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257화 (1,256/1,826)

§ 나는 될놈이다 1257화

류태수의 말에, 류다영은 태현을 살짝 다르게 보게 되었다.

초일류 선수인 건 알고 있었지만 게임 플레이가 너무 정석과는 거리가 멀어서 ‘저렇게 플레이를 하는 게 과연 맞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태현이 했던 모든 플레이들은 다 계산이 되어 있는 플레이였다.

저게 다 계산이 되어 있는 플레이였다니!

믿기 어려웠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플레이어가 되려면 저 정도는 해야 하는 걸지도 몰랐다.

‘대단해…! 보통 랭커들도 그냥 직업 퀘스트를 깨거나, 경험치 올리기 좋은 곳에 가는 수준인데, 저렇게 스스로 난이도를 올려서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한다니. 나는 생각도 못해봤어.’

물론 듣고 있는 태현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그럼 아키서스가 적 많은 것도 성장하기 위해서냐??

“류태수 선수.”

“예?”

“…다 계획하고 있었다는 말 같은 건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태현은 류태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류태수에서는 왠지 모르게 케인의 향기가 났다.

케인보다는 훨씬 능력도 좋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사람인데, 다른 방향으로 태현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나중에 대회 가서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겠다!

“아닙니다! 김태현 선수가 겸손하고, 굳이 자랑하지 않는 성격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나서서 홍보를 하지 않으면 묻히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판온 1 때도 나서서 해명하지 않으신 탓에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까!”

“아니 판온 1에서 내가 뭘 해명을 안 했다고….”

해명 안 한 게 있나?

길드랑 시비 붙으면 패고, 랭커들 보이면 싸워서 이겼고….

이미 알려져 있을 만큼 다 알려져 있지 않은가.

“고통 받는 일반 플레이어들을 위해서 싸우신 거잖습니까.”

“…아닌데??”

“저한테까지 숨기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아니라고….”

자기 좋을 대로 듣는 류태수!

이건 다른 의미로 강적이었다.

“김태현. 네가 류태수 선수한테 쩔쩔매는 건 보기 즐겁지만, 지금 앞에 적들이 많다는 걸 기억해 줬으면 하는데?”

이세연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외쳤다.

‘지금 앞에 플레이어들을 쌓아놓고 뭐하는 거야?’

실제로 적들도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사람 앞에 두고 뭔….

“아. 미안하군.”

태현은 빙글 돌아섰다.

“다시 집중해 주도록 하지.”

“아, 아니. 그런 걸 원하지는 않았는…!”

그리고 닥치는 대로 무기를 휘두르고 폭탄을 던지고 스킬을 폭발시켰다.

“크아아아악!”

순식간에 쓸려나가는 플레이어들!

나름 레벨 높다고 자부하는 플레이어들이었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김태현-이세연의 조합에, 이다비와 류태수, 류다영이 든든하게 힘을 가하니 그 위력은 살벌했던 것이다.

태현이 파고들어서 진형을 박살 내고 나면 이세연이 부리는 정예 언데드들이 그 사이로 들어와 플레이어들을 붙잡아버렸다.

류다영은 편하게 플레이어들이 나오지 못하게 탱킹하고 류태수는 딜을 넣고….

편하다!

류태수와 류다영은 감탄했다.

그들도 다른 랭커들과 파티 플레이를 몇 번이고 해온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류태수는 유성 게임단의 선수. 주전과 후보들하고 몇 번이고 합을 맞춰 싸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현과 이세연은 격이 달랐다.

마치 고급 승용차를 탄 것 같은 편안함!

‘와, 이 레벨 먹고 초보자 시절 기분을 느끼다니.’

초보자 때 고렙 플레이어 한 명 파티에 껴서 같이 플레이하면 딱 이런 기분이었다.

날로 먹는 기분!

“저… 저… 저거 김태현 아니냐?!”

정신없이 두들겨 맞던 플레이어들은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손도 못 쓰고 밀릴 정도면 상대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캬오오…!

“어. 불불아. 나올 필요 없는데.”

한창 신나게 검을 휘두르던 태현은 멈칫했다.

불불이가 불쑥 튀어나와서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불불이가 당신을 도우려고 합니다!]

[불불이가 <아키서스의 성장>으로 배운 스킬을 사용합니다!]

[<사디크의 화염탄>이 발동합니다!]

“!”

화르륵!

“언데드 쓰고 있는데 신성 마법 광역기 쓰면 어떡해!?”

이세연이 뒤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태현은 미안한 목소리로 대신 사과했다.

-캬오?

“아냐. 잘했어.”

-아니. 주인님. 너무 차별이 심한 거 아닙니까??

흑흑이가 매우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만약 흑흑이가 그랬다면 ‘넌 블랙 드래곤이 되어 가지고 그 간단한 계산이 안 되어 있냐?? 언데드들이 옆에 있는데 신성 마법을 갈겨? 하여간 사디크 믿는 놈들은!’ 같은 식으로 잔소리가 날아왔을 텐데….

“애가 아직 어리잖아.”

-크윽… 저놈 크기만 하면…!

-캬오.

불불이가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돌렸다. 불불이도 흑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태현 님. 그런데 불불이한테 좋은 것만 보여주기로 하지 않았…?”

“…다음부터 하면 되지.”

태현은 그렇게 말했지만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사실 불가능한 거 아닐까?

“드래곤 펫 데리고 다니는 거 보니까 김태현 맞잖아!”

“그러면 저놈은 케인입니까?”

“아니. 팔이 두 개인데… 잠, 잠, 잠깐. 저거 이세연이다! 미친! 왜 둘이 같이 있어! 돌았나!”

태현 혼자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뒤에 있는 네크로맨서는 심지어 이세연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한국인 플레이어들이잖아!

“저건 류태수 아니야?!”

“이다비에… 아니 이런 씨… 한국인 랭커들 중에 유명한 선수들은 다 모여 있어!”

* * *

한국은 한물갔고, 막대한 자본 투자를 하는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E스포츠 종주국이 되었다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나왔었다.

하지만 한국은 언제나 몇 명의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해냈다.

당장 ‘한국 팀은 상위권에 들기 무리다’라는 말이 나왔던 판온 리그 첫 시즌에도, 한국 팀들이 우승과 상위권을 차지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들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국인 플레이어들은 근거 없이 높은 평가를 받곤 했다.

-오. 한국인? 노쓰? 사우쓰?

-사우쓰. …아니, 노쓰는 판온을 못하지!

-아냐. 저번에 보니까 노쓰 코리아 사람들이 판온에서 작업하고 현금 모은다더라.

-…중국 죄수들이 판온으로 돈 번다는 소문만큼 믿기 힘든데….

-어쨌든 한국인이니까 잘하겠군. 좋아. 파티 합격! 들어와!

-아, 아니. 난 딱히 잘하는 건 아닌….

-겸손하기까지! 역시 한국인이야!

-대체 한국인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물론 좋게 생각해 줘서 나쁠 건 없었지만,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도 큰 법.

-뭐야? 왜 김태현처럼 못해?

-…그러는 너는 왜 스미스처럼 못하냐 이 자식아?! 뭘 바라는 거야!?

눈이 높아진 해외 플레이어들은 한국인 플레이어들에게 태현이나 이세연 정도를 기대했던 것이다.

* * *

“저, 저거 한국 대표팀 아닙니까? 라인업이 살벌한데?”

“한국 대표팀이 대체 왜 요리사들이나 오는 이런 곳에….”

중얼거리던 플레이어는 경악했다.

설, 설마 연습하러 왔나?

“PK 연습하러 온 건가!?”

“아니. 투기장 가서 5:5 연습해야지 어떤 미친놈이 이런 곳에 와서 연습을 합니까?”

다른 플레이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지금 몇몇 국가 대표팀은 라인업을 전체 공개하고 훈련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영상을 보면 아주 모범적인 훈련들이었다.

투기장에서 연습 상대를 구해서 겨루고, 스킬 콤보 연습하고….

사실 이게 정상이었다.

어떤 미친 대표팀이 필드 나가서 수십 명과 싸우는 연습을 한단 말인가.

그러다 실수로 한 명 로그아웃이라도 당하면 페널티가 장난이 아닌데.

“근데 김태현이잖아!”

“…맞는 말이야! 지원 불러! 지원 불러!”

“김태현! 이게 뭐하는 거냐! 너보다 약한 놈들을 공격하다니!”

플레이어 중 한 명이 태현을 가리키며 외쳤다.

어찌나 황당한 말이었는지 다른 동료들도 그를 쳐다볼 정도였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

‘그게 지금 할 말이냐?’

김태현이 그걸 듣고 ‘아, 그렇군요.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할 거 같냐?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역시… 크아아악!”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태현은 뭔 가당찮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수십 명이 넘게 몰려와 있었는데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남은 플레이어들은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최상위권 랭커들과 목숨을 건 혈전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안 되겠다. 길드 동맹에 도움 요청해!”

“길드 동맹이랑 요즘 사이 안 좋아졌지 않습니까? 길마님도 연락 안 하는데….”

“지금 그거 따질 때냐! 빨리 불러! 어쨌든 저 미친놈들 막게 해야 할 거 아냐! 저놈들이 길드 하우스까지 오면 어쩔 건데!”

원래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은 스스로 겁을 먹기 마련이었다.

태현 일행은 이 주변만 정리하면 바로 하늘섬으로 떠날 생각이었지만, <레스토랑>이 부른 고렙 플레이어들은 태현이 길드 하우스까지 쫓아올까 봐 겁을 먹었다.

김태현은 충분히 그러고 남을 사람!

-아. 무슨 일이냐?

-형님! 도와주십쇼!

-뭘 도와줘?

-여기가 지금….

플레이어는 울며불며 길드 동맹의 간부한테 호소했다.

요즘 그렇게 정신이 없다지만 길드 동맹의 간부니, 이 정도는 할 능력이 있으리라.

-그러니까 우리보고 김태현하고 싸우라고??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말만 해주셔도 됩니다! 멈추게 할 능력 있으시잖습니까!

길드 동맹과 태현은 정말 지겨울 정도로 서로 싸운 사이였다.

태현이 길드 동맹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거 같긴 했지만….

태현도 길드 동맹을 무시하진 않았다.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길드 동맹 쪽에서 나선다면 태현도 한 발 물러서서 그냥 다른 곳으로 가리라!

-길드원도 아니잖아 너희?

-아니, 그러니까 그걸 말을 좀 잘….

-안 돼.

-?!!

냉정한 거절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이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그냥 적당히 해달라고 말만 꺼내는 건데!

-아. 지금 길드 상황이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말만 꺼내는 건데 상황이 뭐가 중요합니까!

-아오. 이….

간부는 혀를 찼다.

외부인들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쑤닝과 간부들은 태현을 초대해서 열 대회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인데 태현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개회식 자리에 한식 좀 준비해놔야 하나?

-아니… 김태현은 어차피 판온에서만 참가하고 실제로 안 오잖습니까? 그런데 대회 자리에 왜 한식을 준비합니까?

-실로 탁월한 생각이십니다!

-!?

투자자 쪽에서 나온 직원은 쑤닝의 판단에 박수를 쳤다.

-김태현 선수는 안 오더라도 한국 기자들이나 다른 한국인들은 자리에 찾아올 수 있으니, 그 사람들을 대접해 주면 김태현 선수도 기뻐하겠지요.

-…그렇지?

쑤닝은 직원의 칭찬에 뿌듯해했다.

투자자들이 보낸 저 깐깐한 놈이 저렇게 만족해하는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제가 잘 몰랐지만, 쑤닝 님과 함께하면서 쑤닝 님의 장점에 대해 깨달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 최대한 길고 자세하게 말해보도록.

-쑤닝 님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능력이 뛰어나십니다.

-…….

한마디로 아부 잘 한다는 거 아냐?

쑤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칭찬을 해주나 했더니…!

* * *

“길드 동맹 놈들 하여간 도움이 안 돼! 그러니까 망하지!”

“빨리 연락해서 다들 도망치게… 어? 그냥 가잖아??”

쿨하게 떠나는 태현 일행의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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