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63화
‘그런데 카르바노그. 미친 가루다 검사라면… 혹시 아키서스 관련 인물 아닐까?’
[카르바노그가 화신이 대체 어떻게 추리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슬픈 추리는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기 신도를 저렇게 의심하는 화신도 없을 것이다.
미쳤다고 아키서스 신도 아니냐고 의심하다니!
‘하지만 이제까지 경험을 생각해 봤을 때 이상한 놈들은 보통 아키서스 관련 인물이었다고.’
게다가 태현은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를 깨기 위해 하늘섬에 온 것이었다.
미친 가루다 검사가 아키서스 관련 NPC였어도 전혀 놀라울 게 없다!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후손은 가루다 공주와 관련된 퀘스트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후예-가루다 공주의 비밀>.
가루다 전사들을 만족시키고 나서 새로 갱신된 퀘스트였다.
가루다 공주를 만나서 성기사단장에 대해 물어야 했는데….
가루다 놈들이 이것저것 발목을 잡아서 아직 만나지도 못한 상황!
어쨌든 공주와 만나야 하니, 미친 가루다 검사는 아키서스 관련 NPC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흠. 그러면 공주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 관련된 NPC인 거고 미친 가루다 검사는 그냥 아키서스 신도 아닐까?’
[아키서스 신도 아닐 가능성은 왜 무시하는 거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그야… 미쳤다고 하니까….’
* * *
[회색 구름의 투기장에 입장했습니다!]
[명성이 올라갑니다!]
[……]
[투기장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경우 가루다 왕국 내 평판이 올라갑니다.]
[퀘스트 <회색 구름 투기장 첫 승리>…]
[퀘스트 <회색 구름 투기장의 고수를 찾아라>…]
[……]
새 도시의 새 건물에 들어오면 이런저런 보너스와 새 퀘스트가 나오기 마련.
태현 없는 태현 일행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세연 씨. 하늘섬답게 맵도 공중이에요.”
“흠. 월드컵에서는 아직 공중 맵이 나온 적이 없는데… 이렇게 나올 때를 대비해야겠네요.”
“이세연 씨. 여기 NPC들은 원거리 공격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장비들이 다 활 같은 원거리 무기 위주네요.”
“투기장에서 원거리 공격을 상대하는 건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죠. 처음 겪는 맵이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운이 좋네요.”
“…이세연 씨. 저기 간식거리 파는데 드실래요?”
“싸우기 전에 투기장 음식 먹으면 필요한 버프 들어올 때가 많으니 좋은 선택이네요.”
이다비는 질린 표정으로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별 생각 없이 한 말들인데, 전부 다 효율을 극한으로 따져서 대답하다니!
‘무슨 태현 님도 아니고…!’
지금 이세연의 뒷모습에서는 태현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이다비도 나름 길드의 마스터로서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긴 했지만, 스위치 들어간 이세연이나 태현에 비하면 매우 따뜻하고 낭만을 아는 플레이어였다.
“팀으로 투기장 돌기 전에, 개인으로 조금 돌고 와도 됩니까?”
류태수의 물음에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럿이서 같이 싸우는 것도 좋았지만, 그 전에 혼자서 가볍게 투기장을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투기장에서 나오는 일일퀘스트나 다른 것들을 깨는 것도 좋았고….
“그러면 돌고 오겠습니다!”
“…저도 같이 갔다 오도록 하겠습니다.”
류태수와 류다영이 투기장에 찾아가고, 이세연은 이다비와 둘이 남았다.
“…….”
“…….”
갑자기 어색해지는 분위기!
생각해 보니 단둘이 따로 있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보통 태현이 사이에 있었지.
“그러고 보니 이다비 씨.”
“앗. 넵.”
“전직 퀘스트 나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키서스의 황금 주교> 퀘스트.
아키서스 교단답게 원하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시작된 퀘스트였다.
“조건이 뭔지 궁금한데 여쭤봐도 될까요?”
“아. 네. 별로 특이한 건 아니고요….”
황금 주교 전직 퀘스트는 간단하면서도 난이도가 있는 퀘스트였다.
-아키서스를 위한 건축물을 만들어서 바쳐라!
물론 헛간 같은 거 하나 지어봤자 어림도 없었고, 기준을 넘는 건축물이어야 했다.
당연히 쉽게 시작할 수 없는 퀘스트였기에 이다비도 일단 미뤄둔 상태.
“으음. 제가 언데드들 불러서 도와드리는 건 어떤가요?”
“…!”
이다비는 이세연의 의견에 감탄했다.
아니 그런 방법이!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어떻게 하면 싼값에 건물 지을 수 있을까?
-소문에 따르면 중국 쪽 죄수들이 감옥에서 작업장 돌린다던데.
-에이. 그게 말이 돼?
하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은 법. 사람들을 동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는 언데드 부릴 수 있는데 그걸로 지을 순 없나?
-!
그중 몇몇 사람들은(주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무임금노동의 단꿈에 빠져 네크로맨서의 길을 걸어보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전부 실패했다.
언데드 노동은 그리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일단 대부분의 언데드들은 이성이 없는데다가 섬세하거나 복잡한 작업을 하지 못했다.
언데드로 뭐 시키려면 최소 흑마법 고급은 찍고 이것저것 기타 스킬들을 익혀야 가능한 것!
…근데 거기까지 갈 정도면 언데드 부려서 건물 짓는 것보다 다른 거 하는 게 더 나았다.
하지만 이세연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최정예 언데드들을 마음껏 부리는 강력한 네크로맨서!
이세연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마어마한 언데드를 동원해 건축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래 주신다면 감사한데요…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같은 팀인데 그 정도는 당연히 도와줄 수 있지요. 그런데 뭘 건설할 건지는 정했나요?”
“일단 크기나 높이로 승부하려고요.”
“…?”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물론 사제나 성기사 같은 직업은 아니었지만, 보통 신과 관련된 작업이라면 좀 더… 예술적으로 접근하지 않나?
그 신과 관련된 일화가 있는 건물을 짓는다거나, 신과 관련된 명화나 노래를 찾아와 넣는다거나….
“그런 건 확실하지 않으니 크기나 높이로 승부하는 게 좋아요.”
“…????”
이세연은 당황했다.
어, 어라?
원래 신앙 관련 퀘스트가 이렇게 깨는 게 맞나…?
‘이다비 씨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잘 하려나?’
-거기 모험가들. 왜 투기장에 와서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지?
[회색 구름 투기장에서 싸움에 참가하지 않고 오래 있었습니다.]
[투기장 내 친밀도가 조금 하락합니다.]
[……]
“아니 뭐 이런 곳이…?”
안 싸우고 가만히 좀 있었다고 친밀도가 하락한다니.
무슨 카페에서 음료 한 잔 산 걸로 몇십 시간 버틴 것도 아닌데!
“지금 들어가겠어.”
-앗. 잠깐. 혹시 아키서스를 믿는 모험가인가?
“!”
이다비는 긴장했다.
-이세연 씨. 조심하셔야 해요.
-네? 왜죠?
-아키서스를 알아보는 NPC는 보통 이상할 가능성이 커요.
-…….
이세연은 황당했지만 이다비의 충고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지팡이를 잡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마법을 쓸 준비를 했다.
“아키서스를 믿으시나요?”
-무슨 그런 무례한 말을 하는 건가, 모험가! 누가!
가루다 NPC는 펄펄 뛰며 분하다는 듯이 외쳤다. 이다비는 당황해서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앞으로 조심하게! 사람을 뭘로 보고!
‘이 NPC 뭐하는 NPC지?’
이세연은 경계 서린 눈빛으로 NPC를 훑어보았다.
일단 가루다 종족인 건 맞는데, 허름한 망토로 몸을 감싼 채 비틀거리는 꼴이 거의 거지 수준이었다.
하지만 판온은 그런 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법. 눈앞의 NPC는 왠지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다.
고렙 같다!
-사과를 받았으니 용서해 주지. 킁. 앞으로 조심하라고. 그런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검술을 가르쳐줄까?
“네? 아뇨.”
“저도 별로….”
-…….
이다비와 이세연은 단칼에 잘랐다. 애초에 둘은 검술 스킬에 아무 욕심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어째서!
“검사가 아니니까….”
-이번 기회에 배워보게!
[퀘스트 <가루다 검술의 달인>이…]
-거절.
[퀘스트를 받지 않습니다!]
가루다 NPC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둘 앞을 막아선 채 바닥에 엎드렸다.
-배워! 배우란 말이야! 배워달라고!
“어… 검술 스킬을 꼭 가르쳐주고 싶으면 제가 아는 다른 분이 있는데요….”
* * *
“아키서스인 걸 알아봤는데, 본인은 아키서스를 안 믿고, 그런데도 검술을 가르쳐준다고 했다고?”
“네.”
“응.”
“…매우 수상쩍은데?? 그거 검술 가르쳐주는 거 맞아? 사기 아냐?”
[카르바노그도 수상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냥 가르쳐주려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태현은 이다비의 부름에 급히 가루다 NPC를 만나러 찾아왔다.
설마 그 달인이 저 NPC인가?
[가루다 검술의 달인, 고도로발을 만났습니다!]
[퀘스트 <가루다 검술의 달인>이 갱신됩니다.]
…맞았다.
“아키서스 신도가 아니라니….”
태현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카르바노그가 그게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냐고 어이없어 합니다.]
-아니. 소문이 쟁쟁한 하늘대장장이로군. 혹시 이런 무기를 더 만들 생각 없….
“그래서 무슨 검술 가르쳐주시는 겁니까?”
태현은 슬쩍 말을 자른 다음 본론으로 들어갔다.
비전 검술 스킬 내놔!
고도로발은 이상한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쉽게 대답했다.
-나는 가루다 전사들 중에서도 뛰어난 검술을 가지고 있지. 내 검술이 한 번 펼쳐지면….
“아 그래서 스킬 이름이 뭡니까?”
-…….
태현이 재촉하자 고도로발은 입술을 삐죽였다.
자랑도 못하게 하다니 저런….
-그건 자네의 능력에 달려 있네.
“?”
-나는 기존에 있는 검술을 가르쳐주지 않네. 배우는 사람의 특성에 맞춰서, 그 사람이 새로운 검술을 깨닫게 해주지.
<새로운 검술을 만들어라-가루다 검술 달인 비전 스킬 퀘스트>
가루다 검술의 달인, 고도로발은 기존에 있는 평범한 검술 스킬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그는 모험가가 갖고 있는 능력에서 새로운 검술 스킬을 찾아 만들어준다.
고도로발의 시험을 통과해 새로운 검술 스킬을 받아내라!
성공한다면 당신은 한 단계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보상: ?, ???
“!”
태현은 생각지도 못했던 퀘스트 내용에 놀랐다.
한마디로 고도로발의 시험을 통과하면 새 검술 스킬을 하나 준다는 것 아닌가.
‘내 특성에 맞춰서 준다는 게 좀 불길하긴 한데….’
설마 아키서스 검술을 주나?
아니, 아키서스 검술 스킬은 이미 있었다.
‘요리사의 식칼 검술? 대장장이의 망치 검술? 하도 스킬이 많아서 종잡을 수가 없군.’
일단 뭐가 나올지 몰라도, 퀘스트 자체는 좋은 게 맞았다.
검술 스킬이 여러 개 있어서 나쁠 게 없는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근데 좀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저런 검술의 달인이 왜 그냥 스킬을 퍼주냐고 의심합니다.]
‘확실히 그건 그래.’
태현은 고도로발을 수상쩍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혹시 이거 함정 아냐?
“그런데 고도로발 님. 아키서스 믿는지 안 믿는지는 왜 물어본 겁니까?”
-아니! 아키서스 물어볼 수도 있지! 내가 지금 무슨 수상쩍은 의도를 갖고서 물어봤다는 건가!? 그런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렇군. 그런 게 아니면 됐네. 이해하네.
“…….”
[괜히 미쳤다는 소문이 돈 게 아니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고도로발은 감정 변화가 너무 극심했던 것이다.
화냈다가 풀었다가 화냈다가 풀었다가!
‘화술 스킬 써서 조심스럽게 접근해봐야겠군.’
“아키서스에 관심 있으십니까?”
-내, 내가 아키서스에 관심이 있다니 무슨 그런 소리를! 난 절대 아키서스에 관심 없어!
“흠. 알겠습니다. 그러면….”
-알겠나?? 난 정말로 아키서스에 관심이 없다고!
“아니 알겠으니까….”
-정말로 없다니까! 믿어주게!
“…관심 있는 것 같으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