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53화
“내가 알기로는 그 퀘스트가 요리사들한테 상당히 인기 있다고 들었는데….”
“전에는 그랬는데, 이제 하는 사람 팍 줄었어요.”
요리사 플레이어는 설명에 나섰다.
동굴 안의 수상쩍은 현자를 만족시키는 퀘스트는 처음에는 꽤나 인기가 좋았다.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았고, 그 수상쩍은 현자도 괜찮은 보상을 줬던 것이다.
-요리 갖고 왔습니다.
-88점! 상으로 이 <눈부시게 빛나는 파이토스 교단의 프라이팬>을 드리겠습니다.
-앗! 감사합니다! 혹시 파이토스 교단과 관련된 분이신가요?
-아닌데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자. 다음은 좀 더 귀한 요리를 갖고 오십시오. 와이번의 알로 만든 알 요리가 먹고 싶네요!
-…….
[새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지 않고서는…]
-헉헉. 간신히 구해왔습니다. 경매장에 신선한 알이 없어서 웃돈 주고 사와서 만든 와이번 알 계란말이인데….
-43점. 실패작입니다.
-아, 아니. 말도 안 됩니다! 얼마나 잘 만들었는데요! 잘 만들었다고 메시지창도 떴어요!
-재료 선택이나 조리법에 너무 창의성이 없어요.
-…….
난이도가 올라가자 이 퀘스트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퀘스트로 변해버렸다.
비싸고 희귀한 재료는 필요한데 해봤자 통과하기는 거의 힘든 쓰레기 퀘스트!
요리사들이 ‘안 해!’ 하고 포기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쪽도 요리사에요?”
“흠… 요리사긴 한데….”
“심한 말은 안 하겠지만, 포기하는 게 좋을 걸요. 뭐하는 NPC인지 모르겠지만 짜증 나 죽겠어요.”
요리사 플레이어는 투덜거렸다. 그걸 보자 태현도 살짝 긴장이 됐다.
“난이도가 꽤나 높은 모양인데?”
그걸 본 류다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요리 스킬이 어떻게 되십니까?”
“최고급 초반밖에 안 돼.”
“…….”
류다영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밖에’?
전투 직업이 요리 스킬을 중급 이상 올렸다는 것도 황당한데, 최고급 찍었다는 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밥 먹고 요리만 한 게 아닌 이상에야….
“과연! 케인 선수 저녁 차려주면서 올리신 겁니까?”
“…정말 그런 이유로… 아니지. 오빠. 그건 현실이잖아!”
류다영은 속아 넘어가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최고급 초반이면 스킬로는 충분할 거 같은데.”
“아니. 지금 반응 보니까 상대에 좀 맞춰야 하는 거 같다.”
세상에 쉬운 직업 스킬은 없었다. 요리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난이도 높은 퀘스트는 그냥 요리 스킬 높다고 깰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상대의 취향을 파악하고,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내고, 거기에 맞춰서 요리를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
“일단 들어가서 만나보자. 대화하면서 화술 스킬로 알아내봐야지.”
* * *
“여기 들어가려면 골드 내야 해.”
“아. 그렇군. 네 장례식 비용….”
태현은 바로 검을 뽑으려고 들었다.
0.1초도 걸리지 않는 빠른 반응!
이세연이 급히 말렸다.
“퀘스트 깨러 왔지 여기서 전투 벌이러 온 거 아니잖아.”
“퀘스트 깨면서 대규모 PVP 하면 연습도 되고 좋겠네.”
“앗. 그거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이세연은 류태수를 데리고 온 것을 다시 후회했다.
그냥 쟤는 뺄 거 그랬나?
사실 남들이 보기에는 ‘김태현이나 이세연이나 차갑고 살벌한 플레이어 아닌가?’ 싶을 수 있었다.
둘의 플레이가 비슷하게 느껴질 때도 종종 있었고.
하지만 김태현에게 수없이 당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세연과 김태현은 다르지!
-김태현이 더 개XX라는 점이 특히!
이세연은 보통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도 굳이 싸워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피할 때도 많았다.
대형 길드들이 던전을 먼저 점령하고 출입을 제한하면, 꼭 필요한 게 아니면 피하는 수준!
하지만 태현은….
-그렇게 던전이 좋으면 니들 무덤으로 써라!
-으아아악!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검이 자동으로 휘둘러질 정도로 많이 싸워 온 사람!
태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길을 막고 있는 플레이어를 보며 물었다.
“이 동굴 들어가는데 왜 통행료를 받아야 하는지 말해봐라.”
“그야 여기 동굴 막고 있는 문이 골드를 안 넣으면 안 열리니까.”
[<팔라노 동굴의 암흑 철문>이 골드를 요구합니다!]
[동굴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골드를 넣어야 합니다.]
몇몇 던전이나 지역은 입장하기 위해 대가를 필요로 했다.
이런 식으로 골드를 걷는 건 꽤나 특이한 일이었지만….
“아. 그런 거였군. 오해해서 미안하게 됐어.”
“오해라니?”
“난 또 어디 대형 길드에서 나와서 통행료 걷으려는 줄 알았지.”
태현은 솔직하게 사과했다.
그러자 상대 플레이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물론 그것도 맞아.”
“?”
“저기 들어갈 골드도 내고, 우리 <레스토랑> 길드에 바칠 골드도 내야지. 통행료야.”
“…그렇군. 여기 받아라.”
태현은 다시 검을 뽑았다.
“검으로 대신 내려고?”
“아니.”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푹찍푹찍!
“크아악! 미쳤냐 너!?”
“니네 길마한테 꼬우면 골짜기로 오라고 전해라.”
태현은 단칼에 길드원을 치워버렸다.
괜히 사과했네!
[<아키서스의 성장>으로 인해 불불이가 <갑작스러운 기습>을 배웁니다!]
[불불이가 희박한 확률로 <갑작스러운 기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불불이는 싸울 때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않고, 상대를 혼란시키거나 기습할 것입니다!]
“…….”
“태현 님. 좋은 말, 좋은 행동만 보여주신다고….”
“이건 어쩔 수 없었잖아!”
태현은 혀를 찬 다음 주변에 소리쳤다.
“여기 길드원 놈 없어졌으니 얘한테 통행료 안 내도 됩니다!”
“와아아아아!”
“어, 근데 거기 동굴 갈 일 없는데요. 이제. 쓰레기 퀘스트라서.”
“아냐. 난 아직 난이도 낮은 것도 못 깼으니까 들어가 볼래.”
플레이어들은 열렬히 기뻐하…지는 않았고 한 1/3 정도만 기뻐했다.
나머지는 이미 통행료 내서 딱히 별 이득이….
* * *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습니다.]
[노익스의 권능이 담긴 어둠이 길을 막습니다!]
‘노익스가 누구지?’
[카르바노그가 노익스는 어둠의 신이라고 말합니다! 카르바노그 본인처럼 이제는 잊혀진 옛 신이라고 말합니다!]
신들이 대륙을 떠나고, 마계와 천계가 따로 분리되고 나자, 몇몇 신들은 신도를 잃어버리고 그 힘을 잃어버렸다.
신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한 번 신도가 사라지고 교단이 끊기면 부활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
카르바노그는 그렇게 잊혀진 신이었고, 노익스도 그런 부류에 들어갔다.
그런 신의 권능을 쓰다니!
‘어라? 노익스라는 신의 권속인가?’
태현은 의아해했다. 노익스 교단 퀘스트인가?
‘아키서스 교단만 해도 지금 벅찬데 노익스 교단까지 껴안고 싶지는 않은데.’
[카르바노그가 맞다고 합니다. 카르바노그 교단도 책임져줘야 하는데…]
‘…아니. 그건 아니지. 어디서 은근슬쩍.’
-모험가여! 요리를 바치러 왔나요!
“어… 그렇다.”
태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세연에게 물었다.
-저거 못 뚫나?
-마법이 안 먹히는데… 원래 권능 스킬들이 사기적인 게 많잖아.
“그런데 바치기 전에 그, 원하는 요리를 듣고 싶은데. 어떤 요리를 원하지? 혹시 행운이나 신성이나 악마나 언데드에 관련된 요리가 취향이라면 맞춰줄 수 있는데.”
태현은 슬쩍 자기가 자신 있는 분야를 말했다.
정말 요리만 하는 요리사 랭커들에게는 지겠지만, 태현에게도 전문분야가 있었던 것이다.
<아키서스의 요리:악마>나 <아키서스의 요리:언데드>는 다른 요리사가 따라올 수 없는 영역!
-…정말 들어본 적 없는 미친 요리법을 갖고 온 모험가라니… 앗. 잠깐만요. 행운, 신성, 악마….
상대는 손가락을 꼽더니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 아키서스와 관련된 모험가인가요?
“아키서스 교단 교황이면 뭐 퀘스트에 보너스 주나?”
파아앗!
[노익스의 권능이 담긴 어둠이 사라집니다!]
[아키서스의 상급 천사, 아흐다엘을 목격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교단의 힘이…]
[교단에 새로운 퀘스트들이 추가됩니다!]
[교단에 새로운 직업들이…]
“!!!”
-역시 화신님이시군요!
태현은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런 누추한 곳에 이렇게 누추한 분이?
“아키서스의 천사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설명하자면 매우 긴데요….
류다영이 뒤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키서스의 천사인 걸 어떻게 알아본 겁니까?”
“머리 3개 달려 있고 팔 6개 달려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키서스의 천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해요.”
“…저 놀리는 거….”
“아니거든.”
진심 100%!
머리 3개에 팔 6개 달려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키서스의 천사라고 봐야 했다.
아니면 미친 키메라거나….
-짧게 말씀드리자면, 굶주린 혼돈 때문에 여력이 되는 천사들은 지금 다 대륙에 내려오려고 하고 있을 거예요.
“!”
이건 정말 중요한 정보였다.
다른 교단들도 지금 천사들이 하나둘씩 오고 있을 거라니.
[카르바노그가 호구 잡자고 말합니다!]
‘어허. 카르바노그. 못된 생각은 하지 말자.’
[화신 입꼬리 올라간 거 다 보인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잠깐. 그런데 왜 신전에 안 오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오다가 악마들의 습격을 받아서 숨어 있었어요.
“그렇군. 아키서스한테 원한을 가진 악마들이….”
-아. 그건 아니고요. 그냥 몇천 년 전에 제가 죽였던 악마들….
“…….”
“…….”
* * *
사베트는 케인 옆에 붙어 있었다.
‘수많은 선수들을 봤지만 이런 선수는 처음 본다!’
사베트는 감탄했다.
케인은 그가 본 선수들 중 1위였다.
욕심 없는 선수로 치면 1위!
보통 선수라면 자기가 후보라는 것에 아쉬워하고, 분해하며 ‘크윽 두고 보자’이래야 하는데….
케인은 ‘와 내가 후보라고? 와 출전도 안 하는데 리스트에 들다니 이건 정말 너무 행복한걸?’ 하며 만족하고 있었다.
지금 자기 상황에 너무 만족하는 사람!
‘김태현 선수가 왜 신신당부한지 알 것 같습니다.’
이런 선수에게는 끊임없는 채찍질만이 답이었다.
-케인 선수. 이건 김태현 사장님이 저한테만 한 소리입니다만….
-앗. 뭔데요? 혹시 제 욕이라도 했나요?
-…그건 아니고. 다음 시즌에는 본격적으로 선수들을 구해서 탄탄한 로스터를 꾸리겠다고….
-!!!
-제가 보기에 케인 선수는 좀 위험합니다.
-얼, 얼마나 위험합니까??
-제일 위험하죠. 소문에 퇴출 0순위라는 말이 있습니다.
-…!!
‘앗. 너무 어설프게 말했나?’
애초에 소문이 돌 수가 없….
-감독님! 쫓겨나고 싶지 않아요! 쫓겨나지 않게 해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케인 선수. 도태되지 않으려면 하나밖에 없습니다. 성장하는 겁니다. 제가 하라는 대로 따라오겠습니까?
-예!
-좋습니다! 제가 준비한 던전 리스트가 있습니다. 이 던전들을 다 돌고 나면 케인 선수는 한 단계 성장해 있을 겁니다!
[<프로즈란드의 지하얼음궁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카프 산맥의 독 밀림>에 입장하셨습니다.]
[……]
[……]
-허억, 허억. 감독님. 근데, 저는, 탱커인데, 왜, 혼자, 던전을, 도는, 겁, 니까?
-원래 혼자 돌아야 실력이 늡니다. 죽기 싫으면 잘 막아야 하니까요.
-아니, 으억, 크억.
-자. 멈추지 마십시오. 케인 선수! 다음 던전 갑니다!
사베트와 태현은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었다.
태현은 자기 캐릭을 키워야 하니 어느 정도는 케인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뒀지만….
사베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100% 케인 옆에 붙어서 지적질 가능!
‘그냥 김태현 옆에 붙어 있을걸!’
케인은 울면서 던전을 돌았다. 혼자서 달리는 던전의 길이 유난히 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