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45화
류다영은 차갑게 말했다.
류태수야 김태현의 광팬이니 그런 생각을 할지 몰라도, 이세연은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이세연을 존경하는 입장에서 그런 망언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냥 농담 삼아서 말해본 건데.”
“그런 농담하지 마.”
“알겠다. 내가 잘못했어.”
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존경스러운 주장, 이세연한테 그런 농담은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
류태수가 진지하게 반성하자 이세연은 양심이 살짝 찔렸다.
물론 이세연이 완전히 진지하지 않은 마음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태현과의 파티 퀘스트는 생각보다 훨씬 경험치가 많이 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이었고, 태현과 같이 하게 된 이유는 김태현과 친해서가 맞았다.
…신세 진 거 갚으려고!
같이 하는 게 생각보다 괜찮아서 레벨도 올리고 명성도 올릴 겸 같이 하고 있었는데 저런 말을 들으니 생각보다 양심이 찔렸다.
“어쨌든 같이 하는 건 상관없는데, 지금 하는 게….”
이세연은 고민했다.
같이 하자고 해도 되나?
지루한 일반 퀘스트 무한 반복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냐. 마침 잘 찾아왔네.”
“잘 찾아왔다는 의미가 일꾼이란 의미는 아니지?”
이세연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대 팀원들한테 잡퀘 시키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아니야. 요새는 꽤 완성되었고, 내가 버프 안 줘도 알아서 굴러갈 거야. 지금 내가 퀘스트 떠서 움직여야 했거든.”
“무슨 퀘스트?”
* * *
가루다 왕국!
하늘섬이 새로 생기고 나타난, 드넓은 창공의 왕국이었다.
말이 왕국이지만 거의 잘츠 왕국이나 우르크 오크 부족들 수준인 흉폭한 곳이었다.
-가루다 왕국에 온 걸 환영한다, 전사여! 네 레벨은 몇인가?
-어… 제 레벨은 89….
-형편없기는! 꺼져라! 우리 가루다 왕국은 너 같은 전사를 들여보내지 않는다!
-어, 여기 지금 하늘인데 꺼지면 저희는 어디로 으아아아악!
하늘섬 밖에서 날아다니며 약탈을 시도하는 게 바로 이 가루다 왕국의 전사들이었다.
-등에 날개 달린 천사처럼 생겨놓고 흉폭하기는 무슨 악마 수준이야!
-하늘섬에 관광 온 사람들, 가루다 전사들 조심하세요! 비행선에 찾아와서 막 깡패짓해요!
평화로운 하늘섬의 명소를 구경하러 온 플레이어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지만, 몇몇 고렙 플레이어들은 가루다 왕국을 고평가했다.
-가루다 왕국이 좀 개같긴 해도 레벨업 하기는 좋은 곳임. 왕국 한 번 찾아가 봤는데, 흘러 다니는 구름이나 비행 몬스터 위에서 살더라. 미공개 던전이나 필드도 있음. 못 보던 몬스터들도 많고.
-맞아. 아직 가루다 왕국 안 가본 플레이어들은 가볼 만해. 가루다 왕국이 좀 오크 같은 새끼들이긴 해도 강해지긴 좋은 곳임. 내 친구도 거기서 영웅 직업 얻었더라.
-보두앙도 거기서 <가루다 왕국 만인장> 얻었다면서?
-어. 보두앙이 그랬잖아. 가루다 왕국이 X같은 곳이긴 해도 나오는 건 많다더라.
-…그런데 왜 모든 말에 다 욕이 들어 있지?
-그, 그러게.
보통 어느 곳을 평가할 때는 ‘좋다’ 또는 ‘나쁘다’로 갈리는데 가루다 왕국은 칭찬에도 꼭 욕이 들어 있었다.
…대체 어떤 곳이야?!
그리고 태현은 이런 가루다 왕국의 시험을 통과하고 당당하게 가루다 전사들을 빌려온 사람이었다.
-사납고 비열하고 더러운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에게 그런 시험은 필요 없을 터! 가루다 전사들을 줄 테니, 어디 한번 그대의 능력을 증명해 보여라!
<능력의 증명-가루다 왕국 퀘스트>
사납고 비열하고 더러운 가루다 왕국의 전사들은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찾아 헤맨다.
더 강한 적을….
태현이 이들을 빌릴 때 생각은 간단했다.
-이데르고 교단도 나타났고, 악마 공작 푸르네우스도 대륙에 나타났고, 뭐? 마계에서 온 정체불명의 괴물도 영지 앞바다에 나타났고? 싸울 일 많겠군. 데리고 가도 되겠네.
태현은 <고대 제국 이탈자>들부터 시작해서 <가루다 부족 전사>까지 데리고 나왔다.
여러모로 불안정한 놈들이긴 하지만, 일단 전력으로는 크게 도움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노래, 요리, 마법 스킬을 최고급으로 찍어라!
이데르고 교단은 푸르네우스와 싸우더니 한풀 꺾였고, 푸르네우스도 산맥 근처로 도망치고, 레비아탄도 할 일 다 했으니 마계로 가버리고….
굶주린 혼돈 때는 굳이 부를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이세연이 부른 세력들하고만 같이 했고….
그 다음에는 평화로운 직업 퀘스트에 몰두하다 보니, 가루다 부족 전사들과 고대 제국 이탈자들을 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아끼기만 하다가 게임 끝날 수준!
그러자 가루다 전사들이 태현을 찾아왔다.
-크아아아! 왜 우리를 무시하는 것인가! 아키서스!
[가루다 전사들의 불만이 폭발합니다!]
“아니. 그게 다 사정이 있었다고.”
-우리가 레비아탄을 죽이지 못했다고 무시하다니! 너무하지 않나!
[가루다 전사들이 눈물을 터뜨립니다!]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가루다 전사들의 격한 반응에 당황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평판이…]
[가루다 전사들을 제외하고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과 싸웠습니다!]
[가루다 전사들을 제외하고 굶주린 혼돈의 흑마법사들과…]
[……]
[……]
가루다 전사를 두고 그냥 논 거면 가루다 전사들이 분노해서 태현을 공격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태현은 놀지 않았다.
가루다 전사들을 내버려 둔 채 계속해서 업적을 쌓아나간 것!
거기에다 명성도 높고 평판이 높자 가루다 전사들은 다른 식으로 생각했다.
-아, 저 교황 놈이 우리가 못 미더워서 데리고 가지 않는가 보다!
게다가 옆에 있는 고대 제국 이탈자들은 기름을 부었다.
-흠. 확실히 그럴듯한 말이다.
-암. 뼈대 깊고 혈통 좋은 우리 고대 제국 출신들과 달리 가루다 야만족 놈들은 하찮은 놈들이지.
-저… 저 저 저놈들이…!
-같은 고대 제국 출신이라고 감싸고 도는 거 봐! 이래서 인간 부족 놈들은 믿을 게 안 된다!
그 결과 가루다 전사들은 씩씩대며 태현 앞에 찾아왔다.
-우리도 사냥에 나가겠다! 우리 능력을 보여주겠다!
<가루다 전사의 사냥-가루다 왕국 퀘스트>
가루다 왕국의 전사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서 몸이 달아 있는 상태이다.
이런 그들의 요청을 거절할 경우 그들은 매우 끔찍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
‘무슨 사태지?’
[더 크게 우는 게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추측합니다.]
‘그런 사태는 아닐 거 같다.’
…가루다 왕국의 전사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위대한 사냥을 해내라.
그럴 경우 전사들이 크게 만족하리라!
보상: ?, ??, 가루다 왕국 공적치 포인트, 가루다 왕국 아키서스 관련 정보.
[퀘스트를 해결할 경우 가루다 왕국에 당신의 명성이 퍼집니다. 가루다 왕국에 내려오는 아키서스 관련 정보가 주어집니다!]
“!!!”
그러고 보니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단장의 후손이 하늘섬 어딘가에 있다는 정보가 있었었다.
애초에 가루다 왕국과 엮이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었는데….
‘앗. 그랬었지?’
[카르바노그가 잊고 있었던 거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사실 맞았다.
태현은 자기 화신 직업 퀘스트를 먼저 깨면 깼지, 교단 퀘스트를 그렇게 성실히 깨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단장 후손 찾아봤자 뭘 한단 말인가.
교단 가입한 플레이어들만 기쁘겠지!
태현에게는 직업 퀘스트가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단장 후손 찾아봤자 애가 멀쩡할 확률이 별로 없잖아.’
[카르바노그가 대답을 회피합니다.]
* * *
“드디어 완성했다…!”
“으흑흑! 아름답다!”
관리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눈앞의 경기장을 쳐다보았다.
일명 <세계수 투기장>.
무려 이번 월드컵 대회를 위해 새로 만들어진 투기장이었다.
이걸 만들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판온 인공지능한테 이거 게임 밸런스에 아무 영향 안 주니까 제발 좀 만들어달라고 계속해서 입력 넣고, 그 다음에는 관리 때문에 수십 명 넘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가다듬고….
그래도 그 보람이 있었다.
이제까지의 투기장보다 몇십 배 더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곳!
“테스트 좀 해보고 싶은데 레벨 높은 사람 있나?”
“여기 윤 대리가 레벨이 좀 높습니다.”
“아니 왜 절….”
윤주환은 좋으면서 짐짓 싫은 척 사양을 했다. 속으로는 신나서 환호성을 질러보고 있었다.
‘월드컵 투기장에 처음으로 들어가게 되다니!’
“그러면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니 싫으면 안 가도 되는데.”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계수 투기장>에 입장하셨습니다!]
[맵이 결정됩니다.]
[<고대 악룡의 둥지>가 펼쳐집니다.]
[<세계수 기본 장비>가 주어집니다.]
‘맵 이름 한 번 살벌하네.’
-크오오오오오오!
맵에서 들리는 살벌한 소리에 윤주환은 의아해했다.
“여기 왜 몬스터 소리가 나지?”
-몬스터도 추가됐다는군.
“아. 그렇습니까?”
투기장 중에는 몬스터들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몬스터를 잡으면 버프를 받거나 추가 아이템이 나오는 변칙 투기장!
그런 몬스터가 있다니 꽤나 신선했다.
‘하긴 이런 식으로 변수를 만들면 모두들 좋아하겠네.’
윤주환은 발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어떤 몬스터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검은 묘비 산맥의 지배자, 학카리아스가 포효합니다!]
[울부짖음으로 인해 움직임이 멈춥니다!]
[……]
[……]
[……]
“!!!!!!!”
윤주환은 경악했다.
언덕을 내려가서 옆으로 돌자마자 그 밑의 절벽 아래에 어디서 많이 본 블랙 드래곤이 있었던 것이다.
“이게 뭐야 XX?!”
-훨씬 더 약한 몬스터일 테니까 한 번 상대해 봐.
“아. 그렇군… 크아아아악!”
<세계수 투기장>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그냥 평범한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판온에서 나온 유명 네임드 몬스터들!
그 몬스터들이 랜덤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투기장 난이도에 맞춰 엄청나게 약화된 가상의 존재긴 했지만 윤주환 같은 플레이어가, 그것도 혼자서 잡을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사망했습니다.]
[부활합니다.]
[……]
“저런 몬스터가 나온다면 미리 말을 해주셨어야죠!!”
“네가 선수도 아닌데 왜 화를 내고 그래? 어쨌든 흥미진진하지?”
“예. 정말 더럽게 흥미진진합니다!”
예선이 오픈되고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이다.
이제까지의 경기와는 전혀 다른 경기!
적들뿐만 아니라 맵 안의 몬스터들을 신경 쓰는 것도 전략의 일부가 될 것이다.
* * *
“판온 1:1은 역시 힘들 것 같습니다. 규칙을 너무 불리하게 하면 김태현이 안 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팀전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금 쑤닝은 몇몇 간부들과 함께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목표는 태현을 길드 동맹이 주최하는 대회에 초대하는 것!
-투자를 받고 싶다면 그 김태현이란 선수를 대회에 참석시켜라. 그러면 내가 나서서 투자를 따와주마.
하지만 이게 만만치 않았다.
불리하면 김태현이 안 올 거고, 유리하면 김태현이 이길 거고….
“그냥 김태현한테 우승시키면 안 됩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야, 이 멍청한 놈아! 대회 열었는데 그놈이 우승해서 나가면 욕은 내가 먹는다고!”
“그러면 심사위원으로 부르죠?”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쑤닝은 눈을 크게 떴다.
심…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