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66화
“나중에 영상 봐도 괜찮나요?”
이다비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빗방울 피하기라고 하면 그리 어려울 거 같지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한테 그런 평범한 시련이 나왔을 것 같지 않았다.
뭔가 재밌을 거 같다!
“봐도 별 재미없을 텐데?”
“태현 님이 하는 건 언제나 재밌어요.”
“내가 아키서스 교단 NPC들한테 고통받는 것도?”
“…그런 뜻 아니거든요?”
“혹시 나도 같이 봐도 괜찮아?”
이세연은 슬쩍 물었다. 태현이 무슨 시련을 통과했는지 좀 궁금했던 것이다.
태현은 별생각 없이 농담으로 대답했다.
“파워 워리어 길드에 사용료 내면.”
“알겠어.”
이세연은 골드 주머니를 꺼낸 다음 이다비에게 건넸다.
진담인 줄 알았던 것!
얼떨결에 받은 이다비의 얼굴이 충격과 공포로 물들었다.
“충….”
“충?”
“충성충성충성…?”
“…이다비 씨까지 왜 그래요?”
옆에 있던 류태수가 눈치를 보더니 물었다.
“저도 돈 내면 봐도 됩니까?”
* * *
“간신히 도착했네.”
“빨리 움직여. 선착순 퀘스트면 골치 아파진다.”
회색 구름의 도시에 비행선이 도착하더니, 검사로 보이는 플레이어들이 여럿 내렸다.
도시에 이미 플레이어들이 제법 있긴 했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숫자가 한 번에 내린 것이다.
“근데 이거 이용료가 너무 비싼 거 아냐?”
“비행선 구하기 힘들어서 어쩔 수가 없어. 탈것 타고 날아가는 건 무리잖아.”
하늘섬을 가거나, 하늘섬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비행 탈것이나 비행 마법으로 가는 방법도 그중 하나였지만 보통 그렇게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멀었던 것!
살아 있는 탈것은 계속 날다 보면 지쳤고, 공중에서 지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플레이어는 매우 위험했다.
게다가 비행 몬스터에게 공격 받기라도 하면….
비행 탈것이나 비행 마법으로 가려면 정말 레벨 높은 탈것이나, 아니면 정말 MP에 자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내더라도 좀 안전한 이용수단을 원했다.
바로 비행선 같은!
덕분에 비행선 장사가 쏠쏠하게 흥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행선 운전에 뛰어든 곳 중 하나가 바로 파워 워리어였다.
“여러분! 다음에도 저희 비행선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값이나 깎아줘!”
“다른 비행선보다 1.5배나 비싸잖아!”
승객들의 불평을 무시하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자기 할 말만 했다.
“10번 이용하시면 1번 무료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으며, 비행 도중 로그아웃당하실 경우 보험이….”
“근데 쟤네 비행선 대체 어디서 구한 거냐? 비행선 가격이 장난이 아닐 텐데.”
비행선은 두 가지 조건만 만족하면 됐다.
사람 많이 태울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그 상태로 날 수 있으면 된다!
보통 자주 보이는 게 마탑에서 파는, 비행 마법 걸린 마석을 잔뜩 박아서 날아다니는 비행선이었다.
가격은 물론 매우 비쌌다.
“설마 직접 만든 건 아니겠지?”
“뭘로? 마법 스킬로?? 그랬으면 진작 기사 나왔지!”
“아니. 기계공학 스킬로도 가능하잖아.”
“…야. 무서운 소리 하지 마라.”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만든, 기계공학 비행선을 타고 왔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타고 온 셈 아닌가!
“하긴 이건 아무나 만들 수 있는 퀼리티가 아니긴 해.”
“김태현이 도와준 거 아니냐?”
“김태현이 시간이 썩어나냐? 그런 걸 도와주게?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자고.”
여기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단체로 온 이유는 하나였다.
비전 검술 스킬!
보두앙이 투기장에 비전 검술 스킬을 가르쳐주는 NPC가 있다는 걸 들었듯이, 다른 플레이어들도 정보를 차례대로 입수한 것이다.
그들은 정보를 얻자마자 비행선을 잡아타고 하늘섬 위로 내달렸다.
-비전 검술 스킬 얻어야 해!!
검술 직업에게 검술 스킬, 특히 비전 검술 스킬이라면 목숨과도 같은 가치가 있었다.
잘 얻은 스킬 하나가 레벨업 몇 번 보다 나은 것이다.
“여긴가? 빨리 들어가자.”
-새 모험가군. 능력도 인정 못 받은 주제에 길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날개도 없으면서 왜 쏘다니는 건가?
“아니. 가루다 놈들은 왜 볼 때마다 구박이야? 짜증 나 죽겠네.”
“무시해. 무시해. 우리가 먼저 왔다! 다른 놈들보다….”
[<회색 구름 투기장>이 바뀝니다!]
[<회색 구름 투기장>이 <회색 구름 아키서스 신전>으로 변합니다.]
“?????”
“뭐, 뭐야?”
들어가기도 전에 갑자기 뜬 메시지창에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투기장 건물은 그대로 있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 * *
“다른 건물들도 더 보고 결정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다음 퀘스트를 깨러 가야 하는데 시간을 너무 잡아먹은 것도 있고… 이다비 네가 판단을 내린 거면 괜찮겠지.”
‘부담되는데…!’
태현은 고민하지 않고 투기장 건물을 신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 건물을 아키서스의 신전으로 사용하겠다. 족장 갈리고덴 님께서도 허락하셨다.”
-아이고! 그게 무슨 소리냐! 이 투기장을 멋대로 가져간다니! 우리는 뭐 해먹고 살라고!
-우우! 사악한 아키서스 놈들 같으니!
투기장에서 일하고 있는 가루다 투사 NPC들은 갑작스러운 결정에 분노했다.
일제히 잘려 나갈 위기!
태현은 간단하게 처치했다.
“앞으로 바뀔 아키서스의 신전에서 일하도록 해주지. 이제까지 투기장에서 일하면서 강제로 해야 했던 일들이 있을 텐데 그런 건 모두 안 해도 된다.”
-…충성충성충성!
-아키서스 만세!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가루다 투사들이 설득당합니다!]
[가루다 투사들이 아키서스 신전의 검투사로 전직합니다!]
[<아키서스 신전의 검투사> 직업이 새로 추가됩니다!]
[<회색 구름 아키서스 신전>에서 전직이 가능합니다!]
[교단의 명성이…]
[……]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추가 효과!
아키서스 신전 검투사라는 직업까지 새로 생긴 것이다.
검투사는 보통 콜로세움 같은 투기장 쪽에서 퀘스트 깨다 보면 전직 뜨는 직업인데, 이게 신전에서 뜨다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 건물 특성 때문인가? 신기한데.’
투기장을 신전으로 뺏고 NPC들을 데리고 온 덕분에 새로 열린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쁘지 않았다. 교단에 여러 직업이 추가될수록 플레이어들이 많이 몰려올 테니까.
문제는….
‘가루다 투사들도 덤으로 왔다는 점인데.’
그냥 여기서 일하기를 원했지 아키서스 교단 가입까지는 바라지 않았는데 알아서 척척 가입까지 해주다니!
[카르바노그가 좋은 일 아니냐고 묻습니다.]
‘카르바노그. 내 경험상으로 이상한 놈들이 밑에 들어오는 건 꼭 좋은 일이 아니야.’
이상한 놈들은 꼭 사고를 치기 마련!
그리고 그 이상한 놈들 중에서 손꼽히는 NPC, 고도로발이 태현에게 다가왔다.
투기장 건물이 아예 신전으로 바뀌자 고도로발은 매우 감동한 모양이었다.
와! 아키서스 교황은 정말 화끈하구나!
-교황님. 그런데 여기는 기도할 곳도 없고 그런데요.
“싸우면서 기도하라 그래.”
태현은 여기를 무너뜨리고 새로 건물을 짓고 동상을 세울 생각이 없었다.
재료비 나가지, 인건비 나가지, 시간 걸리지….
골짜기에서도 그렇게 오래 걸렸는데 하늘섬에서 다시 공사를 한다니 아득했다.
그냥 투기장을 신전이라고 생각하자!
‘중요한 건 신을 믿는 마음이지 건물이나 동상이 아니야.’
[카르바노그가 이제 와서 그런 말 해봤자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정, 정말 그래도 됩니까? 아무리 그래도 기도하면서 싸우는 건….
“고도로발. 잘 생각해 봐라. 기도하면서 싸우는 건 좀 이상하게 느껴지겠지.”
-예.
“하지만 싸우는 도중에 기도하는 건?”
-어… 괜찮아 보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싸우는 건 뭔가 불경스럽게 느껴졌지만, 싸우는 도중에 기도하는 건 괜찮게 느껴졌다.
“그래. 싸우는 도중에 기도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난 널 믿는다. 고도로발. 원래 아키서스는 좀 자유로운 게 교단의 특색이지.”
-언제는 강철 같은 철저한 규율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
“쫓겨나고 싶냐?”
-아, 아닙니다.
“그래. 교황의 말을 의심하는 못된 습관은 버리도록 해라. 어쨌든 고도로발. 여기 오는 놈들한테 아키서스를 믿게 하도록. 나한테 아키서스를 당당하게 믿게 해달라고 했지? 너라면 할 수 있다.”
-…열,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도로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뭔진 몰라도 태현이 믿고 맡겼다는 느낌이 왔다.
“그래. 믿는다. 신전 운영 잘 하고. 기부금 빼돌리지 말고. 기부금으로 이상한 사업 벌이지 말고. 신도들한테 사기치지 말고….”
-아니. 교황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절 너무 못 믿는 거 아닙니까!?
고도로발은 발끈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키서스를 믿는 사람 중에 저런 짓을 저지르는 쓰레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미안하게 됐다. 당한 적이 있어서.”
-!?
“어쨌든 잘 부탁한다!”
태현은 명령을 내리고 투기장 건물 간판을 바꾼 다음 쿨하게 떠나버렸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플레이어들은 투기장인지 신전인지 몰라서 당황스러워했다.
“…투기장인데?? 그냥 투기장인데?”
“동상도 없고 기도하는 곳도 없고….”
고도로발은 새로 온 플레이어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투사들! 저 모험가들을 데리고 와라. 아키서스 신전에 왔으니 아키서스의 좋은 점을 알려줘야겠다.
-백ㅅ… 아니, 고도로발 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투기장에 들여보낸 다음 쓰러질 때까지 싸워 아키서스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거다.
-버텨내면 어떻게 합니까?
-아키서스를 믿을 자격이 있는 거니 믿게 해줘야겠지.
-못 버텨내면?
-그래도 아키서스는 관대하니까 믿게 해줘야겠지.
-오….
쭈뼛거리며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들어온 이상 편하게 나가기는 글렀다는 사실을!
* * *
“가루다 도시들이 구름 위에 건설되어 있다지만, 가루다 왕족들이 지내는 왕궁은 좀 특별하다고 하네요.”
전용 구름 위에 왕궁을 지어서 돌아다니는 가루다 왕족들!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아예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늘대장장이라면 뭐 가도 되겠지.
-왕궁에 가보고 싶다고? 말 전해 놓을 테니까 가면 되네.
[<가루다 구름 왕궁> 입장을 허락받았습니다!]
[<가루다 구름 왕궁>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
“…….”
“…….”
류태수와 류다영은 할 말을 잃고 눈만 깜박였다.
이세연은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둘은 아직 적응을 끝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 플레이어들이 들어가지 못한 곳을 뭐 저렇게 쉽게…!?
“이다비. 쟤네 왜 저러는 거지?”
“아까 투기장에서 마저 못 싸우고 나와서 아쉬워하는 거 아닐까 싶은데요.”
“으음. 내가 미안한 짓을 했군.”
생각해 보니 비전 검술 스킬보다 투기장에서 노는 걸 더 좋아할 수도 있었다.
가루다 투기장은 처음일 테니 얼마나 재밌었겠는가.
물론 둘은 ‘투기장 싸움이냐 비전 검술 스킬이냐 고르면 당연히 후자죠!!’라고 말할 테지만, 태현은 그걸 알지 못했다.
“괜찮은 몬스터 나오면 둘에게 양보해야겠다.”
“그러셔도 괜찮겠어요?”
“팀을 위해서 이 정도는 해야지.”
“태현 님…!”
이다비는 살짝 감동했다. 태현이 개인 플레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다니.
“이세연. 몬스터 나오면 저 둘에게 양보하고 잠깐 뒤로 물러나주자.”
“…왜? 벌 주려고?”
이세연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