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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243화 (1,242/1,826)

§ 나는 될놈이다 1243화

-얘네들 왜 이렇게 나한테 친절하게 굴지? 함정인가?

-제발 너한테 친절하게 군다고 다 함정 취급하지는 말아줄래?

이세연은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어서 괜히 울컥했다.

판온 1 끝나고 큰마음 먹고 ‘내 동료가 되어줘!’ 했을 때 김태현 이 자식 설마 속으로 ‘함정인가?’ 하고 의심한 건 아니겠지?

-에이. 그건 그렇게 의심 안 했지.

-그… 그래? 진짜?

이세연은 반색했다. 저게 뭐라고 괜히 기뻤던 것이다.

-네가 함정을 팠으면 그렇게 순진하게 팠겠어?

-…어쨌든 믿어줘서 고마워 이 나쁜 새끼야.

-그래서 쟤네들 왜 저러는지 알아?

-네 팬이겠지.

-랭커들 중에서 태현 님 팬도 있어요?

이다비가 매우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제까지 만난 랭커들은 보통….

‘김태현! 전생, 아니 판온 1의 원수!’

‘김태현! 내 길드의 원수!’

‘김태현! 내 여자친구의 원수!’

‘여자친구는 왜?’

‘네놈한테 진 다음 게임에만 몰두하느라 헤어졌으니까!’

‘하는 꼬라지 보니까 딱히 나한테 안 졌어도 헤어졌을 것 같….’

‘우어어어어어어!’

…하며 증오를 불태우는 게 보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팬들이 많이 있다니.

-요즘 새로 올라온 랭커들 많아서 그래요.

이세연은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리그의 성공적인 정착으로 인해 판온의 인기가 몇십, 몇백 배로 올라가자 플레이어들 숫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판온이 북적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랭커들도 그만큼 증가!

이제까지 굳이 공개 안하고 조용히 하거나, 혹은 하위권에 있거나, 아니면 아직 고렙 정도 수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대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뛰어드는 플레이어들 덕분에 지금 랭커 풀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랭커들 중 많은 숫자가 태현을 보며 판온에 뛰어든 플레이어였다.

-판온 1을 안 해봤으니까 김태현에게 당한 적도 없고, 팬인 경우가 많아요.

-세상에 그런 현상이!

이다비는 감탄했다.

-태현 님. 기쁘지 않으세요?

-딱히? 왜?

-다른 사람들이 태현 님을 인정해 주고 있잖아요.

태현은 원래 남의 인정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케인이나 신경 쓰는 거였고….

하지만 이다비가 저렇게 기뻐하는데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그래.

태현은 랭커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 이다비 칭찬도 해줘.”

“예?”

랭커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못 할 건 없었다. 보통 태현의 팬이면 팀 KL의 팬이기 마련.

어지간하면 다 좋아했다. 케인 빼고.

“어… 이다비 선수도 정말 대단한 선수죠. 경기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판온 최고 길드, 파워 워리어 길마!”

“팀 KL의 조율자!”

이다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태현 뒤로 피했다. 이세연은 태현의 등짝을 때렸다.

“??”

-뭐하는 거야!

* * *

무사히 골짜기로 돌아온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일단 에랑스 왕국과는 확실히 싸우게 된 상황!

물론 적은 1왕자였지만, 1왕자쯤 되면 동원 가능한 병사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에랑스 왕국은 중앙 대륙에서도 강함으로 손꼽히는 왕국.

1왕자의 전력만 따져도 태현의 아탈리 왕국이나 길드 동맹의 오스턴 왕국을 뛰어넘을 것이다.

오랜만에 골짜기의 <아키서스 대신전>에서 대책 회의가 열렸다.

교단 NPC들 집합!

“2왕자나 3왕자와 싸우느라 신경을 안 써줬으면 좋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1왕자가 나 노려보는 눈빛이 원수 보던 눈빛이더라.”

태현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1왕자가 가진 원한이 심상치 않았던 것!

예전부터 참 많이 싫어했는데, 국왕까지 납치했으니 사생결단을 내려고 할 것이다.

“싸웁시다! 교황 성하! 아키서스 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겁니다!”

갈락파드가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치며 외쳤다.

태현은 못 들은 척했다.

딱히 아키서스가 지켜줄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히 골짜기는 괜찮을 것 같은데, 나머지 왕국이 문제지.”

골짜기는 진짜 사람이 뚫을 수 없는 수준의 요새였지만, 왕국의 나머지는 쳐들어오면 막기 힘들었다.

길드 동맹처럼 치고 빠지기도 힘들었다. 1왕자가 데리고 있는 기사들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에랑스 국왕의 이름을 빌려서 명령을 내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떻게 말이냐?”

태현은 의아해했다.

에랑스 국왕은 죽었다. 그 사실은 아무도 몰랐지만, 죽은 사람이 명령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돌아가셨는데 이름 좀 빌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

옆에서 듣고 있던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여기 교단 맞지?

네크로맨서 모임 아니지?

“흠… 펠마스. 자세히 말해봐라.”

“어차피 돌아가신 거 모르니까, 이름 빌려서 우기면 뭐 누가 따지지도 못할 거고….”

“오….”

태현은 감탄했다.

아니 펠마스가 저렇게 쓸 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니 들킬 것 같으면 이세연한테 부탁해서 언데드 라이즈해도 되긴 하겠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아니. 잠깐. 가능한가?”

어이없어하던 이세연은 멈칫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게?

게다가 국왕을 언데드 라이즈하면 그 경험치가 장난이 아닐 것이다.

네크로맨서 플레이어라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기회!

“정말 그걸 양보해 줘도 괜찮아?”

“어차피 내가 하지도 못하는 건데.”

태현은 지금 흑마법 스킬 다 날아가서 국왕 시체 언데드 라이즈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네가 지금 내 퀘스트 도와주고 있잖아. 이 정도 보답은 해줘야지.”

“…김태현…!”

이세연은 감동해서 태현의 손을 꽉 쥐었다.

분명 분위기는 훈훈한데, 대화 내용을 따져보면 매우 섬뜩한 일이었다.

“그렇군. 일단 국왕의 이름을 빌려서 에랑스 왕국에 퍼뜨려야겠어.”

태현은 어마어마한 명성과 각종 칭호, 드높은 화술 스킬을 갖고 있었다.

그걸 기반으로 퍼뜨리면 에랑스 왕국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국왕의 등장이 정말 필요하게 되면….

언데드 스킬을 사용해서 등장시키자!

‘잘 변장하면 될 거 같기도 하고?’

* * *

[에랑스 왕국 곳곳에 소문을 퍼뜨립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이름으로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아탈리 왕국 국왕의 이름으로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1왕자 진영과의 친밀도가 최대치로 하락합니다!]

[절대로 화해할 수 없습니다!]

[3왕자 진영의 친밀도가 하락합니다!]

[……]

[……]

[에랑스 왕국 귀족들이 혼란에 빠집니다!]

[에랑스 왕국의 치안이…]

[……]

[……]

[에랑스 왕국이 내전 상태에 빠집니다!]

태현의 선언은 에랑스 왕국을 뒤흔들었다.

1왕자가 굶주린 혼돈과 계약하고 국왕 폐하를 가두고 있었다는 말에 귀족 NPC들은 경악했다.

-세상에 저런 나쁜 놈을 보았나!

-하지만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나?

-아탈리 왕국 국왕은 영웅 중의 영웅인데 그런 거짓말을 할 리가….

-하지만 왕자님인데….

1왕자는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해다! 저 사악한 놈이 아버지를 납치한 거다! 당장 아탈리 왕국을 공격해서 아버지를 되찾아야 한다!

1왕자는 귀족들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에게도 호소했다.

그러나 상황은 썩 잘 굴러가지 않았다.

-잘 모시고 있다고 하더니 역시 형님께서 가두고 계셨군.

-가두고 계신 이유야 하나겠지!

-왕관과 검을 빼돌린 다음 아탈리 국왕한테 떠넘기는 거 아니야?

서로 딱히 친하지도 않았던 형제 사이!

그런 와중에 저런 커다란 소문이 터지자, 다른 왕자들은 그냥 형을 손절할까 고민했다.

괜히 자기까지 흙탕물 튀겨서 안 좋은 이미지 생기면 귀족들 지지도 못 받을 텐데….

무엇보다 1왕자 본인도 형제들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검과 왕관을 받으려면 다른 놈들을 다 짓밟아야 하는데….

태현이 내린 가짜 퀘스트를 1왕자는 아직도 믿고 있었다.

다들 국왕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각 왕자 진영에서 퀘스트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탈리 왕국 공격 퀘스트…>

<국왕 구출 퀘스트…>

<2왕자 공격 퀘스트…>

<오스턴 왕국 점령 퀘스트…>

혼란 그 자체!

플레이어들은 어느 곳에 참가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야, 이거 어디 붙어야 하냐? 그냥 에랑스 왕국 편에 서서 오스턴 왕국 공격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굴러가네.

-이번 기회에 무조건 1왕자 부관 자리까지 올라간다! 지금이 기회지.

-진짜 국왕 관련 퀘스트면 김태현 쪽에 서는 게 낫지 않아? 김태현이 이제까지 퀘스트 실패한 적도 없고.

오스턴 왕국 쪽에 설지, 아탈리 왕국 쪽에 설지, 그도 아니면 스미스가 이끄는 화이트 나이트에 낄지, 아니면 에랑스 왕국에 낄지….

에랑스 왕국에 끼면 또 어느 곳에 낄지….

판온 중앙대륙은 정말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바뀔 정도로 휙휙 변하고 있었다.

* * *

“김태현, 우린 널 응원한다!”

“맞아. 맞아.”

‘안 어울리게 이러니까 당황스럽군.’

신진 랭커들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가끔씩 얼굴 마주치면서 서로 싫어하던 놈들마저 응원하려고 하자 태현은 떨떠름했다.

랭커들의 생각이 뻔히 느껴졌던 것이다.

-김태현 놈이 싫지만 이런 퀘스트에서는 확실하지.

-이런 퀘스트에서 실패한 걸 본 적이 없어요.

‘솔직한 놈들 같으니.’

랭커들은 기본적으로 좀 뻔뻔해야 했다.

어제까지는 싸우더라도 오늘은 또 싹 잊어버리고 친하게 굴 수 있어야 하는 것!

…하지만 그런 태현도 어이없어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야, 김태현 선수!”

“이번 퀘스트 축하드립니다!”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에서 사람을 보낸 것!

찾아온 길드원들의 표정은 싱글벙글 그 자체였다.

‘김태현이 에랑스 왕국과 싸워준다니!’

‘가끔씩은 기특한 짓도 하잖아!’

에랑스 왕국한테 얻어 맞고, 화이트 나이트한테 얻어 맞느라 정신이 없었던 두 길드였다.

한쪽만 좀 빠져줘도 숨통이 확 트일 것이다.

“김태현! 김태현!”

“판온의 영웅!”

“계속 떠들면 너희 길드도 공격해 버린다.”

“…….”

“…….”

길드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태현은 정말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흠.’

<왕관과 검-에랑스 왕국 왕실 퀘스트>

에랑스 왕국을 상징하는….

보상: ?, ???, ???

<에랑스 왕국 재통일-에랑스 왕국 퀘스트>

영웅의 마음을 가진 왕자를 찾아 혼란스러운 에랑스 왕국을….

보상: ?, ???

현재 태현에게도 에랑스 왕국 관련으로 퀘스트들이 날아와 있었다.

하나는 왕관과 검을 찾는 퀘스트.

다른 하나는 에랑스 왕국의 질서를 회복하는 퀘스트.

그런데 후자는 왕자 한 명을 골라서 돕는 퀘스트였다.

‘…왕자 중에 도울 놈 없지 않나?’

[카르바노그가 그냥 저런 퀘스트는 포기하자고 말합니다!]

‘음. 일단 직업 퀘스트도 마저 깨야 하는데.’

노래 스킬과 마법 스킬을 올리는 작업은 이제 슬슬 후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랑스 왕국 퀘스트와 병행하면 분명 같이 깰 수 있으리라!

“좋아. 모두들 날 따라와라!”

“와아아아아!”

태현이 외치자 자리에 있던 랭커들 모두가 환호했다.

과연 김태현은 어떤 화려한 퀘스트를 보여줄까?

* * *

“…….”

“…….”

“아니… 이런 잡퀘스트는 그냥 다른 사람들 시켜….”

“이걸 왜 우리가…?”

랭커들은 투덜거리며 바위를 옮겼다.

그렇다.

지금 그들은 요새를 짓고 있었다.

역시 모든 퀘스트의 기본은 수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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