맹 길드원은 그걸 보고 분노했다.

이 인간들이 안 믿었어!?

“진짜 김태현 맞아? 가짜 아냐?”

“한국말 시켜봐! 한국말!”

“진짜 맞습니다!”

스타 한 명이 등장하면 분위기가 달라지기 마련.

여기 있는 사람들도 어디 가서 꿀리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태현의 등장에 일제히 분위기가 쏠렸다.

술렁술렁!

“오우! 김태현 선수! 오랜만입니다!”

“매킨리. 친하지도 않으면서 친한 척하지 마라. 김태현 선수 곤란하지 않나.”

매킨리가 말을 걸자 에임스가 뒤에서 빈정거렸다.

라이벌 게임단 출신답게 둘은 언제나 다퉜다.

“아는 사이다.”

“어떻게 아는 사이인데?”

“내가 뉴욕 라이온즈 입단 제안했는데 김태현 선수가 거절했지!”

“…….”

“…….”

“그, 그래. 네가 이겼다. 아는 사이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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