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32화
“변장해서 뭐할 생각인데?”
이세연은 어이가 없었지만 물어봤다.
궁금하긴 했으니까!
“원래 에랑스 왕국 국왕하고 나름 친한 사이였거든.”
“아. 그랬었지.”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을 말할 때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
그건 바로 태현의 NPC 인맥이었다.
* * *
-판온에서 가장 레벨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김태현 아냐?
└길드 동맹 랭커 린야오가 더 레벨 높을 듯.
└걔는 뭔 듣보잡…?
└김태현은 근데 레벨 공개 진짜 안 하지 않냐? 대략적으로라도 말 안 하는 듯.
└자기 레벨 생각보다 안 높다고 말한 거 같은데.
└겸손해서 그래 사람이.
└김… 김태현이 겸손? 미쳤냐??
-그러면 판온에서 가장 컨트롤 좋은 사람은?
└그건 솔직히 김태현이지.
└리그 안 본 놈들은 솔직히 입 다물자. 리그에서 분석한 거 못 봤냐? 평균 공격 명중률, 평균 공격 회피율, 다 분석했다. 김태현이 남들보다 20~30%는 더 높아.
└근데 리그 안 참가한 랭커들도 많음.
└맞음. 퀘스트 할 여유 없다고 리그 참가 안 한 랭커들도 많은데.
└아 또 나왔네. 참가를 하라고!
게시판에서는 뜨겁게 야유가 쏟아졌다.
매번 나오는 이야기에 질렸기 때문이었다.
리그에 참가한 A 선수 최고지 않냐?→A 선수 대단한 건 알겠는데 B라는 플레이어가 참가 안 해서 그렇지 참가했으면→아 참가 하라고! 참가를 한 다음 이야기하라고!
참가하지 않은 선수로 자꾸 정신승리를 해대니 사람들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우겨대면 어떻게 증명할 수도 없으니 짜증 그 자체!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반박하지 못하는 주제가 있었다.
-판온에서 가장 인맥 넓은 사람은 누구냐?
└그건 확실히 김태현 맞다.
└그건 김태현일듯.
└김태현이 에랑스 왕국 국왕하고도 친하다면서?
└와, 진짜? 난 국왕 얼굴 한 번도 못 봤는데.
└김태현이 잘츠 왕국 국왕하고도 친하대.
└역시 사람은 작위가 있어야 하는 건가?
└전설 퀘스트를 그렇게 깼으니 친한 것도 당연하겠지.
└에랑스 왕국 국왕이 김태현을 아들처럼 생각한다더라.
└…그건 좀….
└뻥은 적당히 치셈.
└아니 진짜야!! 저번에 퀘스트 깨면서 들었다고!
└응. 나도 저번에 퀘스트 깨면서 김태현 만났는데 입단 권유하더라.
└나도 저번에 김태현 만났는데 케인보다 내가 낫다더라. 내가 탱커로 뛰었으면 좋겠대.
└뭐??? 언제????
└?
* * *
“그런데 지금 에랑스 국왕이 아무래도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단 말이지.”
에랑스 국왕이 멀쩡하다면 태현이 돌아다니는 걸 금지시킬 리 없었다.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더라도 서로 쌓은 친밀도가 있는 것이다.
이세연은 태현의 말뜻을 깨닫고 물었다.
“그러면 왕자들이 설마 국왕을 가두고 있다는 거야?”
“가능성이 꽤 있다고 생각했지.”
“확실히… 나도 에랑스 왕국군에 참가해서 활동하는 랭커들한테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뭐? 진짜?”
태현은 놀랐다.
“왜?”
“아니… 랭커들하고 친분이 있다는 게 놀라워서.”
“…….”
이세연은 정색했다.
“내가 친구가 없어 보여?”
“난 랭커들 사이에 친구 별로 없거든. 너도 없을 줄 알았지.”
“…….”
이번에는 이세연이 미안해졌다.
“…그,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친구 없어도 돼.”
“넌 있다면서?”
“아니… 그게 잘못은 아닌… 그리고 그렇게 친하지도 않다구….”
이세연은 갑자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태현과 이다비는 벌써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하긴 이세연은 판온 1 때부터 인기 많았었던 것 같아.”
“이세연 씨야 워낙 인기 좋을 만하죠?”
“그러면 난?”
“…저는 태현 님 편이에요!”
이세연도 딱히 교우 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태현이나 이다비에 비하면 정말 스타 수준이었다.
태현은 랭커들 사이에서 정말 외톨이 수준이었던 것이다.
판온 1 때는 랭커들 사이의 공공의 적이었고, 판온 2에서 인기가 엄청나게 치솟고 난 뒤에는 태현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른 랭커들은 보통 어려운 던전이나 퀘스트를 깨기 위해 아는 사람을 부르거나, 서로 힘을 빌리는데….
태현은 그냥 자기가 알아서 혼자 척척척 깼던 것이다.
아쉬울 일이 없으니 친한 랭커들도 없지!
“태현 님. 저기 이세연 씨 친구잖아요. 이세연 씨도 랭커고요.”
이다비는 태현이 상처받았을까 봐 열심히 위로해 줬다.
별로 위로는 안 됐지만!
“이세연이 날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의문인데….”
“당연히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그렇죠?”
이다비의 질문에 이세연은 당황했다.
“친, 친구… 맞지? 친구지?”
“그래? 그런 것치고는 길드원들한테 욕을 너무 많이 했….”
“…….”
판온 1 때부터 해왔던 태현 욕이 이렇게 돌아오다니!
“원래 친한 사이에서는 욕 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닌 것 같지만 뭐… 어쨌든 그렇다 치자.”
이다비의 설득에 태현은 되돌아왔다.
남들이 랭커 친구 수십 명 있다고 하더라도 별 상관 없긴 했다.
어차피 태현은 원래부터 솔로 플레이어였으니까!
“그래서 에랑스 왕국군 참가한 랭커들이 뭐랬는데?”
“왕자들만 보이고 국왕이 안 보이니까 뭔가 있지 않을까 싶냐는 이야기였지.”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세연의 말이 도움이 됐다.
그럴듯하다!
“지금 베스고 백작이 쓰러진 상태라면 거기 끼어들어서 참가할 수 있을 거야. 움직이자.”
이세연은 이다비를 보며 물었다.
“언제나 퀘스트를 이렇게 했나요?”
“네? 아뇨.”
“역시….”
이세연은 살짝 안도했다.
그래도 매번 이렇게 하지는 않았겠지!
“평소에는 이것보다 더 특이하게 했죠?”
“…?!?!”
* * *
“베스고 백작은 3왕자와 친한 귀족이었어. 그러니 베스고 백작이 이끌던 군대도 3왕자 있는 쪽에 있겠지.”
“다른 NPC들이 쉽게 넘어가줄까?”
“화술 스킬이나 명성, 권위 등등으로 설득해 보긴 할 건데, 안 되더라도 어쨌든 간에 쫓아내지는 못할 거야. 변장만 제대로 통하면.”
태현은 자신감이 있었다.
아무리 도랑고가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백작과 다른 이들이 다 쓰러져 있다면 쫓아내지는 못하리라!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들어가면 에랑스 왕국 내에서 사정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3왕자는 솔직히 만만하지. 가까이만 붙으면 협박할 수도 있고.”
“…???”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3왕자가 만만하다고?”
“만만하잖아?”
“잠깐만. 김태현. 뭔가 오해하고 있지 않아?”
이세연은 당황해하며 영상을 켰다.
에랑스 왕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랭커들이나 플레이어들이 올린 영상이었다.
그중 하나에 3왕자의 모습이 잡혀 있었다.
-쿠오오오오….
-저기 에랑스 왕국의 3왕자, 데이비드가 지나갑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왕자다운 모습입니다!
-쿠오… 쿠오오오… 쿠오오….
빈틈 하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금속 갑옷을 입은 우람한 전사가, 마찬가지로 금속으로 뒤덮인 말 위에 타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3왕자는 목소리 대신 ‘쿠오오’ ‘쿠오오’ 하는 숨소리만 쉭쉭 내고 있었다.
그 숨막히는 위엄에 플레이어들은 매우 감탄했다.
이야!
저게 왕자지!
[에랑스 왕국의 3왕자를 목격했습니다! 공포에…]
[에랑스 왕국의 3왕자를…]
[……]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 페널티를 주는 강력함!
그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모두 흥분해서 외쳤다.
-3왕자는 정말 전설이다!
-레벨이 얼마나 되는 거지? 800? 900?
-저 갑옷은 에랑스 왕실 특제 갑옷인가?
“…아니 잠깐만.”
태현은 영상을 보고 정색했다.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3왕자는 저런 놈이 아니었다고!”
예전에 에랑스 왕국 퀘스트를 할 때 만났던 왕자들은 다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해 보였던 놈들이었다.
물론 판온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약해 보이는 놈이 사실 레벨이 높았다거나, 그런 경우가 없잖아 있긴 했다.
하지만….
왕자들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태, 태현 님. 저거 3왕자 맞아요?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 같은데요?”
-쿠오. 쿠오오.
[카르바노그가 뭔 미친 계약을 한 게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에랑스 왕국 왕실에는 온갖 보물들과 주문서들이 있었다.
거기서 수상쩍은 계약을 한 게 분명했다.
‘어떤 계약을 한 거지? 악마 공작과 계약을 했나? 아니면 신과?’
[뭐든 간에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 그리고 나도 좀 큰일 났는데….’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동시에 정색했다.
만만하게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런 쇳덩어리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진 것이다.
‘저거 화술 스킬 통하기는 하나?’
화술 스킬부터 안 통할 것 같은데….
“이세연. 혹시 1왕자나 2왕자 정보도 있어?”
“아. 응. 1왕자 정보 하나 있어. 이건 공개 정보 아니니까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1왕자나 2왕자는 접촉한 사람들이 많지 않거든.”
이세연은 1왕자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저 멀리서 조그맣게 1왕자와 부하들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
“…….”
“아니, 이건 아니지.”
1왕자도 뭘 잘못 먹은 것처럼 온몸에서 사악한 힘이 풀풀 솟구치고 있었다.
무슨 지옥에서 온 마검사 같다!
3왕자와 똑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달라진 것 똑같았다.
‘에랑스 왕국이 미쳐 돌아가는군.’
태현은 황당해했다.
이렇게 되면 2왕자도 머리 세 개에 팔 여섯 개 달고 나와도 이상할 거 없어 보였다.
[그건 아키서스의 천사…]
* * *
“아이고! 백작님!”
도랑고, 아니 태현은 진영에 도착하자마자 크게 울부짖었다.
[에랑스 왕국, 베스고 백작의 진영에 도착합니다!]
[변장이 들킬 경우 공격을 받을 수 있습…]
[베스고 백작과의 친밀도가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
도랑고보다 태현이 베스고 백작과의 친밀도가 높았다.
도랑고는 정말 뜨거운 효자였던 것이다.
-아니, 도랑고가 반성을??
-도랑고 놈이 눈물을 흘린다고??
-진짜 도랑고가 맞나?
-도랑고가 저렇게 철이 들 수가 있단 말인가?
“…….”
“…….”
엎드린 태현도, 뒤에서 변장하고 따라온 이세연과 이다비도, 속으로 땀을 흘렸다.
아니….
대체 뭐 얼마나 밉상 짓을 했길래 이래!?
“백작님을 뵙고 싶습니다!”
-으음….
-으으으음….
-으음….
백작의 가신 NPC들은 매우 싫다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제가 아무리 못 미덥다지만 저는 백작님의 핏줄입니다. 한 번만 뵙게 해주십시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매우 높은 명성을…]
[……]
[……]
파아앗!
이세연은 태현의 뒤에서 빛이 나는 것을 느꼈다.
저것이 화술 스킬!
도랑고를 싫어하던 NPC들도 움찔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는 위력이었다.
[설득에 성공합니다!]
-…좋다. 대신 지금부터 말하는 임무를 해내도록 해라.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퀘스트를 성공할 경우 백작을 만날 수 있습…]
“????”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설득 성공했는데 왜 퀘스트가 나와?
-와. 대단한데? 진짜 설득 성공할 줄은 몰랐어.
-아니. 실패야. 퀘스트 해결해야 한다는데.
-그냥 퀘스트만 나왔어?
-해결하면 만나게 해준다는군.
-…그 정도면 충분히 성공 아니야?
이세연은 어이가 없었다.
대체 얼마나 날로 먹으려고 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