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237화 (1,236/1,826)

§ 나는 될놈이다 1237화

랭커들도 경쟁이 치열한 시대였다.

눈 감았다 뜨면 새 랭커들이 밑에서 치고 올라오니, 기존 랭커들은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레벨 1이라도 더 올리고, 직업 퀘스트 하나라도 더 깨야 했다.

“저번에 킹태현넘버원 놈이 전설 직업 전직했다고 자랑한 거 봤냐?”

“그, 그래봤자 2부 리그 팀….”

“정신승리하지 마. 인마. 판온에서 만났을 때가 중요하지.”

“어휴. 요즘 판온도 정말 혼돈 그 자체라서….”

랭커들은 한숨을 쉬었다.

판온 1 때처럼 대형 길드에 들어가 있으면 게임 내내 거들먹거리던 시대는 끝났다.

요즘은 대형 길드도 실수 한 번 하면 훅 박살 나고 사라졌다.

마계 퀘스트에, 하늘섬 퀘스트에, 그리고 이번 전쟁 퀘스트에 참가했다가 패배한 길드들까지.

판온 1 때부터 유명하던 길드들이 절반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초대형 길드에 들어갈 거 그랬나?”

“관둬. 길드 동맹 하는 꼴 보니까 오래 못 가겠더라.”

“미다스도 그렇고, 화이트 나이트도 그렇고. 연합해서 만들어진 초대형 길드는 들어가서 대접 받기 힘들지.”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는 정신 없이 두들겨 맞고 있었으니 평가가 좋지 않았다.

놀라운 건 승승장구하고 있는 <화이트 나이트>도 평가가 좋지 않았던 것!

그만큼 미쳐 날뛰는 스미스가 아군한테도 공포를 샀던 것이다.

“요즘 트렌드는 차라리 길드에 안 들어가고, 필요할 때만 파티 구해서 하거나 하는 솔플 같아. 영토 있어봐라. 공격만 받고, 관리해야 하니까 골치 아프잖아.”

“어쩐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아냐. 그럴듯해. 물론 땅 있으면 NPC 고용도 되고 골드도 많이 나오고 그렇지. 하지만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많이 뺏긴다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직업 퀘스트 하고 레벨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본다.”

“김태현은?”

“걔는 예외고….”

“아니, 김태현도 영지 없었으면 레벨 몇십은 더 올렸을 걸. 김태현이 영지 때문에 낭비한 시간이 얼마인데.”

판온 초기에 랭커들과 길드들이 영지를 얻기 위해 달려든 이유는 단순했다.

권력과 돈!

영지를 갖고 있으면 그 안에서 왕이나 다름없었고, 또 막대한 수익이 나왔다.

판온 골드를 현금으로 바꾸면 또 그게 어마어마하게 짭짤했으니….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몇몇 랭커들은 깨달았다.

-꼭 영지에서 세금 뜯을 필요 없이, 그냥 판온만 잘 해도 돈 벌 방법은 엄청나게 많잖아?

판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판온 플레이어들의 몸값도 마찬가지로 폭증했다.

영지 수입을 버리고 다른 것에만 몰두해도 충분한 것이다.

선수로 뛰어도 되고, 방송을 해도 되고….

-차라리 영지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퀘스트 깨서 이름 알리는 게 낫지 않나?

실제로 이런 말은 완전히 틀린 게 아니었다.

길드 동맹과 태현이 요란하게 싸우는 동안, 자기 직업 퀘스트 열심히 깬 랭커들이 하나둘씩 명성을 올리고 있었으니까.

영지도 없고 길드도 없지만, 희귀한 전설 직업이나 영웅 직업을 얻고서 나타난 랭커들!

이런 새로운 세대 랭커들의 등장에 기존 길드 소속 랭커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킹태현넘버원 플레이어, 이번에 전설 직업 <고대 초승달의 창술사>로 전직한 걸로 떠들썩한데요. 놀랍게도 킹태현넘버원 플레이어는 길드의 도움도 없이 이런 전직을 성공하셨습니다. 그 비결이 뭔가요?

-하하. 비결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저는 오히려 대형 길드에 가입하지 않았기에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예? 그게 진짜입니까?

-네. 대형 길드에 들어가면 사냥터를 제공 받고 경험치도 지원을 받죠. 하지만 그건 독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퀘스트는 깨지 않고 레벨에만 집착하게 되거든요.

-저런, 대형 길드 랭커들이 들으면 찔릴 말씀이군요.

-찔리라고 한 말입니다.

“저 저 저 싸가지 없는 새끼….”

“네가 랭커하기 전부터 난 랭커였어!”

“경험치 지원이 뭐가 나쁘다고!”

“저놈 보나마나 우리보다 레벨 20, 30은 낮아! 흔들리지 마!”

-네. 킹태현넘버원 플레이어.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예! 마지막으로, 김태현 선수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김태현 선수를 보고서 솔플을 해도 괜찮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솔플 랭커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판온 1 때부터 가장 앞을 걸으셨으니 말입니다!

“…….”

“…….”

“아 김태현 이 새끼….”

“김태현이 책임져야 하지 않냐?!”

물론 그런다고 태현이 책임져주진 않았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레벨은 좀 낮지만 전설 직업과 영웅 직업으로 무장한 신세대 랭커들!

그 기세에 기존 랭커들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 * *

“이번 에랑스 왕국 전쟁에서 만회를 할 수밖에 없어.”

“맞아. 최소한 레벨 10 정도는 올려야 한다.”

직업 퀘스트보다 레벨 업을 우선시하는 올드 타입 랭커들.

이제 와서 방법을 바꿀 수는 없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갈 순 없듯이, 이제 와서 김태현처럼 미친 퀘스트 연속 해결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레벨 업으로 차이를 벌릴 수밖에!

“어. 이세연한테 연락 왔네. 뭐지?”

“이세연? 야. 이세연 질문 대답해 주지 마! 걔가 지금 레벨 가장 높을 텐데!”

“그렇다고 씹냐? 씹었다가 나중에 만나면 박살 날 텐데.”

“헉. 나한테도 연락 왔다.”

랭커들은 바들바들 떨었다.

이세연은 도와주기에는 너무 잘나갔고, 무시하기에도 너무 잘나갔던 것이다.

“에랑스 왕국 퀘스트 깨고 있는 사람 있으면 정보 공유 부탁… 누가 자기 길드원인 줄 아나?”

“이렇게 멋대로 명령해도 되는 거야?!”

랭커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답장했다.

-1왕자 굶주린 혼돈이랑 계약한듯?

* * *

“…아니 굶주린 혼돈이랑?!”

“쉿. 쉿.”

이세연은 당황해서 태현을 말렸다.

지금 도랑고로 변장한 상태에서 굶주린 혼돈 이야기 꺼내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1왕자가 계약했으면 3왕자 쪽에도 굶주린 혼돈이랑 계약한 놈이 있을지도 몰라.’

“3왕자가 굶주린 혼돈이 아니라 이상한 악신하고 계약한 게 차라리 잘 된 일인가….”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이놈의 왕실은 뭘 잘못 먹었는지 1왕자, 3왕자가 다 이상한 놈하고 계약을 하고 있어!

‘…잠깐. 그러면 2왕자도 계약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도랑고 님. 주인님께서 도랑고 님을 찾습니다.”

“베스고 백작이 일어났나 본데?”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베스고 백작이 깨어났다면 차라리 잘 됐다.

직접 만나서 뭐라도 좀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설마 굶주린 혼돈 편을 들진 않겠지.’

-캬오오.

오랫동안 숨어 있던 불불이가 답답했는지 고개를 내밀었다.

“야. 지금 나오면 안 돼.”

-캬오….

-쿠오오(그건 뭐냐?)

하필이면 3왕자가 옆에서 걸어 나왔다.

3왕자는 태현의 불불이를 보더니 펫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쿠오(말 못하는 게 귀엽구나.)

[에랑스 왕국 3왕자가 불불이를 귀여워합니다!]

[친밀도가…]

“앗. 귀여우시면 뭐라도 좀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 펫도 평생의 영광으로 알 텐데요.”

3왕자는 고민하더니 품속에서 뭔가 꺼내기 시작했다.

그걸 본 태현은 아쉽다는 듯이 슬쩍 말했다.

“아, 좀 더 좋은 거면 좋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지요. 전하께서 주시는 거라면….”

“전하의 그릇이 그 정도라면….”

“아니 뭐… 이건 부추기는 건 아닌데….”

[최고급 화술 스킬을…]

[3왕자를 부추기는 데 성공합니다!]

[성공했습니다. 3왕자의 선물이 한 단계 올라갑니다!]

-쿠오(받아라!)

당할 대로 당한 3왕자는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파이토스 신수의 등심:

파이토스 교단 신수의 고깃덩이다. 미식을 즐기는 전전대 에랑스 국왕이 몰래 잘라낸 이 고기는, 파이토스 교단에 들킬 경우 극도로 분노를 살 수 있다.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경악했다.

아니 에랑스 왕실 이놈들 진짜….

잘나간다고 정말 막 나가는구나!

신수 고깃덩이를 몰래 잘라내?

-캬오오.

“안 돼. 불불아. 이건 더러운 거야.”

-캬오오!

불불이는 왜 안 되냐는 듯이 분노했다.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고 든든해 보이는 고깃덩이를 먹지 말라고 하니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나?”

[카르바노그가 악신도 아니니 문제는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몸에 좋을 거라고…]

‘으음. 아니. 약해질까 봐…’

[……]

너무한 대접에 카르바노그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약해지겠는가!

“그래. 불불아. 잘 씹어 먹으렴.”

와그작와그작!

불불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고깃덩이를 붙잡고 냠냠 씹어먹었다.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니 보는 사람이 다 뿌듯했다.

[불불이가 <파이토스 신수의 등심>을 먹습니다.]

[파이토스 교단의 신성력을 얻습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카르바노그! 어쩔 거야! 괜찮다며!’

[신성력 얻는 게 뭐가 나쁘냐며 카르바노그가 항변합니다!]

‘하긴 그건 그렇지만….’

파이토스 교단이라는 게 괜히 기분 나빴던 것!

[신성력을 얻었으니 나중에는 권능 스킬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필요 없어 그런 거.’

-캬오?

“다음에는 좀 좋은 교단 신수의 고기를 찾아줄게.”

-캬오오!

대체 어떻게 찾는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 *

“백작님! 깨어나셨습니까?”

“너…는 도랑고가 아니구나!”

“??!?”

“도랑고 그놈은 절대 제 발로 찾아올 놈이 아니다.”

‘아오.’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이제까지 잘 속여왔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걸렸다는 게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정체를 밝혀라!”

태현은 혀를 차며 가면을 바꿨다.

이렇게 된 이상 베스고 백작을 만났던 얼굴로 돌리고 변명을 해야 했다.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기껏 왔는데 3왕자하고 이야기만 하고 빠져나가야 하나? 국왕 위치는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아니. 자네는…?”

베스고 백작은 태현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랐다.

영웅의 상이어서 직접 붙잡고 그림까지 그렸던 사람 아닌가!

“왜 도랑고로 변장하고 여기 왔나?”

“백작님께서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되어서… 다른 사람으로 변장했다면 들여보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변장했습니다.”

“그런…!”

베스고 백작은 크게 감동했다.

부활초를 구해온 정성도 정성인데, 그게 아무 상관없는 모험가가 한 일이라니. 감동이 두 배였다.

“거짓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아니야! 내가 자네의 얼굴에서 영웅의 모습을 보았는데, 과연 제대로 보았어! 이렇게 자기를 아끼지 않고 오는 사람이 영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베스고 백작의 친밀도가 매우 크게 오릅니다!]

[베스고 백작의 진영 내에서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칭호, 베스고 백작의 양자를 얻습니다!]

“도랑고 놈 따위는 필요 없네! 앞으로 도랑고의 자리를 자네가 맡도록 하게.”

“아니….”

태현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했다.

순식간에 족보에서 파여 버리는 도랑고!

“여봐라! 앞으로 도랑고가 갖고 있는 자격은 여기 있는 모험가한테 줄 테니, 그렇게 알도록 해라!”

“아니. 도랑고 님의 자격을 남한테 주신다니요! 그런 명령에는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백작님. 아무리 도랑고 님이 서자라지만 그런 명령은 너무하지 않습니다! 아예 다른 것들도 넘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

가신들의 반응은 한술 더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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