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31화
개중에는 현실을 부정하다 못해 이렇게 나오는 놈들도 있었다.
“이거 방장 사기맵 아냐???”
“…….”
판온에 가끔 그런 투기장이 있긴 했다.
정말 외진 곳에 있는 수상쩍은 투기장!
투기장 주인 NPC와 친한 플레이어만 특혜받는 투기장.
그런 투기장에서는 뭘 해도 방장이 유리하긴 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태현한테 그런 의심을 하는 놈은 미친놈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야. 추하니까 그만하고 나와.”
다른 플레이어들이 창피하다는 듯이 뒤에서 말했다.
지금 수십 명이 넘게 테스트 보고 가는데 혼자서 저러다니.
안 쪽팔리냐?
하지만 그런 쪽팔림을 알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저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거 놔봐!”
“안 잡았어. 인마. 너 혼자서 소리치고 있는 거야.”
“놓으라고! 이상하잖아! 어떻게 한 대도 못 때려! 스킬도 봉인되고 스탯도 다 똑같은데!”
“그건 네가….”
말하려던 플레이어는 멈칫했다. 그러자 소리 지르던 놈이 노려보며 말했다.
“뭐! 뭔데!”
“아니, 이건 말이 너무 심해서 안 한 건데.”
“말하라고! 뭐!”
“…네가 개허접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
“…….”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
“…죽, 죽고 싶냐?!”
“김태현 한 대도 못 친 놈이 뭐 결투에서는 다를 거 같진 않은데….”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도 나름 한가락 하는 이들이었다.
상대가 협박한다고 쫄진 않았다.
오히려 기회처럼 느껴졌다.
‘어? 여기서 활약하면 김태현한테 높은 평가 받는 거 아닌가?’
‘그러게?’
“야! 나하고 싸우자!”
“아냐! 나하고 붙어보자!”
“?????”
갑자기 손 들고 나서는 플레이어들의 기세에 진상을 부리던 플레이어는 당황했다.
아니 왜 이러지?
보통 이러면 겁을 먹고 물러서야 하는데….
“비켜! 이 자식들아! 내가 먼저 싸울 거야!”
“나 김태현 한 대도 못 쳤다고! 여기서 점수 따야 한다고!”
“야! 너만 못 쳤냐! 나도 못 쳤어! 다 똑같아!”
우당탕콰당!
태현은 안에서 기다리다가 아무도 안 들어오자 밖으로 나가봤다.
플레이어들이 서로 깃발 꽂으면서 1:1로 붙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뭔…?”
“그, 그게 말입니다….”
도우러 온 직원들은 당황해서 진땀을 흘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한다?
* * *
태현은 ‘그만 싸워 미친놈들아!’로 상황을 정리했다.
진상을 부리던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탈탈 털리고 후다닥 도망쳤다.
“김태현 님! 제가 저놈을 이겼습니다!”
“저도 저놈을 이겼습니다!”
“…어떡하라고?”
태현은 당황했다.
뭐 상이라도 달란 건가?
“어… 그….”
“저희가 그만큼 강하다?”
“쟤보다는 강하다??”
“그, 그래. 알겠다. 다음 사람 들어오기나 해.”
플레이어들은 시무룩해졌다.
에이….
밖에 있는 놈 패도 별거 없었잖아!
‘후. 뭐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뭔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
플레이어들이 초조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대부분이 지금 태현을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밀린 것이다.
충격적이다!
솔직히 상대가 태현이 아니었다면 그들도 ‘이거 방장 사기맵 아냐??’라는 말부터 나왔을 것이다.
스탯이나 스킬을 봉인하면 그래도 컨트롤에서 그렇게까지 차이가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기 공격은 먼저 읽히고 태현의 공격은 읽을 수가 없으니 몇 번을 붙어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다들 컨트롤이 괜찮네.”
“그래?”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테스트 받으러 온 플레이어들답게 컨트롤이 괜찮았던 것이다.
기본이 탄탄하다!
“정석 많이 익힌 티가 나. 예를 들어 검+방패 조합이면 검 휘두르고 방패 든 다음 옆으로 걸음 밟고 다시 검 휘두르면서 사이클 만들고….”
“근접딜러는 말해줘도 모르는데….”
이세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현이 마법사의 복잡한 마법 사이클을 알지 못하듯이, 이세연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태현은 이세연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너 내가 아까 마법사 이야기했다고 이러는 거지?”
“아닌데? 어쨌든 정석 많이 익힌 티가 나긴 하는데 그거 기본으로 발전해서 이것저것 쓰는 플레이어들이 있어서 좋더라.”
“다들 한 대도 못 때렸다고 슬퍼하던데….”
“그거야 나랑 싸운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렇지. 계속 싸우다 보면 한 대는 때리겠지.”
‘한 대 이상 때려야 정상 아닌가?’
태현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예측하는 데에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판온에서도 절대 빠질 수 없는 동체시력과 반사속도!
절대 정석적인 움직임을 밟지 않고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가며 이것저것 카운터 넣고 페인트를 치니 처음 상대하는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속 상대하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질 거고 한 대쯤은 칠 수 있으리라.
“그중에서 컨트롤이 더 좋은 사람 골라냈어?”
“아니.”
“??”
이세연은 의아해했다.
태현의 예리한 눈으로 컨트롤이 더 좋은 사람을 골라내려는 게 아니었나?
“컨트롤보다는 사고방식을 보려고 했는데.”
태현을 이기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합격을 시키려고 했지만, 없다면 다른 걸 보려고 했다.
예를 들자면 싸우지 않고 피하면서 시간을 끌던가, 다른 방법을 써서 이기려고 들거나…..
그 말을 들은 이세연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생각 하는 게 너 말고 누가 있어?!”
그런 미친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아니… 자기가 질 거 같으면 뭐 다른 방법을 써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플레이어들은 안 될 거 같으면 자꾸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했다.
태현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싸우라고!
도발을 하든 2:1로 덤비든….
태현의 말을 들은 이세연은 솔깃한 표정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그렇긴 하네.”
‘…….’
옆에서 듣고 있던 직원은 한탄했다.
말리라고!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괜찮은 테스트 같아. 확실히 계속 싸우려는 투지가 있어야지.”
“맞아. 그리고 내 생각에 월드컵은 사기 싸움이 될 거 같아.”
“사기 싸움?”
“누가 더 사기 잘 치냐 싸움.”
“아….”
이세연은 동감했다.
판온 리그를 일 년 하고 나서 사람들은 대충 감을 잡은 상태였다.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화끈한 사기 스킬을 앞세우는 사기적인 전략!
벌써부터 국가대표팀이 사기 스킬 찾아서 퀘스트 깨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우리 정도면 나름 사기 스킬 팀 아닐까?”
“그렇긴 하지?”
태현도 이세연도 전설 직업.
하지만 이제 전설 직업의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방심했다가는 언제 어디서 어떤 사기 스킬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일단 <고대 제국의 노래>은 확실하게 마스터하고….”
“그건 정말 사기 스킬이니까.”
“좀 더 사기 스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모았으면 좋겠는데.”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딜러든 탱커든 힐러든, 사기 스킬을 갖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전략 하나가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찾고 싶다, 사기 스킬!
‘두 분이 갖고 있는 거면 이미 충분한데 뭘 더 찾겠다고….’
* * *
“안녕하십니까! 저는 <큰도끼전사>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군. 큰도끼전사….”
게임 이름을 꼭 현실 이름으로 할 필요는 없었으니 별 상관없긴 했다.
“앗. 김태현 선수. 저 뒤에는 뭡니까?”
“?”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큰도끼전사가 덤벼들었다.
탓-
태현은 놀라지 않고 돌아서서 공격을 피해낸 다음 카운터를 넣었다.
퍽!
“큿! 아쉽다!”
“…참신하긴 한데 페이크를 걸 거면 좀 더 그럴듯한 걸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앞으로는 참고하겠습….”
말과 함께 큰도끼전사는 단검을 꺼내 던졌다.
어떻게든 한 대 때려보겠다는 집념!
‘심지어 무기도 도끼가 아니라 쌍검이잖아!’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이 무슨 파워 워리어 같은 플레이어지?
‘잠깐.’
“혹시 길드가 어떻게 되십니까?”
“파워 워리어입니다!”
“…아. 그렇군요.”
태현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파워 워리어 랭커가 후보에 오를 정도라니!
파워 워리어가 정말 커지긴 한 것이다.
싸움이 끝나자 큰도끼전사는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섰다.
마지막까지 빈틈을 노리는 눈빛이었다.
“괜찮은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았어.”
이세연은 멀리서 구경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태현 취향!
“최도희 선수… 길드는 파워 워리어… 파워 워리어 길드 괜찮지.”
“…?!”
이세연의 말에 태현이 놀랐다.
정, 정말 괜찮나?
“파워 워리어가 괜찮다고?”
“괜찮지? 왜?”
“아무것도 아니야.”
태현과 이세연은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을 체크해 나갔다.
<큰도끼전사> 같은 사람이 특이한 경우였고, 보통 실력 있는 사람은 해외든 국내든 게임단 소속 선수로 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 어, 어, 어떻습니까?”
그리고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것은 류태수였다.
유성 게임단 소속 딜러!
무려 태현의 공격을 받아내고 데미지를 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남들이라면 감탄했을 업적을 달성했는데도 류태수는 말을 더듬었다.
왜냐하면….
‘저거 패턴을 외운 건 아니겠지?’
이세연은 류태수를 수상쩍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알 사람들은 다 알았지만, 류태수는 태현의 어마어마한 팬이었다.
어지간한 전투 장면은 다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을 터!
패턴을 기억하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결과였고, 또 류태수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딜러긴 했다.
무엇보다 태현에 대한 팬심이 어마어마했으니 작전에 잘 따라줄 것 같고….
‘그나저나 근접 딜러 라인업은 왜 이렇게 개성 넘치는 걸까?’
이세연은 탱커나 힐러 쪽 직업들은 좀 차분하고 안정적이면서 우수한 사람들이 와주길 기도했다.
* * *
“베스고 백작이 쓰러져서 도랑고가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니.”
태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에랑스 왕국이 망하는 거 아냐?”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을까요?”
“아니. 도랑고는 그 정도로 능력이 없는 놈이 맞아. 그래서 파워 워리어. 도랑고는 뭐 하고 있지?”
“어….”
“신나서 날뛰고 있나?”
“그게 아니라, 아직 말 안 했습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사절들 와서 연락을 전해줬을 텐데 어떻게 그걸 모르지?”
“저희가 요리 잔뜩 퍼먹이고 술 마시게 했거든요….”
파워 워리어 길드 요리사들은 주눅 든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도랑고가 알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계속 먹이고 마시게 했는데, 잘 한 건지 확신이 안 선 것이다.
“…잘했다!”
“그렇죠!? 역시 잘 한 거 맞죠!?”
태현의 반응에 길드원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렇지! 이거지!
“봐! 내가 하자고 했잖아!”
“포도주 비싼 것만 먹길래 한 대 때리려다 말았는데 참길 잘 했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세연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계속 술 먹이고 재워서 뭐하게?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 되지 않아?”
“그 전에 할 일이 있거든.”
“??”
태현은 이다비와 같이 천을 꺼내더니 대충 잘라 만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도랑고가 입던 옷 비슷한 게 만들어졌다.
성능은 엄청나게 형편없었지만 애초에 그러려고 만든 게 아니었으니 상관없었다.
“어때. 이다비. 나 도랑고 같아 보여?”
“네. 엄청나게 한심해 보이는 모습이에요!”
“좋아. 잘 됐군.”
“…!”
이세연은 경악했다.
이… 이 인간….
도랑고로 변장하려고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