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47화
“애초에 넌 흑마법사도 아니잖아?”
“흑마법사는 아니지만 흑마법 스킬은 있지.”
“대체 어떻게… 아니다.”
물어보려던 이세연은 손을 흔들었다.
생각해 보니 태현한테 흑마법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제 김태현이 무슨 스킬을 갖고 있어도 놀라지 말아야지.’
“그런데 너, 노래 스킬은 나한테 도와달라고 했으면서 흑마법 스킬은 도와달라고 안 하네? 흑마법 스킬은 얻기만 하고 키우지는 않나 봐?”
“…….”
태현은 멈칫했다.
어라?
그러게?
“너 설마 생각 못한 건 아니지?”
“물론 아니지. 네가 바쁘기도 한데다가 네 주력 스킬을 그냥 도와달라고 하는 건 너무 양심 없는 짓….”
‘까먹은 거 맞잖아…!’
이세연은 분노했다. 노래 스킬 이야기는 하면서 흑마법 스킬은 까먹어?
“그리고 내 흑마법 스킬이 좀 특이해.”
“특수 스킬 배웠나 보네?”
이세연은 놀라지 않았다.
일반적인 흑마법 스킬이 아닌, 특정 퀘스트를 깨고 대신 얻은 특수한 흑마법 스킬!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예 못 볼 정도로 희귀한 일도 아니었다. 태현 정도라면 그래도 놀랍지 않았다.
“특수 스킬이면 음… 잘츠 왕국 흑마법이나, 느카넷살의 흑마법 같은 걸 익혔어? 고대 제국 흑마법 같은 건 아무리 너라도 못 익혔을 것 같은데.”
“음.”
“왜? 숨기지 말고 말해도 괜찮아.”
“…느부캇네살의 흑마법 이어받았는데.”
“…….”
이세연은 할 말을 잃었다.
너 흑마법사였니?
“그걸 네가 왜 갖고 있어?!”
“저번 느부캇네살 레이드 때문에 강제로 받은 거거든?”
“아…!”
이세연은 바로 이해했다.
느부캇네살 레이드에 참가했다면 그 보상으로 이어받는 것도 이해가 갔다.
“잠깐. 느부캇네살 흑마법이면 엄청 좋을 것 같은데?”
이세연도 탐낼 법한 이름!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안 좋아?”
“안 좋아.”
태현은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어떤 스킬인지 설명했다.
일단 갖고 있던 흑마법 스킬들(원래 몇 개 없었지만)을 대부분 뺏겼다.
남은 건 소환과 저주, 그것도 랜덤.
‘왜 랜덤이지?’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때문이었지만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아… 그건 어쩔 수 없어. 특수 스킬은 거기에 맞는 퀘스트나 스킬북 찾아야 느니까.”
느부캇네살의 흑마법 스킬이 늘려면, 느부캇네살이 썼던 여러 마법 스킬들을 찾아야 했다.
일반적인 흑마법이라면 마탑을 찾아가거나 흑마법사 NPC를 찾아가서 새 스킬을 배울 수 있었지만, 느부캇네살 흑마법 정도면 그럴 수도 없을 터.
난이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좋은 스킬일거야. 일단 희귀하잖아?”
“으음.”
태현은 멈칫했다.
아키서스의 화신도 카테고리는 전설 직업이긴 한데…!
“지나갈 때마다 언데드들이 정신 되찾고 강화되는 게 성가신데, 이건 방법 없나?”
“…그건 나도 뭐라고 해줄 말이….”
이세연도 할 말이 없었다.
정신을 잃은 언데드들을 정신 차리게 만들고 강화시켜주는 능력이라니.
너무 특이해서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이걸로 국왕 언데드로 만들었을 때 정신 차리게 만들 수는 없나?”
“국왕이 자아를 잃은 상태라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일단 국왕이 자아를 잃은 상태일 가능성이 적었다.
국왕 정도 되는 시체를 언데드로 일으킨다면 최소한 네임드 언데드가 나올 테니까.
그리고 보통 그런 언데드들은 생전의 기억과 정신을 갖고 있기 마련이었다.
“일단 소환하는 순간 제정신일 가능성이 클걸. 그냥 강화만 되겠네.”
“제정신이면 설득할 수 있을지도….”
“아니.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 일단 언데드들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괴팍해지니까.”
이세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NPC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고 언데드 라이즈를 생각하면 안 됐다.
죽음은 커다란 충격!
일단 언데드가 되는 순간, 생전과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어떻게 달라지길래?”
“으음… 다 제각각이라 설명하기는 힘든데, 일단 생전에 해내지 못했던 게 있거나, 죽은 원인이나, 그런 것에 엄청나게 집착하게 돼.”
“아하.”
태현은 바로 납득했다.
아키서스 교단 관련 언데드들을 생각해 보니 그럴듯했던 것!
“국왕 같은 경우는 에랑스 왕국에 집착하게 되는 건가? 아니면 왕자들을 죽이는 데에?”
“그거야 모르지. 국왕이 다른 것에 집착할 수도 있고. 그리고 에랑스 왕국에만 집착하지 않을 수도 있어.”
“?”
“아탈리 왕국 왕관 가져가려고 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
“…!”
그 말을 듣자 태현은 오싹해졌다.
확실히 그럴듯했다.
태현이 에랑스 국왕과 친하긴 했지만, 사람 속은 모르는 법 아닌가.
깨어난 에랑스 국왕이 ‘크헤헤 이렇게 된 이상 아탈리 왕관이라도 써야겠다 내놔!’이러면….
“…최대한 미루는 게 낫겠군.”
“그래. 필요한 순간 아니면 미뤄두는 게 나을 것 같아.”
이세연은 언데드로 일으킬 때 태현을 옆에 둬야 하나 고민했다.
안 그래도 힘센 국왕이 강화까지 되면?
“새삼스럽지만 이거 정말 쓰레기 스킬 같….”
“아, 아니야. 느부캇네살 이름 들어갔으니까 뭔가 더 있겠지.”
이세연은 태현을 애써 위로했다.
분명 나중에 스킬 올라가면 엄청나게 좋아질 스킬이겠지!
“그리고 느부캇네살 관련 스킬 배우고 싶으면 던전 있어. 나중에 공략 가봐.”
“그런 게 있다고?”
“응. 랭커들 사이에서 몇 번 말 나온 적 있는 던전들인데….”
“…….”
태현은 랭커들이 살짝 얄미워졌다.
아니 랭커 놈들 지들끼리만 좋은 거 알고 있나!
“느부캇네살 관련 던전이라고 하던데?”
“넌 공략 안 했고?”
“나야 할 퀘스트 많고 깰 던전들 많은데 굳이?”
이세연은 느부캇네살 흑마법에 그렇게까지 큰 욕심이 없었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다른 흑마법 스킬도 많았다.
[지도가 추가되었습니다!]
[<느부캇네살의 폐쇄된 연구실> 위치가 추가되었습니다.]
[……]
[……]
“아. 여기 던전 다 클리어 안 된 곳들이야. 몇 층 정도는 클리어가 됐는데, 그 밑으로 내려가는 길을 못 찾은 모양이더라.”
어떤 던전들은 다음 층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특정 퀘스트를 깨야 했다.
그 퀘스트를 못 찾으면 아예 진행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렇군. 그러면 지금 당장….”
“…어디를 가려고!”
이세연은 태현의 소매를 급히 붙잡았다.
“저기 팀원들 안 보여?”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류태수와, 차가운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는 류다영!
“아. 그랬지.”
“그래서 뭘 잡을 건데?”
잡을 몬스터는 많았다.
태현은 아탈리 왕국 던전에 무조건적으로 입장할 수 있었고(왕이었으니까), 다른 지역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받고 안 깬 퀘스트들도 여럿이었고….
태현은 오랜만에 아탈리 국왕 관련 창을 켜봤다.
[왕국에 나타난 몬스터, 칼레오스를 처치하라…]
[도시 지하에 악마 출현! 악마 퇴치…]
[……]
[……]
국왕으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퀘스트들!
보상은 적은 대신, 왕국 전체에 버프를 주거나 명성이 올라가는 게 특징이었다.
“흠… 몬스터는 많은데 어려운 보스 몬스터가 적군. 대부분은 가기도 전에 해결될 거 같고. 밖으로 나가야 하나?”
“김태현. 가능하면 아탈리 왕국에 있는 몬스터로 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지금 몇 명이 아탈리 왕국을 노리는데, 멀리 나가는 건 매우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보다 왜 내가 왕국 걱정을 해야 하는 거야?’
왕은 태현이지 이세연이 아니었는데 왜 걱정은 반대로….
“알겠어. 흠… 어. 이거 괜찮은 거 같은데?”
* * *
[굶주린 악마, 골라돈이 평원에 나타났습니다!]
[골라돈은 배가 불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공격할 것입니다!]
[모험가들은 주의하십시오!]
“으아악! 골라돈 떴다!”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최근 이 평화로운 <양과 염소의 평원>에서 사냥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바로 굶주린 악마, 골라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
레벨이 100도 안 되는 플레이어들이 주로 노는 필드에서 저런 악마가 등장하면 답이 없었다.
“검은 보따리 풀어서 주니어 발록 푼 것 같네.”
“?”
“??”
“???”
류태수, 류다영,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다.
그게 뭔 소린가요?
“…나, 나만 아는 거야 이거?”
“이세연. 나도 아니까 울지 마라.”
태현은 이세연을 위로했다. 모를 수도 있지!
“아니 왜 저걸 몰라…?”
“따지면 너만 슬퍼지니까 그러지 말고. 그보다 진짜 저놈 왜 저기 있냐?”
태현 파티는 각자 비행 탈것 위에 타서 평원 아래를 지켜보고 있었다.
멧돼지처럼 생긴 악마, 골라돈이 사방으로 날뛰어대며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저런 보스 몬스터는 이런 약한 필드에 나올 이유가 없었다. 어떤 퀘스트 관련이 분명했다.
“먹을 거 던져!”
“알, 알겠어!”
플레이어들도 요령이 생긴 모양이었다. 레벨 낮은 플레이어라도 머리는 굴릴 수 있는 법.
그들은 먹을 걸 바닥에 던지고 도망쳤다. 그러자 골라돈은 굳이 쫓지 않고 먹을 걸 주워 먹었다.
-캬오?
“불불아. 저건 먹는 게 아니에요.”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저건 멧돼지 통구이처럼 생기긴 했지만 악마란다!
-저렇게 멍청하게 생긴 놈이 저희 사냥감으로 충분하겠습니까?
-교황이라고 해도 우리를 너무 무시하면 안 됩니다.
가루다 전사들은 흥흥거리며 불만을 표했다.
악마란 건 마음에 들었지만 하는 짓이 너무 멍청해 보이지 않는가!
상대의 격을 중요시하는 가루다 전사들에게 저런 적은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저게 저렇게 보여도 매우 강한 적이다.”
태현은 가루다 전사들을 달래기 위해 슬쩍 거짓말을 했다.
사실 이제까지 태현이 상대한 적에 비하면, 골라돈은 매우 약한 편에 속했다.
이런 약한 필드에 나타났다는 거 자체가 수준 딸린다는 증거!
태현이 정말 불가능한 도전을 하고 싶었으면 저 먼 산맥에 숨어 있는 악마 공작 잡으러 갔지, 지금은 적당한 사냥을 할 때였다.
“저 갈기는 온갖 공격을 막아내고 저 엄니는 아키서스의 회피마저 뚫어버리지.”
-아니… 정말로 말입니까??
[카르바노그가 깜짝 놀랍니다!]
-캬오?
-그게 정말인가, 주인이여?
‘너희들까지 속으면 어떡하냐.’
태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 * *
“모두 비켜라! 우리가 잡을 테니까!”
태현 파티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이, 한 무리의 다른 파티가 나타났다.
“이런. 뺏기나?”
“네 실력이면 먼저 뺏을 수 있잖아?”
“흠. 보아하니 오래 기다린 거 같은데 그걸 날름 뺏는 건 좀….”
태현의 말에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아니…!?
너한테도 그런 양심이?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지?”
“아, 아니야. 살짝 감탄했을 뿐.”
뒤에 있던 류다영도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탑 랭커로서 훌륭한 마음가짐이네요.”
“그치? 내가 괜히 팬이….”
“시끄러워요.”
“…….”
류태수는 동생의 독설에 시무룩해졌다.
“이세연. 네가 시끄럽다는데?”
“나한테 한 말 아니거든?”
“여러분. 장난치는 건 좋은데, 저 밑을 보세요 좀!”
이다비가 다급히 밑을 가리켰다.
떠드는 사이 아래가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런 멍청한 놈들아! 그걸 못 잡냐!”
“닥쳐, 요리사 놈아! 어디서 명령질이야!”
“비싼 돈 주고 불렀더니!”
“시끄러워!”
골라돈을 잡지 못하고 튕겨 나간 플레이어들은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다퉜다.
그 모습에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태현 님. 저거… 레스토랑 길마 아닌가요?”
“레스토랑! …걔네가 누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