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34화
쓸데없는 친절이란 말이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러했다.
태현은 아키서스 교단 실버 등급 플레이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하고 같이 하면 망신당할 수도 있을 텐데….’
하다가 태현이 교황이라는 걸 눈치라도 채면?
저 플레이어는 창피해서 판온을 접을지도 몰랐다.
그런 호ㄱ… 아니, 고객을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도와준다는데 감사히 받도록 해.”
“맞아요. 잘 받죠.”
“…….”
그러나 이세연과 이다비는 냉정했다.
태현 앞에서 잘난 척을 했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 * *
“자. 제 주변으로 모이십시오.”
[<아키서스 교단의 중급 축복>이 시전됩니다!]
[행운이 맴돕니다!]
축복받은 주문서를 쓰자 주변에 축복이 공유되었다.
그 행운에 모두가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이게 행운이구나!”
행운과 함께 차오르는 자신감!
이번에 심으면 분명히 뜬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심자! 팍팍!”
“자. 초보자 분도 여기!”
“우리는 씨앗 있….”
“감사히 받을게요!”
이다비는 바로 씨앗을 챙겼다. 더 많이 받아서 나쁠 게 없는 것이다.
[<중급 부활초 씨앗>을 심습니다.]
[농사 스킬이 낮습니다. 페널티를…]
[행운이 매우 매우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신성 스탯이 높습니다!]
[명성이 높습니다!]
[……]
[……]
[……]
스탯, 칭호, 업적 등 다양한 보너스를 한 번에 받는 태현!
농사 스킬이 낮아서 페널티를 받는다고 해도 이 정도면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거의 신의 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이세연은….
[악명이 높습니다! 페널티를…]
[흑마법 스킬이 높습니다! 페널티를…]
[……]
[……]
[……]
“…….”
네크로맨서는 이런 작업에 어울리지 않았다.
일인군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대가로 각종 페널티를 안고 사는 직업!
“이잇….”
이세연이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자 이다비가 옆에서 손을 잡아줬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키서스의 속삭이는 황금 축복>.”
파아앗!
골드를 소모해서 추가 버프를 주는 강력한 스킬.
이다비는 사제로 추가 전직한 다음 꽤나 강력한 스킬들을 많이 얻은 상태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태현과 함께하면서 온갖 굵직한 전설 퀘스트들을 같이 깨왔으니 레벨, 신성, 공적치 포인트가 안 쌓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악명 페널티가 일시적으로 사라집니다!]
[불운이 일시적으로 사라집니다!]
[……]
[……]
‘…천사??’
이세연은 순간 이다비의 뒷모습에서 후광 비슷한 걸 봤다.
물론 스킬 이펙트긴 했지만….
“네크로맨서 직업은 이럴 때 불편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천사?’
생각해 보니 김태현하고 같이 다닌다는 것부터 천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팀 KL에서 힘들면 얼마든지 말해요. 제가 꼭 도와드릴 테니까요.”
“네? 저 정말 잘 지내는데요…?”
* * *
뼛속까지 전투 직업인 태현은 알고도 무시했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아키서스의 화신>은 전투보다는 제작 쪽에 어울리는 직업이었다.
행운이라는 버프는 다른 화려한 버프와 비교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졌지만, 결코 약한 버프는 아니었다.
계속해서 키우다 보면 제대로 된 보답이 돌아오는 대기만성형 버프!
각종 제작 스킬에 다 어울리는 스탯이다 보니 쓸 만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태현은 그 스탯을 최대한 전투적으로 활용했다.
폭탄이나 폭탄이나 폭탄 같은 식으로….
“가자! 가자!”
“이번에는 뜬다! 이번에는 뜬다!”
‘광기 그 자체군.’
플레이어들은 부활초를 앞에 두고 미친 듯이 외쳐댔다.
아키서스 버프를 받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확률은 희박했다.
믿을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다!
“<성장 속도의 비약> 뿌리겠습니다!”
“오케이!”
부활초 씨앗 위에 각종 포션들이 뿌려졌다.
성장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포션은 기본 중의 기본!
[부활초가 빠르게 자라납니다!]
[수확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수확 가능합니다!]
“…뽑아!”
[하급 파랑 부활초가 피어납니다!]
“크아아아아악!”
[하급 빨강 부활초가 피어납니다!]
“크어어어어억!”
[상급 노랑 부활초가 피어납니다! 놀라운 성과입니다!]
“떴, 떴다! 상급! 상급!”
“색깔! 색깔 뭔데!”
“노… 노랑! 255, 255, 0의 선명한 노란색!”
“그건 정말 상급이 맞구나!”
서로 얼싸안고 행복해하는 플레이어들!
“이게 다 아키서스 덕분이다!”
“아키서스 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기면 아키서스 님 덕분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아키서스! 아키서스!”
‘내가 만든 교단이긴 하지만 진짜 미친놈들투성이야.’
태현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교황이라지만 아닌 건 아닌 것!
“역시 실버 등급은 다르십니다!”
“실버 등급은…!”
플레이어들은 아키서스 교단 실버 등급 플레이어를 가운데에 두고 찬양했다.
역시 실버 등급!
한 번에 상급 노랑 부활초를 피어나게 만들다니!
이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최상급 새하얀 부활초가 피어납니다!]
“오. 떴군.”
“뜨셨어요?”
“응.”
태현은 담담하게 <최상급 새하얀 부활초>를 챙겼다.
이세연은 매우 놀랐지만 이제 이 정도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는 뭐….
가능한 영역 아닐까?
‘김태현은 아키서스 교단 교황이니까… 평범한 거겠지… 그렇지?’
놀라면 촌스러워 보일 거야!
태현 일행이 떠나고 나서야, 뒤늦게 아키서스 교단 실버 등급 플레이어는 초보자 생각이 났다.
‘어디 갔지?’
둘러봤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차. 낮은 게 나와서 실망해서 가버렸구나!’
마음이 아팠다.
행운이 없는 게 잘못도 아닌데 실망해서 가버리다니!
초보자일 때는 누구나 다 그러는 것이다.
‘뭐가 나왔길래….’
[최상급 새하얀 부활초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발견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 최, 최, 최상급 새하얀 부활초 떴다!!”
플레이어의 외침에 주변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려….
오지 않았다.
“아. 또 거짓말하는 놈 왔네.”
“이제 안 속아.”
이 주변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온갖 놈들이 와서 ‘야! 최상급 떴다!’ 하면서 양치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진짜라고! 여기 봐! 흔적!”
“아니면 죽… 헉! 진짜다!”
“진, 진짜라고???”
“누가 어떻게 심은 거야? 누가 가져간 건데?! 찾아! 찾아!!”
플레이어들은 태현을 찾아 미친 듯이 헤맸다.
정체불명의 그 플레이어를 찾아야 한다!
어떻게든 사거나 아니면 비법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 거야! 으흑흑!”
“알려달라고…!”
* * *
“갖고 왔습니다.”
-아니?
-정말로 갖고 왔다고?
-말도 안 돼. 어디서 가짜를 구해온 게 아니라면….
[에랑스 왕국, 베스고 백작의 진영에서 당신의 평가가 올라갑니다!]
[변장이 들켜도 공격받지 않습니다!]
[베스고 백작과의 친밀도가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
태현과 카르바노그 모두 당황했다.
아니, 변장이 들켜도 공격받지 않는다고…?
‘뭔 소리냐 저게?’
[카르바노그도 잘 모르겠다며 당황합니다!]
태현도 이 메시지창은 혼란스러웠다.
보통 변장하고 있다가 들키면 아무리 친밀도가 높아도 ‘속이다니 이놈!’ 하면서 공격을 당하기 마련이었는데….
변장이 들켜도 공격받지 않는다니.
‘용서해 준다는 건가?’
[도랑고가 너무 형편없어서 그냥 화신을 아들로 생각하려는 거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하던 태현은 멈칫했다.
왠지 모르게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이다.
도랑고를 진짜 싫어하는 가신 NPC들이라면, 태현을 보고 ‘그냥 저 사람을 새 아들로 생각하죠?’, ‘그럴까요?’ 같은 반응을 보여줘도 놀랍지 않았다.
-좋다. 따라오도록. 백작님을 뵙게 해주겠네.
“감사합니다!”
-정말 도랑고가 아닌 것 같은데….
가신들을 따라 안으로 걸어가던 도중, 태현은 앞에서 걸어오는 3왕자와 마주쳤다.
하필이면 백작 진영 안을 돌아다니던 3왕자!
-쿠오… 쿠오오.
3왕자는 태현을 가리키더니 물었다.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음… 백작님을 보러 오다니 기특하다고 하시는군.
‘별 말 아니었군.’
-쿠오오!
3왕자는 분노하더니 들고 있던 물건을 집어 던졌다. 가신들은 두들겨 맞으며 비명을 질렀다.
-죄, 죄송합니다! 왕자님!
-저희가 왕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 찍은 거였어?’
생각해 보니 투구 사이에서 쿠오오 쿠오오만 해대는데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신들이 대충 찍는 것도 당연한 것!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저주 받은 3왕자의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쿠오…쿠오오(너는 어디서 온 놈이냐?)
“!”
그러나 태현은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가진 말의 달인.
거인족도 설득 가능한 사람인데 저주 받은 3왕자의 목소리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저는 베스고 백작을 뵈러 온 도랑고입니다.”
-쿠오옷(내 말을 이해한다고?)
3왕자는 깜짝 놀랐다.
이 저주 받은 갑옷으로 덮인 몸 때문에 주변 놈들이 말귀를 못 알아먹어서 짜증 나 죽겠는데, 웬 서자 놈이 그의 말을 찰떡처럼 알아들은 것이다.
이곳에 이런 인재가?
-쿠오(합격!)
“?!”
[<에랑스 왕국 3왕자의 외교관> 직위를 받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에랑스 왕국 3왕자의 사절>로 인해 다음과 같은 권한이…]
[시설 <에랑스 왕국 외교관 성>을 사용할 수 있…]
[<에랑스 왕국 정예 경비병>을 동원 가능…]
“?!?!?”
“!?!??”
-김태현… 지금 이거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는 거 맞지…?
뒤에서 보고 있던 이세연이 당황해서 물었다.
아무리 봐도 저것까지 태현이 계산하고 한 것 같지는 않았다.
3왕자가 갑자기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차라리 잘 됐다. 어차피 왕자 만나서 국왕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려고 했었잖아.
-그래서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잖아…?
-자. 가자! 이세연!
-너 지금 대답 일부러 피하는 거지?
* * *
‘그나저나 3왕자 이놈 뭐랑 계약을 했길래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지?’
갑옷도 보아하니 저주 받은 물건이었고, 보통 계약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럴 때면 살살 달래줘야 했다.
“왕자님. 왕자님의 풍채가 실로 보기 좋습니다.”
-…….
3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이세연이 당황해서 속삭였다.
-역효과 아냐!?
저주로 갑옷 못 벗고 있는 사람한테 ‘너 참 보기 좋다’라고 말하는 건 별로 좋은 화술이 아니었다.
-쿠오오…(뭘 좀 아는구나)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3왕자가 당신의 칭찬에 만족스러워합니다.]
“…….”
“…….”
아니 좋아하잖아!?
[카르바노그가 상대의 갑옷에서 느껴지는 힘의 정체를 깨닫습니다!]
[저주와 고통의 신, 콰라다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외침에 얼굴을 굳혔다.
수상했는데 설마 악신하고 계약한 거였나?
할 거면 사디크나 이데르고 같은 놈들하고 계약할 것이지 왜….
[이데르고 교단이 만만해 보여도 너무 만만하게 보지는 말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알겠어. 카르바노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