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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230화 (1,229/1,826)

§ 나는 될놈이다 1230화

베스고 백작은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에는 재능이 없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 귀족 NPC였다.

오죽 강력하면 태현이나 케인도 앞에서 살짝 쫄았을까.

그런 베스고 백작에 비해 도랑고는 별 능력 없고 사고만 치는 놈이었다.

그런 놈이 자리를 이어받는 퀘스트가 떴다고?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화해 퀘스트겠지.”

화해 퀘스트는 태현도 떴었는데 무시한 퀘스트였다.

들이는 공에 비해 나오는 게 별로 없는 쓰레기 퀘스트였던 것이다.

“베스고 백작이 쓰러졌으면 거기 아들 NPC들이 받지 않나?”

“아들들도 같이 출전했다가 같이 쓰러졌다고….”

“!”

태현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베스고 백작이면 에랑스 왕국군으로 참가해서 오스턴 왕국 공격하고 있을 텐데 쓰러졌다고?’

베스고 백작이나 아들들은 레벨이 살벌하게 높은 데다가, 데리고 있는 기사들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쓰러질 정도로 패배하다니.

어느 누가 잡은 거지?

‘스미스인가?’

* * *

“에랑스 왕국 놈들, 우리 길드 동맹을 우습게 보지 마라!”

쑤닝은 위풍당당하게 성벽 위에 서서 외쳤다.

그 밑에 모인 길드 동맹 랭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오랜만의 대승리였다.

스미스는 뭘 잘못 먹은 놈처럼 파죽지세로 위에서 치고 내려오지, 에랑스 왕국 놈들은 양심을 갖다 팔아먹었는지 서쪽에서 미친 듯이 밀고 내려오지….

아무리 길드 동맹 길드원들의 숫자가 많고 세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흔들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영토를 절반 넘게 잃고 나서야 길드 동맹은 간신히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길드원들은 총동원해 요새로 보내고, 김태현을 상대할 때를 대비해 준비해 놓은 수단들을 모조리 꺼냈다.

-위대한 파멸의 스크롤!

-가시나무 용병단!

-피의 저주를 받은 전사들!

온갖 수단들을 꺼낸 보람이 있었다.

콰르르르르-

해일처럼 밀려드는 에랑스 왕국군 상대로 길드 동맹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투였고, 대단한 승리였다.

[아이덴 평원의 전투… 길드 동맹, 위대한 승리!]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승리… 길드 동맹 주가 대상승?]

[길드 동맹의 저력, 놀랍다! 랭커 A 인터뷰…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 그 허접하던 길드 동맹이 맞나?’]

[생중계 시청률 1위 달성…]

[길드 동맹은 어떻게 강한 길드가 되었나?]

[……]

언론에서도 크게 다룰 정도로 대단했던 전투!

판온에서 단일 규모로 이만한 전투가 흔치 않았다.

“이 정도면 김태현 퀘스트는 넘은 거 아닙니까?”

“솔직히 넘었다고 봐도 된다.”

랭커들은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길드 동맹 소속 랭커 치고 김태현한테 열등감 안 품은 랭커가 없었다.

매번 두들겨 맞고 깨지고 다니다 보니, 길드 동맹 소속 랭커들은 랭커여도 매번 이미지에서 손해를 봤다.

랭커들은 매우 억울했다.

-야, 길드가 깨진 거지 내가 깨진 거냐? 김태현도 우리 피할 때 많았어!

-나도 내 직업이랑 레벨 신경 쓰느라 안 싸운 거지 진짜로 싸웠으면 김태현도….

-김태현도 뭐?

-…김태현도 꽤 성가셨을 수도 있겠다 이거지….

물론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길드와 같이 싸우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한 건 랭커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이 승리는 그 열등감을 깨끗이 씻어내는 승리였다.

이 정도면 김태현보다 더 박진감 넘치게 싸웠다!

“쑤닝 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어쩐지 쑤닝의 목소리도 좀 근엄한 것 같았다.

앨콧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렇게 근엄한 사람이었나?’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쑤닝 님. 이번에 <위대한 파멸의 스크롤>도 쓰고 <가시나무 용병단>도 쓰고 <피의 저주를 받은 전사들>도 썼잖습니까.”

“그렇지.”

“이 때 스미스나 다른 놈들이 쳐들어오면 어떡합니까?”

“걱정 마라. 그놈들도 지금 계속 싸워서 좀 쉬고 있다는 건 확인 끝났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강하다는 걸 보여줬는데 그걸 보고서도 겁없이 공격해 들어오면 그게 김태현이지 사람이냐?”

“오….”

앨콧은 생각보다 논리적인 대답에 놀랐다.

아니 쑤닝이 이런 대답을?

‘저렇게 똑똑한 사람이었나?’

그러나 그런 평안은 채 1시간을 가지 못했다.

“쑤닝 님! 쑤닝 님! 평원 반대쪽에서 스미스가 이끄는 기사단 출현! 방어 들어가야 합니다!”

“…뭐?!?!”

멀리서 스미스가 친위대를 데리고 돌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힘들지만 적들은 더 힘들 것입니다! 돌격! 돌격!”

“아, 아니. 스미스.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은데. 애들 다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인데….”

“이건 미친 짓이야! 차라리 빠지겠어!”

푹!

“도망치는 놈은 내 손으로 베겠습니다! 돌격!”

“으아아악! 스미스 진짜 저 미친놈이!”

“저 새끼 길마로 데리고 온 놈들 다 죽어!”

스미스의 광기는 플레이어들을 움직이게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돌격해 오는 플레이어들!

물론 길드 동맹 길드원들도 울고 싶었다.

아니 저 미친놈들은 쉬지도 않나…!

* * *

“이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태현이나 이세연도 선수인데 선수한테 평가를 받아야 하다니! 이건 불공정하잖아!”

자리에 모인, 판온 월드컵 후보 플레이어들.

그중 최대성이 발끈했다.

판온 리그나 게임단에는 입단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랭커에 이름을 올리고 실력 있다고 말이 나온 플레이어였다.

그런 만큼 자존심이 강했다.

-판온 프로 선수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 나나 다른 랭커들이 리그에 나가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 붙으면 이길 수 있다!

판온 리그에 참가하지 않은 랭커들은 리그 선수들을 질투했다.

압도적으로 차이 나는 인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판온 랭커가 인기가 좋다고 하지만, 당장 전 세계 랭커를 다 합하면 수천 명이 가볍게 넘어갔다.

김태현처럼 매번 매번 미친 퀘스트를 하면서 ‘내가 김태현이다!’라고 각인시켜주지 않으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힘든 것이다.

그에 비해 판온 리그는 달랐다.

매 경기마다 전 세계로 중계되면서 리그에 참가한 선수들을 띄워주는 것이다.

리그에 참가한 선수들은 후보여도 어지간한 판온 랭커보다 유명했다.

물론 리그에 참가하지 않은 판온 랭커들도 나름 알아서 잘 살고 있었고, 몇몇은 리그 자체를 아예 부러워하지 않았지만….

리그 인기를 보고 뒤늦게 후회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최대성도 그중 하나!

“김태현한테는 평가 받을 수 있지.”

“김태현이라면 인정한다.”

“…….”

그러나 최대성의 말에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솔직히 리그 안 보는 놈이나 저딴 패기 넘치는 소리를 할 수 있었다.

게임단 입단 시도를 해봤거나 국내 게임단 후보로 뛰어보기만 했어도 저딴 소리는 못 한다!

게임단에서 훈련할 때 교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게 태현이었다.

변칙적인 플레이나 그런 걸 배우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태현의 딜 사이클을 보고 따라 베끼는 것이다.

극한의 최적화가 된 딜 사이클!

-여기서 한 호흡 쉬고 때리고 스킬 넣고 때리고 다시 때리는데 이 때 흔들리지 말고 균형 잡고 있어야 이런 딜 사이클이 유지가 되는….

여기 모인 선수들은 아무런 불만 없었다.

“다 준비되셨습니까?”

협회에서 나온 직원들이 선수들을 불렀다.

한 번에 다 테스트를 받을 순 없고, 국내에서 괜찮다는 평가가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을 몇몇씩 불러서 둘이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다.

협회 직원들은 기꺼이 잔심부름을 하며 협조했다.

-꼭 협조하게 해주십시오!

-너무 협조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아무런 협박을 받지 않았습니다!

-…….

“할 말 있습니다! 같은 선수가 평가를 내려도 되는 겁니까?”

“예? 당연히 되죠.”

직원은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이 최대성을 쳐다보았다.

이 작자는 뭐라는 거야?

최대성은 당황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야 눈치를 보더라도 협회 직원이라고 하면 말을 들어줄 줄 알았던 것이다.

“아니… 같은 선수 아닙니까?”

“같은 선수가 아니죠?”

“같은 선수잖아요!”

“에이….”

직원은 피식 웃었다.

“김태현이나 이세연 같은 선수는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선수고, 최대성 같은 플레이어는 1달에 100명쯤 나오는 선수인데 무슨….”

최대성은 입을 쩍 벌렸다.

생전 처음 받는 굴욕!

옆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최대성 플레이어 리그 나가보셨습니까?”

“…안 나가봤습니다.”

“국내 리그에서 뭐 뛴 것도 없고, 이벤트 대회나 그런 건?”

“그런 건 굳이 나갈 필요가 없어서 안 나갔던 겁니다! 전 랭커란 말입니다.”

“여기 다 랭커야. 대성아.”

“맞아. 너만 랭커 아니거든.”

“난 국제랭커자격증도 땄다.”

“그런 게 있어?”

“<파워 워리어>에서 팔던데?”

“미친놈아! 너 속은 거야!”

“응. 아는데 그냥 예뻐서 샀어. 자랑하기 좋더라.”

최대성은 옆에서 들리는 헛소리를 무시하고 말했다.

“전 판온 내에서 1:1을 해서 밀린 적이 없고, 레벨도 300 직전입니다.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하고 게임에서 맞붙은 적도 있는데 제가 이겼단 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대회에서 증명을 하셨어야죠. 왜 리그에 안 나가고 저한테 그러십니까?”

직원의 태도는 슬슬 불량해져가고 있었다.

최대성이 딱히 특별히 재수 없어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최대성 플레이어. 지금 제가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전 지금 최대성 플레이어 같은 사람을 열 번째 넘게 상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예의 바르게 대하려고 해도, 아무 경력도 없는 놈이 판온에서 레벨 좀 높고 직업 좀 좋다고 거들먹거리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판온 리그 선수들은 다 레벨 좋고 직업 좋았다.

거기서 순수하게 걸러져 나온 게 리그 선수들인 것이다.

한 번도 리그 뛰어본 적도 없는 놈들이 무슨 자신감만 충만해서 지들이 김태현인 줄 알았다.

방구석 김태현이겠지!

김태현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는 놈들이 ‘나도 기회 주면 김태현 정도 할 수 있다’고 헛소리 해대는 꼴이 가당치도 않았다.

“그렇게 실력 좋으시면 김태현 선수한테 PK 걸어서 1:1로 이기시지 그러셨습니까?”

“그, 그건 그럴 이유가 별로 없어서….”

“최대성 플레이어가 아무리 말하셔도 김태현 선수는 이미 첫 시즌에서 확실한 커리어를 찍은 선수입니다. 해외 팀에 물어보십시오. 김태현 선수 감독으로 쓴다면 어떨 것 같은지. 백이면 백 찬성할 겁니다. 최대성 플레이어가 그래도 불만이면….”

“불만이면?”

“뭐 돌아가셔야죠. 뭔 말을 하실 줄 알았습니까?”

말문이 막힌 최대성은 씩씩대며 자리에 앉았다.

직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러던 놈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안 해 더러워서!’ 하면서 센 척 폼을 잡고 떠나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오냐 내가 실력으로 보여주겠다!’ 하고 들어갔다가….

* * *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

투기장에 들어갔던 최대성은 혼이 빠진 얼굴로 나왔다.

내가 방금 뭘 당한 거지?

[레벨이 1로 고정됩니다.]

[모든 스탯이 초기화됩니다.]

[……]

<초심자의 투기장>은 들어가면 레벨 1로 고정되어서 싸우는 투기장이었다.

각종 스탯과 대부분의 스킬들이 봉인되고 컨트롤만 볼 수 있는 곳!

그 때문에 태현은 여기를 빌려서 쓰고 있었다.

그런데….

‘들어오는 놈들마다 왜 자꾸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다가 좌절하는지 모르겠군.’

들어오는 놈들이 저 메시지창을 보면 하는 생각은 다 똑같았다.

헉, 레벨 1로 고정되면 나도 김태현 이길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김태현 이기면… 나도….

…물론 망상 중의 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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